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 없이 2000개의 맥주를 만들다, 괴짜들의 맥주 “미켈러”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게스트 바리스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유명 바리스타가 다른 카페에 게스트로 방문해 하루 동안 일일 바리스타가 되는 일종의 행사다. 게스트 바리스타는 커피 업계에서는 카페들 간의 활발한 교류를 상징하고, 손님들에게는 색다른 커피를 맛볼 수 있는 하나의 이벤트가 된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커피 말고 맥주에서도 할 수 있을까?
남의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든다면 쫓겨날 거 같지만… 이게 된다. 심지어 양조장 없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오늘 마시즘은 이런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맥주 ‘미켈러(Mikkeller)’에 대한 이야기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맥주
미켈러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맥주, 혹은 특이점이 온 맥주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지금까지 2,000여 종에 달하는 맥주를 출시했는데, 맛이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양조장 없이 맥주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양조장이 없는 미켈러는 협업을 통해 맥주를 만든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2015년에 출시한 ‘더부스’의 ‘대강(대동강) 페일에일’이 있다. 한때 20초에 1병씩 팔릴 만큼 한국 크래프트 맥주를 이끌었던 레전더리 맥주였는데, 이걸 미켈러와 만들었다고?
미켈러의 시작은 2003년 덴마크였다. 자신의 집 부엌 한편에서 냄비에 맥주를 끓이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미켈 보리 비야르쇠(Mikkel Borg Bjergsø)였다. 미켈은 고등학교 물리 교사로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취미로 홈 브루잉을 소소하게 즐겼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맥주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가 만든 맥주가 글로벌 맥주 평가 매체 ‘레이트 비어(Ratebeer.com)에서 세계 최고의 스타우트로 뽑힌 것이다.
어? 생각보다 내가 만든 맥주가 괜찮을지도…?
그렇게 미켈은 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집시 브루어리, 손에 물 안 묻히고 맥주를 만들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겁이 많은 성격의 미켈에게는 본격적으로 맥주를 시작하기에 위험부담이 많았다. 홈브루잉과 양조 생산에는 규모의 차이가 큰데, 은행에 큰 빚을 지면서 맥주 설비를 짓는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는 자신의 맥주 레시피를 들고 양조설비가 갖춰진 양조장을 찾았다. 보통 양조장이라면 기본적인 생산설비를 갖고 있으니까. 미켈은 본인이 양조장을 소유하지 않는 대신에 인프라를 갖춘 양조장과 협업하여 맥주를 위탁 생산하겠다는 발상을 하게 된다. 본격 양조장 없는 양조장의 탄생인 것이다.
이렇게 양조 생산 없이 협업으로 맥주를 만드는 방식을 ‘집시 브루어리(Gypsy Brewery)’라고 부른다. 집시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맥주를 만든다고 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미켈은 양조장을 관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 자본 등을 아끼는 대신 오직 ‘맥주 레시피’를 개발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집시 브루어리 방식을 택한 미켈은 말한다.
저는 모든 아이디어를 맥주로 바꿔서 만들어 봐요.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맥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원 킬 맥주, 한 번 마시면 충분한 맥주의 탄생
미켈러 맥주의 특징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독특하다는 데 있다. 미켈러는 그동안 세상에 없었던 독특하고, 실험적이며, 새로운 창작물이라는 마음으로 맥주 레시피를 설계한다.
때문에 붙여진 또 다른 별명은 ‘원 킬 맥주(One Kill Beer)’다. 경험용으로 딱 한 번만 마시는 맥주라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한 잔 이상은 절대 못 먹을 만큼 맛이 고약한 맥주도 있다는 점이다. 이 지뢰 찾기 같은 매력이 맥주 매니아들에게는 그것들을 맛보는 것만으로 재밌는 추억이자 인증하고 싶은 경험이 된다.
한 번만 마시고 충분하다면 장사는 어떻게 하냐고? 그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그 종류가 수천 개는 된다고.
오리지널 레시피로 2,000개의 신제품을 내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미켈러의 오리지널 맥주는 자그마치 2,000여 종을 훌쩍 넘는다. 2006년부터 매년 100개 이상의 신제품을 쏟아낸 셈이다. 여러 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만큼 좋은 품질의 재료로 만들고, 극한에 도전하는 레시피로 컨셉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맥주들이 가득하다. 몇몇 대표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미켈러 ‘1000 IPA’ 맥주다. 이 맥주는 무려 1,000 IBU를 자랑하는 맥주다. IBU(International Bitterness Units)는 맥주의 쓴맛을 계산하는 세계 표준 단위인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쓴맛은 최대 120IBU다. 약간 맥주 계의 사약, 맥 주계의 알보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마시면 과연 혀가 감당할 수 있을까?
반면 ‘비어 긱 브런치 위즐(Beer Geek Brunch Weasel)’이라는 맥주도 독특하다. 임페리얼 오트밀 스타우트로 쉽게 커피가 들어간 흑맥주라고 보면 된다. ‘위즐’은 베트남의 유명 족제비 커피 원두다. 비어 긱 브런치 위즐은 마시는 순간 맥주에서 커피 향미가 폭발적으로 퍼지며 각각의 맛이 밸런스 좋게 어울린다고 한다. 그나마(?) 안정적으로 마실 수 있는 미켈러의 스테디셀러라고.
이 밖에도 한 장소의 홉만 사용한 싱글 오리진 ‘싱글 홉 시리즈’가 있고, 시큼한 사워 비어인 ‘스포탄 시리즈’, 복일의 와인 업체와 콜라보하여 리슬링 포도가 들어간 ‘리슬링 피플’ 등의 라인업이 있다. 세상에 특이한 맥주가 있다면 여기에서 다 만드는 기분이라고 할까?
맥주 회사에서 달리기 클럽을? 미켈러 러닝클럽
극악무도한 맥주를 만드는 ‘미켈러’이지만 미켈러의 이름은 러닝클럽으로 먼저 아는 사람들도 있다. 맥주만큼 유명한 것이 미켈러의 러닝클럽(MRC, Mikkeller Running Club)이기 때문이다.
‘미켈러 러닝클럽’은 코펜하겐, 런던, 베를린 등 37개국 250개 지점을 가지고 세계적인 규모의 러닝클럽이다. 이는 건강한 몸으로 오래오래 맥주를 즐기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로, 한 달에 한 번씩 도시를 달리고 있다. 물론 이 모임의 정수는 달리고 난 뒤에는 함께 모여 마시는 미켈러 맥주 타임이다. 원래 맥주는 땀을 흘리고 마셔야 진짜 맛있는 법이니까.
코로나가 끝나면 한 번쯤 참여해보고 싶은 클럽이라고 할까? 달리기는 관심 없지만 뛰맥의 맛은 놓칠 수 없거든.
Love or Hate! 오감을 깨우는 아티스트의 맥주, 미켈러
여행을 가서 스타벅스가 아닌 로컬 카페를 찾는 이유는 그곳 주인장만의 다채로운 맛을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미켈러 역시 이런 특별한 경험을 상징하는 맥주가 되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미켈러를 주문하면,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지금의 미켈러를 만들었다.
취향에 따라 맛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별점 1점짜리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맥주를 만드는 우직한 뚝심마저 누군가에겐 취향이 된다. 예측할 수 없는 독특한 재미가 언제나 미켈러에 있다.
재미있는 점은 2,000종에 달하는 미켈러 맥주의 라인업을 전부 다 마실 수 있는 장소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켈러를 좋아하는 이들은 미켈러의 다양한 맥주들을 직접 체험하고 수집하기 위해 성지순례 세계여행을 떠난다.
그중 하나가 서울 신사동에 자리한 ‘미켈러 바 서울’이다. 미켈러를 주문할 용기가 생겼다면, 한 번쯤 떠나보는 게 어떨까?
원문: 마시즘
첫댓글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나름 재미난 자료일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