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 유종 ( 君子 有終 )
군자에게 마침이 있다는 뜻으로, 군자다운 사람이 자기 뜻을 다 이루고 생애를 마침을 이르는 말이다.
君 : 임금 군(口/4)
子 : 아들 자(子/0)
有 : 있을 유(月/2)
終 : 마칠 종(糹/5)
출전 : 주역(周易) 겸괘(謙卦)
주역(周易) 겸괘(謙卦)에 '군자유종(君子有終)'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다운 사람은 한평생을 살고 나면 이룩한 덕행이 있어 후세에 영원히 남는다.
그 영향이 후세에 지속되어 사람들이 계속 일컫는다. 소인은 만물과 함께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숨이 멎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다시는 일컫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사라져도 그 업적이나 명성은 영원히 남는 것이니, 바르게 착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왜 그럴까?
배우면 배울수록 배울 것이 많아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 되기 때문이다.
퇴계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학자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공부했다.
처음으로 저술다운 저술을 남긴 학자다. 성리학을 집대성했을 뿐만 아니라,
시도 현재 전하는 것만도 2500수 정도다. 구절구절이 다 명언이다.
편지는 남아 있는 것이 3200통으로 주자(朱子)보다 거의 두 배나 많다. 편지마다 학문하는 방법,
처세하는 방법 등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13개의 서원을 창설하거나 창설하는 것을 도와
우리나라가 교육의 나라 학문의 나라가 되게 했다.
스승으로 자처하지 않고 제자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자세로 겸손했다. 배우겠다는 사람은 신분에 상관없이
지극한 정성으로 다 가르쳤다. 제자를 마루에서 내려가 맞이하고 대문 밖까지 전송하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서거 직전 가슴에 담이 결려 눕지도 못 할 때, 베개에 엎드려 제자 정곤수(鄭崑壽)가 보낸 14항의 질문지에
전부 다 답을 해서 보냈다.
돌아가시면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견해를 고쳐 기대승(奇大升)에게 답을 보냈다.
"늘 배운 대로 실천하였고, 남에게 군림하지 않고 배려하면서 살았다."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퇴계를 조선에 내린 것은 하늘의 뜻이다. 중국에 공자(孔子)가 있다면,
조선에는 이자(李子; 퇴계의 극존칭)가 있다"고 자주적인 주장을 했다.
퇴계의 시문을 단 한편도 안 읽어 본 자들이, '주자만 따랐다',
'학문만 했지 실천은 중시하지 않았다'는 근거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서거 450주년을 계기로 성인(聖人)에 가까이 간 퇴계를 다시 새롭게 정확하게 알아,
자신을 바로잡고 세상을 바로잡는 바탕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 군자유종(君子有終)의 교육적 함의(含意)
인간의 삶은 양면성을 지닌다. 즉 인간은 삶과 죽음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生)의 의미를 긍정적인 개념으로, '죽음'이라는 의미를 부정적인 개념으로 바라본다.
'태어남'이 무의지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면, '죽음'은 인간의 의지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의 순간에서 인간의 모습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결국 生에 대한 마지막 귀결점은 死이며, 단순한 死가 아닌 아름다운 死가 되어야 그 삶의 평가도 긍정적이 될 것이다.
조선시대 거유(巨儒) 퇴계의 고종기(考終記)를 토대로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퇴계의 고종기(考終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본다.
1570년 12월3일 병세가 위중하여 선생께서 설사를 하다. 이때 방안에 梅盆이 있었는데 '梅兄에게 불결하여 내 마음이 미안하다' 하시며 옮기라 하셨다. 자제들에게 빌려온 책을 기록하게 하고 잊지 말고 돌려 주라 명하셨다.
4일에는 조카에게 유계(遺戒)를 받아쓰게 하셨다.
1. 국가에서 예장(禮葬)을 하려 하거든 고사하고 예장을 하지 말라
2. 상사에 유밀과(油蜜菓; 약과와 강정류)를 쓰지 말라.
3. 비석을 세우지 말고 조그만 돌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라 쓰고 鄕里와 世系, 志行과 出處 등을 간략히 쓸 것.
4. 장례 절차는 많은 사람에게 물어서, 시속에도 맞고 고례에도 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날 제자들에게 '내가 평소에 잘못된 소견으로 제군들과 더불어 종일 강론하였는데, 이 또한 범연한 일이 아니다' 하였다.
7일 제자 간재 이덕홍이 점을 치니 지산 겸괘(謙卦)의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점사가 나오자 김부륜 등이 곧 얼굴빛이 변하였다.
8일 아침에 매화분에 물을 주라 하셨고 이날 날씨는 맑았다.
오후 5시쯤 갑자기 지붕위로 구름이 몰리고 눈이 한치쯤 내렸다.
잠시 뒤 몸을 일으키자 앉아서 좌서(坐逝) 하였으며, 구름은 흩어지고 눈은 개였다.
사실 퇴계 고종기(考終記)에 대한기록은 아주 간략하다.
하지만 우리는 퇴계의 삶의 마무리와 죽음에 임하는 태도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삶과 죽음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이다. 흔히 '삶의 부정 = 죽음의 긍정', '삶의 긍정 = 죽음의 부정'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모순된 사고이다.
삶의 애착이 死의 추함을 유발하고, 삶의 부정이 무의미한 死를 유발함은 분명 잘못된 사고이다.
生의 회피수단으로 死가 등장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고를 '生의 긍정=死의 긍정',
'生의 부정=死의 추함'으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삶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켜온 사람만이 죽음에 직면하여
아름다운 마무리(善終)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채움과 비움의 적절한 조화(調和)이다. 현대인들은 보다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갈구한다.
타인보다 더 많은 재력과 권력, 인간관계 등을 확보하고자 쟁탈의 현장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다. 生의 출발에서도 빈손이었으니
死로 되돌아감도 빈손이니 이 얼마나 공평하지 아니한가.
물론 사회라는 시공간 속에서 경쟁과 화합은 필연이다.
이 둘 사이에는 적절한 조화가 요청된다. 비관자살의 대부분은 채움과 비움의 부조화의 결과이다.
인간은 천지자연 속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 군자유종(君子有終)
군자는 마침을 둔다. '마친다'는 뜻을 지닌 한자인 종(終)자를 보면 겨울 동(冬)자가 들어있다.
겨울은 한 해를 마치는 계절이기 때문에 의미가 부합한다.
겨울은 기운을 땅 속에 깊숙이 수렴하면서 한 해의 노고를 위로하는 때이기 때문에 위로의 계절이라 하였는데
한 해를 돌아보며 그 동안 한 일을 평가하고 위로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각종 단체나 직장에서 나름대로 종무식(終務式)을 한다.
그런데 겨울은 천간(天干)으로 임계(壬癸)에 해당하는데 임(壬)은 아이를 밴다는 '임(妊)'의 뜻이고,
계(癸)는 헤아린다는 '규(揆)'의 뜻이다. 겨울이 끝이 아니라 다시 새 생명을 잉태하여 품고 있다는 뜻이고
속에 품고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추측하고 헤아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칠 종(終)자에 있는 실 사(糸)자의 역할이다. 실이 사물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듯이
겨울은 감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새해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마친다는
'종(終)'은 그 자체에 '시(始)'를 품고 있다.
새해를 시작하고 마치기를 수십 번 해보아도 깔끔하게 만족스러운 적이 얼마나 있을까!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마침이 있듯이 이 세 가지 단계를 잘할 방법을 주역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마침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충고가 군자유종(君子有終)이다. 마침을 잘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과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해서 겸손하다는 겸괘(謙卦)에 있는 말인데 다 이루어 놓고 자만하는 순간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뜻이다.
=늘푸른청춘카페=
첫댓글 국민계도와 문학적 가치와 시등은 한국민에게
잊혀질수 없는 학문의 문을 열개 만들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업적이 남달라던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