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설교2015.9.27(주일) 인간의 딜레마를 극복하라(호 4:6-10 /롬 1:28-31)
오늘은 추석명절 주간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주일과 추석이 겹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주일은 앞으로 17년 후인 2032년 추석에 다시 온다고 합니다. 참 의미 있는 추석입니다.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에 더 큰 축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이번 추석에서 수 천 만 명의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집니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태양의 빛이 좋아 풍년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더도 말고 들도 말고 한가위 같아여라’ 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에는 안전사고가 없는 평안하고 복된 추석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 말 고사성어로 ‘호사다마(好事多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해 추석에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호사 다복의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이란 좋은 일이 생기면 계속 호사(好事) 다복(多福)이 되기가 어려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겸손의 은혜가 인간에게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요즘 ‘베테랑’이란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였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벌 3세 조태오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안하무인이며 광기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술, 도박, 살인을 일삼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그러나 행동파 형사가 끝까지 추적하여 그의 죄를 파헤쳐 그를 검거합니다. 이 영화가 우리사회 재벌가에서 있을 수 있는 실화가 배경이라니 뒷맛이 씁쓸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딜레마가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겸손할 수 있지만 잘되고 번성하여 최고의 지위에 올라가면 스스로 교만해져 자신도 모르게 쉽게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딜레마 인 것 같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예언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 4:6-7)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BC779-747) 말기부터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오를 때(715년)까지 약40년 간 선지자로 사역을 했습니다. 이때 여로보암 2세는 북왕국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이 가장 강하고, 경제가 호황에 이르게 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가 안정되고 나라가 부흥 된 그때에 북왕국의 우상숭배와 타락은 극에 달합니다. 그때 호세아는 그 나라에 대하여 예언을 합니다. “너희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 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되게 할 것이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인간은 대부분 잘되고, 번성하고, 좋아지고,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 타락하고 하나님께 범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딜레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의 영화를 변하여 도리어 욕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낮아지고 어려울 때 타락하고 큰 죄를 짓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 높아지고 환경이 좋아지고 성공을 이를 때 타락하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실하고 거룩한 삶을 살았으나 그가 왕자가 되어 마음이 높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민족을 구원하려다 살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 시절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그런 그가 왕이 되어 자리가 높아지고, 마음이 높아지자 기도하지 않고 결국 실수하여 범죄하며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인간의 딜레마를 극복하여 죄를 이길 수 있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언제든지 하나님을 자기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롬 1:28-29)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주인 되어 살면서 타락하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되어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자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겠다는 것은 무지(無知)이고 무능(無能)입니다. 인간 마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무엇이 잘되고 풍성해지고 많아질 때 사단에게 속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해서 무엇이 잘 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에게 속은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모셔야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잘되고 풍성해지고 성공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로 된 것임을 믿을 때 속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되면 그때부터 타락하고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삼손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길 때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든 일이 잘 되자 그 힘이 자신에게 나온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뒤로 하고 자신이 주인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 기생 드릴라가 마음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아무리 잘 되고 높아져도 주님의 역사이고 주님이 주인입니다. 그럴 때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주인이 되면 망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나중이 나빠집니다.
링컨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대통령이지만 날마다 백악관에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자기 교만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 노예해방이란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전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주님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모시고 교제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우리가 마음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이제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모셨다고 하면서 인정하지 않고, 모시지 않고, 교제하지 않는 다면 주님은 내 마음의 주인이 아닙니다. 만일 시골에서 부모님이 오셨다 해도 그분과 교제하지 않는다면 부모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이 그 집에 계신다고 해도 그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우리가 인정하고, 모시고, 부탁할 때만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오신 성령은 절대로 내 의지를 초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인정하고 부탁할 때만 역사하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방치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계시지만 우리는 죄를 짓고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주인 노릇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십니다. 그때 풍랑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이기기 위해 노를 젓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소동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주무십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느낄 때 주님을 깨웁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때 주님이 일어나 왜 두려워하는냐 믿음이 없느냐?는 책망을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한 배에 타셨지만 인정하거나 교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인정하고 시시로 그분과 의지해야 합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시 62:8)
세 번째, 우리 인생의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 때 북왕국이 흥왕하도록 축복하였습니다. 그런데 “네가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너희를 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지식은 말씀입니다. 인간은 어려울 때는 말씀을 잘 따르고 지키다가 자신이 무엇이 잘 된다고 생각할 때는 말씀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가수 송대관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할 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러던 중 한국에 와 ‘쨍하고 해 뜰 날’ 이란 노래가 히트를 쳐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그 후 바빠지다 보니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더랍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인이 부동산 사업을 하다 크게 재산을 잃고 엄청난 시련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야 탕자가 되돌아 왔다는 간증에서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네, 금은보화 자녀들까지 주님의 것을 내 것이라 아버지여 이 철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 사명 맡기 재물 주를 위해 쓰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는 주님의 것이니 복을 달라고 하면서 조금만 잘되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어렵더라도 말씀대로 살아갈 때 형통하고 나중이 잘 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처음도 잘 되고, 나중이 잘되는 인생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호사 다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