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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주일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살지 않는 교회]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4:17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기독교신앙은 변화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은 교회가, 그리고 각 성도들이 우선 마음의 변화를 통해서 시작하고, 또 이와 함께 행실의 변화, 삶을 사는 사고방식의 변화로 이어간다.
[구원은 옛삶을 버리는 근본적 변화가 따른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교회 안에는 그런 변화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가르쳐도, 변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거기서 멈추고 만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기독교 신앙은 옛삶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이 다 뒤로 물러가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후에도 이전의 삶을 계속 이어간다면, 예수 믿기전의 삶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영적으로 죽은 영혼을 살려놓았다면, 이제 다시는 옛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옛삶으로 다시 살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상태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자기를 죽음과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었던 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면 안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많은 사람들이 옛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생각컨대,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 것 같다.
자기 마음에 원하는 것으로 너그럽게 결정하고 싶은 것 같다.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된다.
우리는 예수 믿는 그날부터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이므로, 바꾸어야 한다.
바꾸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원래 선점되어있던 지식과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정도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육신적이다. 이미 자기가 익숙한 것은 몸이 편하다.
설령 더 좋은 것이 있을지라도, 그냥 지금이 좋다고 원래 하던대로 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그래서, 옛날의 습성을 계속 이어간다.
만약 이전에 선점되었던 이해, 사고의 근거가 그대로 남아있다면,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성질이 맞지 않는다.
미리 다른 것이 들어와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앞으로 계속 못받을 수도 있다.
자기가 갖고 있던 것 때문에,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시려고 하는 것을 내가 판단하고, 거절한다.
거듭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은 그야말로 생명을 주시는 것 일 뿐 아니라, 오늘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력이다.
오직 한 음성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는데, 한번 루틴이 잘못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
신자들은 다 구원한다고 하셨는데, 정말 마음이 신자가 아니라면 문제다.
신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단지 오해일 수 있다.
그 오해가 자기를 고스란히 멸망으로 인도한다.
여전히 과거에 있던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면, 복음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 반응하지 않은 것 일 수 있다.
복음은 우리가 받고, 생명을 택할지 말지, 하나님이 말씀의 형태로 냬어주신 것이다.
그런데, 변하지 않으면, 복음에 반응하지 않은 것이고, 하나님이 떠난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가 생각하기를 선행, 사랑, 친절이 중요하지 않고, 더 상위권의 영적 지식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당장 사람을 살려서, 보호하고 있다가 하늘로 올리려는 복음의 너그럽고, 친절한 제공을 거절하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이 있지 않다.
우리와 하나님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만나주셨다.
오직 예수님의 권한으로 주신 그 길만 구원이 있다.
다른 길은 절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니까, 좁은 길이다.
복음은 어떤 것일까.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심플하다. 아주 기본적이고, 간단하다.
너무 간단 명료해서, 버무려서 다르게 만들 수 없다.
그런데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에, 자꾸 좌로, 우로 간다.
그래서,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 것이다.
이 길은 그냥 어린 양같은 자가 맞는 길이다.
능력있는 자, 지혜있는 자, 지위가 있는 사람은 어렵다.
양은 너무 무능하고 미련하다.
스스로를 챙기지도 못하고 단순하다.
복음은 그런 자를 위한 것이다.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 그냥 돌봐주시는대로 자기를 맡겨야 살 수 있다.
복음은 대단히 간단하다.
자기가 익숙하다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영원히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복음의 핵심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밀어넣는 것과 하고 있지만 잘 안된다는 것과는 너무 큰 차이다.
하루에 열번 무너져도,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다.
수십년 신앙생활해도 하나님 없이 살 수도 있다.
자기가 교만해서, 주님과 자신이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 그러니, 구원의 맛을 보지 못한다.
나는 절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나도 하나의 양이다. 엄청 미련하고, 무능하다.
다만 이렇게 심플하니까, 우리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말씀을 전하는데, 내 능력과 지혜로는 어떤 사람도 감동시킬 수 없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나는 하나님이 역사하는 곳으로 그 놀라운 섭리에 순종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고 여기 있는 것이다.
오늘 나를 살려주는 생명이 있어야 한다.
복음의 길에만 생명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의사의 치료를 게속 받는 사람과 같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질병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고친다.
새 사람이 되었지만, 계속 회복시키는 모습.
그는 의사다. 그를 따라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길은 내가 새롭게 개척하는 길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포기하고 주신 길이다.
거기까지 갈 때 얼마나 험한 길이었을까.
[새 피조물, 새 본성]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고난의 길이라면, 너무 감사할 것이다.
설령 거기에 구원이 없더라도, 감사할 뿐이다.
내가 그 길을 개척하려고 하면, 그 험한 길을 어떻게 개척하겠는가. 복음은 심플하다. 주님이 가신 길을 의지하면 된다.
사실 구원부터 시작이고, 거기서부터는 자기가 자기를 살리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믿고, 새롭게 태어났다.
진실한 우리의 고백이 이루어졌을 때, 성령이 우리를 다시 거듭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본성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실제로 하늘에 가는 것보다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오늘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약속이 확인되는 내용들이다.
변화가 생겼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남은 이미 존재했던 것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남은 완전히 새로운 인격이 되는 것이다. 다만 몸은 남아있어서 혼란이 있는 것 뿐이다.
우리에게는 새 마음, 새 소망이 있다.
이런 나를 축하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축하해주어야 할 것이다.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옛사람은 이미 죽었다. 지금은 새생명으로 사는것이다.
고후1:17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새피조물이라는 것은 엄청 영광스럽고, 기쁜 말씀이다.
성경이 이렇게 확인해주었다.
완전히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다.
기존의 사람이 무언가를 받았다는 개념이 있었다면, 오늘 깨버리기 바란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미 있는 것에서 무엇을 더 받았다고 생각했다.
향상이 아니다.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향상은 옛사람이 여전히 있어서,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한다.
내 본성에 하나님의 성격이 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옛성질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하늘에 맞는 새인격이다.
죄는 육체속에만 있다고 설명한다.
요3:19-21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완전히 새로운 나는 거듭남을 통해서 된다.
옛날에는 하나님에 관한 것은 싫어했다. 그래서,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다.
롬1:29-32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우리에게 이런 요소들이 다 있다. 최근 경험을 통해, 여기 거의 다 해당되는 사람도 보았다.
우리의 원래 모습이 이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진짜 모습은 변화된 모습이다. 그 모습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한다.
약간 훈련이 안되었어도, 정말 내 속에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욕망이 있다. 동시에 죄를 미워한다.
또, 죄를 범한 것에 대해서 마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하루 빨리 몸에서 벗어나기 원하고 있다.
[새 삶으로 부르심]
엡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기서 부르심은 우리에게 생명을 넣어서, 새 본성을 넣으신 것을 말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부르심은 다르게 표현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의 방법은 이전과 달라진다.
엡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우리는 완전히 새 존재다.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리고, 세상에 없는 능력으로 살고 있다.
그리스도 교회만 갖고 있는 능함이 있고, 연합이 있다.
이 세상에서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연합과 사랑이 있다.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만 있는 사랑이 있다.
우리의 새본성은 이렇게 살아야 마땅하다고 요구한다.
이제는 이방인처럼 행하지 말라.
지금까지는 연합에 대해서 말했고, 오늘부터는 행실에 대해서 말한다.
[이방인처럼 행하지 말라]
옛사람의 특징 첫번째는 이방인처럼 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방인은 과거 유대인이 쓰던 말인데, 유대인이 아닌 모든 사람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이방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이다.
[에베소 교회에게 이방인이란?]
에베소 교회 사람들의 머리에 이방인은 누구일까.
바로 에베소 지역의 사람들을 말한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에서 유명한 도시 중 하나다. 엄청 번성된 문화와 상업중심지다.
거기는 특별히 이방종교의 영향력이 대단히 강하고, 그 이방종교가 가져온 성적타락이 심했다.
에베소는 아데미 신전이 유명하다. 이 종교는 특별히 성적타락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종교행위 자체가 절제되고, 선하고, 긍휼하지 않고, 사악하고, 음란한 쪽으로 발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상들이 많았다. 특히 은으로 된 공예품들이 많았다.
또, 거기는 신전 자체가 금융업을 하고 있었고, 한 구역은 범죄자 소굴이 있었다.
범죄자가 거기로 들어가면, 잡으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온갖 범죄자들이 에베소 도시로 모인다. 역사적으로 가장 타락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물이 흐리지 않아서, 오염되고, 썩어 있는 곳이 있다.
그 안은 너무 더럽다. 냄새 나고, 병균이 가득하다.
오수 저수지 가운데, 아주 작게 잔디가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에베소 교회다.
거기 신자들도 이전에 방탕했던 에베소 사람이었다.
거기 살면서, 계속 유혹을 받는다.
바울은 이런 것들을 저항할 수 있도록, 꾸짖었다.
이것은 권고가 아니라, 하지말라 명령이다.
오수의 저수지 속에 아주 작은 푸른 지역, 멸시받고, 핍박받으며 견디기 힘든데, 꾸짖었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황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나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모습을 보면, 편하기 때문에, 타락이 많은 것 같다.
[마음 기능의 오류]
이방인의 마음.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마인드다. 생각하는 기능, 이해력, 지적인 것을 말한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마음은 하트다. 내 양심이 거주하는 가장 중심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적인 기능에 대해서 말한다.
인지는 우리 활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 헬라인은 할 말이 많다. 그들은 이런 부분이 극단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똑똑해서, 그들의 정치, 철학, 문학, 과학, 예술의 모든 면에서 현대 문화의 기초가 되고 있다.
헬라인들은 전쟁에서 지면, 포로로 잡혀가, 그 집에서 교사를 한다.
헬라인들은 모든 것을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들의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이성작용을 하기 위한 기본자료가 잘못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동기, 실행, 매사에 잘못된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결국 죄로 종결된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의 첫째 특성은 바로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이다.
[그 마음의 허망한 것]
이루어 질 줄 알았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바로 허망이다.
이방인의 방식은 허망을 향해 가고 있다.
불신자들의 경향인데, 똑바로 생각할 수 없다. 그 마음이 잘못되었기 떄문이다.
디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깨끗하지 않으니, 꺠끗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오늘 디도서의 이 말씀은 너무 중요하다.
이렇게 악한 사람이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
하나님과 싸우고도, 자기 욕구는 이루려는 모습.
도덕과 신의가 없는 자. 양심이 없는 모습이다.
이방인의 허망한 것은 생각하는 기능으로서 인식능력의 오류를 말한다.
지적 활동을 하지만, 결국 헛된 결과만 가져온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범죄자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다.
활이 비뚤어지면, 아무리 잘 쏴도, 비뚤게 나간다.
범죄자들은 어쩌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이미 습관처럼 되어있다고 한다.
이미 범죄하려고 준비된 자세.
그래서, 삶 자체가 범죄 행위다.
그들의 가정환경이 나빠서 그렇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악한 것을 선택하므로, 그것이 마음의 바탕이 되었다.
범죄자들을 연구하면, 그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그러므로, 결말이 공허하다.
[공허한 결말로 달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우리 옛사람과 같은 경우로, 영적으로 지적 인식이 잘못되어 있다.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 결정하지만, 결국 공허를 향해 달려간다.
신기하게도, 특정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 믿지 않는 자 모두 공허로 가고 있다.
전2: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저자는 이 세상의 복락을 다 누린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도 헛되다고 한다.
전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인생의 선배들이 미리 말해주었다. 망하는 것 말고도 거기 가도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헛된 것을 따라간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반대다.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하나님과 왜 맞지 않을까.
마음에 치명적인 결점 때문에, 헛된 곳으로 달려간다.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한 결과,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세상사람들이 가는 길은 허망하다.
최소한 그 결말은 헛되고, 실제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헛된 것을 위해, 바쁘게 다닌다.
거기에 마음이 끌린다.
신앙은 이렇게 하면 안된다. 본질이 다르다.
[생각의 변화로 시작하는 새삶]
죄로 가지 않기 위해 예수 믿을 때, 변화되어야 한다.
내 모든 인식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예수 믿는 것은 체험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가만히 있는데, 몸이 떨리면서,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하고,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회개가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죄를 버리고, 의를 따르는 것.
주님이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의를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를 죽였던 죄를 버리는 것이 의다.
엡2:1,5,6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는 죄로 죽었는데, 살려주셨다. 이제부터는 부르심에 합당히 행하라.
엡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2:2,10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게 살 때,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행복에 우리가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리는 망상이나 헛된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주님의 행복으로 가는 것이다.
주님만 갖고 있는 그 행복으로 가는 것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나를 포함시키셨다면, 그는 나를 가장 뜨거운 사랑으로 행복하게 하려는 대상으로 삼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세상에 주지 말고, 옛사람에게 주지 말고, 주님께 드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기 바란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구원하고, 복음으로 잘 지켰다가, 오직 예수에게만 발견할 수 있는 인도로 하늘에 올리시려 하신다.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신앙생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