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곡 연옥 산의 진동
연옥이 흔들리는 우레같은 소리가 들려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나, 바쁜 여정이 단테를 재촉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무덤에서 나와 길 가던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처럼
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나타났습니다.
예수가 부활한 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앞에 나타나 함께 가던 중 저녁이 되어 저녁 식사에 나온 음식을 축복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입니다.
엠마오의 저녁식사, 카라바조,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 2012년 밀라노 여행 중에
브레라 미술관에는 라파엘로의 '성모의 결혼' 그리고 만테냐의 '죽은 예수' 등등 좋은 그림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엠마오의 저녁식사, 카라바조, 영국 내셔널 갤러리
- 2019년 런던 여행 중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떠나가는 두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셨습니다. 저녁이 되었으니 함께 머무르자는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을 때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동이 틀 무렵 두 남자가 들판을 가로 질러 머리를 흩날리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하고 무덤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하자 놀라 뛰어가고 있는데 눈에, 두 손에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무덤으로 향하는 베드로와 요한, 외젠 뷔르낭, 오르세 미술관
그때 한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스타티우스였습니다. 스타티우스는 라틴문학을 대표하는 로마의 시인입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새로운 영혼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망령들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동안 뒤로 왔는데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를 영원히 귀양 보내신
하느님의 진실한 법정이 당신을
축복의 모임에 평화로이 두시길!
베르길리우스가 천국에 오를 희망 없이 림보에 갇혀 있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스타티우스가 그대들이 하느님께 오르지 못할 영혼이라면 누가 그대들을 그분의 계단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 사람의 이마에 천사가 새긴 표시들을 보시면 선한 자들에게 오를 운명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람이 아직 생명의 줄이 많이 남아 그의 영혼이 혼자 올라올 수 없어 길잡이 노릇을 해주러 림보에서부터 그를 안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이 방금 왜 그렇게 요동을 쳤는지
모든 영혼들이 발을 적시는 곳까지 왜 한목소리로
고함을 쳤는지 말해 줄 수 있겠소?
그가 말했습니다.
이 산은 신성한 법이 지배하고 있기에 불규칙하고 비습관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연옥으로 올라가는 세 개의 짧은 계단 너머로는 비와 우박, 눈도 내리지 않고 구름도 없으며 무지개도 뜨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옥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 산의 진동은 어떤 영혼이 깨끗해졌음을
느끼고 몸을 일으켜 세우거나
단번에 위로 올라갈 때 생깁니다.
오직 올라가려는 의지만이 영혼의 정화를 증명하며,
정화된 영혼은 자기 자리를 바꿀 정도로
자유로워진 의지를 갖게 되는 거지요.
이 영혼은 처음부터 올라가려는 의지를 가졌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정의에서 벗어난 의지였기에 한 때 지은 죄를 씻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오. 라며
오백 년도 넘게 이곳에 고통스럽게 누워 있던 나는
이제야 저 높은 나라로 올라갈
자유로운 의지를 느꼈소. 그래서
잔이 진동하고 이 산에 있는 경건한 영혼들이
우레 같은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했던 것이지요.
나 간절히 기도하니, 주께서 그들도 부르시기를.
오백 년도 넘게 정죄를 하고 이제 천국으로 올라가는 영혼이 있어 이 산에 있는 주변의 경건한 영혼들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하느라 우레같은 소리가 났던 것입니다. ‘나 간절히 기도하니, 주께서 그들도 부르시기를’ 이라 기도하는 마음을 보면 남을 샘하거나 시기와 질투가 없는 천당으로 갈 사람만이 지니는 아름다운 마음인 듯 합니다.
단테의 궁금증이 풀렸고 그의 기쁨은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누구였는지 말해 줄 수 있느냐고 베르길리우스가 물었습니다.
그가 나는 스타티우스라 부르는데 저 세상에서 시인으로 제법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가지만 해도 신앙이 없었소’는 후에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암시입니다.
블리우스 파피니우스 스타티우스(Publius Papinius Statius, 45년- 96년)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고대 로마의 시인으로 연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이성과 고전 문화)로부터 베아트리체(은총과 계시)로 가는 사이에서 단테에게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나의 노래는 너무나 훌륭한 영감을 지녔기에
비록 툴루즈 사람이었지만 로마는
내 머리에 월계관을 씌워 주었소.
나는 테베를 노래했고 아킬레우스를 두 권 째 쓰다 쓰러졌습니다. 내 마음을 타오르게 하는 거룩한 불꽃은 <아이네이스>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내 문학의 유모였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살았을 때 나도
살아 있었더라면, 일 년을 더
이 산에서 머무른다고 해도 좋을 것이오.
이 말을 듣고 단테가 웃고 있으니 그가 당신이 미소를 짓고 있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나의 눈을 하늘로 이끄시는 이분이 바로
베르길리우스요. 당신에게 사람과 신에 대해
노래하는 힘을 주신 그분이지요.
그 영혼은 선생님의 발을 안으려고 허리를 굽히니 선생님께서 그 영혼에게 그러지 마시라 말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