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풍경 / 한정숙
젊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연말에 절에서 새해 달력을 받으면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쓰윽 훑어본 후 공휴일이 어찌 배치가 되었나. 확인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생일과 대소사를 기록한다. 지혜롭게 1년을 꾸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법당에 들어가 기도를 할 때도 ‘감사’와 ‘지혜’를 가장 많이 입에 올린다. 꼭 필요한 덕목인데 행하는 것이 더뎌서인지 모르겠다. 4월 달력엔 나와 둘째의 생일이 있어서 봄기운이 나고 5월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서 장미의 계절에 손색이 없다. 더구나 부처님이 어린이날 오셔서 대체공휴일이 하루 더 생겼다. 감사할 일도 지혜로워야 할 일도 많은 계절이다.
우리는 4일 일요일에 전 가족이 모여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축하하는 식사를 하고 날씨의 축복을 받아 평화광장으로 나갔다. 햇빛이 바다 위를 구르다가 아이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입으로 튀어나왔는지 곳곳에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누구 집이랄 것도 없이 놀러 나온 가족들은 즐거워 보였다. 젊은이들이 제트스키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좋았고, 어린아이들과 손잡고 걷는 어른들의 표정도 여유로웠다.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손주들은 온 몸으로 그 기쁨을 만끽했다. 우리는 달콤한 차를 마시며 많이 웃어서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어린이날과 이른 어버이날을 쌍으로 보냈지만 정작 사흘이 지난 8일 어버이날이 되자 자꾸 휴대폰에 눈이 갔다. 축하와 감사의 문자가 기분 좋은 그림을 앞세워 날아오진 않을까? 혹시 못 보고 지나가진 않았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날이 날이니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바로 짧은 안부 문자라도 하면 좋을 텐데 하면서 벽시계가 출근하고 등원하는 시간을 넘기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도 휴대폰은 모른 척했다. 그래도 첫째는 전화할 법하지 않나? 생각하다가 문득 그날의 일이 걸렸다.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식구들을 챙겨 올라가는 동생을 배웅하고 큰아이는 사촌 동생과 추모공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뵙고 왔다. 오랜만에 든든한 젊은이들을 데리고 산소에 다녀온 남편은 기분이 좋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병을 땄다. 장성한 아들들과 만나면 같이 소주 한 잔씩 하고 싶어 했으나 기회가 마땅하지 않아 아쉬워하던 차에 사업하는 조카가 외삼촌의 술친구가 되어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식사시간 내내 남편은 “허허허”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 사달이 나고 말았다. 30대 중반의 큰 아이를 아직 내 아들이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탄산음료 먹지 마라, 문을 잘 닫아라, 밤 음식 먹지 마라.’는 등 사소한 주문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만들었다는 가슴이며 어깨, 허벅지를 만져보라고 자랑하는데 ‘울끈이 불끈이 몸’이라 옷 태가 나지 않는다. “큰 근육보다는 잔근육이 멋지더라, 몸을 줄여라.”라고 툭툭 던지자 자기 일은 알아서 하겠다고 벌컥 화를 내지 않는가? 몸 만드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함부로 말한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최근 20kg 이상 감량하여 물 찬 제비가 되어 삼촌을 만나러 온 시조카와 비교하며 아들을 탓했다.
날이 밝자 큰아이는 눈도 안 마주치고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 봉축행사에 참석하려고 강진 무위사에 갔으나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해도 많은 분들이 행사에 참석하였고, 구경 삼아 찾아오는 방문객도 많았다. 행사가 끝나자 법당으로 들어가 여느 때처럼 부처님께 지혜를 주시라 기도했지만 마음이 무거운 건 여전했다. 사월 초파일이면 절에서 비빔밥을 먹고 떡을 받아오는데 내키지 않아 일주문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법규를 세 번이나 어겼다.
마음이 편치 않은데 서울로 올라간 큰아이가 전화를 했다. 전날 밤 무례하게 대꾸해서 용서를 비는 전화려니 했더니만 “어제저녁엔 엄마가 잘못했어요.” 하더니, 자꾸 지적하는 내게 여러 번 그만하시라고 얘기를 했으나 멈추지 않았다면서 목소리엔 아직 화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어쨌건 어른에게 큰 소리를 낸 건 잘못한 일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왜 성인인 큰아이를 품에서 내려놓지 못할까 하며 속상했다. 그동안 첫째에게 관여했던 크고 작은 일들이 떠올라 씁쓸했다. 충분히 혼자 해결할 일도 ‘사랑’과 ‘조언’을 빌미로 많이 괴롭혔구나 생각하니 어리석은 내가 밉기만 했다.
어버이날, 마음이 울적하여 빈집뿐인 친정에 내려갔다. 집에 생기가 돌까 하여 봄꽃 담은 울타리 화분을 내려놓고 혼자서 중얼중얼 부모님께 안부를 전했다. 가신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친정 엄마가 가꾸셨던 화단에 넝쿨도 정리하고 옥상에도 올라가 지난날을 건져 올렸다. 손에 추억이 묻어 나왔다. 어버이날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옛집에 다녀오는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서울 사는 여동생에게 첫째고 둘째고 먼저 다녀갔다고 문자도 없다며 긴 시간 흉을 보며 하소연했다. “너는 다정한 아들이랑 딸이랑 있어서 좋겠다.”라고 부러워하자 “언니, 우리 얘들도 별 다를 것 없어. 오늘이 아직 다 지나가지도 않았잖아.” 하며 놀려댄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 중인데 광주 사는 둘째가 전화를 했다. 퇴근했다며 손주들에게 차례로 영상통화를 시킨다. 이어서 건강하시라고 덕담도 한다. 순간 뜨끔했다. 나는 시간을 맘껏 쓰지만 출근하는 아이들은 아침 시간이 전쟁이었을 텐데 조금 더 기다릴 걸 뭐가 그리 급했을까?
작은 아이와 통화를 마치고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하러 가는데 휴대폰에 큰아이의 전화번호가 올라온다. 오늘 하루 잘 보내셨냐며 영화표 예매하여 보낼 테니 두 분이 함께 보시란다. 종일토록 서운하다고 속 끓인 게 민망하여 표는 아버지께 보내라며 운동은 조금만 하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첫째는 간간히 영화표를 보내는데 둘이 데이트 삼아 다녀오라고 집옆의 극장은 두고 멀리 있는 곳에서 볼 수 있는 표를 보낸다. 오늘은 연전연패다. 모자를 눌러썼고 저녁이라 당혹스런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다. 그래도 어리석은 자신이 부끄러운 건 감출 수가 없다.
“있잖아, 아까 전화하면서 우리 얘들 흉본 것 취소하려고.” 부랴부랴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며 동생에게 주저리주저리 읊어댔다. “그럼, 그렇지. 우리 조카들이 어떤 아이들인데.” 하며 깔깔깔 웃는다. 동생이 나를 얼마나 한심해할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학부모 교육을 할 때면 “문제의 부모가 있을 뿐, 문제의 아이는 없다.”라며 어른들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일갈했었다. “아이들을 응원하며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하고서 나는 늘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았다. 참을성이 없기 때문이다. 불안할 뿐 아니라 아는 체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혜’는 시간과 기다림을 먹고 자라서 꽃이 피고 향기를 담아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일텐데 말이다.
첫댓글 지난 연휴에 손자 돌잔치가 있어서 아들 며느리가 왔는데 저도 아들 땜에 속이 좀 상했답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넘어가야지, 정색하고 화를 내기도 어렵더라고요.
항상 져 주는 것, 그게 부모의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저의 문제점 중에 가장 취약한 것이 야물지가 못하다는 것이랍니다. 정말 서로 독립해야 하는데 매번 깨뜨리는 건 엄마인 저라니까요. 흐흐
선생님의 솔직한 감정을 읽으며 공감하고 반성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나이 찬 아들이 미장가라 더욱 엄마 맘이 많이 쓰인답니다. 혹여 마마 보이 될까 걱정도 되고요.호호
암튼 나이차면 결혼해서 온전히 독립해야 부모들 마음이 개운할건가 봐요. 감사합니다.
집집마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대한 참다가 어쩌다 한 마디만 해도 간섭 받는다고 생각하는 딸이 저희 집에도 있거든요. 저도 요즘, 말 하고 싶어도 그냥 넘기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나날이랍니다.
선생님,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똑같지 않을까요? 저도 속상한 일이 더러 있어도 참고 또 참는답니다. 어버이날의 풍경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