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 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비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가 되지만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떤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사는 집 아래층에 경찰이 두 번이나 왔다갔다. 문제의 그 집에는 서른 넘은 아들과 육십 넘은 아버지가 산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는 날이면 시비를 걸고 혼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음악을 짜증 날 정도로 크게 틀어 놓기도 한다. 아들의 강력한 제지가 있지만, 술에 취해 있는 아버지는 도통 인사불성이다. 그와 같이 사는 아들이 제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경찰을 불러 상황을 통제하려고 두 번이나 경찰을 불렀다. 처음 이사 와서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는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은 일상의 여러 모습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래층에서 낌새가 이상하면 ‘오늘도 조금 시끄럽겠군’하고 만다. 다행스러운 점은 술꾼 아저씨가 나이도 먹어가고 그동안 누적된 술독으로 인해 급격히 쇠약해지기 시작하여 그 강도가 많이 줄었다. 더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생활은 힘이 강해 그 어디서나 삶은 계속된다. 살다보면 이꼴저꼴 다 보고 격고 사는거지 별 수 있겠는가?
저자인 서경식 선생이 2023년 12월 18일(향년 72세)로 별세하였다. 한때 서경식 선생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선생을 통해 ‘디아스포라’라도 알게 되었고, 재일동포 문제라던가. 역사와 인간, 민족과 개인, 고향과 유망, 고통과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읽은지 오래 되었고 지식이 짧아서 따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내 삶에 켜켜이 쌓여서 거름이 되었으리라. 선생의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고 또 한 세대가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면 서경식은 한국에서 드문 지식인이었던 것 같다. 경계에 선 자와 소수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신선했고 때론 충격적이고 반성을 하게 되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도 하였지 싶다. 하지만 내가 그의 책을 부지런히 읽은 주된 이유는 나 또한 경계인이자 소수자라는 동질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 혹은 경계인이자 소수자가 되고 싶거나 그렇게 살아보고자 하였는지도 모른다. 주류에 속하거나 성안의 사람들은 그들을 대변해 줄 지식인도 많고 이데올로기도 풍부하고 그들의 삶이 표준이라는 은근한 자부심도 있을테고, 그런 것들이 갖추어지지 않더라도 어차피 세상은 그들을 위해 준비되었으니 굳이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늘 나는 내 삶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변명해야 하는 지경에 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예를 들면 결혼하여 사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나는 늘 설명을 강요 받았고 혹은 질문을 받을 것 같고, 어떤 변명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들기도 한다.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은 가슴에 명철을 달고 유대인임을 증명해야 하고,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는 지문 날인을 강요받고 자신의 존재를 등록해야 하는 것과 같다. 무슨 의견이라도 발설하면 비혼이라, 아파트에 살지 않아서, 유대인이라, 재일동포라 등의 평가가 의견보다 늘 앞서서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한때는 객기도 부려보곤 하였지만, 그 후론 입을 다물거나 자리를 피해버리는 전술을 선택했던 것 같다. 독후감이란 미명하에 이런 허접한 낙서를 하는 이유도 그런 전술 중 하나가 아닐가 싶기도 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어느 곳에서는 주류 행세를 하며 그런식으로 진술했으리라. 나는 어쩌면 서경식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디아스포라’에게 당당히 자리를 지정해 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경식은 자리를 지정해 주는 대신 깊이와 넓이와 풍부함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경계인이 경계인이기에 인간과 역사, 사회와 개인, 고통과 죽음에 대해 얼마나 풍부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자리를 지정해주는 대신 스스로 경계인이 되기를 권하지 않았나 싶다. 경계인이 되었을 때만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디아스포라’는 변경인 이산자 등으로도 번역한다. 이산자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경식 선생이 나에게 변경인으로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변경인적인 사고로 세상과 인간을 보기를 권하기는 하는 듯하다. 경계인은 안팎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어서일가? 하지만 디아스포라적으로 사고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경계인은 언제나 긴장을 하여 사방을 경계하고 주시해야 하기 때문은 아닐까?
선생의 소식을 듣고 그의 책을 한 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책꽂이를 뒤져 마침 이 책을 발견하였다. 읽기로 조문을 대신하고 싶었다. 저자가 32세에 유럽의 미술관을 유랑하며 쓴 에세이다. 선생은 어느 글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고 하였다. 이 책은 나를 기분 좋게도 하지 않고 유쾌하게도 하지 않지만 책은 즐거움을 위해서만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때론 나에게 고통이나 아픔을 주기도 한다. 고통스런 삶도 피할 수 없고, 피하려고 늘 양지로만 도망칠 수 없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선생은 진지하고 무겁고 성실한 작가이다. /그것들과 마음속에서 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내 속에 있던 불분명한 ‘응어리’가 조금씩 표현의 형상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그림은 단순히 테크닉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림은 표현 형상이고, 그 그림속에서 인간과 사회, 죽음과 고통의 표현 형식을 발견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마침내 그 자신만의 표현을 갖고 형상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고통과 죽음에서 건져낸 열매가 아닐가 싶다. 읽기만 할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글로 표현하고 있으면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유로 뭐든 늘 쓰지 않을 수 없다.
에필로그에 소개된 서경식 선생의 이산의 역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충청남도 출신인 조부는 1928년 아직 대여섯살이던 나의 아버지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오셨다. 36년간의 일본의 의한 식민지 지배시대, 많은 조선인들이 살길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일본으로 흘러왔는데 나의 조부도 그중의 하나였다. 1945년의 일본 패전으로 조선이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자 조부 또한 고국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동생과 누이는 귀국했는데, 아버지는 일본에서 생활비를 벌어서 보내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잠시 일본에 머무른다. 1950년 조선전쟁으로 아버지는 귀국의 기회를 놓치고, 조부는 두 번 다시 일본을 방문하지 못한 채 고향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1951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나에게는 세 사람의 형과 한 사람의 누이가 있다. 둘째형과 셋째형은 고국 유학생으로서 60년대 말 귀국을 하였는데, 1971년 군사독재정권의 감옥 속에 갇혀버렸다.(박정희 정권의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 무려 10년 가까이 면회와 차임을 위해 감옥을 들락거리신 어머니는 1980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또한 3년 후에 떠나셨다. 양친 모두 옥중의 형들이 다시 자유의 몸이 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1988년 5월 17년간의 옥중 생활을 마친 셋째형이 출옥하였고, 1990년 2월 말 둘째형도 19년간의 옥중 생활을 끝내고 출옥했다.
일본식민지, 한국전쟁, 재일조선인, 군사독재, ‘민주화’ 등 서경식 선생 세대의 삶이란 이렇듯 역사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 인간과 역사, 민족과 개인, 고향과 유망, 죽음과 고통 등은 선생 사유의 주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주제들을 떠나서 삶을 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앞에서 또 한 세대가 지났다고 했다. 이제 이런 주제는 낡았다고 다들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낡았을까? 이곳을 떠나서 인간들의 삶이 유지되는가? 하지만 또 낡기도 했다. 새시대에 맞게 다른 삶의 양식이 생겼다. 서경식 선생의 질문과 문제의식은 나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우리가 인간과 역사, 국가와 개인, 고향과 유망, 죽음과 고통에 대한 사유없이 내 개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역사가 천대받는 시대지만, 역사는 인간 삶의 무대이자 장이다. 역사와 관계를 잃어버린 개인이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지나간 20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첫댓글 /선생을 통해 ‘디아스포라’라도 알게 되었고, 재일동포 문제라던가. 역사와 인간, 민족과 개인, 고향과 유망, 고통과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많은 영향을 받으셨나 보군요.
도서<옥중 19년 >과 연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