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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김룡사 주차장 → 김룡사 → 여여교 → 저수조 → 화장암 갈림길 → 운달계곡 → 장구목 → 전망바위 갈림길 → 전망대 → 운달산 정상 → 폐헬기장 → 이정표 갈림길 → 화장암 → 김룡사 주차장'의 9㎞, 5시간의 환종주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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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봉
높이: 912m
위치: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성주봉은 운달산의 지붕으로 운달산에서 문경읍 쪽으로 붙어 있는 당포리와 용연리 사이에 높이 솟은 바위산이다. 암벽이 보기 좋다.
성주봉이라는 산 이름은 마을과 인접한 산은 인접 마을주민들이 신성시 여겨왔고 특히 신주처럼 신성시한 데서 이처럼 산 이름도 성주봉이라 붙여 놓은 것 같다. 기세등등한 장군이 자리를 잡고 버티고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이곳 당포리 일대 주민들은 성주봉을 흔히들 '장군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주사 뒤편 대슬랩을 지나 있는 600m 봉우리는 지형도상에는 종지봉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문경새재 옛길 박물관에 소장된 화지동(현 당포리) 고지도에 표기된 고증 자료에 의거 그 명칭이 수리봉임을 확인하여 문경 산들모임 산악회에서 "수리봉"으로 표지석을 설치하였다.
성주봉은 경사가 급한 바위산으로 주릉에 붙기 전까지는 급경사지를 올라야 하며 능선에 다 올라서면 힘든 일은 한숨 돌리게 된다. 성주봉 바로 아래에 있는 성주사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되며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도록 당일 산행 리드가 페이스를 잘 조절해 가며 천천히 진행해야 부담감도 줄이고 체력을 안배해 무리가 없이 끝까지 산행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주봉 오르는 길에는 작은 돌들이 길과 바위 슬랩면 나무 사이에 많이 있으므로 슬랩을 통과할 때에는 돌이 굴러 내리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한다. 성주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바위산으로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산행에 접어들고 보면 바위 한쪽 면으로 일반 등산로와 같이 시원한 소나무 숲길이 잘 나 있으며 길에는 흙이 두껍게 깔려 있다.
오르다 보면 중간지점에 경사진 바위 슬랩이 100여 미터가량 이어지는데 이곳을 홈이 없는 일반 슬랩과는 달리 발을 디딜 수 있는 계단식 슬랩으로 초보자도 오르기에 무리가 없으며 이곳을 오르기에 조심스러운 사람은 슬랩 우측 나무가 많은 가장자리로 나무를 잡고 안전하게 오르면 된다.
운달산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성주봉으로 종주할 수 있으나 자일과 암벽장비가 있어야 안전하다. 문경읍 당포리에서 성주봉만을 등산할 수 있다.
문경에서 5~6킬로 정도 오면 당포리가 다가온다. 이 길은 주흘산 뒤로 뻗어 포암산 아래 하늘재로 이어지는 작은 도로이다.
성주봉 등산을 위해서는 당포2리 마을 앞까지 오면 된다. 성주봉은 운달산의 지봉임에도 거의 흙산에 가까운 운달산과는 사뭇 다른 암봉이다. 마을 앞에서 보면 성주봉은 그림 같은 암봉미를 갖춘 아름다운 산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산은 별로 찾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험한 산이다. 그래서 산이 깨끗하다.
송이버섯 채취 시기엔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금지된다. 이런 산을 소개하는 것이 아름다운 시골 숫처녀를 서울 거리에 내다 파는 격이 된다면 곤란할 것이다. 이산에 다시 가서 버린 병이나 과자봉지, 과일 껍질을 목격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앞으로 좋은 산일수록 소개하지 말라는 경고로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산을 오르내리는데 약 6~7시간을 잡는 것이 좋을 듯하다. 스포츠식 산행은 이 산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경관을 보고 우리 산의 아름다움에 심취할 시간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한국의 산하
운달산[雲達山]
높이: 1,100m
위치: 경북 문경시 산북면
소백산과 북동쪽에 이웃하고 있는 산으로 비교적 교통편이 나빠서 덜 알려진 산중의 하나다. 운달산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깊은 산이다.
또 1,000m가 넘는 높이에 걸맞지 않게 겉보기에 정상이 불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정상에 이르기까지는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공룡능선이 이어져 오르고 내리는 등산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정상 바위에서는 대미, 주흘산, 백화산 등이 눈앞에 보이고 펑퍼짐한 능선에는 수림이 빽빽하다. 이와 함께 급경사와 바위를 타고 능선 바로 옆을 도는 힘든 구간도 있어 감칠맛을 더해준다. 산행기점은 김룡사가 되는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대성암, 화장암을 비롯한 금선대가 해발 700m 되는 곳에 있어 산행에 도움이 된다.
남쪽 기슭의 울창한 송림에 신라 진평왕 10년(588년) 운달조사가 창건한 고찰 김룡사(金龍寺)가 있으며 김룡사 일원의 계곡을 운달계곡이라고 일컫는다. 맑은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운달계곡은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문경 8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산행 길잡이
산행기점은 김룡사이다. 문경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김룡사 입구에서 하차한다. 전나무와 노송이 우거진 북쪽으로 걸어가면 김룡사다. 김룡사에서 800m쯤 올라가면 계곡이 갈라지는 지점에 대성암이 있고 그 앞에 양진골로 오르는 샛길이 있다.
대성암에서 샛길로 가지 않고 곧장 계곡 골짜기로 오르면 내화리(화장암)가 보이고 감나무가 많은 길에서 갈림길이 있다. 갈림길의 왼쪽으로 들어서 1시간쯤 가면 금선대이다. 금선대 뒷길로 들어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오른다. 정상에 서면 건너편에 주흘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은 내화리, 당포리, 용연리 세 곳으로 할 수 있다. 당포리로 하산하면 문경으로 가는 교통편이 좋다. – 한국의 산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연례행사처럼 2016년부터 해마다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2020년 세계적인 코로나 위기로 산행이 쉽지 않은 가운데도 꾸준히 산에 올랐고, 지리산도 4월 종석대[산행기], 6월 삼신봉[산행기], 7월 청학연못[산행기], 9월 불무장등[산행기], 10월 반야봉[산행기], 10월 도장골[산행기] 등을 다녀왔다. 남들은 1년에 한 번도 가기 쉽지 않은 지리산을 여섯 번이나 다녀왔지만, 상봉인 천왕봉에 오르지는 않았다. 해서 2020년 마지막 산행으로 천왕봉에 오르기로 했었다.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 건 아니지만 2016년부터 해왔던 일이라 올해도 오른다는 의미로 계획한 산행이다. 다만 겨울 지리산에 도전하고 싶고, 자신 있는 친구는 다 같이 갈 수 있도록 산행 계획을 개방한 게 이전 천왕봉 산행과 다른 점이었다. 사실 무박 겨울 지리산 천왕봉 등정은 쉬운 게 아니지만, 오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어 공개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교통편은 남부터미널발 중산리행 12월 25일 23시 30분 버스를 각자 예매하기로 했다.
지리산 천왕봉 겨울 산행 계획 후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코로나 위기 단계도 같이 올라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뭐 그렇다고 산에 안 갈 우리가 아니지만, 가겠다던 친구들의 의사는 타진해야 해 등산방에 천왕봉 산행을 강행할 건지 물었다. 결과는 대부분 친구가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겨울 지리산 천왕봉에 무리해서 가는 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해서 공식적으로 2020년 마지막 토요일 지리산 천왕봉 산행은 취소했다. 물론 예매했던 버스도 다 취소했다. 이후 개인적으로 적당한 산행지를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해 단독으로 계획했던 천왕봉을 갔다 오기로 하고 다시 버스표를 예매했다.
2020년 마지막 산행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산행 주 화요일 집안에 슬픈 일이 생겨 지리산 천왕봉 금요 무박 산행을 진행할 수없게 되었다. 해서 최종 중산리행 버스를 취소하고, 2020년은 천왕봉에 오르지 못한 해로 기록하는 거로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슬픈 일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나니 토·일요일 딱히 할 일이 없어, 다시 산을 뒤적거리다, 지리산행을 포기했던 친구들이 북한산을 가자고 했던 게 기억나 26일 토요일 북한산 의상능선을 달린 후 구기동에서 뒤풀이하는 산행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코로나 위기가 높아진 결과인지 북한산행에 참여하겠다는 친구도 없었다.
그러려니 하고 크리스마스 휴일에 빈둥거리며 각 산악회 게시판에 들어가 산행 계획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다른 산악회가 코로나 위기 대응에 참여하는 의미로 내년 1월 초까지 산행을 취소했으나, 코로나 따위는 우리 산행을 방해할 수 없다는 한 산악회의 운달산행 계획을 발견했다. 운달산 어디서 많이 듣던 산인데? 혹시 내가 다녀왔었나? 하고 찾아보니 계획만 세우고, 아직 가지 못한 산이었다. 해서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찾아 읽던 중 대슬랩을 오르는 사진에 마음이 동해 마지막으로 등산방에 의상능선을 달릴 친구가 있는지 확인했다. 없으면 2020년 마지막 산행은 운달산이다.
산에 갈 때면 늘 고민하는 게 점심인데, 지난 백두대간 빼재~부항령을 달렸을 때 흥수가 들고 온 컵라면이 괜찮았었다[산행기]. 해서 현실에 타협하기로 하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동안 온수 때문에 컵라면을 꺼렸었는데, 어차피 1ℓ 보온병에 오미자차를 넣고 가 막상 300㎖도 마시지 않고 오는 게 현실이다. 어차피 1ℓ의 뜨거운 차든, 뜨거운 물이든 무게는 같다.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체질이라, 보온병에 뜨거운 물 1ℓ와 컵라면 하나, 약간의 오미자청을 가져가, 점심 때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오미자청을 보온병에 넣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물론 비상식과 귤, 거의 두 달 넘게 들고 다니는 구운 달걀 두 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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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 새벽에 기상해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 시각이 5시 50분경이다. 마을버스로 불광역으로 이동해 산악인의 성지 중 하나인 신사역으로 가는 3호선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토요일 이른 시간 지하철에 승객이 더 많다는 거다. 복장이나 소지품을 보면 놀러 가는 건 아니고. 휴일도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지하철을 타고 신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38분으로 너무 빨리 왔다. 산악회 버스가 신사역에서 6시 55분에 출발하는 만큼 6시 50분까지만 도착하면 된다. 그렇다고 역사 내에 앉을 만한 시설도 없어 추위를 무릅쓰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니 산악인의 성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예닐곱 명의 등산객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여기를 경유하는 버스는 운달산으로 향하는 버스가 유일한 거 같았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어쨌든 그들과 어울려 버스를 기다려, 6시 52분경 도착한 운달산행 버스에 탔다. 그리고 버스는 6시 55분까지 기다린 후 예정된 시각에 신사역을 떠나 죽전을 거쳐 거리낌 없이 문경을 향해 달렸다.
정체 없는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린 버스는 8시 10분경 충주휴게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하고 볼일을 보고 난 후 휴게소 주차장을 둘러보니 코로나의 영향인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다시 버스에 타 늘 그렇듯이 인솔 대장이 코스지도를 나눠 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자 마이크를 잡은 인솔 대장의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번 코로나 위기 단계 상승에 따라 버스에서 뭘 나눠주는 게 금지되어, 지도를 나눠줄 수 없고 따라서 코스나 주의사항에 관해 얘기할 수도 없다고 했다. 결국 '너희 등산객이 알아서 해라!'다. 정확히 안내 산악회라는 게 들머리와 날머리의 교통편만 제공하는 거라, 코스나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할 의무는 없다. 앞으로의 세상은 코로나 전후로 나뉠 거라는 얘기가 많은데, 안내 산악회도!
다시 들머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해 9시가 가까워지자 인솔 대장이 9시경 도착 예정이고 주어진 산행 시간이 6시간 30분이니 3시 30분에 산행을 마감하겠다고 했다. 그 안내를 들으며 산행 준비를 하고 이번 산행에 필요 없어 보이는 장비는 배낭에서 뺐다. 대표적인 게 스틱으로 눈을 씻고 봐도 창밖으로 눈이 보이지 않아서다. 대장의 안내보다 몇 분 늦은 9시 4분에 버스는 산행 들머리인 당포2리 복지회관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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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들머리임에도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지도 입간판 하나 없는 들머리를 출발해, 오른쪽으로 보이는 암봉을 향해갔다. 앞선 등산객의 산행기 사진에서 오르던 대 슬랩이 저기 보이는 암봉 경사면일 거라는 생각에 유심히 관찰하며, 같이 온 일행 뒤를 따라갔다. 가까워지는 암봉의 모습은 오르기에 어렵지 않아 보였지만, 생각보다 높지 않아 실망감도 들었다. 하지만 들머리 해발 고도가 220m가량, 수리봉 정상이 600m, 고로 380m를 올라가야 해 쉬운 산행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수리봉 갈림길을 지나, 옥소영각을 지나 9시 20분에 성주봉에서 이름을 딴 성주사에 도착했다. 성주사 입구에 등산지도 입간판이 서 있었다. 여기가 성주봉 들머리라는 얘기다. 버스가 복지회관 앞에서 정차한 건 그곳이 들머리라서가 아니라 들머리인 성주사까지 올 수가 없어서였다! 그런데 그 지도는 내가 원하는 그리고 산악회에서 계획한 코스는 없었다. 운달산의 한 봉우리로서 성주봉 코스만 안내하고 있었다. 이로 봐서 이 동네에서는 성주봉이 운달산 정상보다 더 대접을 받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사를 지나자 바로 등산로 시작이다. 고개를 들면 정상이 보이니 그 가파르기야 오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시작은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로 처음부터 리지를 원했던 나는 약간 실망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3여 분 올라가자 리지가 나타났고, 안전시설이 있어 선두 그룹은 그걸 잡고 올라가고 있었다. 나야 물론 그걸 무시하고 안전시설을 벗어나 리지 중앙으로 가 대 슬랩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는 어느 정도 급했지만, 암벽 곳곳이 울퉁불퉁해 오르기 어렵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안전시설은 한 줄의 굵은 밧줄로 바뀌었다. 다들 그 줄을 잡고 올라갔지만, 나를 비롯 두 명만 줄을 버리고 리지 중앙에서 올라갔다.
대 슬랩을 올라가며 가끔 그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는 10분 거리였다. 거리상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경사가 급해 체력 소모가 심해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최근 2개월 산행 중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린 건 오랜만이다. 그럼에도 대 슬랩이라고 불리는 구간이 고작 10분 거리라는 게 약간 실망이었다. 슬랩이 끝나는 구간에는 거대한 구렁이가 앞 몸통을 들어 올리고 있는 거 같은 소나무가 있었다. 대 슬랩을 오른 등산객이 그 몸통에 앉아 쉬면서 인증을 찍는 소나무다. 물론 나야 그 소나무만 찍고 바로 정상을 향해 갔다.
대 슬랩이 끝난 다음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과거에는 암벽을 기어올랐을 거라고 보이지만, 지금은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계단의 중앙쯤은 의도치 않은 최고의 전망대였다. 당연히 계단을 오르다 말고 그 자리에 서서 주변 경치를 카메라에 담았다. 저 멀리 익숙한 모습의 산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어쨌든 갔던 산 아니면 가야 할 산이다! 계단에서 사진을 찍느라 지체하는 동안 대부분 등산객은 나를 앞질러 가 어쩌다 보니 후미 그룹에 쳐져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10km 조금 넘는 거리에 6시간 30분이 주어졌다는 건 코스가 쉽지 않다는 방증이지만, 시속 2km만 유지하면 1시간이 넘는 자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계단을 다 올라 수리봉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9시 55분이다. 9시 5분경 산행을 시작했으니, 복지회관 앞에서부터 수리봉 정상까지 50분가량 걸렸다. 정상에는 앞선 두세 명의 등산객이 인증을 찍고 있었다. 굳이 여기서까지 인증을 남길 이유는 없다는 생각에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관목 사이로 등산객이 오간 흔적이 보여 그리로 갔다. 그리고 발견한 전망대! 그곳에는 두 명의 등산객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이미 계단 전망대에서 본 거와 크게 다름이 없었다. 하긴 그 계단을 오르면 바로 정상이니.
수리봉 정상에서 다음 목표인 성주봉까지는 대략 1.6km, 생각보다 멀다. 밑에서 보기에는 바로 옆에 있는 거처럼 보였는데. 성주봉을 향해 가는데 앞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다음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암봉인 수리봉을 내려가야 하고 그 내려가는 암벽에는 굵은 밧줄 하나가 걸려있었다. 이번 산행의 첫 번째 정체 구간이다. 한 사람씩 내려가다 보니 위에서 대기하는 인원이 몇 명 있었다. 당연히 줄을 잡고도 내려가지 못하는 등산객 때문에 정체가 심해지기도 했다. 해서 가까이 내려가 상황을 보니, 굳이 밧줄이 없어도 내려갈 만했지만, 열심히 밧줄 잡고 내려가는 옆으로 내려가는 것도 그림이 좋지 않아 내 순서가 오기를 위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내 순서에 밧줄은 무시하고 내려갔다.
수리봉 암벽을 내려가자 앞에 다시 봉우리가 나타났다. 봉우리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좀 전의 계단이나, 수리봉 전망대에서 경치를 카메라에 담을 때와는 달리 기상이 급변해 주위가 서서히 구름에 휩싸여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남기기 힘들었다. 결과물 좋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기록도 중요하니 계속 사진을 찍으며 봉우리를 넘어가자 아까 수리봉에서와같이 앞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암벽을 내려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산꾼이 겁에 떨고 있는 등산객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소리였다. 가까이 다가가 상황을 살펴보니 수리봉과 비교해 더 급경사의 암벽이 기다리고 있었고, 역시 굵은 밧줄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고 있었다. 문제는 급경사의 암벽 표면이 미끄러워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 줄을 잡고 내려가는 등산객이 가끔 비명을 질렀다.
암벽에 설치된 모든 밧줄이 직선으로 뻗어 내려가는 건 중력에 의해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 등산객은 그 밧줄이 직선으로 뻗어 내려간 그곳이 길이라고 판단해서 문제다. 이 암벽에 매달린 등산객도 다르지 않았다. 위에서 밑을 내려보니 왼쪽으로 1m 정도 벗어난 곳에 꽤 성장한 나무가 잘 자라고 있었고, 한눈에 과거 밧줄이 없던 시절 그 코스로 암벽을 오르고 내렸을 거라는 게 보였다. 해서 위에서 아래를 향해 옆의 나무를 가리키며, 밧줄을 잡고 그쪽으로 이동하라고 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하긴 이미 겁먹은 사람이 줄을 잡고 옆으로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더 떠들어봐야 소용도 없어 위에서 구경하다가 앞을 보니 다시 암봉이 버티고 있었고, 등산객은 암벽 옆 관목 사이로 난 길로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앞의 암봉을 유심히 보니 굳이 길을 따라가지 않고 암벽을 그대로 기어 올라가도 좋을 거 같았지만, 혼자라 시도할 생각은 안 했다. 봉 감독이나, 흥수가 같이 왔었어야 했는데! 다시 눈을 돌려 이쪽 상황을 보니, 내 앞 차례인 여성 양 손목에 스틱이 매달려 방향을 못 잡고 달랑거리고 있었다. 해서 그 스틱을 손목에서 빼 밑으로 던지라고 했더니, 잘 못 던져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어떡하냐며 스틱을 접어 다시 손목에 끼는 걸 보고 속으로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앞선 여성 등산객을 간신히 밑으로 내려보내고 줄을 버리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병목으로 이미 많이 지체된 상태라 밧줄을 잡고 왼쪽으로 달려 나무 있는 곳으로 가 바로 내려왔다. 그리고 미련 없이 뒤로 돌아 앞에 있는 봉우리로 올랐다. 역시 이 암봉을 오르는 코스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곳곳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병목만 초래하고 있었다. 해서 밧줄이 없는 다른 코스로 길을 잡아 암봉을 기어올랐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계속해서 암벽을 내려오는 등산객이 보였다. 그 모습을 사진을 남기고 올라 10시 45분에 세 번째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 봉인 수리봉에서 운달산 정상까지는 총 14개의 봉우리가 있고, 그 대부분이 암봉이었다. 5km도 채 안 되는 구간에 14개의 봉우리라, 진정한 스테고사우루스의 등짝, 공룡능선이다! 왜, 10km 조금 넘는 산행에 6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할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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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봉우리 정상 이정표에는 성주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봉우리를 넘지 말고 옆으로 가라고 지시하고 있었고, 넘어가는 길목엔 금줄을 쳐 길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인간이 아닌지라 금줄을 넘어 20여 미터를 가니 낭떠러지다. 그 암벽이 매끄러운 직벽이 아니라 조금만 고생하면 내려갈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사소한 것에 목숨 걸 필요 없다는 생각에 직벽을 버렸다. 그렇다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보다는 다른 길을 찾아 내려갔다. 이후 대부분 암봉이 우회가 가능하면 우회를 아니면 밧줄을 설치해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는 걸 알았다. 봉우리를 내려가 다시 밧줄이 있는 조그마한 암봉에서 앞섰던 등산객을 만날 수 있었다. 결과를 놓고 하는 얘기지만, 이번 산행 내내 가지 말라는 암봉에 오르느라, 다른 등산객에게 추월당했다가, 밧줄이 있는 암벽 병목에서 다시 그들을 추월하는 일이 반복해서 발생했다. 해서 정체 구간 뒤에서 나타나는 나를 보고 어리둥절하는 등산객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음 봉우리부터는 양옆이 낭떠러지인 암릉으로 마치 북한산의 의상능선, 숨은벽능선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위험한 구간 또는 갈림길에 서 있는 "등산로 안내"에 있는 "※성주봉은 암벽이 많고 능선 양쪽은 거의 절벽으로 험준하며 등산로를 벗어난 산행으로 사망사고가 자주 발생하므로 반드시 지정된 등산로만 산행하여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정확했다. 암릉을 따라 몇 개의 작은 암봉을 넘어 17분가량 가자 운달산보다 더 유명하고 산행의 묘미가 뛰어난 성주봉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런지 까만 소는 운달산 정상이 아니라 성주봉을 인증 장소로 삼고 있었다. 봉우리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인증꾼은 까만 소 수건을 들고, 등산객은 가볍게 인증을 찍고 있다. 나도 그중 한 인중꾼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11시 17분경 성주봉을 떠나며 점심 먹을 만한 장소를 찾았다. 산행 마감이 3시 30분이고 생각보다 많은 봉우리에 힘이 들어 시간은 많이 지체되었지만, 늦어도 2시 30분까지는 날머리인 김룡사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 점심을 조금 일찍 먹을 생각이었다. 산행 중 볼일을 보는 바람에 배가 고픈 것도 있었고. 다년간의 산행 경험에 의하면, 어느 정도 배가 꺼져 있어야 지역 특산물 안주로 하산주를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다. 성주봉에서 내려가자 앞에 거대한 암봉이 가로막고 있었고, 암봉을 우회한 데크 계단 길이 나타났다. 일행이 있고 시간만 있다면 넘는 것도 고려해 봤을 테지만, 형편이 못 되니 어쩔 수 없이 데크를 따라 암봉을 돌았다. 그러자 앞에 다음 암봉이 나타났고 길은 두 암봉 사이로 지나고 있었다.
암봉 사잇길로 내려가자 운달산까지 2k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그 시각이 11시 26분이다. 산행의 난이도와 지금까지의 속도를 고려하면 시속 2km는 무리지만, 그래도 최소한 12시 30분까지는 운달산 정상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달렸다. 이 구간의 길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낙엽 쌓인 흙길이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달리며 적당한 장소의 식당을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곳이 없어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작은 암봉을 돈 이후 뒤로 돌아 그 암봉을 넘어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컵라면을 꺼내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부은 후 별도로 가져간 오미자청을 남은 보온병에 부었다. 그리고 열심히 흔든 후 그 차를 한잔 따라 마셨다. 이번 산행 최초로 뭘 먹은 순간이다. 별도로 싸간 김치를 반찬으로 컵라면을 먹고 입가심으로 귤을 먹었다. 그리고 몇 달째 배낭에 들어 있던, 구운 달걀을 꺼내 껍질을 벗겼는데 상했다. 해서 나머지 하나도 껍질을 벗겨봤다. 역시 상했다. 예상했던 일이라 놀라지는 않았다. 아무리 구운 거라지만 몇 달씩 배낭에 들어 있었으니.
내가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하고 11시 44분경 그 자리를 떠났다. 대략 10분가량 점심을 먹었다. 내가 식당을 떠나 다시 운달산 정상을 향해 달린 지 얼마되지 않아 주변이 어두워지며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고도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낙엽이 아닌 눈 쌓인 길로 바뀌었다. 11시 57분경 작은 봉우리에 오르자 오른쪽으로 목적지인 운달산 정상이 보였다. 역시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답게 주변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의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석봉산으로 생각되었다. 다시 몇 개의 암봉을 넘거나 우회해 계속 달려 암봉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뒤로 돌아가니 몇몇 등산객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또 나를 보자 왜 뒤에서 따라오는지 물어 점심 먹고 오는 중이라고 얘기하고 계속 갔다.
그들을 뒤로하고 암봉을 오르자 위로 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굴에는 한 등산객이 막 점심을 먹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밑에서는 대여섯 명의 등산객이 싸락눈을 맞으며 점심을 먹었는데,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 바람과 싸락눈을 피할 수 있는 굴에서 홀로 점심을 먹은 등산객이다. 해서 굴이 있는지도 모르고 점심을 먹은 등산객에게 진정한 승자는 이 사람이라고 한마디 해주고 떠나려는데, 굴에서 점심을 먹은 산꾼이 인증을 부탁해 사진 몇 장 찍어 준 후 그가 떠난 암굴을 사진으로 몇 장 남겼다. 대략 세 명 정도는 비박이 가능할 정도의 굴이었다. 바닥에는 침상과 식탁으로 사용 가능한 평평한 바위도 있었다.
굴이 있는 암봉을 넘자 운달산 정상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 시각이 12시 21분. 12시 반까지 정상에 도착하겠다던 목표는 실패다! 해서 1시 도착으로 목표를 변경했다. 정상에서 날머리까지는 대략 4km의 하산길이라 1시간 반이면 충분히 내려갈 수 있고, 그럼 1시간의 여유가 있다. 어쨌든 암굴에서 점심을 먹었던 산꾼과 일행이 되어 정상을 향해 갔다. 산행 시작 후 몇 번 이 산꾼과 마주친 경우가 있었는데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었다. 일행이 있는 거 같지는 않았는데, 커다란 쓰레기봉투라 궁금했었다. 암굴 이후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때 봉투의 내용물을 보게 됐는데, 산악회 리본이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군데, 처음에는 땅에 떨어진 리본을 줍는 거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등산로 상의 손이 닿는 리본은 다 제거하고 있었다. 이 행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아무 소리 않고 그냥 묵묵히 갈 길을 갔다.
정상 바로 밑 바위 위에 노년의 등산객이 쉬고 있다가 헉헉대며 오르고 있는 우리를 보자, 다 왔으니 힘내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첫 봉인 수리봉에서 운달산 정상까지 총 14개의 봉우리가 있어 쉽지 않은 산행이라고 했다. 그 순간까지 아무 생각 없이 달리며,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 게 체력 저하 때문이라며 자책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헉헉대고 올라 운달산 정상에 변경된 목표시간보다 3분이 늦은 1시 3분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정상석이 아닌 명패가 있었고 그걸 배경으로 앞선 등산객이 인증을 찍고 있었다. 나도 암굴 산꾼에게 부탁해 인증을 찍은 후 주변을 둘러보고 다음 경유지인 석봉산을 향하다가 작은 정상석을 발견했다. 모두 인증을 찍고 있는 그 정상 표지가 아니라 정상석은 따로 있었다. 해서 카메라를 돌 위에 놓고 타이머를 세팅해 인증을 다시 찍었다.
정상에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석봉산까지는 50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럼 석봉산 도착이 2시란 얘기다. 석봉산에서 김룡사까지 1시간. 그럼 하산주에 할당된 시간은 30분 정도! 30분이면 막걸리 3통 마실 시간이라 충분하다. 아쉽게도 위가 작아 한 통 정도가 적정량이지만. 그런데 운달산을 떠나 석봉산으로 향하자 지금까지와는 길이 또 달랐다. 성주봉을 지나서부터 얇게 깔린 눈이, 눈이 왔었다고 하는 정도라면, 운달산 정상을 떠나 석봉산까지는 거의 종아리에 닿는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앞선 등산객이 러셀 하지 않았다면 아이젠과 스패츠 없이 갈 수 없었고, 러셀 하다가 지쳤을 정도였다. 간간이 반가운 리본에 기분이 좋아지며 계속 달려 이정표가 얘기한 소요 시간보다 10여 분 빠른 1시 42분에 석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역시 삼각대 꺼내기도 귀찮아 돌 위에 적당히 카메라를 놓고 인증을 찍었다. 그리고 농담으로 소림사 대환단이라고 부르는 공진단을 꺼내 먹으며 노닥거리고 있는데 속속 등산객이 도착했다.
인증을 찍느라 정신없는, 내게 부탁해 나도 찍어준 후 그들을 뒤로하고 날머리인 김룡사를 향해 내려갔다. 하산에 시간이 적게 걸리면 걸릴수록 하산주에 할당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가능한 한 빠르게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다 뭔가 이상해 지도를 확인하니, 중간에 갈림길이 있었고 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야 했는데 그냥 내려왔다는 걸 알았다. 다시 돌아 200여 미터를 올라가면 갈림길이다. 내려오며 갈림길을 못 봤는데? 어쨌든 뒤따라오던 등산객 모두에게 앱의 지도를 보여주고 돌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산꾼으로 보이는 몇몇이 오는 도중 갈림길을 못 봤고 이게 유일한 길이니 맞는다며 계속 가자고 했다. 이 사람들은 뭘 믿고 이렇게 자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애초 내가 그들에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얘기한 이유는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따라오다가, 막판에 나를 원망하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었다. 나야 새로운 길의 개척이라는 의미에서 뒤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돌아가라고 그들을 설득하는 동안 몇몇 산꾼은 나를 앞질러 갔다. 이제 내 책임소재는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마음껏 달렸다.
앞에 전개된 길은 웬만한 오지 등산로보다 훨씬 상태가 좋았고, 우리에 앞서간 인적도 있었다. 문제는 등산로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리본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현재는 아니더라고 과거에 등산로를 쓰였던 적이 있다면 낡았으면 낡은 대로 리본이 있어야 함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로 이 길은 등산로로 이용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두 가지 앱을 이용해 현 위치를 크로스 체크해보니, 이 길은 김룡초등학교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 뒤따라오는 두 명의 등산객에게 "버스가 어디서 기다린다고 했죠?'라고 물어봤다. 상식적으로 김룡사 주차장에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혹시 다른 곳에 기다릴 수도 있어서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우리는 산악회와 같이 온 게 아닙니다!"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우리가 가는 이 길은 김룡사가 아니라 초등학교 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얘기하자, 두 등산객은 김룡사로 가야 한다고 거의 울먹이면서 얘기해 이유를 물으니 먼저 내려간 친구가 차를 가지고 김룡사에서 기다린다고. 성질 같아서는 40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성을 한 대씩 갈기고 싶었지만, 참고 "나도 버스가 김룡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지만, 출발할 때 초등학교 앞으로 와 날 태우고 가라고 전화할 예정이다!"라고 말하는 거로 끝냈다.
낙엽 쌓인 미끄러운 하산길이다 보니 두 사람이 잘 따라오지 못해 내 페이스 맞춰 길을 갔다. 그러다 갈림길 비슷한 게 보여 가능하면 김룡사에 가까운 왼쪽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 길은 중간에 사라지고 낙엽 쌓인 급경사가 반겨주었다. 해서 굳이 서서 걸어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낙엽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마자 급속도로 아래를 향해 미끄러지는 데 무서울 정도였다. 인간의 길이 아닌 짐승의 길을 따라 낙엽을 비료 포대 삼아 미끄러져 내려가며 계속 지도를 확인하니 "김용운달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김룡사 기준 700~800m 아래에 있는. 어차피 식당 부근으로 하산해도 다시 버스가 기다리는 김룡사 쪽으로 올라가야 하니 길은 없었지만, 방향을 왼쪽 김룡사 쪽으로 잡아 벌목 지대, 관목 숲을 뚫고 갔다. 간간이 벌목꾼이 다녔을 거로 생각되는 길 같은 게 보이기도 했지만, 찰랑찰랑한 관목 가지에 빰을 얻어맞으며 그걸 뚫고 김룡사를 향해 갔다.
낭창낭창한 관목 가지에 뺨을 맞으며 김룡사를 향해 위로 오르며 능선을 따라 하산하다 보니 저 아래로 운달계곡과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홀로 짐승을 길을 방향감만으로 내려와 인간이 만든 길을 보자 일단 안심이 됐다. 물론 하산주를 마실 여유는 없었지만, 최소한 지각이라는 민폐는 피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오지 탐험과 시간을 지킬 수 있었다는 기쁨에 신이 나서 운달계곡을 향해 내려가는데 무언가가 발목을 잡았다. 당연히 쓰러진 나뭇가지라 생각하고 힘있게 발을 앞으로 당겼다. 그런데 가지가 부러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더 꽉 움켜잡아 뭐지 하고 보니 올무다. 아직도 올무를 설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 분노하며 그 올무를 들고 계곡으로 내려왔다.
계곡에 도착해서 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띈 게 지금은 허물어졌지만, 돌로 쌓은 담이다. 뭐지 하고 사진으로 찍은 후 김룡사를 향해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허물어진 돌담이 하나둘이 아니라 거의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과거 화전민촌이 아니었을까 추측하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리고 계속 오르니 초가가 보였다. 초가가 가까워지면서 집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쳐놓은 금줄이 보였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라 위험해서 접근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집 가까이에서 보니 그보다는 집을 보호하기 위한 금줄로 생각됐다. 왜냐하면, 이제는 구경하기 힘든 너와집이었다. 고로 믿기 힘들지만, 그 돌담 군락은 지금은 사라진 "계곡 가"의 ‘화전민촌이었다’는 믿음이 강하게 들었다.
너와집에서는 인간이 만든 길과 주차장이 보였다. 그런데 날 기다리고 있어야 할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황당할 때가! 그 시각이 3시 10분이다. 해서 인솔 대장에게 전화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 일행으로 보이는 등산객이 너와집 쪽으로 왔다. 그에게 버스가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김룡사 주차장에는 버스가 설 수 없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 아래가 "김용운달식당"이 있는 곳이다! 나뭇가지로 귀싸대기를 얻어맞고, 올무에 걸리기까지 하며 식당을 버리고 김룡사로 왔더니, 버스는 식당에서 기다린다고?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고 인간이 만든 길에 올라 다시 계곡 하류를 향해 내려갔다. 김용운달식당을 지나 몇 채의 펜션을 지나자 인적이 없는 펜션 및 식당가가 나타났고, 내가 찾던 버스도 거기에 있었다. 김룡사 일주문에서 8분가량 내려온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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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문학관이 있는 곳으로 생각보다는 동네에서는 유원지로써 유명한 지역으로 보였지만, 코로나의 영향인지 우리 등산객을 빼고는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마쳤고 그 시각이 3시 21분이다. 지각은 하지 않았지만 하산주 마실 시간은 없었다. 시간이 있다고 해도 문을 연 식당이 없어 못 마셨겠지만! 남은 시간 버스 옆에 주저앉아 짐승의 길을 뚫고 오는 동안 신발과 옷, 배낭에 들어간 겨울 자연의 흔적을 털어 냈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버스는 예정된 시각 3시 30분에 출발하지 않았다. 예상된 순서다. 그런데 3시 41분경 출발했다. 의외다! 아니, 이 코스에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등산객이 고작 10분 지각?!
거리낌 없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도 다 읽어 할 일도 없는 와중에 남들은 다 잠도 잘 자는데 잠도 안 와 패드로 유튜브를 감상하며 시간 보냈다. 어쨌든 유튜브도 시간 보내기에는 좋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주휴게소다. 여주라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 시간이면 서울이다. 버스에서 내려 몇 개 안 되는 쓰레기를 처리하고, 편의점으로 가 식혜를 하나 사서 마셨다. 등산객이 볼일을 다 본 후 다시 버스는 달려 죽전에서 1차로 내려주고 6시 12분에 아침에 출발한 신사역에 도착했다. 신사역에서 바로 지하철로 집으로 향해 7시경 집에 도착했다. 물론 하산주는 집에서 삼겹에 빨갱이!
산악회 계획에 따라 갈 예정이었지만, 하산 시 갈림길을 놓쳐 ‘당포2리 복지회관 → 성주사 → 수리봉 → 성주봉 → 운달산 → 석봉산 → 김룡사’의 11.9km(트랭글 기준), 6시간 19분의 오지 탐험이었다. 이동 6시간, 휴식 19분! 석봉산에서 김룡사로 하산 중 갈림길을 놓쳐 의도치 않게 들개 산행도!
진정한 공룡능선을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산행지다. 꽃피는 춘삼월이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거다!
산이 험하고 기복이 심해 마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까만 소 100 산에 들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예상 밖의 일이 발생하는 게 자본주의라, 그전에 다녀오는 걸 추천!
암벽에 익숙한 동무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14개 암봉 하나하나를 오르내리는 산행을 시도해 볼 생각!
2020년 천왕봉에 오르지 못한 해로 기록!
첫댓글 석봉산을 지나 내려왔구나. 난 헬기장에서 좌틀하여 화장암으로 내려와 김용사 구경했었는데...
산악회 코스가 그거라...
그런데 대부분 운달산 지나서 빠진 거 같더만.
석봉산까지 간 인원은 소수라는 생각이 들었음.
석봉산 이후는 기본적으로 길이 명확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