므비보셋
삼하 9장 1-13절
주요내용 = 복의 원리
오늘은 "므비보셋"이라는 제목입니다.
므비보셋이 누구입니까? 다윗을 생명과 같이 사랑했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이 본문은 복의 원리를 잘 말씀해 줍니다. 여러분 복 받고 싶으십니까? 복이 싫으신 사람은 없을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1.복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1, 7절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이 말씀은 다윗이 사울의 가문을 돌보게 되는 근거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가? 그것은 요나단과의 언약 때문입니다. 삼상20:14-17에 다윗과 요나단 간의 언약이 나타납니다.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이 언약은 여호와 이름으로 한 언약이었기에 다윗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창1:28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셨고 이 약속은 노아언약에서 다시 확증되었고, 또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또 다시 확증되었으며, 모세와의 언약에서도 또 다시 확증하셨습니다.
좋은 예로 신28:1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기타 여러 복들이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의 복만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까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복들은 우리가 받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육 간의 복을 받는 귀한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그럼, 복은 언제 임하는가?
1절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이 말씀은 다윗이 사울의 가계에 은총을 베풀려고 돌아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때가 언제입니까? 이 때는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을 내외적으로 모두 평정시킨 후였습니다. 만약 다윗이 성급하게 그들을 복권시켰다면 나라는 또 다시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다윗의 명성이 높아도 인간의 세계에는 언제나 구시대를 그리워하는 백성들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권세가 강화되지 않은 때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반란의 원인을 제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육 간에도 분명한 순서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적인 축복부터 주시게 되면 그것은 결코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이 병들고 다 썩고 맙니다. 한국도 단숨에 복음화가 되면 교회가 복될 것 같아도 다 부패하고 썩고 맙니다. 그래서 지금은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성장의 기간입니다. 현명하신 하나님께서 손해볼 일을 왜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부터 주시고 그래서 믿음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복보다 먼저 신앙을 위해서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복의 때가 옵니다.
3.복을 위해 먼저 광야생활을 주십니다.
4절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다윗이 므비보셋의 소제를 묻자 사울의 종 시바는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로드발은 요단강 동편 므낫세 지파의 어느 지역으로 이 곳은 로드발 즉 '목초가 없다'는 그 뜻대로 황무한 사막지대였습니다. 광야라고 해도 어느 정도 풀은 있어 목축이 가능한데 풀마저 없다면 그것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완전 사막지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그런 곳에 살게 된 이유는 아마 다윗을 피해서였을 것입니다. 당시 어느 나라나 왕조가 바뀌면 일단 정적과 그 일가 친족들을 모조리 진멸하는 풍조가 있었기에 므비보셋은 그런 곳에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광야로 보내 신앙훈련부터 시키십니다. 모세도 그랬고, 이스라엘도 그랬고, 예수님께서도 40일을 광야에서 보내셨고,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로 갔습니다. 우리에게 이 광야는 시련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렇게 하여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되는 교통관계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이 살던 암미엘의 아들집의 암미엘이 '하나님은 나의 혈족이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하나되어 있는 합일관계를 암시합니다. 그러니까 영육 간의 복을 누리려면 먼저 신앙훈련부터 잘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 주시듯 우리의 삶을 가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4.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 므비보셋이 되어야 합니다.
3절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또 6절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또 8절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12절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여기 므비보셋의 특징이 네 가지가 나타납니다. 절뚝발이, 주의 종, 죽은 개, 젊은 아들 미가, 여기 젊은 아들은 원문에는 어린이로 나와 있습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가장 보잘 것 없거나 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가지는 복 받을 마음의 귀한 그릇의 모습입니다. 그는 사울왕의 손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사울 왕의 등등한 세력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런 하찮은 신분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 신령한 절뚝발이로 변해야 합니다. 야곱도 그 때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주인의 지배를 받는 겸손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또 또 죽은 개와 같이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개란 당시의 멸시의 상징이요 또 죽었으니 부정한 짐승입니다. 이처럼 내가 나서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기 부정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없어지고 숨겨질수록 좋은 것입니다. 또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즉 자아를 죽이고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심령 상태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복 주실 수 있습니다.
5.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복을 주실까요?
7절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또 10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 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여기 약 세 가지의 복이 약속되어집니다.
먼저는 므비보셋이 왕자처럼 왕의 상에서 함께 먹는 복입니다. 이는 겸손히 회개하는 심령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는 진정한 영적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전에 사울이 가진 기업을 모두 되찾을 수 있는 복이었습니다. 이 복은 아담이 타락으로 잃었던 모든 복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 땅에 기름진 복 육신의 강건한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은 한 마디로 무궁 무진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므비보셋에게 시바의 가족까지도 종으로 거느리도록 했습니다. 시바는 아들이 열 다섯이요 종은 스물이었습니다. 대단한 노동력입니다. 그런데 시바는 간교하고도 교만한 사울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종이면서도 사울이 죽자 사울왕의 기업을 자기 것인양 독차지하고 사울의 자손 므비보셋의 비참한 행방을 알면서도 못보는체 섬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모든 기업 뿐 아니라 시바의 온 가족으로 더불어 므비보셋의 종이 되어 섬기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진실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으로 복주실 뿐 아니라 그 동안 우리를 역행하던 모든 것들로 우리를 돕는 손길로 변하게 하십니다. 환경도 변합니다. 야곱이 회개하자 환경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원수인 형 에서가 그의 호위대로 변했습니다. 집을 나간 탕자도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나만 바꾸어지면 모든 것이 바꾸어집니다. 어떻게 바꾸어져야 합니까? 므비보셋의 신분처럼 바꾸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주의 종, 죽은 개, 아이와 같은 겸손한 신앙입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처럼 복 받을 그릇은 준비되셨습니까? 복의 사람이 되려면 므비보셋처럼 사울왕의 잔재가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복을 아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기억하십시다. 먼저 우리에게서 옛사람의 잔재를 온전히 제거합시다. 그래서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