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이 와중에도 간밤에 연애하는 꿈을 꾸다니 벌써 한달 상간에 두 번째입니다.
스스로도 어지간히 황당한데 기분은 그 닥 나쁘지 않았습니다. 중년이 돼서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영화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년에게
결혼은 사랑의 종착역이지만 중년이 되고 보면 결혼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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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열정이 식은 자리는 지루한 일상이 꿰찰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에 대한
의무감은 나날이 무거워집니다. 때로 로맨스를 꿈꾸지만 자칫 불륜으로 불릴까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 경계는 무엇일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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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을 거요“ 캬, 죽여주네요. 킨케이드가 프란체스카에게 고백한 명대사입니다.
남자는 52세의 내셔날 지오그래픽에 속해있는 사진작가입니다.
무덥고 건조했던 그해 8월, 그는 해리라 불리는 낡은 초록색 픽업을 몰고
아이오아주 메디슨 카운티로 떠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픽업 타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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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지붕 덮인 7개의 다리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다리는 로즈먼 다리, 길을 묻기 위해 하얀 집을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여자 프란체스카를 만납니다. 마흔 다섯, 농부의
주부입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때마침 가족들은 금요일까지 집을 비웠고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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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첫 눈에 강한 끌림을 느낍니다. 로즈먼 다리까지 동행한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를 집으로 초청하지요. 아이스티와 맥주, 야채 스튜가 있는 저녁, 짧은
산책 후 다시 커피와 브랜디를 마신 두 사람은 헤어졌고 이튿날 프란체스카는
로즈먼 다리에 한 장의 메모를 남깁니다. ‘흰 나방들이 날개 짓 할 때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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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오늘 밤 일이 끝난 후 들르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두 사람은 삼일
간 깊고도 강렬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시골뜨기가 되어 지루하게 살아온
프란체스카에게 관습에 억매이기를 거부하는 마지막 카우보이 켄케이드는 딴
세계에서 온 마법사일 것 입니다. 더는 주변 사람의 눈도 두렵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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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요일까지 두 사람은 죽어도 상관없을 둘 만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프란체스카는 끝내 킨케이드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헤어진 후 단 한 번도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차례 사진을 담은
편지를 보낸 것이 끝입니다. 이런 시추에이션은 뭘까요? 글쎄요. 연애박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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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이름이 새겨진 메달을 만들어 목에 맵니다.
그대는 내 목숨이란 뜻입니다. 누군가 남자의 첫사랑을 문신에 비유했던데 과연
그렇습니다. 여자는 내셔날 지오그래픽을 구독하여 잡지 속에서 남자를 대면합니다.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여자도 남자 못지않게 그리워하며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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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편이 죽자 여자는 비로소 남자를 찾아 나섭니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 지 14년 만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걸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선택하지 않은 것은 가족에 대한 지독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을 남편과 17세, 16세 두 남매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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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 자고 가족들이 겪을 아픔을 모른 체 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자에게
이혼은 파로스의 승리가 될 수 없고, 상처뿐인 영광으로 볼 수밖에 없질 않은가?
그리고 22년이 지난 67번째 생일 날 여자는 남자를 회상하면서 그와 함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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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식탁에 앉아 브랜디를 마시며 그가 보낸 편지를 꺼내 읽습니다.
물론 그의 손길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그리워하다 먼저
죽었고 여자는 남편이 죽은 후에야 남자를 찾지만 두 사람은 끝내 못 만납니다.
결국, 여자는 가정을 지켰고 남자는 여자가 지키려했던 가정을 존중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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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하는 앤 딩은 시린 심장에 기어이 생채기를 내고야 말았어요.
엄마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엄마의 비밀은 그 남자와의 사랑을 통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와 추억을 선물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까?
아, 아픈 사랑이여! 그래도 사랑하라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2018.3.10.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