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두 알
우리 할아버지
밭에다 씨앗을 심을 때 보면
한 구멍에다 꼭 두 알씩 심지요
한 알만 심지 않고
왜 두 알씩 심어요?
물어보면
두 알씩 심으면
서로서로 잘 자라려고 애쓰느라
둘 다 쑥쑥 자란다지요
두 알씩 심으면
서로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느라
둘 다 무럭무럭 큰다지요
질경이
지난 오월 초순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권정생 선생 사시던 집을 찾아갔더니
마당의 질경이들이 소복소복 모여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읽고 있다가
나를 보자 책장을 덮고 반겨 주었습니다
질경이들은 해마다
제 몸을 불려 권정생 선생이
질경이 국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해 드렸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한 권 한 권
읽고 또 읽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을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올 때
질경이들이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다시 크게 소리 내어 읽는 소리가
남안동 나들목까지 따라왔습니다
중앙고속도로 단양 휴게소에서 쉴 때
거기까지도 따라왔습니다
밤늦게 서울 우리 집에 들어서니
질경이들은 나를 다시 보자마자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강아지똥처럼 살아라 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맨날 강아지똥처럼 살아라 했습니다
오손도손 서로서로
우리 아버지 시골에 와서
처음으로 밭 갈고 고랑과 이랑을 만들 때
이웃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기는 심을 게 없다고
고구마 심으면
멧돼지가 먹고
수수 심으면
참새가 먹고
땅콩 심으면
너구리가 파헤치고
콩이나 상추 심으면
고라니가 먹고
우리 아버지 그 말 듣고
멧돼지와 참새와 너구리와 고라니와
오손도손 나눠 먹으면 되지
서로서로 나눠 먹으면 되지
우리 산마을로 가요
우리 산마을로 가요
밤이면 누구나
손을 뻗기만 해도
별을 만져 볼 수 있대요
우리 산마을로 가요
밤이면 누구나
뒤꿈치만 살짝 들어도
별이 들려주는 귓속말을 들을 수 있대요
별을 만져 보고 싶지 않나요?
별이 들려주는 귓속말을 듣고 싶지 않나요?
우리 산마을로 가요
우리 산마을로 가요
작은 호수
내 안에 언제부터인가
작은 호수가 하나 있습니다
가끔 구름이 지나가다가 작은 호수에 비친
제 얼굴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갑니다
더러는 새들이 작은 호수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저희들끼리 깔깔대기도 합니다
밤이면 별들도 찾아와 작은 호수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나직나직 말을 겁니다
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주
내 안의 작은 호수에다 나를 비추어 봅니다
내 안에 언제부터인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작은 호수가 하나 있습니다
첫댓글 배려심 가득 퍼뜨리는 고운 심성.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