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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우리를 도우시는 그리스도(히브리서 2:14~18)
2025년 1월 26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브리서 2:14~18)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우리의 오감가지고는 느낄 수 없는, 발견할 수 없는 정말 고도의 상황 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주님은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라, 내가 설령 그의 음성을 육신의 음성처럼 들을 수 없고, 내가 그를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느끼듯이 그렇게 느낄 수 없을지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함께 계시는 주님이고, 우리를 매일 도우시는 분입니다.
때로 주님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닥쳐오는 위기 가운데 우리를 돕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래서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도 우리가 주님께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큰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일들만 돕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하는 더러운 영들의 공격도 막아주십니다. 이는 긴 안목에서 참으로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이끄시려는, 모든 지옥의 권세와 권능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시겠다는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를 그가 책임지고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당장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가 우리를 돕고 역사하시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위해 현장에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돕기 위해 현장에서 지휘하시고, 우리를 그의 치밀한 계획으로 마지막 날까지 인도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모르고 있다면, 하나님을 굉장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고, 성경을 잘못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쉬지 않고 우리를 도우시되, 영육간에 도우십니다. 육으로는 이 땅에 있을 때 우리의 문제를 도우시고, 또 영의 문제로는 훨씬 심각한 것인데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다만, 비율적으로 육의 문제보다는 영의 문제를 훨씬 더 강조가 되는데,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달려오는 문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적으로만 봐도 하나님 없이 하루를 견디기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습니까? 방문을 박차고 나갈 때,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일들을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오늘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나를 지켜줄 것이다!’ 하며 그가 우리를 예상치 못한 사고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외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주께서 지켜주신다! 주님이 앞서 가시고, 나는 주님의 밟으신 그 발자국을 따라 나간다!’ 그렇지 않고는 그날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오늘 주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확신이 없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설령 강단에서 이러한 것들을 항상 강조하고, 나타내지 않더라도 이것은 너무나 기본입니다. 우리 삶이 혹 조금 기울어져도, 삶에 혹시 어려움이 생겨도, 무슨 일이 있던지 주님은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끝내는 성공시켜 주시고, 끝내는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약하고, 원수의 생각에 말리고, 원수가 뿌려놓는 덫에 마음이 혹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데서 불확실합니다.
우리 각각의 삶은 하나님의 작업장입니다. 다만, 그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도가 100% 훌륭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못할 수 있고, 죄를 범할 수도 있지만, 주님만을 의지하고 있는 그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끝까지 그의 인생을 돌보십니다. 그것이 주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입니다.
이 땅에는 우리만, 또 주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리시는 영이 많고 또 원수가 부리는 더러운 영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계시록에도 어마어마하게 묘사하고 있고, 에베소서에도 이미 지금 그들이 우리는 덮어 싸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 식으로 살려 한다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비록 영감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진실하시고 충실하신 하나님께 맡긴다면 그가 나를 인도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진짜 허무합니다. 원수들에게 다 둘러싸인 이곳에 내게는 마음 둘 곳이 없고, 생각을 둘 곳이 없고, 어디 의지할 곳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가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을 의지하고, 그 결과를 기대하면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어마어마한 죄인 출신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살려주시고, 나를 이렇게 떨어지지 않게 세워주셨으니, 이제 나는 승리의 길로 가서 승리의 공이 그에게 돌아갈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할 것을, 더 위대할 것을, 신앙이 좋을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어디를 봐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불안한 것들을 그가 강하게 하여 주시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가 내 눈이 되어서 인도해 주시고, 나는 자신 없지만 그가 친히 나의 자신감으로써 내 길을 성공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참으로 주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주님께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 주가 “내 뜻대로 살아라.” 한 것처럼, 참으로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사랑을 받기에 가당치 않은 자가 아닌, 어느 정도는 주께 합당하게 여겨지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는 이 원수의 땅에서 우리를 보호하셔서 주의 영원한 나라로 데려가시기 위해 우리에게 보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가는, 아버지 집에 가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조건’이라고는 말씀하진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내 계명을 순종하라. 내 말을 순종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도, 아버지도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널 지키고 너와 함께 갈 것이다.’ 했습니다. 그가 세상 신들과 다른 것은 그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임마누엘’입니다. 그의 특징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하시는 것으로 끝냅니다. 그는 버리거나, 알아서 하게 하거나, 복을 떼어주고 ‘여기서부터는 너가 알아서 하라’ 하지 않으시고, 끝내 안고서 들어가는 것이 바로 그분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있습니다. ‘내 말에 순종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 길의 모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기를 내려놓고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세상 일에서도 성공하면 좋겠지만, 주의 일을 섬기다 보면 세상적으로는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기도 하고, 돈도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지옥에서 구해졌다면, 그런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동안 하나님, 끝까지 내 마음이 행복하고, 내 삶에 굶주림이 없게 해 주세요.’ 하빈다. 그래서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하나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순종하여 살 것이다.’ 그래야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데 ‘주님께 순종하라’는 그 말씀들이 다 원수의 계략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우리에게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어려움들 있습니다. 병이 갑자기 닥치고, 모퉁이 돌아가는데 오토바이가 공중에 날아와서 나한테 부딪칠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삶이라는 것은 앞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단지 자기 몸이 이 땅에서 보호받는 것이 최고가 아닙니다. 아무리 병을 고침 받았어도, 그 영이 사단의 일꾼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영혼을 그의 보호하고 계십니다. 원래 생명이 없는 자가 예수님의 심정으로, 예수님의 호흡을 갖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호흡하고, 심장은 예수님의 심장으로 뛰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빚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육신은 세상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그러나 싸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자기 영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원수에게서 내 영혼을 보호하자 (원수에게서 내 영혼을 보호하자)
원수에게서 내 영혼을 보호하자 (원수에게서 내 영혼을 보호하자!)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보면, 그가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인간’을 말합니다. 성경에 ‘인간’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다. 어쨌든 주님이 이 땅에서 오셔서 고난받으셨다는 것은 그가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겨야 될 일들에 대해서, 우리 사정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감하실 수 있는, 체휼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주님이 되기에 참으로 합당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처지를 잘 알고 계시고, 원수의 많은 유혹과 핍박과 고난에도 견뎌 내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원수가 이기는 듯하고 세상에서는 인생을 폐하고 사라졌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승자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는 우리 영혼이 잘못되게 하기 위해 역사하는 원수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 육신을 공격하는 원수들의 공격보다, 우리 영혼의 신앙을 빼앗는 것이 굉장히 많고, 그것이 괴로운 것입니다. 예수 믿을 때 시험 들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은 두 가지입니다. 마음에 속상해지는 것. 그런 것도 시험에 드는 것이고, 원수의 유혹이 와서 내게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좀 달라지는 것도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나의 어떤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또 원수의 유혹하는 것도 다 시험, 곧 테스트입니다. 원수는 계속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계속 속이는 것이 원수의 일입니다. 사사건건 속입니다. 이것도 못하게 하고, 저것도 못하게 하고, 나의 모든 삶을 관여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주님으로 나의 삶을,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지켜야 됩니다. 교회에 대해 삐쭉 한번 비판적으로 보면, 비판적인 생각들이 자꾸 들어옵니다. 원수에게 자꾸 강요당하고 세뇌당합니다. 영적으로 갖가지 그렇게 원수가 역사합니다. 교회를 괴롭히는 일도, 결국 원수에게 마음을 열어준 이후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때부터 교회 일이 나쁘게만 보이고, 나쁘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원수가 그 사람 안에 욕심을 불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너도 잘하잖아. 너는 더 할 수 있잖아. 너는 가난하잖아. 너는 돈 없잖아.’ 그러니 ‘너도 나눠 가져.’ 하는 식으로 계속 부추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고난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신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선을 그어야 합니다. 육신의 욕심에 마음을 너무 빼앗기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육체적으로는 다 똑같습니다. 그 바탕이 죄인이라는 것까지도 완전히 똑같습니다. 미국 영화에 나오는 억만장자(billionaire) 같은 사람은 다르나 이들보다 더 화려하고 근사한 삶을 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잠깐 왔다 가는 길에 누구를 차별하고, 누구의 인생을 결론짓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지고서는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아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받고, 매일 매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받아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에 빠지면 되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을 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순종하는 삶, 성령 충만한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원수에게 자꾸 우리를 유혹할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마지막 날에 우리 인생 이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수백 년 후, 수백만 년 후가 아닙니다. 당신이 죽는 그때가 마지막 날인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심판 받기 위해 주님의 백 보좌 앞에 나아갈 것이고, 우리의 모든 행동이 다 계산이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모르는 수준에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 많이 애쓰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건 아니다.’라고 할 때 주님은 ‘괜찮아! 난 너와 함께 있어!’ 하고 우리를 격려하시고 애쓰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삶을 망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내가 주님을 배반하고, 내가 주님의 은혜를 버린 그 행위가 나를 공격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저버린 그것이 나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 교회를 참으로 괴롭게 한 자들이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어느 면에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죄가 자기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엔 자기가 범한 죄가 자기를 향하는 가장 무서운 직접적 형벌이 될 것입니다.
어떤 죄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건 그냥 다 넘어가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죄가 없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죠? 죄의 책임을 주님이 가져가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죄로 인한 그 죄의 형벌을 주님이 가져가신다는 의미지, 죄책이 주께 넘어간 것이지, 내가 행한 일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죄가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로서 어떻게 환산이 되는가? 이런 데 대해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일일이 우리 죄를 고한다는 것은 성경 어디서든지 일치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원수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를 죄악 속에 빠트리려 할 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성락교회 성도는 죽는 날까지,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 주님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잠들 때도 ‘하나님, 나 자도 되죠? 나 지금 믿습니다. 지금 나 자도 되죠? 주님, 지켜주실 거죠?’ 하고 자는 자가 돼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우리 모두는 그렇게 돼야 합니다. 주님으로 보호받고, 이 신앙이 아주 익숙해져야 합니다.
자손이 이미 있는 분도 계시지만, 아직 자손이 없거나 자손을 가질 분들도 있을 텐데, 자손의 일은 내 인생 문제가 아닙니다. 더 복잡합니다. 내 일이라면 ‘에이, 그냥 확 해 버리고 말지!’ 하지만, 자손이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손이 생기면, 또 가정이 생기면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불만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두 배, 세 배 피곤하지만, 그 모든 고난이 하나님께 다 기억될 것이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그것이 또한 행복입니다.
더러운 원수가 제공한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였다가 거둘 수 없을 만큼 빨려 들어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원수는 사람들의 눈을 가립니다. 우리 생각에 세상 사람들이 뭘 모르는 것 같지만, 그렇기 보다는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이 가리워져서 주께 범죄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주의 교회를 공격하고 주의 일을 어렵게 하는 것, 그런 것들은 악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주님을 되 짓밟고,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오르게 하자! 나도 채찍 좀 줘. 나도 좀 때려드려야 되겠다.’ 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는데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 약간 오해를 할 수 있는데, ‘주의 이름이 내게 있다.’ 해서 그 이름자체가 자기를 돕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주님에게서 뚝 떨어져 나와서 나를 돕는다? 마치 내게 주신 어떤 파워가 내가 나를 보호하게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이름을 주신 것도 어떤 힘이 떨어져 나와서가 아니라 인격이신 주님이 우리를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그가 당신의 명예를 걸고 나를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은 주님이 자기 이름의 명예가 걸려 있기 때문에 ‘난 반드시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 힘없는 노인이라도 왕의 명을 가지고 “어명이요!” 할 때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그 노인이 임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뒤에는 왕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왕의 이름으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이름으로’란 것이 이런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라는 말은 예수께서 우리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무지무지한 천사를 보내서 역사하든, 그가 친히 현장에서 성령으로 그 사람을 보호하든, 그가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어디서든지 보호받고, 천국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얼마든지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까? ‘아무도 너희를 해칠 수 없는 것이, 나는 너희 안에, 너희는 내 안에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18~21)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주의 계명에 순종하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잘못할 때마다 제사장에게 가서 회개해야 했습니다. 병이 날 때마다,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계속 제사장이 기도를 해 줘야 했고, 1년에 한번씩 매 해마다 대속죄 일에 속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제사를 잘못하다 죽기도 합니다. 성소 안에서 쓰러져 죽으면 그를 발의 발부터 해서 끌고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주님이 단번에 제사해서 오늘 우리에게서 계속 역사하려고 하는 죄를 완전히 제어하고, 없게 하기 위해서 그가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1].’ 했습니다.
다만, 그래서 주가 우리 죄를 담당하셨는데, 그 끝에 심판은 있다고 했습니다[2]. 은혜를 받은 후에는 우리가 주께 배은망덕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제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데, 이미 은혜 받은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은혜 베풀어 준 자에게 공격하고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지금 백성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참 제사장 되시는 그분은 오늘 인생에서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이 죄의 강물을 건너가는데 절대적으로 우리를 역사하시는 분입니다[3]. 그는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로마서 8장 34절, “누가 정죄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원수에게 당하는 것이 삶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영적으로 죄를 범하도록 계속 원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접근해 옵니다. 자꾸 세뇌시키고, 거짓 것을 집어넣고, 거짓 선동을 합니다. 여기에 걸려든 자는 나중에는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행하게 되는데,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 계속 간구하고 계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그러면 성령은 어떠십니까? 성령은 가만히 계실까요? 우리 삶을 가만히 놔 두실까요? 여러분은 하루 종일 여러분 혼자 계셨습니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6~28)
어느 날 갑자기 돈 벌이가 잘 되고, 사업이 잘 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인생의 흐름입니까? 당장에는 그런 것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하나님이 잘 지켜 주셔서 진짜 하나님 기준의 행복, 천국 시민의 행복,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복한 길로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눈 속임에 속지 마십시오! 눈에 당장 좋게 보이고, 듣기 좋은 이야기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당장 좋은 것들을 보여주는 사탕발림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2~13)
할렐루야! 이건 교과서입니다! 딱 보면 ‘육신을 따르지 말라.’ 하고 말합니다. 육신은 우리에게 협조가 잘 안 됩니다. 육신은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보면,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라고 했습니다(갈 5:19~21)[4]. 육체는 이런 악한 일을 계속 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를 괴롭혔던 사람들, 지금도 계속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저버린 자들입니다. 이미 성령을 경험하고, 하나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 말씀을 다 경험했는데, 하나님 빛을 받은 자들인데, 되돌아간 자들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가라지를 다 거두어서 불에 넣는다고 그랬습니다[5]. ‘훌륭한 일 많이 한 그리스도인은 잘 되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뭐 어떻게 되겠지~’라고 대충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가려서 행한 그대로 전부 다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께 의를 드리고, 의롭게 하나님께 사랑을 드리고, 우리의 성의를 드리고 한 것들, 다 하나님께서 보상하십니다.
되게 중요한 말씀인데, 어릴 때 지나 가다가도 날라오는, 너무너무 많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 할지로다”(시 68:19)
할렐루야! 주님은 우리를 위해 짐을 지십니다. 우리가 내 가정과 내 자녀를 위해 내가 짐을 집니다. 내 존재가 이제부터는 이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거든요? 주님도 지금 우리를 위해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무슨 위엄을 누리시고 계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도 우리를 위해 밤낮없이 기도하십니다. 주님의 그 인격이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 없이 하루도 지나지 말고, 오직 주님으로 보호받으시는 우리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주님을 의지하여 보호하세요. 오늘 나를 육신적으로 보호하고, 오늘 내 영혼도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날마다 나를 도우시는 우리 주님을 오늘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 나를 위해, 또한 모든 것을 선한 것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을, 나를 위해 내 대신 간구하시는 성령의 역사도 내가 정말 믿고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영혼을 잘 인도해 주시고, 주의 말씀과 주의 뜻으로 살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신 이 인생의 길에 온전히 주님이 계획하신 대로 승리의 길에 도달하길 원합니다. 역사해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교회 성도들 다 도와주시고, 우리 주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기대하고 믿으며, 주께 사랑과 충성을 다하는 우리 성도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았던, 정말 의지할 곳이 없고, 될 대로 되라고 살았던 정말 미련한 그런 것이 아닌, 영원한 우리의 주님, 이 땅에 오셔서 우리처럼 이 길을 지나가셨던 주님을 따라 나를 이해하고, 나의 사정을 알고 계시는 우리 주님이 도와주실 것을 확신하는 우리 모든 성도가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실한 주님을 믿으며 은혜를 배반하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정말로 우리 주님의 품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선에서도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힘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신 줄 압니다. 한계 없는 곳에까지 주인 되시고, 지배하시는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4~28)
[2]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4~28)
[3]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 7:22~24)
[4]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5]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것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39~43)
[출처] 20250126 날마다 우리를 도우시는 그리스도(히브리서 2:14~18)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태초에 말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