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야 될 사람입니다.
구월의 마지막 주,
오늘은 구월 이십팔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오면
재채기가 나옵니다.
한 번, 두번 그리고 연이어 여남은 번은 하나 봅니다.
벌써 새벽 거실의 온도가 많이 낮아져 그럴 테지요.
재채기를 여러번 하고 나면 목소리가 변합니다.
환절기 몸조심하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침을 먹고 주방에 있는 배우자에게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새벽 두 세 시경에 보일러를 한번 틀면 어떻겠냐고 물어 봅니다.
돌아 온 답은 아직 남들은 보일러 트는 집이 하나도 없는데..
재채기 나오면 나오는 대로 하면 되지 뭔 보일러를 튼다고 야단이냐면서
계속 잔소리가 이어집니다.
'남자들이 그러니까 남자 육십이 넘으면 죽어야 한다는 얘기들을 하지.'
듣기가 민망해 서재에 들어와 있는데도 주방에서는 별난?얘기들이 계속됩니다.
갑자기 가슴이 싸해지며 시려 옵니다.
진작에 죽었어야 했는데 아직 까지 살아서 배우자에게 저런 얘기를 듣고 사는구나...
이제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 배우자에게 짐이로구나.
살아 있는 것이 배우자에게 그냥 죄스럽기만 합니다.
결혼해 산지 사십여년, 그 함께한 세월은 무엇인가요?
배우자는 나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살아 온 걸까요?
말은 마음을 품은 그릇과도 같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이 있을 수 없지요.
속 마음이 정녕 그럴지라도 담아 두고 말을 하지말아야지.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게지요.
육십이 넘으면 죽어야 한다는 그 한마디가 나를 죽인 겁니다.
심장제세동기를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심폐소생술은 사후 약방문입니다.
살아난다고 해도 식물인간일 뿐 입니다.
남자 나이 육십 넘으면 죽어야 한다는 그 말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저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배우자 저 사람 얼굴을 어찌 보고 살 수 있나!
지옥에서 온 저승 사자라도 저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진 못할겁니다.
날씨만 추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든게 큰 죄가 되어 더욱 움츠러들게 합니다.
할 일도, 할 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내가 살아갈 앞날이 걱정입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벌써 망팔(望八)의 나이
나이들고 안 죽은 것이 큰 죄가 되었습니다.
내가 진즉에 죽었어야는데....
나는 또 배우자의 얼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요?
아침, 저녁으로 춥더니 낮 햇살은 무심하게도 따사롭기만 합니다.
*
나이의명칭
60세 - 육순 , 70세- 칠순, 80세 - 팔순
61세 - 망칠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
71세 - 망팔
81세 - 망구
91세 - 망백
*4순(四旬) 망오(望五) 5순(五旬) 망육(望六) 6순(六旬) 망칠(望七) 7순(七旬) 망팔(望八) 8순(八旬) 망구(望九)
망백
(望八: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일흔한 살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