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행위와 말과 생각은 명백히 사성제(四聖諦)와 연기를 모르는 무명에서 비롯합니다.
선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가져오고 불선한 행위는 불선한 과보를 가져오며,
모든 중생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무명은 업(kamma)이나 상카라(saṅkhāra)에 이르고,
그 결과 태어남과 식 등이 생깁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이 사실은 명백합니다.
중생들은 연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끊임없이 방황하면서 윤회에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중생들은 대부분 악처에 떨어지며, 선업의 힘으로 가끔씩 천신계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선업의 공덕이 다하면 다시 악처로 되돌아 갑니다.
악처 중생들이 인간계나 천신계에 태어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임종의 순간, 선행에 대한 기억이나 표상이 떠오를 때만 선처에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한데,
악처 중생으로 있으면, 선행 자체를 떠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축생계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기 때문에
사랑, 연민이나 기타 영적인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대개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악처 중생들은 악처에서 다시 태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연기를 알지 못하는 무명 때문에 중생은 윤회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는 마치 절구에 묶여 있는 소와 같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돌고 또 돌아도 소는 움직일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사람은 대게는 악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윤회 속에 허우적거리며,
수많은 겁(劫)동안 재탄생을 되풀이합니다.
연기를 이해하는 것은 사성제를 이해하는 것과 함께 해탈에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사실 사성제는 연기와 동의어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목적은 이 가르침에 대한 통찰지를 지혜와 체험으로 얻는 것입니다.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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