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7] 이정옥(李貞玉) - 일심봉천(一心奉天) 5. 깨우쳐 가는 나의 신앙 - 1 1 뿐만 아니라 나도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한번은 점심에 생선요리를 먹고 갑자기 배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강경렬 속장이 전주교회에 왔는데 그분이 내 배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자, 1분도 못되어 그렇게 아프던 배가 스르르 나아버렸다. 기도는 약 10분쯤 걸렸는데 기도가 끝나면 다시 아파지겠지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2 또 그 해 5월에 선생님께서 전주교회에 오시어 예배를 보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기도할 때 나는 처음으로 환상을 보았다. 마치 영화 필름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3 또 한 번은 방에서 혼자 있는데 누가 “정옥씨” 하고 상냥하고 정다운 목소리로 불러서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음성도 들었고 그 후 수년 후에는 아래층에 있으면서 이층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기도 중에 환상으로 본 일도 있다.
4 입교 후 한 달 만에 원리 시험이 있다고 들었다. 한 선생이 뜻은 벌써 이루어졌는데 나보고 이제서야 들어왔으니 늦었다고 했다. 다들 천국에 들어가셨는데 나만 뒤에 처진 것 같이 생각되어 빨리 시험에라도 합격해야 되겠다고 생각되어 준비를 했다.
5 또 지금까지 5회에 걸쳐 원리 시험이 있었는데 제3회까지만 합격자에게 친필로 쓰신 졸업장을 주신다 하니, 그 친필 졸업장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 한 번은 시험에 낙제하고 두 번째 합격할 정도로 원리 시험이 어렵다고 들었다. 이 세상에 시험 보기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6 학업을 다 마치고 사회인이 되었으니 시험지옥을 영원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식구라면 누구나 원리 시험에 합격해야 된다 하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차피 통과해야 될 일이라면 일찍 부담감을 벗어나려고 원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7 원래 성경도 모르고 신앙 토대가 없어 단순히 원리 말씀을 듣기만 했을 때는(그 당시 원리 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 깊이와 진수를 다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차근차근 노트에 의지해서 공부를 해나가보니 창조원리에 더더욱 매료되었고 은혜를 받아 희열을 느꼈다. 머리가 아픈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에 심취되어 무한히 기뻐서 나만이 기쁨을 누리는 것 같았다. 8 1956년 7월 1일, 제3차 원리 시험을 전주교회에서 몇몇 식구들과 같이 치르고 그 답안은 곧 서울 본부교회로 보내졌다. 7월 3일 저녁때 “시험 합격 상경 요망”이라는 전보를 받고, 7월 4일 행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즉시 그날 밤차로 상경했다. 9 본부교회에 가보니 94점으로 합격이 되어 있었다. 유 협회장님이나 모든 식구들이 들어온 지 3개월도 못되어 그렇게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면서 하늘이 택하신 수재라고 과찬을 해주어 송구스러웠다. 10 어쨌든 나는 정식 식구가 되었고 선생님의 친필 졸업장을 받았으며 간부의 한 사람으로 택해 주시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받게 됐다. 이제 나의 생애를 걸고 이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천국 가는 길은 좁고 험하다고 했다. 내가 얼마만큼 하늘 앞에 보탬이 될 것인지 중압감마저 들어 두려움이 앞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