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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호에 대하여
이 홍사
“글씨가 아주 좋습니다. 부드러우면서 힘을 지니고 있고.”
글씨를 볼 줄 아는 작자인 모양이다.
돌에 글씨를 새기던 석공이, 홍랑이 나타나서 관심을 가지고 보자 돌 주인이시냐고 묻고는, 그렇다는 듯이 웃어주자 글씨에 대해서 거론했다.
“그래요? 국전 특선 작가분의 글씨입니다.”
글씨를 새기는 이는 정달공이 아니었다. 정달공이 특별히 글씨를 전문으로 새기는 석공을 불렀다고 했는데, 가서 보니 나이가 홍랑과 엇비슷한 석공이었다. 모자를 쓰고 방진 마스크에 보호안경까지 끼어서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나이가 얼추 비슷하겠다.
지 박사는 오늘 돌 공장에 오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깎던 부처와 협시보살은 작업장 작업대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미술치료에 상담이 길어지면 오지 않고 틈틈이 깎는다고 했으니 이 시간까지 오지 않았으면 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오전에 작업을 하다가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달공이 오늘 돌에 글씨를 새긴다고, 자신은 벌초를 갔다가 오후에 공장에 있을 것이니 오후에 들리라고 해서 오니 글씨의 모양은 벌써 형태를 다 잡아놓고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 돌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 홍랑은 참견할 게 없었다.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돌을 빼앗길 일은 없다. 그 점에 마음이 놓였다.
가장 잘생긴 돌을 빼앗기다니 말이 안 된다.
돌 공장 마당 한쪽에서는 벌초를 마친 무리가 한참 삼겹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정달공이 장인어른 산소에 벌초했다면서 처가의 식구들과 벌초를 끝내고 삼겹살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장인어른 산소에 왜 사위가 나서?
의구심이 일었지만. 장인 산소가 바로 지척에 있기에 처남들이 다 정달공의 공장으로 모인다고 했다.
돌판에 고기를 굽는 연기가 공장 한쪽에서 피어올랐다. 정달공은 와서 한 점 맛이라도 보라고 청했지만 홍랑은 점심을 먹고 난 다음이었고 온 식구들이 둘러앉은 자리에 끼이고 싶지 않았다. 정달공의 젊은 처남들과 처남댁들, 아기까지 있는 자리라 좀 불편할 것 같았다.
*
홍랑문헌
軒文郞紅
한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한다. 요즘은 한글과 같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어느 쪽에서 써야 마땅한지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게 불과 사흘 전이었다.
정달공의 공장에 가져다 놓은 돌이 얼마나 참한지 보러 갔는데 지 박사가 있었고 택호 이야기가 나왔다. 홍랑은 정달공에게 돌을 판다면 얼마나 받을 수가 있을지, 은근히 궁금했다. 정달공은 항상 공사를 하다가 자연석이 나오면 모으라고 했는데 얼마나 좋은 돌인지 품평을 들어보려고 들른 것인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홍랑문헌이라.
지 박사는 멀리 내다보고 현대판으로 쓰자고 했고 정달공은 오른쪽에서부터 쓰는 게 낫다고 우겼다. 홍랑도 어느 게 나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참을 이야기해도 어느 쪽으로 써야 할지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홍랑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숙부님이 써주시는 대로 하자고 했다. 그게 택호를 만드는 승낙이 되는 말인 줄 미처 몰랐다.
그 말을 하고 홍랑은 앉은 자리에서 숙부님께 전화했다.
숙부님 서실은 언제든지 열려있다. 매일 글씨를 쓰신다. 먼저 전화를 드리고 가야지 연습을 하고 쓰실 것이다. 불쑥 찾아가서 어떻게 써달라고 하면 한참 연습하시고 필체와 손을 부드럽게 만들어 쓰시기에 기다려야 한다는 걸 홍랑은 알고 있었다.
지 박사와 정달공이 보는 앞에서 전화를 바로 드린 것은 저 돌은 내 돌이라고 찜을 하는 행위나 진배없었다.
숙부님은 바로 전화를 받으셨다. 홍랑은 인사를 마치자 약주를 하셨느냐고 물었다. 점심을 먹으며 반주로 한잔하셨다고 했다.
그 정도면 가능하다. 부탁을 드려도 되겠다 싶었다.
홍랑문헌이라고 한문으로 가로, 세로, 한글로 가로, 세로로 넉 장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숙부님은 헌 자가 무슨 헌 자를 쓰냐고 물으셨다. 택호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할 것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집 헌 자라고 했다. 지금 바로 서실로 가겠노라고 했다. 대구까지 가는 동안 써놓을 것이다. 그 전화의 내용을 지 박사와 정달공은 다 들었다.
확실히 홍랑의 돌로 굳는 순간이었다.
숙부님은 서예가로서 국전에 특선 작가이시다. 얼마전까지 국전 서예 부문 심사위원을 하실 정도로 알아주는 서예가다. 그건 지 박사나 정달공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택호를 하나 만든다는 건 정달공의 석공예 공장에서 그날 불시에 결론을 내린 일이다. 홍랑은 언제나 그렇지만 마음을 먹으면 바쁘다. 쇠뿔을 단김에 빼는 스타일이다. 뒷생각은 하지 않는 게 단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번번이 그런다. 타고난 천성은 어찌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내 가서 글씨를 받아서 올게.”
갑론을박하다가 홍랑이 먼저 일어섰다.
지 박사는 홍랑과 호형호제하는 후배인데 조형학 박사이고 정달공은 지 박사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돌 공장을 운영하며 틈틈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정달공은 이름이 아니다. 돌에 관해서라면 정을 달인처럼 다루는 공인이라는 뜻으로 정 사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홍랑은 정달공이라 부르고 있다.
두어 달 전에는 정달공이 윤달이라 남의 산소 작업이 밀려 있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산소 작업을 했는데 이제 좀 한가해진 모양이다. 그 바쁜 틈에 홍랑도 정달공을 졸라서 자신이 죽어서 갈 산소를 마음에 들게 확실히 만들었다. 윤달이고 환갑이라는 나이를 빌미로 그렇게 만든 것인데, 벌써? 라고 대드는 아내를 설득하느라 죽은 누구, 누구를 비교하며 아야! 하고 드러누우면 말짤 도루묵이 되는 일이라고, 도리어 역정을 내며 입을 좀 팔아서 아내의 입을 막았다.
그렇게 해놓은 것도 순전히 정달공을 알게 되었고 돌 공장을 들락거렸기 때문에 마음이 동했다. 산소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니 경비는 좀 들었지만, 마음은 푸근했다. 지금부터 사는 건 덤이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아무튼, 그건 지난 일이고 정달공의 공장은 도개면 소재지 끄트머리에 있다. 정달공의 석공예 공장에서 대구 숙부님 서실까지 가려면 한 시간 남짓 걸릴 것이다.
택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지 박사 때문이었다.
“형님! 남 주기 아까운데 이참에 집에 돌을 하나 놓죠? 택호를 새겨서. 형님 마당 입구에 놓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형님이 죽으면 산소 앞으로 옮겨놓으라고 하고.”
“택호?”
“책을 그만큼 낸 작가라면 택호는 하나 있어야죠. 형님 마당에 잘 어울린 돌인 것 같은데요.”
돌이 생겼다.
하나가 아니라 대형 트럭에 한 차가 생긴 것인데 유독 하나가 너무 맘에 들었다.
자연석인데 너무 참했다. 가로로 세워서 글씨를 새기면 너무나 좋을 돌이었다. 정달공의 말로는 일부러 사려면 기백만 원은 줘야 한다고 할 정도로 참했다. 석질과 형태, 크기와 색상 어디도 나무랄 데가 없는 자연석이었다. 돌을 보는 안목이 없어서 홍랑은 그 정도로 비싼 돌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지 박사의 말을 듣고 언뜻 떠올린 말이, 홍랑문헌이었다.
홍랑문헌!
새겨놓아 그리 나쁘지 않은 돌이었다. 아파트에 산다면 언감생심이지만 홍랑의 집은 상가주택이다. 마당이 넓다. 옛날에 마당에 석유 판매소를 설치해서 홍랑이 운영하는 중장비는 직접 기름을 넣던, 자가 주유소를 했었던 마당이다. 석유 판매소는 십 년이 넘으면 토양오염도 검사도 매년 받아야 하고 주유기 미터 검사와 석유 품질검사는 불시에 수시로 받아야 한다. 그게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건설경기가 시들해지자 경기에 맞추어 중장비도 거의 반으로 줄였다.
한참 건설경기가 좋을 때는 석유 판매소에서 직접 넣으니 보이지 않는 수입이 짭짤했는데 일감이 줄어 보유 대수를 줄이니 석유 판매소는 배보다 배꼽이 컸고 또 상가주택 앞 골목에 음식점이 많이 들어와서 좁은 길에 마구잡이 주차를 하는 바람에 몸집이 큰 중장비가 들어올 적마다 신경이 쓰이는 터라 과감하게 멸실 신고를 하고 마당에 묻힌 대형 기름탱크 두 개를 철거했다.
멸실 신고를 하고 철거를 하니 일 년마다 받던 위험물 관리자 교육을 받지 않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것도 아르바이트 삼아서 해외 사업을 한다고 외국을 들락거리는 홍랑에겐 보통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석유 판매소를 철거하고 나니 휑하니 큰 마당은 동네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저녁이면 앞 골목에 술을 마시러 온 손님들이 마당까지 들어와 차를 주차한다. 어떤 취객은 술을 마시고 남의 차나 택시를 이용했는지, 다음날 종일토록 세워 두었다가 저녁에 빼서 가기도 한다.
아들 녀석은 그런 일이 생기면 난리를 부리지만 아내와 홍랑은 이제 무덤덤하다.
지 박사는 홍랑의 집 마당 구조를 잘 안다.
집 구조를 잘 아는 조형학 박사가 그런 제안을 했으니 마당 입구에 택호를 새긴 돌을 놓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홍랑도 그렇게 새긴 돌이 화단 귀퉁이에 놓인 마당을 상상으로 그려보니 그림이 괜찮아 보였다.
거듭하는 이야기지만, 마음을 먹으면 바쁜 게 홍랑이다.
그래서 대구 숙부님께 바로 전화를 하고 바로 출발했다.
대구의 숙부님 서실로 내려가니 숙부님께선 묵향이 가득한 서실에서 글씨를 쓰고 계셨다. 다른 노인 두 분도 글씨 연습을 하고 계셨다. 한 분은 전직 경찰서장으로 은퇴하신 분인데 안면이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보니 숙부님은 윗도리를 다 벗어 던지고 그야말로 혼신, 몸과 마음을 다해 글씨를 쓰고 계시던 중이었다.
그런 노구에 알몸의 숙부님을 보는 순간 얼굴이 후끈거렸다.
홍랑 자신은 저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글을 쓴 적이 있는가?
그런데 택호를 받으러 와?
홍랑은 자신에게 되묻는데 얼굴이 후끈거리고 자신이 부끄러웠다.
숙부님은 벌써 여러 장의 글씨를 써놓고 계셨다. 그중에서 홍랑이 부탁한 대로 한글과 한문 가로 세로의 글씨를 골라주셨다. 그 때마침 위층의 숙모님께서 무엇이 담긴 주전자를 들고 내려오셨다.
“아이고, 소설가 선생님께서 오셨네.”
숙모님께서 먼저 인사를 하셨다. 작은 집도 상가주택이다. 아래층은 세를 놓으시고 삼층은 서실, 사층은 주택으로 이용하고 계신다.
숙모님께 인사를 하고 계좌번호를 물었다.
글씨는 절대로 그냥 받아오면 안 된다. 그렇게 받아오면 홍랑의 글씨가 되는 게 아니다. 분명히 사야 한다. 몇 푼을 주더라도 사야지만 홍랑의 글씨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주 난처한 경우를 당했다.
글씨 값 때문이었다. 글씨 값은 정해진 게 아니다. 누가 촌에 한옥을 짓고 당호를 쓸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후배의 소개였다. 홍랑도 그 양반을 직접 알지는 못하는 사이고 한 다리를 건너 아는 위인인데 어느 학교에 행정실장을 하다가 정년 퇴임을 하고 고향에 한옥을 지은 모양이었다. 당호는 잊어버렸지만, 예서체와 궁서체로 두 장을 부탁했었다. 후배의 말을 듣고 그걸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숙부님의 글씨를 받아다 주었다. 그런데 그 양반이 글씨 값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집을 다 짓고 숙부님의 글씨는 현판에 새겨 당호를 걸고 이사를 들어가고도 말이 없었다. 알면서 그러는지 모르면서 그러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그걸 소개한 후배도 입장이 매우 난처해하는 눈치였다. 홍랑은 일 년쯤 지나서 얼마를 봉투에 넣어 그 양반에게 받은 글씨 값이라며 숙부님께 드렸다.
봉투를 받은 숙부님께선 글씨를 마음에 든다고 하더냐고 물으셨지만 홍랑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양반이 한옥을 짓는데 당호 하나를 홍랑이 부조한 셈이었다. 아니다 부조가 아니라 적선한 셈이다. 알지도 못하는 양반인데 절도 모르고 시주를 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숙부님이시지만 글을 받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주전자를 들고 내려온 숙모님께선 왜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고 계좌번호를 알려주셨다. 남의 글을 부탁받고 심부름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홍랑은 불러주는 계좌로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얼마를 송금 시켰다. 올라가겠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숙부님은 또 그 말씀을 하셨다.
글을 열심히 써서 나중에 문학관을 지으면 작은아버지의 서실에 있는 모든 책과 지필묵을 문학관에 넣어서 시로 기증하면 된다는 말씀이다.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닌데 그 말씀을 또 하셨다.
써 주신 택호를 걸어놓고 열심히 쓰겠다고 했지만.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홍랑은 심리적으로 숙제처럼 여겨진다.
정말 제대로 써야지. 책은 몇 권을 냈다지만 변변한 문학상 하나 못 받은 주제에 문학관이라니?
언감생심인 줄 알면서 숙부님의 말씀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숙부님께선 조카인 홍랑이 아주 젊은 줄을 아신다. 홍랑도 옛날이면 붓을 놓을 나이다. 그러나 홍랑은 몸은 늙어도 글을 쓰는 마음, 소설에 임하는 자세는 절대로 늙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쓰며 상상력의 칼날을 날마다 연마하고 있다.
숙부님께서는 한문으로 홍랑문헌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셨다. 정달공의 말이 맞은 셈이다.
대구에서 올라오면서 전화를 하니 지 박사는 집으로 돌아가고 돌 공장에 들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숙부님께 받은 글씨가 상당히 커 보였다. 아무래도 그 돌에 들어가기는 무리이지 싶었다. 정달공에게 전화로 그 말을 했더니 내일 와서 돌에 재어보고 크면, 축소 복사를 할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홍랑은 돌 공장으로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와서 글씨를 펼쳐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가로로 쓴 한문이 제격이라는 판단을 하고 그걸로 새기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아침을 먹자마자 글씨를 넣은 봉투를 들고 정달공의 공장을 찾았다.
글씨가 돌에 맞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지 박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지 박사가 돌 공장에서 하던 일은 부처님을 깎는 일이었다. 지 박사는 구미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에 촌집을 사 두고 있었다. 암자로 만들어 법당에 놓을 석불과 삼존불을 깎던 중이었다. 지 박사는 대학에 강의를 나가다가 보따리 장사를 집어치우고 지금은 정서가 불안한 아이들의 미술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그 틈에 나와서 짬짬이 부처를 만들던 중이었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진로가 설핏 보이는 법인데 지 박사는 부처를 만들어 법당을 차릴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최소한 홍랑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동양철학과 미술치료를 바탕으로 조형학을 전공한 인물인데 불교에 심취해 있었고 아는 만큼 과묵한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부처를 제 손으로 깎는 일은 한마디로 확실히 제가 갈 길을 찾은 것, 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신도는 우리 마누라 하나면 됩니다.”
언젠가 지 박사가 한 말이다.
법당을 차려놓고 거기서 아이들 미술치료나 하면서 조용히 기도나 하겠다는 말이다.
숙부님께 받은 글씨를 펴놓고 정달공과 한참 상의를 하는 중에 지 박사가 도착했다. 글씨는 가로로 쓴 한문을 쓰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미처 숙부님께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다. 돌에 글씨를 새긴다고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단순하게 표구를 해서 걸어놓는다거나 나무 현판을 만들 것이라고 짐작하셨는지 획에 멋을 부리고 글씨에 여백이 많았다. 돌에 음각할 것이라고 했으면 끝이 뾰족하지 않은 붓으로 눌러 써서 주셨을 것을, 표구를 할 것이라고 어림잡았는지 휘날려 쓴 것이다. 이 여백을 살리느냐 못 살리느냐 정달공과 얘기하고 있을 때 지 박사가 들어섰다.
지 박사는 석질을 알고 있고 돌에 글씨를 많이 새겨본 위인이다.
나무에 새기는 것과는 달리 여백을 살리지 못한다고 했다. 지 박사는 색연필을 찾더니 글씨를 펴놓고 글씨를 그대로 본을 떠서 그려나갔다. 끝의 획은 살리고 중간에 있는 여백은 정달공과 상의해서 없애고 색칠을 했다.
정달공과 지 박사가 글씨에 관해서 얘기하는 중에 과연 문헌이라는 택호를 쓸 자격이 있는가 홍랑은 고민했다. 책 몇 권 냈다고 너무 호들갑을 뜨는 것이 아닌가.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그 점을 자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님! 이참에 시비詩碑도 하나 만들죠?”
“시비?”
“참한 돌도 많은데, 형님 집 현관에 표구해둔 시를 돌에 새겨서 마당에 하나 놓죠. 잘 어울린 것 같은데? 홍랑문헌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죠.”
“내가? 어떻게? 그 정도 되는 시인이라야지.”
홍랑의 현관에는 표구한 시를 걸어두었다.
서정시가 아니라 의미심장한 다짐이나 결의 같은 것을 둥글고 붉은 해에 상징화시켜 걸어둔 것이다. 물론 홍랑이 쓴 시다.
지 박사는 그걸 확실히 본 모양이다.
“그건 인터넷에서 글씨체를 찾아서 기계로 조각을 하기에 간단합니다. 마당에 세워 두었다가 형님 돌아가시면 산소 앞으로 옮겨놓으라고 하면 되지요. 문인의 산소라면 시비 하나쯤은 있어야죠.”
“그렇게 하면 남들 손가락도 겁이 나지만 너무 거창해지는 것 아니야?”
홍랑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거기서 정달공이 거들고 나섰다.
“요즘 글을 좀 쓴다는 문인들은 시비를 많이 세웁니다.”
그러면서 정달공은 컴퓨터를 켜고 제가 직접 시공한 산소에 시비를 보여주었다.
많은 시인이 자신의 산소 앞에 시비를 세워 두었다. 물론 홍랑이 아는 시인들도 있었고 홍랑과 절친하게 지내는 한 시인은 사모님 산소 앞에 이미 자신의 시비를 세워 두고 있었다. 절친하게 지낸다고 하지만 홍랑은 몰랐던 사실인데 정달공이 사진을 클릭해서 보여주며 얘기를 해서 알았다.
“마당에 돌을 그렇게 들여가면 우리 마누라 깜짝 놀라는 거 아니야?”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닙니다. 돌이 있을 적에 하십시오. 죽어서 아들 녀석이 해줄 것 같습니까?”
지 박사가 또 거들었다.
“일단 이것부터 먼저 하고 생각해보지.”
홍랑의 목소리는 자신이 없었다.
한지에 쓴 글을 색연필로 테두리를 그려서 돌에 붙여 보니 글씨는 축소 복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글씨 크기가 돌의 크기와 어지간히 조화를 이루는 정도였다.
“이 정도면 되었고 정 사장은 시비에 쓸 돌이나 골라봐.”
지 박사가 정달공에게 한 말이었다.
돌은 대형 덤프트럭으로 한 차를 부려 놓았다.
모두가 홍랑의 돌이다.
골라서 쓰면 된다.
돌이 어디서 생겼는가?
홍랑이 다니는 절에 지난달 많은 비로 산이 조금 내려앉았다. 산사태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절로 올라가는 길옆에 있는 도랑이 묻히는 정도였다. 주지 스님께선 그게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스님은 중장비 임대업자인 홍랑을 부른다. 그 절에 삼십 년 이상을 다니니 홍랑은 신도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었다. 신도회장에 중장비 업자이니 당연히 홍랑을 찾게 마련이고 홍랑의 일이다.
도랑을 복구해야 하는데 절로 올라가는 길에는 인근 공장의 차들이 매일 주차하는 바람에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일요일 차가 없는 틈에 홍랑이 직접 굴착기를 끌고 갔다. 기사들은 다 작업을 나가고 없고. 공사비를 받을 일도 아니라 홍랑이 직접 굴착기로 잠시 하면 된다는 생각에 도랑을 치러 간 것인데 도랑에 박힌 돌 때문에 도랑을 깊게 칠 수가 없었다. 홍랑은 굴착기로 돌을 빼내서 한곳에 모으며 도랑을 쳤다. 한곳에 모은 돌을 보니 자연석이라 제법 쓸만했다. 골사를 하다가 자연석이 나오면 가져오라는 정달공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잘하면 생각지도 않은 공사비가 돌에서 나오겠군.”
굴착기 운전석에 앉은 홍랑은 그렇게 뱉었다.
도랑을 치며 홍랑은 그날 쉬고 있는 대형 덤프트럭을 불렀다. 그 덤프트럭도 홍랑의 소유다. 돌을 모으고 도랑은 다 치고 나니 바로 덤프트럭이 도착했다. 일요일이라 절 입구는 주차된 차량이 없었다. 그 자연석 중에서 모가 난 돌은 앞 축대 쪽으로 골라 놓고 둥글고 평평한 자연석만 골라서 실었다.
“이거 완전히 도랑치고, 가재를 잡는 격인데?”
한 차를 싣고 정달공 공장의 위치를 덤프트럭 기사에게 알려주고 그곳에 가서 주인이 있든, 없든 마당의 야적장에 부리라고 했다.
지 박사가 그곳에서 작업을 한다는 말을 듣고 구경이나 하고 커피나 마시며 돌에 관해 팔 수 있느냐, 판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고 궁금해서 갔었는데 택호 이야기가 나온 건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지 박사의 부처와 협시보살은 거의 완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부처를 깎는 행위는 노후 대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작업에는 홍랑이 입을 댈 부분이 없다. 그저 구경이다.
“저런 돌을 사려면 엄청납니다. 돌이 있을 때 하나 하십시오.”
형태가 잡힌 부처를 그라인더로 연마하면서 지 박사가 한 말이었다. 말수가 적은 그가 그렇게 권할 때는 깊게 생각을 해야 한다.
“주인은 항상 따로 있습니다. 남에게 주고 나면 후회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무진정사라고 새기고 싶은데요.”
무진정사는 지 박사가 촌집을 사고 만들 암자의 이름이다. 결국은 제가 갖고 싶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홍랑문헌이라는 이름을 순식간에 떠올리고 바로 숙부님께 글씨를 써 달라고 전화하고 글씨를 받아온 것이다.
*
일단 저질러놓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릴 생각이었는데 오늘 와서 늙은 석공이 글을 새기는 것을 보니 너무나 많은 손과 정성이 들어가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정말 마당의 화단 앞에 택호를 세워야 하나?
늙은 석공이 파는 글씨를 보며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벌초를 마치고 야외에서 벌이는 삼겹살 파티가 어지간히 끝났는지 정달공이 와서 석공이 새겨놓은 글씨를 보았다. 어느 부분을 더 손질하고 어느 부분을 조금 더 깊게 파고, 새기던 글씨에 관해서 석공과 얘기했지만 홍랑은 거들 부분이 없었다. 한참을 글씨에 관해서 얘기하던 정달공은 홍랑을 돌아다보고 물었다.
“시비로 쓸 돌은 어느 게 좋을까요?”
소주를 한잔했는지 정달공의 얼굴은 불콰했다.
홍랑은 시비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달공의 말을 듣고 보니 이미 지 박사와 시비를 한다는 얘기가 된 모양이다.
“누가 시비를 한다고 했어?”
홍랑이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 박사와 얘기가 되지 않았어요?”
“아직 저 돌도 집에 놓을지 말지 결정을 하지 못했어. 알량한 주제에 남들이 보면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고.”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셔요? 책을 몇 권이나 냈는데? 시비를 세우고 뒷면에 낸 책의 제목과 어디로 등단을 했는지 약력을 새기면 딱이죠.”
“뒷면에 약력까지 넣어? 아직, 현재진행형인데?”
“책을 더 낸다거나, 유명한 상을 받으면 뒤에 더 새기면 됩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고.”
점입가경, 갈수록 재미가 깊어지고 갈수록 태산이었다.
아직 택호에 대해서 아내에게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정말 택호를 새겨서 놓을 정도의 위인이나 되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택호를 새길 주제가 되는가?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가?
홍랑은 스스로 자문하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아직 완벽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난데없이 시비라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그 홍랑의 속내를 모르고 정달공은 시를 먼저 보아야 그 시에 맞는 돌을 정할 수가 있다고 하며 내일은 시를 프린터로 출력해서 가져오시든지 메일로 보내면 자신이 출력하겠노라고 했다. 일방적이었다.
“아니, 지 박사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야?”
“나머지 돌값으로 시비를 하나 새겨주는 걸로 얘기를 했는데요.”
불콰한 얼굴의 정달공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
“내가 시에 대해서 뭘 아나? 시비라니?”
“집 현관에 좋은 시가 걸려있다면서요?”
어이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도통 모르겠다. 홍랑은 돌값을 안 줘도 좋으니 시비는 없던 이야기로 하자고 손을 내저었다.
정달공은 택호를 새긴 돌을 화단 앞에 놓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홍랑은 뭔가에 자꾸 말려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홍랑이 돌아올 채비를 하자 정달공은 글씨는 거의 다 새겼으니 글씨를 무슨 색으로 칠을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글쎄, 무슨 색깔이 좋을까?”
“검정 글씨는 튀지 않고 푸른색이나 초록색은 눈에 잘 띕니다. 어느 게 좋겠어요?”
“그걸 내가 아나?”
정달공의 말로는 청색으로 요즘은 많이 쓰는데 너무 튄다고 했다. 문인의 택호라면 좀 젊잖게 검은색으로 하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오늘 글씨 색칠까지 하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내일이면 택호가 마당 입구에 거창하게 놓일 거라고 했다.
내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홍랑은 가능하다면 튀지 않고 무난한 색깔로 칠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고 차가 있는 곳으로 휘적휘적 걸었다.
운전석에 올라앉으니 거기까지 따라온 정달공이 내일 오전에 택호가 새겨진 돌을 화물차에 싣고 갈 것이니, 돌을 들어서 내릴 굴착기를 준비하고, 또 시비에 쓸 시를 준비하라고 했다. 홍랑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차를 돌렸다.
아무래도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여태, 대한 중기라는 택호로 동네에서 불리었다.
중국집에 음식을 시키면 대한 중기라고 하면 찾아온다.
그런데 택호가 새겨진 돌을 놓으면 중국집에 음식을 시키고 택배를 받을 적에 홍랑문헌이라고 해야 하나?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줄까? 무명 소설가의 택호를 불러줄까?
그게 심히 궁금했다. 어쩌면 홍랑문헌이라고 휘갈겨 쓴 글씨를 동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산불 조심이라고 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니 웃음이 쿡 터져 나왔다.
홍랑문헌
택호가 새겨진 돌은 놓고 앉아서 정말 혼신, 몸과 마음을 다해 글을 써볼까? 윗도리를 다 벗어젖히고 붓을 잡은 숙부님처럼 정말 열심히 쓰면 무슨 좋은 일이 생길까? 택호에 걸맞게 소설을 쓰다가 문운이 터져서 무명 소설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 정말 시비까지 세울까? 그러면 이웃 사람들이라도 문인의 집이라고 알아줄까?
홍랑문헌.
이제는 되돌릴 수가 없다.
내일이면 택호가 화단 귀퉁이에 앉는다.
자명한 사실이다.
홍랑은 택호에 대하여, 아내에게 어떻게, 뭐라고 설명을 할까? 머리는 복잡한데 강변도로는 시원하게 뻗어 있었고 차는 잘도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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