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함께 / 이관순
좋아하는 인디 록 뮤지션 ‘이승열’의 공연을 보려고 서울에 왔다. 평소 음악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던 이웃과 번개팅을 잡아 함께 공연을 볼 계획이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다. 괜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블로그에서는 친밀하게 대화를 나눴지만 처음 본 얼굴들이라 몹시 어색했다. 우리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어디에서 왔는지 밝혔다. 전국 각지에서 모였는데 놀랍게도 제주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곧 ‘이승열’과 그의 음악을 주제로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고 모두 다 ‘이승열’ 팬으로 모여 있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은 대학생이거나 직장인 아가씨였고, 아줌마와 고등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40대 아줌마였다. 나이는 천차만별이었지만 언제 어색했냐는 듯 대화는 꽃을 피웠다. 인디 뮤지션에게서 받은 특별한 영감과 감동을 앞다투어 말하며 흥분하는 모습은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만나 본 그들의 인상은 블로그에서 글로 대화 나누며 받았던 느낌과 많이 달랐다. 온라인의 특성인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니 그럴 것이라고 쉽게 이해가 되었다. 나 또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아끼고 동경하는 마음은 하나였다. 우리는 공연이 시작될 시간이 가까워져 공연장으로 출발했다.
불이 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며 이승열이 나타났다. 그간 티비(TV) 방송에서는 몇 번 봤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인디 록 뮤지션이라 방송에서는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과연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음악이 연주되고 묵직한 저음으로 노래가 시작되자 머리털이 쭈뼛거리고 소름이 돋으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팬들은 온몸으로 리듬감을 느끼며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공연장을 집어 삼킬듯 초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연주하는 곡이 점차 늘어가자 나중에는 모두가 떼창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푸른 너를 본다’가 연주되자 사람들 입에서 '아!' 하는 짧은 탄성이 울렸다. 감동이 밀려와 울컥하며 목이 메었다. 앨범에서만 듣던 노래를 라이브로 듣게 되다니 너무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감동과 환희의 순간은 너무 짧게 지나가 버렸다. 얼마나 집중하며 보았던지 꼬리뼈와 어깨가 뻐근했다. 아쉬운 공연이 끝나고 팬 미팅 시간이 다가왔다. 죽어라고 들었던 앨범 두 장을 덜덜 떨며 내밀고 사인을 받았다. 너무 좋았다. 그 순간은 여고생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40대 아줌마가 좋아하는 가수의 사인을 받고 흥분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라니 누가 보면 어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본 락 공연을 뒤로하고 광주로 내려왔지만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 뒤 한동안은 라이브 음악을 편집해서 올려놓은 이웃 블로그에서 후기를 나누며 생생했던 감동을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 때 받았던 감동과 흥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처음 라이브 공연을 봤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청춘일 때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40대 아줌마가 되어 첫 발을 디디고, 이후로 린킨 파크와 제이슨 므라즈, 마룬5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을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라이브 공연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어 흥분의 도가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토록 내한하기를 고대했던 유투(U2)의 공연이 작년에 있었지만 나는 가지 못했다. 일이 바쁘기도 했거니와 나이 들어 이젠 스탠딩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감정과 열정은 그대로인데 육신이 따라가지 못해 보고 싶던 공연을 놓치게 된 것은 참 슬픈 일이었다.
40대 초반에 블로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음악 블로거였다. 블로그가 유행하기 전에는 싸이월드를 대부분 했던 것 같다. 아이들 키우느라 에스엔에스(SNS)에 별 관심 없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블로그에 관심 갖게 되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듣고 짤막하게나마 감상을 올려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 블로그에 비평을 올리면 이웃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곡에 대한 감상과 느낌을 공유한다. 내가 느낀 카타르시스가 다른 이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락의 세계는 놀라웠다. 음악의 장르가 무궁무진하였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브릿팝인 비틀즈와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뮤즈, 콜드플레이등 감성락과 미국의 포크, 블루스를 주로 들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여러 장르의 락을 찾아 듣게 되었다. 듣다보니 그렇게 좋아했던 어쿠스틱 보다는 일렉에 관심이 쏠렸다. 점차 일렉기타와 드럼 외에 키보드와 현악기로 구성된 프로그레시브 음악과 포스트 그런지에 심취하게 되었다. 너바나를 들으면서 죽음과 절망의 세계를 맛보았고 핑크플로이드의 실험 음악에서 웅장함을, 자본과 권력, 정치적인 메시지를 표방하는 RATM에서 전율을 느꼈다. 얼터너티브 펑크락의 대명사 레드핫칠리페퍼스에서 흥겨움과 비트(beat)를,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음악에서 경건함과 짜릿함을 맛보았다. 재즈와 쿠바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까지 폭넓은 락의 세계는 범접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이었다.
음악을 듣는 일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루도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 감정이 평안할 때 들어도 좋지만,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들으면 평온을 찾고 안정이 된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는 집에서도 수시로 들었는데 지금은 출퇴근 할 때 자동차에서만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식구들에게 강요할 수 없어서다. 우리집 사람들은 음악 듣는 것 보다는 티비 보는 것을 더 즐긴다. 가끔 집안일을 다하고 쉬고 싶을 때 음악을 틀어놓으면 아이들은 "엄마, 우리집은 까페예요." 라고 말하며 웃는다. 10대 후반과 20대에는 클래식을 닥치는대로 들었고, 30대 후반부터는 락을 참 많이도 들었다. 락 음악의 세계를 접하면서부터 클래식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대부분 악곡이 길고 변주로 이어지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음악 장르는 각자 고유한 특성이 있기에 우위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느끼는 감흥은 분명히 다른 것 같다. 40~50대는 30대와는 다른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처럼 추구하는 음악도 그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요나 락을 듣다가 클래식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클래식이라는 한 장르에 올인하여 듣다가 다른 영역의 음악에 느닷없이 푹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트로트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관심도 없지만 들어도 좋은 줄 전혀 모르겠다. 트로트에는 강렬한 비트나 짜릿한 훅이 없다. 왜 이렇게 남녀노소 모두가 열광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첫댓글 와~~
선배님의 음악의 내공과 깊이가 엄청나군요.
락 음악의 장르를 읽는 부분에서는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것은 배경이니 어찌 하오리까?
팬이나 덕후질은 늙지않는 비결 아닐까요?
트로트 왕국에 빠진 듯이 티비를 장악한 프로그램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 여기도 있습니다 하하
'내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에요. 음악 쫌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지요. 음악은 계절이나 기분에 따라서 선호하는 곡이 달라져요. 그리고 시공간을 이동시켜 감상에 젖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팬질이나 덕후질은 예전만은 못하지만 아직도 진행중이랍니다. 이 나이에도요! 나만의 세계에 빠져사는 시간은 내일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지요? 호호
옴마야 락 전문가구만. 나는 락은 시끄럽기만 하고 감흥을 못 느끼는데 참 다 다르긴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ㅋ ㅋ
발라드입니다.. 발라드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저는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가려다 여러 번 포기했어요. 코로나까지 와서 더 힘들 것 같네요. 이승열 노래도 들어보았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와우! 멋지고도 젊게 사시네요. 음악에 조예도 깊고 그저 부럽습니다. 전 음악이라면 악보도 못 보는 바보랍니다.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음마저도 날카롭게 가슴을 저미는 이승열 좋아하는 분을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저도 아팠을 때 '잔나비' 음악이 아픈 마음 치유도 해주고 평안을 주는 경험을 했던지라 공감이 갑니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여 자기안에 빠져 사는 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와~ 정말 몰랐어요. 저도 락이 좋아요. 임재범 아저씨 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