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딸에서 목사 아내가 된 이금자 사모 간증(1편)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네"... "'기적의 마스터키'는 기도"
무당의 딸로 태어나서 무당 어머니와 치열한 영적싸움 끝에 목사의 아내가 된 이금자 사모는 성복교회 이태희 목사의 아내입니다.
모든 문을 다 열 수 있는 만능 열쇠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기적의 마스터키' 기도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실화입니다.
목숨 건 어머니와 오빠와 치열한 영적 싸움 끝에 온 가족을 구원시킨 성복교회 이태희 목사 사모의 놀랍고 감동스러운 간증이다.
내 어머니는 충남 홍성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무당이었다.
어머니는 이 동네 저 동네로 불려 다니면서 굿을 하고 악신을 받아 병든 사람을 고치기도 하고, 앞날을 예견하는 점을 쳐 줬다.
나는 일곱 살 때 친구를 따라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머니 입장에선 도저희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우리 15남매 중에서 자신의 모습과 성격을 가장 많이 닮은 내가 대를 이어 무당이 되기를 은근히 바라셨다.
나는 당시 교회에서 많은 친구들을 전도하고 신앙생활에도 모범을 보여 반장으로 뽑혀 봉사할 정도였다.
이 때부터 어머니와 나의 기나긴 영적 싸움이 시작되었다.
열살 되던 해 하루는 어머니가 단단히 작정하시고 나를 앉혀놓고 서슬퍼런 목소리로 명령하셨다. "앞으로 교회 주위에 얼씬도 하지 마라. 그랬다가는 맞아 죽을 줄 알아라."
어린 나는 어머니가 너무 무서웠지만 입을 꼭 다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예수님 저와 함께 해주세요. 저를 도와주세요"
어머니의 계속되는 다그침에도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버텼다. 교회에 계속 다니겠다는 일종의 침묵 시위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몽둥이로 내 종아리를 때리기 시작했고, 그날 나는 결국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얼마나 맞았던지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한 달 입원해야 했다.
의붓어머니도 아니고 친어머니가 죽을 정도로 때렸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맞은 몸이 쓰리고 아파서 몸과 맘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혼자 침대에 누워 성경을 읽고 있는데,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은 어린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하나님이 주시는 큰 사랑과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날 나는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기쁨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어려움은 더 심해졌다. 어머니는 오빠들까지 동원시켜 온갖 방법으로 나를 핍박했다.
한 번은 교회 갔다 오다가 오빠들에게 붙잡혀서 우물에 던져졌다. 어머니가 교회 갔다 오는 나를 붙잡아 우물에 빠뜨려 죽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우물 속에서 3시간 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버텼다. 보다 못한 동네 아저씨가 건져주셔서 살아날 수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뒤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하는 굿이 되지 않았다.
굿판이 벌어지면 상에서 돼지머리가 떨어지고 촛불이 꺼지는 일이 일어났고 신이 내리지 않아 제대로 굿을 할 수 없었다. 용하다고 소문났던 어머니의 명성에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은 "한 집에서 두 신을 믿어서 그렇다" 하고 수근거렸고 하나 둘 굿을 청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굿을 하면 사람들이 반지 팔찌 목걸이 금비녀 등 온갖 귀금속과 돈과 양식을 많이 바치는데 그 재물들이 점점 줄어드니 어머니는 이제 우리 집안은 예수쟁이 금자 때문에 망한다고 하시면서 오빠들을 시켜 나를 더 심하게 핍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소꿉장난을 하던 나를 오빠들이 에워싸고 말했다. "너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빨리 말해! 너 교회 나갈 거야, 안 나갈거야!"
"아무리 오빠들이 나를 위협해도 나는 하나님 믿고, 좋은 사람 될래!"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나는 담대히 외쳤다.
잠시 후 나는 오빠들에게 사로 잡혀 뒷간(화장실)에 던져졌다.
인분 속에 한 시간 정도 들어가 있으면 죽는다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듣고 오신 어머니가 나를 뒷간에 빠뜨리라고 오빠들에게 시킨 것이다.
똥오줌 구더기들이 콧구멍 귓속으로 들어왔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나를 구하려 달려오셨다.
그리고는 울면서 말씀하셨다. "세상에 친딸과 친동생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금자야, 네가 믿는 신이 너를 살려 주실 거야! 아버지는 믿는다!"
나는 인분 독이 온몸에 스며들고 구더기가 머리로 들어가서 죽을 것이라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덮고 살아났다.
어머니와 오빠들이 힘들게 할수록 나는 오직 하나님밖에 모르고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하루는 큰오빠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내게 커다란 삽을 들고 말했다.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그러니 이제부터는 교회 문 턱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대답해 안 그러면 너, 오늘 나한테 맞아 죽을 줄 알아!"
그날 나는 결국 허리가 세토막으로 부러져 오랬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동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오빠가 휘두른 삽에 맞아 나는 세 번이나 공중에 부웅 떠서 밭이랑에 나동그라졌다고 한다.
또 하루는 어머니가 굿하는 상에 쌀을 받혀놓고 불공드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때 문득 나도 어머니처럼 하나님께 귀한 쌀을 드리고 싶었다.
그러면 우리 집도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날부터 나는 몰래 쌀통에서 쌀을 꺼내 땅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주일날 교회에 가져가 성미를 드리곤 했다.
당시 어머니는 1년 중 가장 큰 굿판이 벌어지는 산신제를 준비하고 계셨다.
한 해를 시작하며 풍년과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굿이었다.
어머니는 한겨울이었지만 한 달 전부터 매일 밤마다 찬물로 목욕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으신 뒤 불공을 드리기 위해 신당을 나가셨다.
그런데 촛불을 켜면 잘 붙지 않거나 어렵게 붙여도 금새 꺼져서 불공을 드릴 수가 없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다른 무당들에게 물어보았다. "큰 신이 먼저 재물을 잡수셨어! 당신 집안에 다른 큰 신을 모시는 사람이 불공드릴 재물을 큰 신에게 먼저 드리게 하기 때문이야! 계속 이런 식으로 불공이 안 드려지면 집안이 망하고 말거야!"
그 말을 듣고 온 어머니는 오빠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금자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된다. 그래야 이 싸움이 끝난다. 15남매나 되는 우리 집안에 금자 하나 없어져도 나는 상관없다. 그러니 내가 하는 대로 너희는 보고만 있거라!"
어머니가 나를 부르시더니 회충약이라며 열 알 정도의 알약을 먹으라고 하셨다.
내가 안 먹겠다고 떼를 쓰자 강제로 먹였다. 그 약을 삼킨 즉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약은 군 복무 중이던 큰형부가 부대에서 가져온 금결합이란 독약으로 힘쎈 장정도 열 알 정도를 먹으면 죽는다는 약이었다. 마침 그 무렵 큰언니는 첫아들을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큰언니는 식구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믿을 수 없어, 금자는 내가 갓난아기 때부터 업어 키운 애야 그러니 내가 확인한 다음에 땅에 묻어, 안 그러면 평생 내게 한으로 남을 것 같아!"
그래서 죽은 시체와 같았던 나를 오빠들은 3일 동안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큰언니는 삼칠일 금기가 지난 뒤에 내 죽음을 확인하러 달려왔다. "금자야! 어서 일어나 금자야!" 큰언니는 울면서 나를 흔들어 깨웠고 그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박해는 그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살아난 어린딸을 없애기 위해 문중 어른들과 산신제에 관한 일을 의논할 때 어머니는 나를 제물로 드리자고 제의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반문할 것이다.
아무리 반대하는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어떻게 엄마가 친딸을 죽이려고까지 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이 일은 단순히 모녀지간의 감정 대립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무섭고 치열한 것이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오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처럼 어머니와 나 사이의 싸움은 악령과 하나님 간의 영적 전투였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느끼셨던지 나를 불러놓고 간곡히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너를 죽이든지 아니면 내쫓던지 해야겠다고 100일 정성을 들리러 갔다. 우리 집안에는 아무도 네 어머니 고집이나 성질을 꺾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예수를 믿으려면 먼 곳으로 떠나거라. 서울 홍제동 이모댁으로 가서 살아라!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네가 그토록 기도하는데 언젠가는 어머니도 하나님을 믿을 거 아니겠냐! 10년 안에는 집에 돌아올 생각을 말거라"
내 나이 12살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시럽게 울며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보니 이모도 철저한 불교 신자였다.
나와 어머니의 영적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양키 귀신' 들렸다며 나를 은근히 박대했다. 설상가상이었다.
내가 매달린 곳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밤마다 성경을 펴놓고 읽으면서 울며 기도하고 나면 어느새 마음에 가득했던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평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