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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불, 다림줄 환상
아모스 7:1-9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2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5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암 7:1-9 / [메뚜기 재앙 환상] 주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나에게 이같이 보여 주셨다. 두번째 뿌린 씨가 자라 오르기 시작할 때에, 그분께서 엄청나게 많은 메뚜기 떼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것은 왕궁에 세로 바칠 첫번째의 목초를 벤 다음에 나오는 모든 풀을 잘라먹을 놈들이었다. 2) 그들은 정말 땅의 풀을 모두 삼킬 놈들이 되어 있었다. 이때에 내가 간청하였다. `오, 주 하나님, 당신의 백성을 제발 용서해 주소서! 이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지 마소서! 당신이 이스라엘을 치기 시작하시면 무슨 희망이 그들에게 있겠습니까? 야곱은 아직도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닙니까?' 3) 그러자 주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그 일을 중지하셨다. 주께서 나에게 `내가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대답해 주셨다. 4) [가뭄 환상] 그 다음에 주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나에게 이와 같이 보여주셨다.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기 위하여 작열하는 불꽃을 불러오고 계셨다. 그러자 그 불이 모든 물을 지져 말리고 국토 전역을 태워 버렸다. 5) 이때에 내가 간청하였다. `오 주 하나님, 그 일을 제발 중지해 주소서! 주께서 이스라엘을 치기 시작하시면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야곱은 아직도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닙니까?' 6) 그러자 주께서 이 계획도 돌이키시고 내게 이와 같이 대답해 주셨다. `내가 이 일도 하지 않겠다.' 7) [다림줄 환상] 그 다음에 주께서 환상으로 나에게 이와 같이 보여주셨다. 주께서 성벽 위에 다림줄을 들고 서서 성벽이 아직도 반듯한가를 점검하고 계셨다. 8) 그때에 주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아모스야, 네게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하였다. `다림줄입니다!' 그러자 주께서 알려 주셨다. `내가 다림줄로 내 백성을 조사하겠다. 내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벌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다. 9) 우상을 섬기는 제단들이 모두 무너지고 이스라엘의 성전들이 모두 파괴될 것이다. 내가 칼을 들고 일어나서 여로보암의 왕조를 끊어 놓겠다.'
아모스 7장 1절 부터 9장 10절까지 5가지의 환상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3가지 환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 환상(1-3) ‘왕이 풀을 벤 후’ 라는 의미는 처음에 수확한 농작물은 먼저 왕과 군대를 위해서 바쳤고 이후에 백성들을 위한 농작물이 움돋고 자라기 시작한 상황입니다. 그때 주님은 메뚜기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메뚜기가 백성들이 먹을 풀들을 다 먹어버리는 환상을 아모스가 본 것입니다. 그리고 아모스는 하나님께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불의 환상(4-6) 아모스가 본 두 번째 환상은 불로 북 이스라엘을 심판 하실 환상입니다. 메뚜기 환상에서는 메뚜기를 ‘지으시매’라고 말씀하셨고 불 환상에서는 불을 ‘명령하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가지 환상 모두 심판을 준비하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이 바다를 삼키고 땅을 먹으려 한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아모스는 이 두 번째 환상을 본 후 또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은 또 다시 뜻을 돌이키십니다.
다림줄 환상(7-9) 다림줄이란 담을 쌓거나 벽을 세울 때 수직을 살펴보기 위해서 추를 달아 늘어뜨리는 줄을 말합니다. 다림줄로 건물이 건축 기준에 맞게 수직으로 반듯하게 잘 세워졌는지 판단합니다. 이 다림줄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두고 그들의 행위를 판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건축 기준에 합당하게 건축되었는지를 다림줄로 판단하셔서 기준에 합당하지 않을 때 용서하지 않으시고 무너뜨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적 용 :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환상을 본 후 아모스가 취했던 태도를 보면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식을 얻고, 힘을 더하며, 권력을 손에 잡으려고 합니다. 이는 모든 이들 앞에서기를 원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가 되려는 욕망에서 분출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아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모든 뜻과 기준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다림줄은 건물의 수직을 바로잡는데 쓰는 도구입니다.
< 설 교 >
다음세대의 다림줄
아모스 7:7-9
2009년 7월 SBS 뉴스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서 만난 남자와 실제로 사귀는 것으로 착각해서 초등학교 여학생이 가출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 부부가 춤 대결을 펼치는 게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12살 이모 양은 이 사이트에서 접속해서 게임을 하다가 30살 김모 씨를 알게 됐습니다. 이 양은 미성년자는 가입할 수 없는 이 사이트에 어머니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가입한 뒤 점점 가상세계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 양은 게임을 한지 불과 한 달여 만에 김 씨와 사이버 상에서 커플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급기야 '서방' '자기야' 등의 호칭을 쓰며 실제 커플로 착각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같은 점을 노린 김 씨는 이 양이 가출해 서울로 오도록 유인했고, 사흘 동안 찜질방 등을 오가며 성추행을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이 양은 서울의 한 PC방에서 발견됐습니다. 이 양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상과 현실의 혼동이 자칫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뻔 했습니다.
이 기사는 오늘 날 우리 자녀들이 직면해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심각한 사례입니다. 보통 70년대 말에 태어난 세대, 칼라 TV 세대, 컴퓨터를 사용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게임을 즐기는 세대를 N세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N은 Next, New, New Media, Netizen 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문화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깁니다. 비N세대는 밥 잘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가 부르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N세대는 밥보다는 문화를 중시합니다. 이들은 500원짜리 컵 라면을 먹고, 스타벅스에 가서 5-6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행복해 합니다. N세대는 현실보다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가상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N세대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한 집에 살지만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 라고 합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고,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시기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N세대는 심각한 중독에 빠져있습니다. 이 조그만 나라에 사이버 중독자가 벌써 4백4십 만 명이 넘었습니다. 알콜 중독자는 3백 5십만이 넘고, 도박 중독자는 3백 7십만, 섹스 중독자는 2백만이 넘습니다. 이 나라는 가히 중독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이버 상에서 중독에 빠져있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부모세대는 컴맹 수준인데 이들은 컴도사입니다. 컴퓨터라는 가상공간에서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중독은 행위중독과 물질중독으로 나눕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이나 음식 같은 물질중독보다 쇼핑이나 낚시, 컴퓨터 게임 같은 행위중독은 훨씬 끊기 어렵습니다. N세대가 중독에 빠져드는 것은 어른이 중독에 빠지는 것보다 위험합니다. 이들은 주로 포르노나 컴퓨터 게임 등에 빠져있습니다. 이들은 점점 자신의 욕망을 가상공간을 통해 실현하고 있습니다.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역기능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중독에 빠진 N세대의 행동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도피하는 수동형의 모습입니다. 가상세계의 중독에 빠지면 현실세계에서 도피합니다. 혼자 외톨이형의 인간이 되어 사람을 만나기를 싫어합니다.
한국에 이미 50만 명이 넘는 은둔형 외톨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현실과 맞서 싸울 용기가 없습니다. 쉽게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자기연민에 빠집니다. 자존감이 낮습니다. 절망에 빠집니다.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벌써 과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국민여배우라고 불리는 최진실 씨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현실을 도피하는 대표적인 수동형의 모습입니다. 그녀는 부모님의 이혼과 극심한 가난 속에 자랐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인기절정의 배우가 됐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원했고, 매스컴의 떠들썩한 축하 속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상처만 입은 체 처절한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두 아이의 양육과 관련하여 매스컴의 지나친 관심, 정글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안재환의 죽음과 자신의 사채업이 연결되어 있다는 악성 루머들... 결국 전형적인 수동성의 벽돌을 쌓아왔던 그녀는 자살이라는 도피를 택했습니다. 그녀는 교회는 다녔지만 결국 하나님을 직면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이라는 도피를 택했습니다.
중독에 빠진 N세대의 다른 형태는 반항성 또는 공격성의 모습입니다. 수동형의 형태는 자신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에 남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적습니다. 그러나 반항성은 타인이나 공동체에 피해를 입힙니다.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적개심으로 표출합니다.
논현동 고시원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표적이 경우입니다.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시원에 거주하던 정모씨가 라이터로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놀라 뛰쳐나오는 여자들을 무참하게 칼로 찔러 여섯 명이나 죽었습니다. 정모씨가 불을 지른 이유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기를 버린 부모와 적응하기 힘든 세상으로부터 거절감을 느꼈습니다. 최근 들어 휴대폰 요금까지 밀리면서 압박을 느끼자 욱하는 심정으로 고시원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분노와 적개심을 품고 있다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공격적인 형태를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입니다. 이런 모습을 지닌 N세대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될까요? 좀 끔찍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음세대의 주인공들인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을 해야 할까요?
▶ 본문에 등장하는 아모스는 남 왕국 출신으로 BC 8세기 경에 북왕국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드고아 라는 지역의 출신입니다. 그의 직업은 양을 치며 뽕나무를 기르는 농부였습니다. 평범하게 농사를 짓던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BC 789-747년 경)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은 제2의 솔로몬 시대라고 할 만큼 국가적으로 번성하고 평화를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가장 피폐하고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아모스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아모스의 뜻은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는 자”입니다. 그는 당시의 무거운 짐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의 말씀을 힘있게 선포했습니다. 그는 불의로 가득한 시대에 하나님의 공의를 온 몸으로 선포한 정의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5가지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메뚜기, 불, 다림줄, 여름 과일 광주리, 그리고 성전 문지방이 부서는 환상입니다. 이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자 하는 징표들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읽은 본문은 세 번째로 다림줄 환상입니다.
다림줄은 건축에서 벽돌을 쌓을 때 목수가 쓰는 측량기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림줄을 가지시고 쌓아놓은 담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을 측량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쌓은 담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다림줄로 측량하라고 하실까요? 그들의 상태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패역한 상태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8-9절).
여기서 다림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패역한 길로 걸어갈 때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정체성, 그들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다림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벽돌을 쌓아도 하나님의 다림줄이 없으면 어느 순간 우르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은 결국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다림줄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측정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특별히 교육의 다림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지정의를 지닌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시켜 나갑니다. 원래 학교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중세 초기에 프랑크 왕국의 샤를 대제(大帝)는 유럽 각지에 신학원(神學院)을 설립하고 학문육성에 진력합니다. 학교(School)라는 말은 스콜라(schola) 라틴어로부터 시작합니다. 서기 4세기부터 서유럽 기독교의 모든 수도원과 성당에 마련된 부속학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학교교육은 세상의 지식만을 전달하는 교육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육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자녀교육의 현주소를 살펴봅니다. 소위 우리는 강남 8학군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는 대학입학처럼 보입니다. 말로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요즘의 자녀교육은 사육에 가깝습니다.
사육과 양육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짐승은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사육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인격이나 상황을 고려치 않습니다. 오직 인간의 이기심을 위해 맘대로 조작하고, 키우는 것입니다. 소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맞춤교육은 바로 사육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맞춤교육이라기 보다는 맞춤사육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아이를 Test하여 대학 목표를 정합니다. 엄마가 정해준 프로그램에 의해 초중고 거의 10년 동안을 끌려 다닙니다. 아이의 인격이나 태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창의성이나 개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만들어 놓은 계획에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입니다. 노는 시간도 엄마가 정해 놓고 그룹을 만들어 돈을 내고 놉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시간이 없습니다. 놀이터에 가도 함께 놀 친구가 없습니다.
학교교육은 뒷전입니다. 단지 내신과 졸업장을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학교 선생님이 때리면 체벌이라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그러나 학원 선생님이 때리면 정신 좀 차리게 더 때려주라고 한답니다. 학원과 과외를 통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뛰어다닙니다. 최근에는 학원 진도를 따라가지 위한 신종 과외도 생겼답니다.
이제는 국내에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해외 조기유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 해외로 밀려가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유학생들 가운데 한국생이 약 10만 명으로 세계 제일입니다. 한 해 해외 어학연수와 유학에 지출한 비용이 약 7조원입니다. 아이들을 혼자 보내는 것이 염려되어 엄마와 함께 보냅니다. 그래서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과 생이별을 합니다.
최고를 만들려는 치열한 경쟁심을 유발하는 교육, 입시위주의 교육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가장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역경 앞에 너무나 쉽게 자신을 포기하는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책임감이 없고, 의존적인 성인아이의 모습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이것 오늘 우리가 직면해 있는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 신앙교육은 어떻습니까? 입시위주의 치열한 경쟁 구조 속에 있다 보니 교회학교 역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졌습니다. 교회 내의 콘텐츠 부족이라는 면도 있지만 현실 자체가 아이들이 주일 날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주일이면 학원에 가서 밀린 공부를 해야 합니다. 또 각종 인증시험을 봐야합니다. 내신 성적이나 수능성적만으로도 안심이 안되니까 부모들의 강요에 의해 여러 가지 자격시험을 봅니다. 그러다보니 교인자녀들마저도 주일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다림줄을 갖다대면 어떻게 될까요?
공산주의 창시자인 칼 막스를 보십시오. 그는 신학을 공부했지만 공산주의를 만들고, 유물론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물질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겼습니다. 유태인을 6백만 명이나 살해한 히틀러를 보십시오. 자기 어머니가 유태인 우유 배달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히틀러의 마음속에 유태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품었습니다. 그 결과 잘못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결국 부모들이 신앙교육의 본을 보이지 못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결과 엄청난 인류의 재앙을 초래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학입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교육입니다. 먼저 우리 교회식구들이 이 사실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주일을 성수하는 믿음을 심어 주십시오. 아무리 시험이 중요해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인 부모들마저도 세상 교육을 더 중시합니다. 대학교 진학 후에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되지..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일 뿐입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회 진출했을 때 어떤 어려움이 와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설 수 있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로서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어렵고 힘들 때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최고의 신앙교육은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 지금 미국에 사는 유대인은 650만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2.2%입니다. 미국에 사는 아시안은 950만, 히스패닉은 1,700만, 흑인은 3,000만 명에 이릅니다. 그들에 비하면 유대인의 수는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금융을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30%가 유대인이며, 전 세계 학생들이 동경하는 미국 아이비(Ivy)리그 대학교의 총장 및 교수진의 40%가 유대입니다. 미국 대도시에 밀집된 로펌에 종사하는 변호사의 50%이상이 유대인입니다. 미국의 대부호 100명중 22명이 유대인이며 대부분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기업의 CEO중 17.5%가 유대인입니다. 하버드생의 29%, 예일대의 26%가 유대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바로 유대인의 가정교육이라고 합니다. 소위 ‘쉐마’ 신명기 6장 4-9절의 말씀을 철저히 교육시킵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사도신경을 외우듯 쉐마를 외웁니다. 나라를 잃고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 2000년 동안 나라없이 방황하던 디아스포라들이 철저한 신앙교육을 통하여 시오니즘을 이루었고,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들었습니다. 철저한 말씀에 근거한 신앙교육이 미국을 이끌고, 세계를 주도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오늘 교육의 다림줄은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들이 먼저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수레를 뒤에서 밀면 똑바로 끌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당겨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앞장서서 예배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학교 교육의 다림줄은 교사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N세대는 너무나 다루기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신된 교사가 필요합니다. 전에는 교회교육이 학교나 세상교육보다 앞섰습니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문화는 저만큼 앞서가는데 교회교육의 내용이나 환경을 좇아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헌신된 교사입니다. 한 생명을 가슴에 끌어안고 눈물로 기도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지금 저희 교회는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특별히 젊은 교사의 수급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N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내년도 교회학교 교사모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빌 모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 시민 중 25세 미만의 사람들의 사고에 달려있다.” 우리 교회의 장래는 교회학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나라의 장래도 역시 청소년들이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참으로 어둡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좌절하고 한숨 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는 무너지는 학교교육, 가정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은 교회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회복하는 신앙교육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부모들이 바로서야 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자녀들을 사육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자녀로 키운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한풀이 식의 자녀교육은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성껏 삶의 발자국을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세대에게 그대로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할 수 있는 부모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했다면 이 시간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새롭게 결단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자녀교육에 하나님의 다림줄을 대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삐뚤어져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합니다. 부모가 다음세대의 다림줄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들이 다음세대의 다림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다음세대의 올바른 다림줄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지닌 주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