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동 사람들(3) -향이 엄마-
강성희(리디아)
향이네는 내가 연산동 작은 네거리 이층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이미 아래층 뒷방에 먼저 입주해서 몇 년 째 살고 있었다. 이삿짐 트럭이 대문 앞에 이삿짐을 불려 놓자 향이 엄마는 묻지도 않고 냄비며 솥이며 부엌 살림 이삿짐을 이층으로 옮겨 주었다. 이삿짐을 대강 정리하고 친정 엄마가 새벽에 방앗간에서 맞추어 오신 팥시루 떡을 이웃에 돌리고 인사를 하며 아래층에 사는 이웃, 향이 엄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안동이 친정이라는 젊은 댁은 나이는 나보다 고작 세 살이 많지만 여섯 살, 네 살인 남매를 두었고 또 배가 조금 불러 있는 임산부의 모습이었다. 유아원에 다니는 첫딸 향이, 그 남동생, 그리고 셋째를 품은 향이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나보다는 훨씬 어른인 듯 하여 깎듯한 존대를 했다. 향이 엄마는 처음 보는 나에게 새댁이는 몇이니껴? 하고 나이를 묻기도 하고, 나이는 어데로 묵고 아직 아것노(아이 같나)? 하는 불편한 질문을 해서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었다. 내 나이를 알고 난 향이네는 말을 들었다 놓았다 편한 대로 이야기를 했다. 나도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편하게 말을 들든 놓든 상관하지 않았다. 세 살 차이면 친구네 친구, 라며 마음대로 우리의 관계를 정하기도 했다. 향이네는 우리가 친구라고 말했지만 아이가 둘이나 되는 향이 엄마를 부르는 호칭을 결정할 때는 잠깐 고민이 있긴 했다. 아래층 주인댁이 부르는 대로 향이네로 부를까 하다가 향이네라는 말이 선뜻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나는 그냥 향이 엄마로 불렀다.
향이 엄마는 1층의 빨랫줄이 부족하다며 자주 2층에 있는 빨랫줄에 빨래를 널기 위해서 올라왔다. 세탁기가 흔하지 않았고, 짤순이라는 빨래 탈수기를 사용하는 집은 가끔 있었지만 향이네의 짤순이는 향이 엄마의 야무진 손끝인 것 같았다. 향이네에게 허락된 소유 공간이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였던 향이네는 빨래도 타일이 깔린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대야에 수돗물을 받아 빨래를 했다. 어른들 말씀에 ‘말이 많은 사람은 일손도 재바르다’는 말을 나는 향이 엄마를 보면서 확인했다. 아이들이 벗어내는 빨래가 그렇게 많은지도 향이 엄마의 빨래 바구니를 보고 알았다. 향이 엄마는 크고 작은 온 식구의 양말을 부엌 바닥에 한꺼번에 주욱 널어놓고 비누칠을 했다. 빨래 솔이 힘차게 쓱싹쓱싹 몇 번 비누칠한 양말을 지나가고 수돗물 호스가 투입되어 또 몇 번의 솔질이 지나가면 양말은 산뜻한 제 본 모습을 드러내었다. 향이 엄마가 빨래를 할 때는 손만 빨래를 하는 것이 아니고 손과 몸과 입이 함께 빨래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곁에서 지켜보는 동안도 계속 입으로는 빠르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며, 솔질의 동작을 따라 엉덩이도 들썩들썩 올랐다 내렸다 리듬을 탔다. 그 몸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숙련된 장인의 솜씨 같기도 하고 마치 행위 예술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끝난 빨래는 늘 우리집 2층 빨랫대에 널렸다. 빨래를 팍팍 소리가 나도록 세게 털고서 빨래 집게로 집어 놓고 손바닥을 탁탁 치며 개운한 듯 빨래를 바라보던 향이 엄마가 행복해보였다.
향이 엄마를 보고 있으면 아픈 데가 사라지는 듯 했다. 향이 엄마는 침이 샘솟는 침샘처럼 에너지가 샘솟는 에너지샘을 신체 어느 부위에 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에너지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이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도 타다다닥, 걸음도 내가 한 발자국 뗄 때 두 발자국을 뗄 만큼 재발랐다. 오죽하면 내가 향이 엄마는 2층에 살지 않길 잘했어요. 그 발자국 소리 때문에 쫓겨 날거야. 하고 말하면 손뼉을 치면서 맞제 맞제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같이 웃었다. 이층에 올라왔다가 내가 집에 있는 눈치라도 보이면 빨래를 널고는 그냥 내려가는 법이 없었다. 붙임성이 있어 몇 년은 알고 지낸 절친한 이웃처럼 우리 거실 마루에 걸터앉아서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내려갔다. 집안을 한 번 휘잉 둘러보고는 둘이 살림에 뭔 살림살이가 이리 많으니껴, 새댁이도 얼릉 수태를 해야지러, 밥을 묵으마 밥값은 해야잖니껴 하며 할머니같은 이야기도 곧잘 했다. 여자의 밥값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향이 엄마가 나보다 스무살이나 서른살은 더 많은 듯 느껴졌지만 살림살이 요령이나 요리 솜씨에서는 그렇기도 하다고 인정했다. 안동 사투리가 재미있어 내가 따라하면 사십 중년은 된 듯 유쾌하고 큰 목소리로 웃으며 그래서 안동사람들을 ‘안동 껑꺼이’라고 하잖니껴 하며 또 웃었다.
초저녁 어스름에 빨래를 걷으러 올라왔던 향이네가 여느 날처럼 마루에 걸터앉으며 주인집 아저씨 직업이 뭔지 아니껴 하고 목소리를 죽이며 물었다. 글쎄요, 연세도 좀 있으신 거 같던데 아직도 직장에 나가시나요? 하며 대답을 하니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이층 새댁이는 알 수가 없제, 그러이 비밀 땐스홀이지러 하고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내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자 너만 알고 있으라는 듯 은밀한 목소리로 귓가로 다가와 한 가지 비사祕事를 알려 주었다. 밤 늦은 시간에 일층에서 흘러나오던 지루박 리듬의 사연도, 밤늦은 시간까지 흔히 아래층 주인댁이 마당에서 서성이거나 대문 밖 한길을 산책하던 사연도, 쓸쓸해보이던 그 표정의 이유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래층 주인집의 그 넓은 거실이 그렇게 반짝거리며 미끄럽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향이 엄마의 말로는 주인집 거실은 물걸레 청소를 하지 않고 기름걸레로 광을 낸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름걸레를 대주는 아저씨가 다녀가는 걸 보았다. 기름 걸레질이 된 마루는 미끈미끈해서 춤추지 않고 그냥 걷기만 해도 저절로 미끄러지더라. 자신은 주인이 없을 때 그 마루에서 걷다가 미끌어질 뻔 했다고 했다. 아랫층 주인집 아저씨는 직업이 춤선생이다. 키는 작달막하고 인물도 볼품은 없었지만 춤 솜씨 하나만은 일품이다. 부산 까지는 몰라도 서면, 동래에서는 춤추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주인집 아저씨의 손을 한번 잡고 리듬을 밟고 싶어 하는 여자가 줄을 선다. 전에는 낮에만 제자들을 받는 것더마는 요새는 밤에도 여자들이 배우로 오는 것 같더라.” 이 모두가 향이 엄마가가 들려준 주인집 아저씨와 관련된 정보였다. 그러면서 낯선 여자들이 집에 들락거리는 거 본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 쪽으로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한 번도 기억나는 장면은 없었지만 주인댁의 쓸쓸한 표정. 목적없어 보이는 밤의 산책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인집 거실과 방이 붙어 있는 향이엄마는 그 음악 소리 때문에 ‘엉성시랍다.’며 손사래를 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큰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녁마다 남편의 춤 사업을 내조하기 위해 밤길을 서성이는 주인댁의 사연이 측은해 내 마음마저 쓸쓸해지는 듯 했다,
향이 엄마는 내가 입덧이 심할 때는 고향 음식이라며 안동 식혜를 만들어다 주기도 하고 생멸치 철이 되면 멸치젓을 담고 남긴 굵은 멸치를 골라 멸치우거지 된장조림을 큰 냄비 가득 끓여서 주인댁과 우리집에 나누어 주기도 했다. 신혼집들이를 한다고 음식 재료만 사다 놓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부엌에서 밀어내고 후닥닥 몇 가지 요리를 준비해 주며 선배 주부의 면모를 발휘하기도 했다. 부엌 한 칸, 방 한 칸의 그 작은 집을 쓸고 닦고 쓸고 닦아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살림을 야무지게 하는 향이 엄마는 삼년 쯤 나와 이웃이었다. 내가 연산동을 떠나기 한 달 전에 두 칸 짜리 방으로 방을 키워 이사를 나간 향이 엄마는 쓸고 닦을 일이 많아져 더 행복해 보였다. 향이 엄마 손에서는 늘 찬물 냄새가 났다. 쌩하고 일어서고 후닥닥 걸어가는 날랜 발걸음에서 바람이 일었다. 그 물냄새, 바람 냄새 속에서는 박하처럼 시원하고 경쾌함이 느껴졌다. 향이 엄마를 보면 살림을 잘하는 여자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살림의 초보였던 시절, 이것이 살림이다 하고 본보기를 보여준, 이웃살이가 이런 것이다 라며 이웃 살이의 진수를 보여준 향이 엄마. 세월이 사십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찬물냄새와 함께 내 기억에서 환하게 나타나 생각만으로도 경쾌함을 느끼게 해주는 향이 엄마는 아직 박하꽃 향기 같은 찬물냄새와 바람냄새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고 있을까? 같은 담장 안에서 세 해를 같이 살며 나의 살림 허당의 증인이었던 향이 엄마가 그립다. 누가 그 여인을 모르시나요? 광고라도 내며 찾으면 찾을 수는 있으려나? (끝) 2019.11.07.
첫댓글 찬물 냄새와 바람냄새를 향기로 승화 시키는 향이 엄마와 신혼 살림살이를 하면서 함께한 이웃 들과 보내신 재미있고 정겨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나 겪는 일상생활을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풀어낸 선생님의 필력에 놀라울 뿐입니다. 고향의 안동식혜가 그렇게 맛있다며 입맛을 다시던 이웃이 생각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난세월 이웃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네요. 삶의 발자치가 이야기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장서로 엮어 내시면 좋겠네요.
항이 엄마, 방하나 있던 집에서 방두개 있는 집으로 이사간 향이 엄마, 살림을 잘하던 안동 사람. 문우님의 글을 읽고보니 향이 엄마는 지금쯤 어디에선가 잘 살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집을 가서 낯선곳에 정착하여 생활하며 그 곳의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어 한결 적응이 빨랐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한 곳입니다. 그 분들을 다시 만나서 회포를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빨래면 빨래, 음식이면 음식, 재미난 말솜씨까지... 신혼초 같은 집에 사셨던 향이 엄마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리디아님의 살림솜씨도 그때 다듬어지신 듯 합니다. 사람냄새 나는 그 여인의 삶이 지금도 행복하길 빌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셋방에 처음 살림할 때 방 한칸으로 시작해서 아이들이 태어나면 방 두칸으로 이사한 옜날이 생각 납니다. 향이엄마를 통해서 서민의 삶을 보는것 같습니다. 연산동 사람들로 선생님은 상품을 받겠습니다. 제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