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권 발급 조건
가로 8.7센티미터에 세로 12.4센티미터의 짙은 녹색 수첩. 대한민국 국적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는 여권입니다. 하지만 1981년 8월 여권법시행규칙을 개정하기 전까지는 관용 또는 상용 목적의 여권만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권을 지극히 소수만이 가질 수 있던 시대에는 여권을 보여주면 외상술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관광여권이 발행된 것은 1983년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관광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이 있었습니다. 우선 나이가 50세 이상이어야 했고, 200만 원의 예치금을 1년 동안 은행에 예치해야 했습니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300원.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자면 약 3,000만 원 정도를 1년 동안 은행에 예치할 수 있어야만 여권을 받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외여행을 제한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지속해서 실시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땀 흘려 열심히 달러를 벌었습니다.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집중한 것은 바로 수출이었죠. 그러니 해외여행으로 달러가 유출되는 것은 당시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으므로 되도록 해외여행을 막아야 했던 것입니다.
한편 당시 여권을 신청한 사람들은 일부 면제자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소양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국자유총연맹과 한국관광공사교육원에서 반공교육을 받고 수료증을 제출해야 비로소 여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미국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소 의아할 수도 있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1970년대에는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가 있었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크나큰 위기였지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역군들은 직접 오일쇼크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중동으로 가서 돈을 벌어 온 것입니다. 이때 벌어들인 돈을 ‘오일머니’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은 1989년입니다. 한반도, 대한민국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마음껏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1989년 1월 1일은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가장 인기가 좋았던 여행 상품은 30명 정도의 대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도는, 여행사 직원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는 여행이었다고 합니다.
불과 20년, 30년 전의 일인데, 배낭여행이 일반화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상하게 보입니다. 작은 여권 하나가 바뀌면서 여행문화도 이처럼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여행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EBS. 지식탐험 링크. 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