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전혜린
이 풍토는 그 속에 한 번 들어가서 그것에 숨쉬고 그것에 익고 나면,
다른 풍토는 권태롭고 위선적이고 딱딱하고 숨막혀서 도저히
못 참게 되는 곳인 것 같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가난이 수치 대신에
어떤 로맨틱한 것을 품고 있고, 흩어진 머리는 정신적 변태가
아니라 자유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되며, 면밀한 계산과
부지런한 노력 대신에 무료로 인류를 구제할 계획이 심각하게
토론된다.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언제나 아무도 안 사는 그림을, 그리고 아무도 안 읽을 시를 쓰면서
굶다시피 살면서도 오만과 긍지를 안 버리는, 이 구역에 사는
모두가 가난했고, 대개가 외국이나 타지방에서 모여든 화가나
학생이었던 그들한테서 나는 자유로운 생활이 무엇인지를 배운 것
같다.
전혜린은 '평범하지 않을 것'을 어릴 때부터의 신조로 삼아
행복 같은 것은 아예 뒷전에 팽개치고 죽는 날까지 독창적 예술에의
집념으로 앓았다.
순수한 젊은 지성이기 때문에 때묻지 않은 이들 기질에는 외계에
현혹된다거나 타협이나 굴종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그랬다간
씻을 수 없는 수치와 치욕이 된다. 자신의 옳음이 되는 이념에
틀릴 때 부정이 되는 타자의 이념에 무릎 꿇을 수 없는 것이
젊음의 자유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돈을 사랑하고 모으고 계산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죽어갈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무사히 식을 올렸다면', 결국은
마찬가지였으리라는-시적 이미지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지껄이기 위해서 지껄이는 사람, 천박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 철두철미 판에 박은 사고만을 가진 사람,
간단히 말해서 정신의 품격이 없는 사람이다.
가난하지만 자랑스러워야 한다. 자기의 긍지를 지녀야 한다.
개성이 없는 사람은 정말 하나의 캐리커처이다. 그가 말하고 행하는
전부가 우스꽝스런 냄새를 풍긴다. 그 자신만이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성격이 없는 사람, 규율이, 이상이, 사물에 대한 직관이
없는 사람을 나는 얼마나 증오하고 경멸하는지.
수레에 끼워진 바퀴처럼 자기 자신이나 주위에 대해 신선한
흥미를 잃고 타성처럼 회전하고 있는 그 바퀴가 안 되기 위해
그녀 의식은 늘 깨어 있어야 했고, 인식은 창조를 향해 숲처럼
또 늘 출렁대야만 했다.
가치로운 것을 낳지 못하는 권태는 죽음보다 더 싫고,
통속 속에 절은 현실은 아무래도 메스껍기만 해서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자아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끊지 말고 자기를 미칠 듯이
사랑하고 아끼되 자기의 추나 악을 바라보는 지성이 눈동자도
눈감지 말아 줘.
정말 자기만의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지성녀 전혜린.
그녀는 천재였고 예술가였다. 나혜석과 전혜린.
두 사람 사이의 공통분모가 내 가슴을 찌른다.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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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방울의 알코올......
그리고 내 세계는 새로워진다.
확 트이는 지평선, 흰 새벽, 닭 우는 소리,
솟아 흐르는 샘의 물소리로 그것은 가득 채워진다.
갑자기 눈이 부시도록 강렬하게 내 시야에 들어오는 녹음, 대낮.
나는 나와 전 세계에 악수를 한다.
아무것도 나에게 불만이 없다.
마치 이 새 주정(酒精)을 담는 주머니가 낡은 것임을 잊은 듯.
아무 어둠도, 회의도 없이 피어나는 마음의 오후다.
전혜린의 습작 노트에서....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中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아름다와서였다.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었고
그것은 아늑하고 따스한 기분이었다.
또 밤을 새고 공부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느꼈던
생생한 환희와 야성적인 즐거움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다시 그것을 소유하고 싶다.
완전한 환희나 절망, 그 무엇이든지..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몽환적 시월/전혜린
시월이 되면 레스토랑이나 다방에서 '데운 맥주'를 요구한다.
뮌헨의 시월이 그립다. 거기에 있을때는 언제나 이렇게 추운 가을은 처음 보았느니
한국의 가을 하늘을 못 본 사람이 가엾느니 하면서 새파란 하늘,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석류, 추석 보름달,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 등의
이미지와 불가분인 한국의 가을을 그리워했었다.
끔찍한 김장 시즌조차도 못 견디는 향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지 2년째 되는 요즈음 웬일인지 자꾸 뮌헨의 가을이 생각난다.
뮌헨의 시월은 벌써 본격적인 털외투가 필요해지는 계절이다. 한 달 중 20일은
비가 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언제나 하늘을 뒤덮고 있는 짙은 회색 구름과
언제나 공기를 무겁게 적시고 있는 두꺼운 안개, 안개비, 보슬비 등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 뮌헨의 시월이다.
벽이 두꺼운 방안에서 이중창에 세겹 커튼을 두르고 난로를 때고 앉으면
독서의 계절이라는 슬로건이 없어도 누구나가 마치 회색 안개에 눌린 듯이
생각과 책읽기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던 슈바빙이라는 뮌헨의 한 구는 일부러 옛날 것을 그대로
놔두는 파리식 예술가 촌이었다. 거기서만은 형광등 대신 여전히 가스등이
가로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저녁 때의 짙은 안개 속에 가물가물 어렴풋이
보이는 가스등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긴 막대기로 유유히 한등 한등 켜가는 박모의 광경은 이런 계절에는 더욱
몽환적으로 동요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시월이 되면 레스토랑이나 다방에서 손님들이 데운 맥주를 요구하는 수가 늘게 된다.
그러나 추위를 덜기 위해서 그보다 흔히들 마시는 것은 물과 설탕을 끓이고
럼주를 섞은 그로크라는 음료와 또 붉은 포도주에 계피, 사향, 레몬, 설탕 등을
넣고 끓인 굴류우와인이라는 음료다.
둘다 북극다운 침침하고 검소한, 음악도 없는 뮌헨의 학생 다방에서 마실 때
무척 맛있게 또 추위에 대해서 유효하게 생각된 음료지만 한국에서 마시면 어떨런지?
아직 한 번도 시험해 보지 못했다. 아마 그 우울한 안개비의 포장과 뜨거운 사기 난로,
구운 소시지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날라다 주는 금발의 후로일라인의
친절한 미소 없이는 맛없는 음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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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은....
1934년 1윌 1일 평안남도 순천 출생.
1953년 경기여중고등학교 졸업.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재학중 독일 유학.
1959년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 졸업.
뮌헨대학 에카르트 교수 조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역임.
성균관대학교 조교수.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
1965년 1월 11일 31세로 요절
서독 뮌헨 대학 출신으로 `안네 프랑크의 일기',
`어떤 미소', `압록강은 흐른다' 등의
역서를 지닌 전혜린 씨는 점성술, 운명학을 다루어 곧잘 점도 치던 이색적인 여성.
딸 정화 양의 장래를 기록한 쪽지가 사후 그의 유품에서 나와 유족을 눈물겹게 하고 있다.
그의 사후 출간된 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0~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문학소녀치고 한 번쯤은 `미치도록'
빠져들어 `자기 분신을 발견하는 감격과 기쁨'을 맛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전혜린.
그리고 3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예민한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는 전혜린. 도대체 무엇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걸까?
전혜린은 1934년 1월 1일 평남 순천에서 전봉덕과 김순해의 1남 7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행정 양과에 합격,
고급관리가 된 사람으로 혜린의 재능을 아껴 서너 살 때부터
직접 일본어와 한글을 가르쳤다.
딸은, 특히 맏딸은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드는 `살림밑천'으로
여기던 당시에 전혜린은 부유한 친일관료인 아버지 덕분에 `손에 물 하나
안 튀기고 내 방에서 공부만 하는 것 - 아버지가 한없이 아낌없이 사다주는
책을 읽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