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진실 / 조영안
봄비가 내린다. 여름 장맛비처럼 너무 세차게 내려 윈도 브러시도 감당 못 한다. 마치 양동이로 퍼붓는 것 같다. 조심히, 천천히 운전하라는 내 말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란다. “하필 이런 날 병원에 가나?”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다.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이라서 잡은 건데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어 입을 꾹 다물었다.
남편은 겉모습과는 달리 자상한 면이 있다. 가까운 병원에 가도 되는데 굳이 하동으로 가야 나을 것 같다는 내 이야기를 들어 줬다. 예전에 왼팔과 어깨가 심하게 아파서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서 진료받고 뚝딱 나은 적이 있다. 주사와 물리치료가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물리 치료사가 남자였는데, 아픈 부위를 꼼꼼히 짚어 주어서 더 신뢰가 갔다. 오래전 일인데 그 덕인지 지금까지 아픈 적도 없다. 오늘도 지난번에 넘어져서 다친 오른쪽 어깨와 팔의 통증이 심해서 갔다. 시간이 없었지만 내친김에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처방해 준 약 한 봉지를 먹고 나자 거짓말같이 개운하다. 어른들 말처럼 ‘딱 맞는 병원이 있나 보다.’
썽쟁이(화를 자주 내는 사람), 악쟁이(악(소리)을(를) 잘 지르는 사람)는 우리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다. 주거니 받거니 한다. 때로는 그게 바뀔 때도 있다. 나는 경상도 억양이라 보통으로 말해도 큰소리라고 오해를 받는다. 가끔은 우리 집 조상이 문제인가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서로 마주하면서 늘 느끼는 감정이다.
남편과 나는 동성동본이다. 흔하지도 않는 ‘조’ 씨 성이다. 남들은 "우째. 그런 일이?" 그리 생각하겠지만 이제는 이미 정해진 사실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산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자주 드나들던 절 스님의 소개로 만났다. 둘 다 늦은 나이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조'라는 성씨가 같아, 본관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한양’이란다. 양가에 인사하러 갔다. 시댁은 큰아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런데 친정은 아니었다. 호적등본을 떼어 오란다. 한몫하는 아버지 방식으로 심사가 시작된 것이다. 뿌리를 유별나게 챙기는 분이다.
남편이 머뭇거렸다. 나도 깜박 속았다. 본관이 나랑 같은 '함안'이란다.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호적등본을 떼어 ‘함안’이란 글자 위에 습자지를 붙여 ‘한양’이라 고쳤다. 그리고는 복사를 했다. 지금처럼 인쇄가 된 것이 아니라, 모두 복사를 해서 맨 뒷장에다 수입인지를 붙이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완벽한 호적본이 됐다. 다음에는 ‘한양 조씨’를 공부했다. 시조부터 항렬, 집성촌, 인물 등을 달달 외웠다. 아버지가 낸 시험은 무사히 통과가 되었으나 법은 그럴 수가 없었다. 혼인 신고가 안 되기에 나는 남편의 동거인으로 올라갔다. 묘하게도 6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특례법으로 1년 동안 규제가 풀려서 무려 6년 만에 남편의 배우자로 호적에 오를 수 있었다. 2005년 3월 31일에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그런 기회는 세 번 더 주어졌다.
97년과 2,000년에 큰애와 작은애가 태어났다. 마치 계획된 것처럼 일사천리로 풀렸다. 임신 10개월 내내 불안하고 초조했다. 노산에다 동성동본이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두 아이 모두 양수를 검사했다. 악조건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장애의 확률이 높다고 한다. 다행히 둘 다 건강했고, 천재까지는 아니지만 머리도 좋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촌수도 뒤죽박죽이다. 항렬은 내가 위다. 때로는 넌지시 “아지매한테 까불지 마라.”라고 농담을 던질 때도 있다. 지금은 그냥 편하고 좋기에 지난날을 추억으로 떠올린다.
친정에 갈 때마다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이제는 나라에서도 동성동본을 허락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면 아버지는 "쌍놈같은 소리 하지 마라.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대답하신다. 하기야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적에도 두 분 다 삼년상을 치른 분이다. 나는 늘 불안했기에 불만도 많았다. 어차피 인류는 한조상에서 갈려 나온 종이지 않는가. 지금의 법처럼 8촌 이내 근친만 아니면 된다. 유교 사상에서 내려온 잘못된 풍습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1960년에 제정되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45년 만에 폐지된 악법이지만, 이제는 혼인과 인권의 자유로 행복을 추구하지 않나 싶다.
나도 때로는 고리타분하게 따질 때가 많다. 고향 까마귀 울음소리만 들어도 좋다는 말이 있다. 가끔 같은 성 씨를 만나면 본관이 어디냐고 묻는다. 그다음 파는 무슨 파며, 항렬까지 따진다. 때로는 고집이 세다는 소리도 듣는다. 경상도에서는 ‘황, 최, 강’으로 따지는데, 전라도는 ‘조, 최, 강’ 순위다. 내가 생각해도 맞다. 남편과 고집을 피우다가도 피식 웃음으로 넘긴다. 셋 중에서도 으뜸인데, 부부가 쌍으로 ‘조’가 붙으니 어쩌냐며 서로를 쉽게 이해한다. 남편과 성이 같다며 놀라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떳떳하게 동성동본이라고 밝힌다. 그냥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며 더 애틋한 마음으로 친구처럼 지낸다.
얼마 전 친정 나들이에서 그동안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시가나 친정 식구들은 거의 다 아는 사실인데, 단 한사람 아버지만 모른다. 어쩔 수 없는 급한 사정이 생겼다. 지금 가꾸고 있는 농장이 문중답인데 엉뚱한 사람 앞으로 되어 있다. 예전에 윗대 할아버지가 족보에서 찾았기에 아버지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함안에 있는 대종회 사무실에서 그 내용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있던 족보는 한국 전쟁 후에 반란군의 행패에 할머니가 불에 태워 없앴다. 지금은 파본만 있기에 어쩔 수 없다.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노발대발이다. 충격을 받으셨는지 '파' 는 어디냐고 물었다. '승지공 파'라는 말에 한숨을 푹 쉬었다. 다행히 '대소헌 공파'인 나와는 다르다. 세 사람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거짓말의 진실 앞에 "허참, 참내."라는 말만 몇 번이나 되풀이하셨다. 지금이야 어쩔 수 없지만 옛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단다. 하지만 사위를 바라보는 눈길이 더 따스하다는 걸 나는 느꼈다.
"아버지, 죄송해요."
첫댓글 선생님, 완전 드라마인데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황'이 경상도에선 고집이 세군요.
어쩐지. 창원 황입니다. 하하.
거짓말의 진실이 드디어 드러났네요. 아버지를 오래도 속이셨어요. 하하, 우리 집에 최씨와 강씨가 있습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오, 강, 최'입니다.
'조'가는 고집 안 세요.하하!
저는 창녕에, 시중공파랍니다.
와! 빼먹고 안 읽었으면 후회할 뻔 했네요. 재미도 있고 글도 잘 쓰셨습니다.
와! 대박이네요.
너무 재밌어요. 둘이 얼마나 좋으셨으면...
와, 진짜 진정한 거짓말인데요. 사는 내내 조마조마 하셨겠어요? 아버님이 잘 받아들이셔서 다행입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 우와! 배짱이 좋으셨네요. 멋져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두 분, 사랑의 힘이 대단하세요. 앞으로도 쭉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와! 두 분의 찐 사랑이 거짓말도 감쪽같이 쉽게 하게 했군요.
그 무엇으로 사랑의 힘을 당하겠습니까?
사랑이 승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