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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류도프가 탄 찻간은 승객으로 반쯤 차 있었다. 그들은 하인, 직공, 노동자, 백정, 유대
인, 점원, 여자 들, 그리고 노동자의 아내들이었으며, 군인이 한 사람, 부인 같은 여자가 두
사람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는 젊었고, 또 한 여자는 드러나 보이는 팔뚝에 팔찌를 낀
중년 부인이었다.
그리고 꽃모양의 모표가 붙은 챙 있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위엄 있는 표
정의 신사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리가 정리되어 안심이 되었다는 듯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바라기씨를 까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 옆 사람과 활기차게 잡담을 하고 있
는 사람도 있었다.
타라스는 네플류도프의 자리를 잡아 두고, 행복스러운 듯이 통로 오른쪽에 앉아서 맞은편
에 앉은 단추가 풀어지고 소매 없는 외투를 입은 체구가 큰 남자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
다. 네플류도프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남자는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정원사였다.
네플류
도프는 타라스에게로 다가가다가 농부 옷차림을 한 젊은 여자하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
소매 없는 무명 외투를 입고 턱수염이 난 풍채가 좋은 노인 옆에서 발을 멈추었다. 젊은 여
자 옆에는 사라판(러시아 농촌에서 주로 입는 긴 여자 옷, 소매는 없고 밸트를 맨다.)을 입
고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달랑
거리며 쉴 새 없이 해바라기씨를 까고 있었다. 그 노인은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더니 혼자 앉
아 있던 번들거리는 좌석에서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친절하게 말했다.
"여기, 앉으시지요."
네플류도프는 고맙다고 말하고, 그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네플류도프가 자리에 앉자마
자, 여자는 중단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남편이 일하고 있는 도시에서 돌아오는 길
이라고 했다.
"사육제 때도 갔었지만, 하느님 덕분으로 이번에도 놀다가 오는 거예요."하고 그녀는 말했
다. "크리스마스 때에 또 갈까 해요."
"그건 좋은 일이야." 노인은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가끔 가보는 것이 좋지.
그렇지 않으면, 도시 생활을 하는 젊은 사내들은 못쓰게 되거든."
"아니에요, 할아버지. 우리 주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안 해요. 순진한 사람이에요. 돈은 한푼도 남기지 않고 꼬박꼬박 보내 줘요. 이애 보는 것을
어찌나 기뻐하는지 그 기뻐하는 모습이란 뭐라 말할 수 없어요." 그녀는 방글방글 웃으면서
말했다.
해바라기씨를 까서는 껍질을 뱉으면서 어머니의 얘기를 듣던 계집아이가, 어머니의 말이
옳다는 듯이 침착하고 영리한 눈으로 노인과 네플류도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똑똑한 사람이군, 그렇다면 더욱 만나러 가야지."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런데 술은 하지
않소?" 통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공장 직공인 듯한 부부를 눈으로 가리키면서 노인이 덧붙
였다.
직공인 듯한 남편은 보드카 병을 입에다 대고 꿀꺽꿀꺽 들이켜고 있었고, 아내는 병을 받
아들고 웃으며 고개를 흔들더니 그녀 또한 술병을 입에다 갖다 대었다. 자기를 바라보는 네
플류도프와 노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직공은 그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왜 그래요, 나리? 우리가 술을 마셔선 안된다는 거요? 우리가 일할 땐 누구 한 사람 거
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술을 마시면 모두들 흘끔흘끔 쳐다본단 말이야. 내가 벌어서 내가 마
시고, 여편네한테도 한턱 쓰고 있는데, 그게 잘못된 거요?"
"아, 옳은 말이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리, 내 여편네는 이래봬도 꽤 착실해요. 그리고 나를 소중히 생각하니까 나도
만족하고 있지요. 그렇지, 마브라?"
"자, 당신이나 더 마셔요. 난 됐어요."하고 그녀는 남편에게 술병을 내주면서 말했다. "또
쓸데없는 소릴 하는군요."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보세요, 이렇답니다."하고 직공은 이어 말했다. "귀여운 여편네죠. 그러나 이따금 기름 떨
어진 바퀴처럼 삐걱삐걱 소리를 내서 야단이죠. 그렇잖아, 마브라?"
마브라는 취한 듯이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또 시작이로군!"
"그렇잖아, 귀여운 여편네지. 하지만 그것도 고비를 잡고 있을 동안만 그렇지, 조금이라도
고삐를 늦추기라도 하는 날에는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습죠... 정말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술에 취하고 보니, 어쩔 수가 없군요." 직공은 이렇게 말하더니, 빙그레 웃고 있는 아내를
무릎을 베개삼아 자려고 드러누웠다.
네플류도프는 잠시 동안 노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노인은 자기의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노인은 난로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며 53년간이나 그 일을 해 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의 숱한 난로를 만들었으므로, 이제는 좀 쉬려고 해보았지만 도무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
이다.
이번에도 모스크바로 가서 자식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이제부터 집안 일을 돌
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
서 타라스가 잡아 둔 자리로 갔다.
"자, 나리, 이리 앉으시지요. 배낭은 이쪽으로 치우겠습니다." 타라스의 맞은편에 앉은 정
원사가 네플류도프의 얼굴을 쳐다보며 상냥하게 말했다.
"좁긴 합니다만, 그런 대로 괜찮습니다."하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타라스가 노래를 부르듯
이 말하고는, 그 힘센 두 팔로 2파운드나 되는 배낭을 솜뭉치를 쳐들듯이 번쩍 들어 창가로
옮겼다. "자리는 넉넉합니다. 저는 있어도 상관 없고, 없다면 의자 밑에라도 들어갈 수 있으
니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불편할 것도 없어요." 선량하고 친절한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면
서 그가 말했다.
타라스는 스스로 자신을 평하길,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말문이 열리지 않으나 술만 마시면
말이 줄줄 나와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건 다 말하게 된다고 했다. 사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의 타라스는 꿀먹은 벙어리였다.
그가 술을 마시는 일이란 좀처럼 없었고
특별한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었지만, 일단 술이 들어가면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그런 때는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로, 특히 그 선량해 보이는 파란 눈에 친절한 빛을 띠고 입가에는 연
방 벙글벙글 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늘어 놓곤 했다.
타라스는 오늘 마침 그런 상태에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왔기 때문에 잠시 그의 얘기는 중
단되었다. 그러나 배낭을 치우고 전과 같이 자리에 앉아, 그는 억센 농부다운 무릎위에 놓고
정원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그는 자기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이 새
로 사귄 친구에게 모조리 털어놓고 있었다. 어째서 아내는 시베리아로 유형되었으며, 왜 자
기가 시베리아로 따라가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이제껏 한번도 이 사건을 상세하게 들은 적이 없었으므로 흥미를 가지고 이
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왔을 때는 이미 독살 미수가 일어나 그것이 페도샤의 소행이라
는 것을 집안에서 모두 알게 되었다는 대목이었다.
"지금 저 자신의 슬픈 신세를 얘기하고 있던 참입니다." 타라스는 친근한 얼굴로 네플류
도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렇듯 자기 일처럼 들어주는 친절한 분을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만 그 이야기를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요?"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그렇게 돼서 모든 것이 탄로가 나버렸지요. 나리한테 한번 얘기해서 잘 아시다시피, 어머
님은 독이 든 밀떡을 가지고 '경찰한테 가겠다.'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버님은 워
낙사리가 밝은 노인이셔서 말입니다. '여봐요, 할멈. 며느리는 아직 어린애라서 무엇을 했
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동정을 해줘야지. 자기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하고 말씀하시는 거
예요.
그러나 어머님은 아버님의 말을 듣지 않고 '그런 계집을 그대로 놔두면 진딧물처럼
집안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말 거야.'하면서 종내 경찰한테로 갔답니다. 곧 경관이 오고.. 증
인을 부르는 소동이 난 거죠."
"그래 당신은 어떻게 됐소?"하고 정원사가 물었다.
"나 말이오? 나는 배가 아파서 뒹굴며 토해 버렸어요. 오장이 막 뒤집히는 것 같아서 말
은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곧 짐마차에 말을 달고, 페도샤를 태워서 지서로
갔다가 예심 판사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말예요, 페도샤는 처음부터 자기 죄를 인
정하고 예심 판사에게 사실대로 고백했답니다. 어디서 비상을 얻었으며, 어떻게 밀떡 속에
섞었다는 걸 말이오. '왜 그런 짓을 했나?'하고 물으니까, '그런 사람은 정나미가 떨어져
요. 그런 사람하고 같이 사느니보다 차라리 시베리아로 가는 게 나아요.' 이건 나를 가리키
는 말이지요." 타라스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요컨대 모든 것을 고백한 셈이죠. 그러니
감옥에 가게 된 건 당연하죠. 아버님이 혼자 투덜거리며 돌아오셨어요. 마침 농사 일이 바빠
지고 집안에 여자라곤 어머님분인데, 그 어머님마저 몸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보석으로 꺼낼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버님이 어느 관리 한 사람을 찾아
갔으나 별수 없었고 딴 사람한테도 부탁하러 갔었으나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만
모두 단념해 버리려던 참에 우연히 어떤 관리 한 사람을 알게 되었죠. 그자는 무척 약삭빠
른 인간이었습니다. 3루블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난 페도샤의 옷가지를 저당잡혀서 그 돈을
마련해 주었습죠. 그는 이런 서류를 써 주더군요." 타라스는 총 쏘는 이야기라도 할 때처럼
손을 벌렸다. "그래서 일은 즉석에서 해결이 났지요. 나도 그 무렵엔 일어나 있었으므로 거
리까지 아내를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무슨 일이오?'하고 묻기에 이러저러한 일로 아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류는 가지고 있소?'하더군요. 난 서류를 내주었더니, 그
는 그것을 보고 나서 '기다리고 있어.'하더군요. 난 거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지요. 정오가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윽고 관리가 나와서 '바르구쇼프가 당신이오?' '네, 접니다.' 그러자
'그럼 데리고 가요.'하더군요. 곧 문이 열리더니 아내가 집을 나갔을 대와 같은 차림으로
끌려나왔어요.
'자, 갑시다.' '당신, 걸어 왔어요?' '아냐, 마차로 왔어.'하는 말을 주고받고
나서, 우리는 여관에 들러 셈을 치른 다음, 말을 마차에 달고 나머지 건초를 죄다 망태에 쑤
셔 넣었습니다. 아내는 수건을 푹 쓰고 그 위에 앉았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아
내도 나도 말이 없었습니다. 집에 가까이 오자 아내가 '어머님은 안녕하세요?'하고 묻기
에 '무사하시지.' '아버님은?' '편안하셔.'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여보, 타라스. 용서
해 주세요. 내가 바보였어요. 난 무엇을 했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나도 말을 줬지요. '그
렇게 걱정할 건 없어. 난 벌써부터 용서하고 있으니까.' 그러고는 더이상 말이 없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곧 어머님 발밑에 엎드려 빌었지요. 어머님은 '하나님이 용서하신
다.'하고 말했지요. 아버님은 무사한 것을 기뻐하시고 '지난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더
훌륭하게 잘 살아야지.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야. 추수도 해야 한
다. 밭을 갈아 비료를 잔뜩 주었더니, 보리도 다행히 손을 댈 수가 없을 만큼 익어서 자리
를 깔아 놓은 듯이 덮여 있단다. 이젠 빨리 거둬들여야 한다. 너도 내일 타라스하고 함께
나가서 거둬들이도록 해라.' 그 때부터 아내는 곧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일
을 잘했답니다. 우리 집엔 그 무렵 3정보 가량의 밭을 빌려 붙였는데, 다행히도 보리도 귀
리도 근래에 보기 드문 풍작이었습죠. 내가 베어 놓으면 아내가 묶고, 때로는 둘이서 베었습
니다. 나도 일에는 능숙합니다. 아내는 더 능숙해서 무슨 일이든지 다 해치웠습니다.
아내는
재빠르고 젊고 또 튼튼했지요. 그래서 너무나 일을 열심히 하므로 오히려 내 편에서 좀 일
찍이 끝내도록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이 붓고 팔이 쑤시고 해서 좀 쉬어야 할 텐
데도 아내는 저녁도 먹지 않고 헛간으로 달려가서 다음날 쓸 단 묶을 새끼를 준비했습니다.
정말 딴사람이 되어 버렸습죠."
"그래, 당신한테도 친절해졌겠군?" 정원사가 물었다.
"말할 것도 없이 한마음으로 결합됐지요. 그토록 화를 내시던 어머님도 '우리 페도샤가
아주 변했구나. 전연 딴사람이 되었어.'하고 말하셨지요. 어느 날 우리 둘이서 마차를 타고
묶은 보릿단을 거두러 간 일이 있었는데 둘이 마부석에 나란히 앉았을 때 내가 물었어요.
'페도샤, 왜 그런 일을 생각 했어?' '왜라뇨? 당신과 같이 살기 싫어서죠.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난 또 물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때?' '지금은 당
신 생각뿐이에요.'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타라스는 말을 멈추고 기쁜듯이 벙글벙글 웃다가
놀란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보리 타작도 끝났기에 내가 삼에 물을 적시러 나갔다 돌아와 보니," 잠시 그는
말을 끊었다. "뜻밖에도 소환장이 와 있지 않겠습니까. 재판을 한다는 거죠. 우리는 왜 재판
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일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야말로 악마의 짓이라고 말할 수밖엔 없었겠군." 정원사가 말했다. "그렇지 않고는 어
떻게 인간이 인간을 죽일 생각을 품을 수 있겠소? 우리 마을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는
데..."하고 정원사가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이 때 기차가 정거하려 했다.
"역인가 보군."하고 그는 말했다. "한잔 마시고 올까."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네플류도프는 정원사를 따라서 찻간에서 나와 비에 젖은 플랫폼 위
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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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네플류도프는 그가 찻간에서 미처 나오기도 전에 작은 방울을 여러 개 단 준마를 서너 필
씩 단 호화로운 마차가 역 구내에 머물고 있음을 보았다. 비에 젖어 거무스름해진 플랫폼에
내려서자, 일등차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값진 날개깃을 단 모자를 쓰고
비옷을 입은 키가 크고 살찐 귀부인과 사이클 운동복을 입은 후리후리하고 다리가 가는 청
년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청년은 값진 목걸이를 한 크고 살찐 개를 데리고 있었다. 그
들 뒤에는 비옷과 우산을 든 하인들과 마부가 마중나와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살찐 귀부
인을 비롯해서 긴 코트 자각을 한 손으로 받들고 있는 마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감과
유복함이 엿보였다.
이 일단의 둘레에는 부유한 사람에게 아첨하는 비굴한 사람들로 담이
이루어졌다. 빨간 모자를 쓴 역장을 비롯하여 헌병, 여름이면 언제나 기차가 도착할 때마다
구경하러 오는 러시아의 옷차림을 하고 구슬 목걸이를 목에 건 야윈 처녀, 전신 기사, 그리
고 남녀 승객들이 모여들었다.
네플류도프는 개를 데리고 있는 청년이 코르차긴의 아들인 중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살
찐 귀부인은 공작 부인의 동생이었으며, 코르차긴 일가는 이 동생의 영지로 이사 온 것이다.
빛나는 금줄이 쳐진 역무원 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여객전무는 문을 열고, 필리프와 흰 에
이프런을 두른 수화물 운반부가 접는 가마에 얼굴이 긴 공작 부인을 태워 운반하는 동안 정
중한 태도로 문을 붙들고 서 있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공작 부인이 사륜
마차를 타고 갈지 포장 마차를 타고 갈지 의논하는 프랑스어의 애화가 들렸다. 파라솔과 상
자를 든 곱슬머리 하녀를 맨 끝으로, 행렬은 역의 출구 쪽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플류도프는 그들과 만나 또 작별 인사를 하기가 싫어서 출입구까지 가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일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공작 부인과 아들, 미시, 의사, 그리고 하녀가 앞장을
서고 늙은 공작은 처제와 함께 뒤에 남았다.
네플류도프는 떨어져 있었으므로 그들이 주고
받는 프랑스 말이 드문드문 들려올 뿐이었다. 그 대화 속에서 공작이 말한 한 구절은, 간혹
있는 일이지만 그 음성이나 어조가 웬일인지 네플류도프의 기억에 그대로 남았다.
"오, 그 사람은 정말 상류 사회의 인간이야. 상류 사회의 인간이라고." 공작은 크고 오만
스러운 소리로 그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나서, 공손한 차장과 짐꾼들을 데리고 처제와 함께
출구 쪽으로 나갔다.
마침 이 때 어디서인지 역 한모퉁이에서 짧은 털외투에 인피 짚신을 신고 배낭을 짊어진
노동자들의 무리가 플랫폼에 나타났다. 그들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첫 번째 찻간으
로 달려가 들어가려고 했으나, 곧 차장에게 내쫓기고 말았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발을 멈출
새도 없이 서로 발을 짓밟으면서 앞을 다투어 다음 찻간으로 가서 찻간의 모서리와 문에다
배낭을 부딪치며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딴 차장이 입구 쪽에서 그들의 거동을 보고
몹시 야단을 쳤다. 찻간에 올라탄 노동자들은 곧 그곳에서 허둥지둥 뛰쳐나와 여전히 가벼
운 걸음걸이로 네플류도프가 타고 있는 그 다음 찻간으로 몰려갔다.
차장이 또다시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더 앞으로 가볼 셈으로 발을 멈췄는데, 그 때 네플류도프가 안에 아직
자리가 남아 있으니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들은 말을 듣고 들어갔다.
네플류도프도 뒤이어
들어갔다. 노동자들은 재빨리 자리를 잡으려 했으나, 꽃모양의 모표를 단 채 있는 모자를 쓴
신사와 두 부인이 이 찻간에서 노동자들이 자리를 잡는 것은 자기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
각하고 열을 내어 그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20명 가량이었는데 늙은이도, 젊은이
도, 모두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어 지쳐 버린 듯한 메마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느낀 양 곧 배낭을 걸상과 칸벽과 문턱에 부딪치면서 찻간 복판을 빠
져나가 더 앞으로 가려고 했다.
이 세상의 끝까지라도 가라면 가고 앉으라면 못 위에라도
앉을 듯싶었다.
"어딜 가는 거야, 지금 너희들 있는 자리에 앉아 있으란 말야!" 그들과 마주친 딴 차장이
외쳤다.
"또 새로운 소식이 있어요." 두 부인 중의 젊은 부인이 자신의 유창한 프랑스 말로 네플
류도프의 주의를 끌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팔찌를 낀 부인은 퀴
퀴한 냄새가 풍기자 노상 코를 벌름거리고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냄새가 풍기는 노동자들과
동석한 불쾌감에 무어라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제사 큰 위험을 벗어난 기쁨과 안도감을 느끼면서, 걸음을 멈추어 제각기
자리를 잡고, 어깨를 틀어 등의 무거운 배낭을 내려 좌석 밑에 수셔넣었다.
타라스와 얘기하던 정원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으므로 타라스의 옆과 앞에 세 개의 자리
가 생겼다. 세 사람의 노동자가 앉았다. 그러나 네플류도프가 옆에 오자, 그의 품위 있는 옷
차림에 놀라서 비켜나려고 했다.
네플류도프는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말하고, 자기는 통로의
옆좌석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나란히 걸터앉은 두 사람 중에서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노동자는, 이상하다는 듯한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젊은 노동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보통 신사들처럼 욕
을 하거나 쫓아내지도 않고 오히려 자리를 양보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놀라웠고 또 어리
둥절했다. 그들은 이 때문에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걱정을 했다.
그러나 별로 아무런 흉계도 있어 보이지 않고, 네플류도프가 소탈하게 타라스와 얘기하고
있는 것을 봐, 그들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고 앉으라고 권했다. 네플류도프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동자는 처음에는 몸을 움츠리고 신사 나리에게 자기 몸이 닿지
않도록 인피 짚신을 신은 두 다리를 애써 오므리고 잇었으나, 안중에는 네플류도프와 타라
스와 사귀어 얘기를 하게 되고, 얘기 도중에 특히 그의 주의를 끌고 싶은 대목에 이르면 손
등으로 네플류도프의 무릎을 치기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그는 자기의 신에 타령을 하고 이
탄(泥炭) 파는 곳에서의 일을 얘기했다. 그는 거기서 두 달 반동안 일하고 지금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나, 고용될 때에 임금의 일부를 선불로 받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동생들에게는 10
루블씩밖에는 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밥
먹는 두 시간을 빼놓고는 무릎까지 잠기는 물 속에 들어가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몹시 힘든 일입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그렇지만 어느 만큼
견뎌 내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먹을 것만 제대로 주면 견딜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
이 나빠서 말이지요. 처음 한동안은 지독한 걸 먹이더군요. 그래서 모두 불평을 했더니, 이
내 먹을 것도 점점 나아지고 일하기도 수월해졌습지요."
그리고 그는, 자기는 이로써 벌써 28년째나 날품팔이를 하고 있는데, 번돈은 고스란히 집
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다음은 형에게, 그리고 다음에는 집안 일
을 돌보고 있는 조카에게 송금을 해주고, 자기는 1년 동안에 번 돈 5,60루블 중에서 겨우 담
배나 성냥을 사는 용돈 2,3루블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고 했다.
"하긴 죄스러운 얘깁니다만 지나치게 피곤할 땐 보드카를 사 마셨습니다." 그는 죄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덧붙였다.
그는 또, 고향에서 남자들 대신 여자들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는 이야기, 오늘 출발 전에
고용주가 모두에게 보드카를 반 통이나 사 주었다는 이야기, 친구 한 사람이 죽은 이야기,
또 한 사람의 친구는 병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가 말한
환자는 같은 찻간의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고, 자주빛 입술을 한
젊은이였다. 그는 열병으로 빈사 상태에 있는 듯했다. 네플류도프는 그이 옆으로 가까이 가
보았으나, 젊은이가 너무나도 괴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에게 여러 가지 이
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나이 많은 노동자에게 키니네를 사 주라고 약 이름을 종이에 적어주
었다. 그는 약값을 주려고 했지만, 나이 많은 노동자는 자기가 사 주겠다고 말하면서 사양했
다.
"나는 지금까지 무척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이런 분은 처음 봤습니다. 화도 내시지 않
고 자리까지 양보해 주시다니, 나리들도 천차만별이군요." 그는 타라스를 바라보고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새로운 딴 세계다. '네플류도프는 노동자들의 거칠고 뼈가
이상한 팔다리와 허름한 무명옷과, 피로해 보이나 상냥하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바라보면
서, 비로소 인간 생활의 참다운 노동의 진정한 의미와 기쁨과 고통을 맛보고 있는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 속에 자기가 끼여 있음을 느꼈다.
'바로 이것이 상류 사회다!' 네플류도프는 아까 코르차긴 공작이 한 말을 생각하면서 무
의미하고 빈약한 생활밖에 모르고 무위 도식만을 일삼는 코르차긴 일가의 사치스러운 세계
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미지의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한 나그네의 기쁨을 느꼈다.
21
네플류도프는 물살이 빠른 넓은 강을 바라보면서 뱃전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그
의 머릿속에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마차의 요동으로 머리를 흔들리며 울분의 감정으로 죽
음에 다다르고 있는 크르일리조프의 모습은 그를 괴롭고 처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른
또 하나의 인상, 시몬손과 같은 훌륭한 남자의 사랑으로 지금은 착실하고 올바르며 선한 길
로 들어선 생기찬 카추샤의 모습은 기뿐 일임에도 불구하고 네플류도프의 심정을 언짢게 했
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거리 쪽에서 오호트니츠키 사원의 커다란 종소리와 물결치는 금속성의 여운이 강을 타고
울려왔다. 네플류도프 곁에 서 있던 마부와 여러 마차의 마부들은 모두 차례로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뱃전에서 가장 가깝게 서 있던 키가 작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한 노
인만은 성호를 긋지 않고 머리를 똑바로 든 채 유심히 네플류도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누덕누덕 기운 코트에 나사 바지를 입고 또 역시 다 해진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에는 그리 크지 않은 보따리를 메고 머리에는 닳아빠진 높은 털모자를 쓰고 있
었다.
"영감님은 어째서 기도를 안하는 거요?" 네플류도프의 마부가 모자를 고쳐쓰면서 말했다.
"영세를 받지 않았소?"
"도대체 누구를 향해 기도하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노인은 도전하는 듯이 빠른 어조로
마디마디 분명하게 되물었다.
"누구긴, 하느님께지." 마부는 비웃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자네, 어디 보여 주게나, 그 하느님이 어디 있는지?"
노인의 어투에는 무언가 진지함이 느껴져서 마부는 잘못 걸렸다는 생각으로 약간 당황했
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듣고 있는 앞에서 남자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얼른 대꾸했다.
"어디라고? 뻔한 것이지, 하늘에 계신다는 건."
"그럼 자네는 하늘에 올라가 봤나?"
"가보든 안 가보든 하느님께 기도드려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 아니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은 본 사람은 하나도 없어, 아버지의 품속에 안긴 외아들에게만 그걸
보여 주셨지." 노인은 엄숙한 표정의 얼굴을 찡그리며 여전히 빠른 투로 말했다.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영감님의 신앙은 어떤 것이오?"하고 뗏목배 한구석에서 짐마차와 나란히 서 있던
그리 젊지 않은 한 남자가 물었다.
"나는 신앙 같은 게 없소. 나는 아무도 믿지 않으니까. 나 자신밖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
아." 노인은 아까처럼 단호하게 빨리 대꾸했다.
"그러나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하고 네플류도프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끼여들
었다.
"자기라도 잘못하는 때가 있을 텐데요."
"아니,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를 흔들면서 분명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신앙이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여러 가지 신앙이 있는 까닭은 사람들이 남을 믿고 자기 자신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나도 남을 믿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도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아득하게 빠져 있었어요.
구교도, 신교도, 안식교도, 편신교도, 승려파 교도, 무승
려파 교도, 오스트리아 교도, 몰로칸 교도, 스코페츠 교도 등 어떤 종파나 모두 자기네만 옳
다고 떠들어 댑니다. 모두가 그런 꼴들이니까 눈먼 강아지처럼 떠돌아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신앙은 많이 있지만 영혼은 하나뿐이지요. 당신도 나도 저 사람도 영혼은 있습니다. 말하자
면 누구든지 다 자기의 영혼만 믿게 되면 전부 하나가 될 겁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만
믿으면 모두 하나로 될 수 있습니다."
노인은 언성을 높여,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들으란 듯이 끊임없이 주위를 둘
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신앙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습니까?" 네플류도프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요? 벌써 오래됐지요. 그래서 쫓겨다닌 지가 햇수로 23년이나 됩니다."
"쫓겨다니다니, 왜요?"
"그리스도가 쫓겨났던 것같이 나도 쫓겨난 거지요. 나는 붙들려서 재판소에 나간 적도 있
고 신부 앞에 나간 적도 있고 학자와 바리새인들 앞에 끌려간 적도 있고 정신 병원에 입원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요. 나는 자유인이니까 말이오. '
네이름이 무엇이냐?' 이렇게 묻더군요. 모두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름이 없습니다. 나는 뭐든지 다 내버리고 말았지요. 이름도 직업도 조국도 아
무것도 없단 말입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입니다. 그래 이름이 뭐냐기에 인간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이번엔 '그럼 나이는 몇살이냐?'고 하겠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
습니다. 나이는 세어 본 일도 없고 또 셀 수도 없다고 말이에요.
그 이유는 나는 언제나 존재
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부모는 누구냐?' 물으면 내게
는 하늘과 땅 외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하늘이 아버지요 땅이 어머니라고 대답해 줬지
요. 그러면 그 때엔 ' 제를 인정하는가?'하고 묻지요. 왜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황제는 그
분 자신이 황제이고 나는 나 자신이 황제입니다. 그러면 '너 같은 작자하고는 말할 수도 없
다.고 하기에 나도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나도 말을 해달라고 원한 적은 없다고요.' 그래서
나는 추방된 것입니다."
"그래 영감님은 지금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어디라고 정해진 데가 없어요. 하느님이 가라는 데로 갑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요. 일이
없으면 빌어먹지만."하고 노인은 뗏목배가 맞은편 강가에 가까이 온 것을 알자 이야기를 멈
추고 득의 만면한 표정으로 자기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룻배는 맞은편 강가에 닿았다. 네플류도프는 지갑을 꺼내 노인에게 돈을 주었지만 노인
은 사양했다.
"나는 그런 건 받지 않아요. 빵이면 받겠습니다만."
"그럼 실례가 됐군요."
"별로 잘못된 건 없어요. 당신은 내게 수치를 준 것은 아닙니다. 또 내게 수치를 줄 수도
없지만." 노인은 이런 말을 하고 내려놓았던 보따리를 어깨에 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
안에 네플류도프의 마차가 육지에 내려져 말을 매기 시작했다.
"나리도 호기심이 참 많으시군요. 저런 늙은이하고 말씀을 다 나누시다니."하고 마부는 네
플류도프가 사공들에게 수고비를 준 뒤 마차를 탔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저까짓 쓸데없는 부랑자를 가지고 말입니다."
22
언덕 위로 올라오자 마부는 네플류도프를 돌아보았다.
"어느 여관으로 모실까요. 나리?"
"최고급 여관은 어딘가?"
"시비리스크 여관보다 좋은 데가 또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쥬코프도 괜찮습지만요."
"어디든지 좋은 데로 가게."
마부는 또다시 옆으로 비스듬하게 앉아서 속력을 냈다. 도시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다락방이 있는 푸른색 지붕의 집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똑같은 모양의 교회, 조그
만 가게, 번화가의 상점, 순경들마저도 똑같아 보였다. 다만 대부분의 집이 목조인 것과 거
리가 포장되지 않았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번화가인 듯한 곳에서 마부는 어떤 여관 앞에
마차를 세웠다. 그러나 그 여관에는 빈방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여관으로 가야만 했다. 그
여관에는 빈방이 있었으므로 네플류도프는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그래도 비교적 깨끗하고 편
리한 이전의 환경과 비슷하게 지낼 수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안내받은 방은 그리 훌륭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어쨌든 여행 마차와 시골
여인숙과 수인 중계소 등, 이런 데서만 지내 온 터라 아주 기분이 풀렸다. 그는 무엇보다 먼
저 수인 중계소를 방문하고 나서부터 아무리 애써도 완전히 없앨 수가 없었던 벼룩과 이를
말끔히 퇴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여장을 풀고 즉시 목욕을 한 뒤 도시인의 복장을
하고 -풀 먹여 잘 다린 와이셔츠에 줄이 선 바지, 그리고 프록 코트에 외투를 입고- 이 곳
의 지방 장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여관 문지기가 불러 온 마부는 덜컹거리는 마차에 살찐
커다란 키르기스 종의 말을 달고 와서, 보초병과 경관이 서 있는 아주 크고 훌륭한 저택 앞
으로 네플류도프를 데리고 갔다.
그 저택에는 앞에도 뒤에도 정원이 있었는데 포플러와 자
작나무가 잎이 떨어져 엉성한 가지만을 뻗고 있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전나무와 소나무, 그
리고 노간주나무들이 싱싱한 진록색으로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장군은 몸이 불편하다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네플류도프는 억지를 써서 명함을
전해 달라고 하인에게 부탁했다. 하인은 금방 회답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들어오시랍니다."
현관, 하인, 전령, 층계, 반질반질하게 닦여진 파키트로 바닥을 깐 홀 등 모두가 페테르부
르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 깨끗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대로 장엄하게는 느껴졌다. 네플
류도프는 서재로 안내되었다.
장군은 아주 몸집이 비대했으며, 주먹코에 이마가 훌렁 벗겨진 대머리에는 혹이 여럿 있
었고, 눈밑의 살이 주머니처럼 축 늘어진 다혈질의 사내였다. 그는 타타르식의 비단 가운을
입고 담배를 손에 든 채 은접시에 놓인 찻잔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잠옷 바람으로 실례가 되지만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용서
하십시오." 그는 굵고 주름살이 진 목덜미를 가운으로 감싸면서 말했다.
"몸이 좀 불편해서 쉬고 있었습니다. 한데 무슨 일로 이렇게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저는 죄수 대열을 따라왔습니다. 죄수 중에 가까운 사람이 하나 있어서요."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그래서 사실은 그 죄수의 일과 또 한 가지의 다른 일 때문에 각하께 말씀드리려고 찾아
온 것입니다."
장군은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 차를 또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담배를 공작석 재
떨이에 비벼 끄고는 부은 것 같은 가늘고 광채 있는 눈을 네플류도프에게 떼지 않으며 진지
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장군이 네플류도프의 말을 중단시킨 것은 '담배를 피우지 않
으시렵니까'하고 묻던 그 때 뿐이었다.
원래 장군은 자유주의와 인도주의를 자기 직무와 조화시키려는, 풍부한 교양을 갖춘 군인
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현명하고 선량한 인간성을 지닌 장군은
그 조화가 불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항상 자기의 내면적인 모순을 보지 않으려고 군인
사회에서 성행되고 있던 폭주의 습관에 물들었던 것이 마침내는 그 습관에 흠뻑 빠져 버리
게 되어 35년간의 군무 생활을 보낸 지금에 와서는 의사로부터 알코올 중독자라는 진단을
받게까지 되었다.
현재의 그는 전신이 흡사 술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어떤 술
이라도 마시기만 하면 취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이미 필수적인 조건이 되어 버렸고 술이 없이는 잠시도 살수가 없었
다. 저녁 무렵이면 항상 취해서 얼근한 상태에 있곤 했으나 워낙 그렇게 습관이 되었기 때
문에 휘청거리는 일도 없고 또 말을 그리 함부로 하지도 않았다.
만일 말이 좀 지나쳤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 지방에서는 제일 높은 직위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현명한 말
인 줄 알고 들었다.
다만 아침 한때는, 즉 네플류도프가 찾아온 이 무렵에는 현명한 사람같
이 상대편의 말을 옳게 이해할 수도 있었고 항상 입버릇처럼 즐겨 말하는 '취해서 현명하면
두 가지의 이익을 본다.'라는 속담을 별탈없이 실행할 수 있었다.
상부에서도 그가 술꾼인
줄을 알고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그가 교양이 있었으며 대담하고 민활하며, 풍모가
당당하고, 또한 아무리 취중이라도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수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중책에 임명되어 그 지위를 지키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장군에게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여죄수라는 것과 그녀가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황제 폐하에게 그녀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했다는 것 등을 말했
다.
"아, 그래요. 그래서요?"
"그녀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늦어도 이 달 안으로는 그 통지가
이 곳의 저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장군은 여전히 네플류도프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손가락이 뭉뚝하게 손을 탁자로 뻗쳐 초
인종을 누르고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서는 아주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잠자코 듣고 있었
다.
"그러한 사정이라서 그 청원서에 관한 기별이 있을 때까지 될 수 있으면 그녀를 이 곳에
체류할 수 있게 허가를 해주십사 하는 부탁입니다."
군복은 입은 당번병이 들어왔다.
"집사람이 일어났는지 알아봐." 장군은 당번병에게 말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더 가져와. 또 하나의 용건이란 것은 뭐죠?" 그는 네플류도프를 향해
물었다.
"또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하며 네플류도프는 말을 계속했다.
"역시 죄수 대열 중의 정치범에 관해서입니다."
"아, 그래요!" 장군은 의미 있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 정치범은 중환자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 곳의 병원에 남게 되리라고 생각됩
니다만 역시 정치범인 여죄수가 한 사람 그를 간호하기 위해 남기를 희망하고 있어서..."
"여죄수는 그 남자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만약 결혼을 해야만 같이 남을 수 있다면 기꺼이 결혼하겠다
는 말도 했습니다."
장군은 광채나는 눈으로 뚫어지게 그를 쏘아보면서 눈초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듯 잠
자코 담배만 피워 댔다. 네플류도프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장군은 탁자 위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더니 손가락 끝에 침을 발라가며 책장을 재빠르게 넘겨서 결혼에 관한 조문을 찾아
읽었다.
"그 여죄수는 무슨 형을 받았습니까?" 그는 책에서 눈을 떼면서 물었다.
"중노동형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결혼을 해봤자 환경이 지금보다 좋아지지 않을겁니다."
"그렇지만 말씀입니다..."
"아니, 잠깐만. 가령 그 여죄수가 보통 사람과 결혼을 한다 해도 역시 그 형기만은 어차피
치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그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형이 중한가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중노동형을 받았습니다."
"아, 그것 참. 어쩔 도리가 없군요." 장군은 웃으면서 말했다.
"둘 다 죄가 같군요. 그러나 남자만은 병 때문에 남게 될 수가 있습니다."하고 그는 말을
계속했다.
"그의 처지를 돕기 위해 가능한 한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만, 여자 쪽은 설사 그 남자와 결
혼을 하더라도 이 곳에 남을 수가 없습니다."
"부인께서는 지금 커피를 마시고 계십니다." 당번병이 보고를 했다.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 봅시다. 그 두 사람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기다 써주십시오."
네플류도프는 그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것도 곤란한데요."하고 장군은 그 병자와의 면회를 허락해 달라는 네플류도프의 청원
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 사내나 다른 죄수들에 대해서도 대단한 관심을 가시진 것 같고 돈도
가시고 계신 것 같군요. 이 지방에서는 돈이면 만사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뇌물을 근절시키
라는 말을 늘 듣고는 있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다 뇌물을 받고 있는 판에 어떻게 없앨 수
있겠습니까? 지위가 낮은 축일수록 더 심하지요.
5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어
떤 방법으로 감독할 수가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그 지방의 조그만 왕이지요. 내가 이 곳의
왕인 것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웃었다.
"당신도 지금껏 정치범들과 면회해 왔겠지만 그 때마다 사례금을 주고 들어가셨지요?" 장
군은 빙글거리며 물었다.
"어때요, 맞지요?"
"네, 사실은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치범과 만
나고 싶고 또 그들이 불쌍하게 여겨졌을 겁니다. 그리고 형무관이나 호송병들은 얼마든지
뇌물을 받지요. 하기야 20코페아카짜리 은화 두 닢의 봉급으로 가족을 부양해 나가야 하니
뇌물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나라도 그들이나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다면 틀림없이 그
들이나 당신 같은 일을 서슴없이 하겠죠. 그러나 이런 지위에 있는 나로서는 준엄한 법 조
문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는 일은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야 나도 인간이니까 인정에 끌리
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행정관으로서 정해진 조건 밑에서 정부의 신임을 얻고
있으니까 의무를 다함으로써 그 신임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이쯤
으로 끝냅시다. 이번엔 어디 당신께서 모스크바의 이야기나 들려 주시렵니까?"
이렇게 말하고 장군은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자기 얘기도 했다. 최근의 소식을 알고도 싶
고 동시에 또 자신의 중요성이며 인도주의를 과시하고도 싶었던 것이다.
23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 묵고 계시지요?" 장군은 네플류도프를 전송하면서 물었다.
"쥬코프 여관? 아니, 거기도 그리 좋지 않을걸요. 우리 집에 오셔서 저녁 식사나 하시지
요. 우리는 5시에 식사합니다. 영어를 할 줄 아시죠?"
"네, 합니다."
"그럼 더욱 잘됐는데요. 실은 여기에 영국인 여행가 한 명이 와 있는데 시베리아의 감옥
과 유형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지요. 마침 그 사람도 저녁 식사를 함께 하러 오게 되어 있습
니다. 당신도 꼭 참석해 주십시오. 식사는 5시에 시작입니다.
우리 안사람은 제법 사무적인
사람이지요. 당신이 말씀하신 여죄수와 병자의 건에 대해서도 그 때 대답해 드리기로 하지
요. 어쩌면 누군가 한 명쯤은 간호를 위해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군과 작별을 한 뒤 네플류도프는 기운이 솟는 것을 느끼면서 우체국 쪽으로 마차를 몰
았다.
우체국은 낮고 둥근 천장의 건물이었다. 몇 명의 직원이 사무용 책상에 앉아서 몰려든 사
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직원 한 사람은 고개를 기웃이 하고 앉아서 밀려나오는 봉투에 능
숙하게 소인을 찍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의 이름을 듣
고는 곧 아주 많은 우편물 뭉치를 내주었다. 거기에는 송금 수표도 있었고 편지도 몇 통 있
었다.
그리고 책과 조국잡기 최근호도 있었다. 자기의 우편물을 받아들고 네플류도프는 사병이
수첩을 들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나무 벤치로 가서 그 곁에 앉아 우편물을 훑어보았다.
그 중에서 등기 우편 한 통은 새빨간 봉랍으로 단단하게 봉해지고 소인이 뚜렷이 찍힌 훌륭
한 봉투였다. 봉투를 뜯던 그는 무슨 공문서 같은 것과 함께 들어 있는 셀레닌의 편지를 발
견했을 떄, 별안간 피가 얼굴로 끓어오르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카
추샤 사건의 결정서였던 것이다. 대체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까? 기각된 것은 아닐까?
네플류도프는 판별하기 어려운 잔글씨로 딱딱하고 서투르게 쓰여진 편지를 단번에 읽어내리고
기쁨에 넘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결정서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여!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는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네. 마슬로바의 사건에 관
한 자네의 생각은 옳은 것이었네. 세밀하게 그 사건을 검토해 본 결과 나는 그녀에 대하여
엄청난 부정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놀랐다네.
이것을 수정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자네가 출원
한 청원 위원회에 의뢰할 수밖에 없었네. 다행히도 내가 이 사건의 해결에 다소나마 도움을
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 특사 지령서의 사본을 동봉하여, 백작 부인 카테리나 이바노브
나가 가르쳐 준 주소로 자네에게 보내는 것이네.
원본은 그녀가 재판 진행중 수감되었던 곳
으로 발송되는 것이니까, 아마 곧 그리로부터 시베리아 행정부로 회송될 것일세. 우선 이 기
쁜 소식부터 급히 전하는 것이네.
자네의 셀레닌
특사 지령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황제 폐하 직속 청원 사무국. XX과 XX계. X년 X월 X일.
황제 폐하 직속 청원 사무국장의 명령에 의해서 평민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에게 다음과 같
이 선고함. 황제 폐하께 상신된 보고에 의하여 마슬로바의 청원에 대해서 원판결의 중노동
형을 취소하며 시베리아의 원격지가 아닌 지방으로의 이주형으로 변경할 것을 통고함.
이것은 너무나 기쁘고도 중대한 소식이었다. 네플류도프가 카추샤를 위하여, 그리고 또 자
기 자신을 위하여 희망하던 모든 것이 성취된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녀의 환경에
서의 이러한 변화가 그녀와의 관계에도 새롭고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녀가 징
역수로 있던 지금까지는 그가 청했던 결혼이라는 것도 공상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녀의 고통
을 다소라도 덜어 주겠다는 의미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이 같이 사는 것을
방해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 네플류도프는 아직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다 시몬손과 그녀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제 그녀가 한 말은 무
엇을 의미하는 걸까? 만약 그녀가 시몬손과의 결합에 동의를 한다면 그것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네플류도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낼 도리가 없어서 당장은 생각을 않기로
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어떤 해결이 나겠지.'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 할 일은 무엇보다 먼
저 그녀를 만나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또 그녀를 자유의 몸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그
렇게 하는 데는 지금 자기 손에 있는 이 사본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리하여 그는 우체국을 나서자 곧 마부에게 감옥으로 가자고 말했다.
조금 전 아침에, 장군은 감옥 방문을 허락해 주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상급 관리에게서 얻지 못한 허가가 더러는 그 밑의 관리들에게서는 쉽게 받아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한번 감옥과 맞서 보아서 일이 뜻대로 되면
카추샤를 만나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될 수 있으면 석방이 되도록 서둘러 주고, 또한
크프일리조프의 병세도 물어 보고 그와 마리야 파블로브나에게 장군이 했던 말을 전해 주려
고 마음먹고 있었다.
형무관은 아주 키가 크고 비대하며 콧수염이며 구레나룻이 모두 입주위로 말려든 풍채가
당당한 사내였다.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아주 엄격히 대하면서 장관의 허가가 없는 한 절대
로 외래인의 면회를 허락할 수 없다고 냉정히 잘라 말했다. 모스크바의 감옥에서도 자기는
허가를 얻었다고 말했지만, 형무관의 대답은 이랬다.
"그야 그런 일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허락하지 못합니다."
이 말 속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된 듯했다. '당신네 도시 사람들은 우리를 곯려 주고 당
황하게 만들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동부 시베리아인들도 규율과 질서가 어떤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그것을 한번 가르쳐 드리지!'
황제 폐하의 직속 사무국에서 보내온 공문서의 사본도 이 형무관에게는 전혀 효력이 없었
다. 그는 감옥 구내로 들어가는 것을 딱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 그 사본에 의해서 카추샤를
석방시켜 주어도 좋지 않느냐고 하는 네플류도프의 물음에 대해서도 그는 경멸하듯 웃을 뿐
직속 상관으로부터 직접 명령이 없는 한 누구를 불문하고 석방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에게서 약속받을 수 있었던 것은 특사가 내려졌다는 것을 카추샤에게 전해주고, 자기
의 상관에게서 영이 떨어지는 즉시 한시도 지체 없이 그녀를 석방하겠다는 것뿐이었다.
크프일리조프의 병세에 관해서도 형무관은 어떠한 말도 전하기를 거부하며 심지어 그러한
죄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리하여 네플류도프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마차를 돌려 여관으로 돌아왔다.
형무관이 이런 태도를 취한 이유는 거의 정원의 두 배나 처넣은 감옥 안에서 티푸스가 유
행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네플류도프를 태운 마부는 돌아가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었
다. 감옥에서는 사람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 가고 있으며 무슨 나쁜 병이 번져 매일 스무
명 이상씩이나 죽어서 매장된다는 것이었다.
24
감옥에서 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네플류도프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서 카추샤의 특사
서류가 도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청으로 마차를 몰았다. 그러나 아직 서류가 오지 않았
기 때문에 네플류도프는 여관으로 다시 돌아와서 우선 이에 관한 편지를 셀레닌과 변호사에
게 급히 보냈다. 편지를 다 쓰고 난 뒤 시계를 보았다. 벌써 장군 댁의 만찬에 참석할 시간
이 되었다.
장군 댁으로 가는 도중 그는 카추샤가 특사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생각
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여자의 이주 유형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네플류도프는 그녀의 마
음속에 일어났던 변화가 생각났다. 또한 그녀의 과거도 생각났다.
'아니야, 그런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잊어버려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그는 급히 그
녀에 대한 생각을 지워 버렸다.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테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
고는 장군에게 이야기할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장군 댁의 만찬은 네플류도프에겐 별로 색다른 것이 없는 부호나 고관들이 늘 하는 일상
생활의 사치스러운 호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사치는 고사하고 일상 생활의 편의마
저도 궁했던 터라 그에게는 각별히 유쾌한 기분을 안겨 주었다.
장군 부인은 니콜라이 1세의 궁녀로도 있었던 페테르부르크의 고풍스런 귀부인으로 프랑
스어는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했으나, 러시아어는 부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지나칠 만큼 자세
를 꼿꼿이 하고 앉아서, 손을 움직일 때에도 팔꿈치를 허리에서 떼지 않았다. 남편에게는 조
용하고 조금 수심 띤 존경의 태도로 대했지만 손님들에게는 사람에 따라 조그만 정도의 차
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특히 네플류도프에게는 마치 가족을 대하는
것같이 극진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네플류도프는 새삼스레 자기의 가치를 인식하고 유쾌
한 만족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그녀는 네플류도프가 이런 시베리아 벽지에까지 찾아온 것이
좀 파격적이긴 하였지만 그 진실한 성품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특이한 인물로 여기고 있
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하였다.
이런 세심한 친절과 장군 댁의 우아하고 사치스런 분위기 때문에 네플류도프는 이 환경과
맛있는 음식, 자기와 같은 계층의 친숙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즐거움과, 긴장이
풀리면서 생기는 충족감에 흠뻑 젖어들었다.
흡사 최근 몇 개월 동안 자기가 처한 환경과
자기를 둘러싼 그러한 생활 속에서 줄곧 살아 온 것이 모두 꿈만 같고, 지금에야 겨우 그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만찬에는 장군의 딸과 사위, 부관 등 가족들 외에 예의 그 영국인과 금광 주인인 상인, 그
리고 시베리아의 먼 도시에서 온 지사가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에게는 이 사
람들이 모두 다 유쾌하게만 보였다.
영국인은 건강하고 혈색이 좋은 사람으로, 프랑스어는 아주 서툴렀지만 영어는 뛰어나게
능통해서 웅변가처럼 구사하였다. 또한 그는 견문이 무척 넓어서 미국, 인도, 일본, 시베리아
등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하였다.
젊은 금광 주인인 상인은 농민의 아들이었지만, 런던에서 맞췄다는 연미복에 다이아몬드
커프스를 달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서재를 가지고 있었고 자선 사업에 거금을 기부하기도
했으며, 유럽적인 자유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 청년에게서 건강한 농민 기질의 어린 나무
에다 유럽 문화를 접분인 것 같은 전혀 새롭고 우수한 문화인의 유형을 보는 것 같아서 네
플류도프는 그에게 흥미와 호감이 갔다.
멀리 떨어져 있는 시베리아의 소도시에서 온 지사는 네플류도프가 페테르부르크에 있었을
때에 많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바로 그 국장이었다. 숱이 엉성한 곱슬머리에 상냥해
보이는 파란 눈동자를 지닌 뚱뚱한 사내로, 하반신이 무척 뚱뚱하고 정성껏 다듬은 흰 손에
반지를 몇 개나 끼고 있었는데 웃는 얼굴이 무척 보기 좋았다.
이 지사는 부정이 만연되어
있는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로 이 댁 주인에게서 존경을 받고 있
었다. 또한 음악을 아주 좋아해 우수한 피아니스트였던 장군 부인도 지사가 훌륭한 음악가
이며 자기와 합주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를 존경하였다. 네플류도프의 기분은 매우 유쾌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사람까지도 지금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쾌활하고 정력적이며 파르스름한 턱을 지닌 부관은 무슨 일에나 봉사 정신을 발휘한다는
그 선량함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네플류도프에게 호감이 간 사람은 장군의
딸과 사위인 사랑스러운 젊은 한 쌍이었다.
이 장군의 딸은 예쁘지는 않았지만 순진하고 젊
은 여성으로 두 어린애한테 온 정성을 다 쏟고 있었다. 그녀가 부모와의 오랜 싸움을 한 끝
에 연애 결혼을 했다는 그 남편은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겸손하고 머리가 영리한 자유주
의자로서 관청에 근무하면서 한편으로 통계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토착 종족의
연구에 전념하면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멸족으로부터 구출하려고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모두 다 네플류도프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했을 뿐만 아니라, 새롭고 흥미있는 사람으
로 그와의 합석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군복을 입고 백십자 훈장을 달고 식탁에 나온 장
군은 흡사 오랜 벗을 대하는 것처럼 네플류도프와 인사를 나누고 곧 손님들을 자쿠스카와
보드카가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오늘 아침 자기 집을 나간 뒤에 무슨 일을 했느냐는 장
군의 물음에, 네플류도프는 우체국으로 가서 아침에 말했던 사람이 특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고 대답하고 또 한번 감옥 방문을 허가해 달라고 말했다.
장군은 만찬 식탁에서 사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얼굴을 찌뿌
리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보드카를 드시겠어요?"하고 그는 프랑스어로 식탁에 다가온 영국인에게 물었다. 영국인
은 보드카를 한 잔 마시고 나서 오늘은 교회와 공장을 견학했는데, 이번에는 큰 이동 감옥
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 마침 잘됐군요!"하고 장군이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이 가도록 하시지요. 통행 허가증을 두 분께 내드리도록 하게." 그는 부관에게 말했다.
"당신은 언제 가시렵니까?" 네플류도프가 영국인에게 물었다.
"저는 오늘 밤에 가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다들 모여 있을 것이며, 사전에 준비도 못할 것
이고, 있는 그대로를 불 수 있겠죠." 영국인이 대답했다.
"옳아, 최고의 장면을 보시겠다는 거군요! 보시도록 해드리죠. 꼭 보시도록! 감옥 개선에
대해 글도 많이 썼지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외국의 신문에서라도
알아보라고 해야겠어요." 장군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부인이 손님들의 자리를 정하고 있는
만찬 식탁 쪽으로 다가갔다.
네플류도프는 장군 부인과 영국인의 사이에 앉았다. 그의 맞은편에는 장군의 딸과 전직
모 국장이 앉아 있었다. 식사하는 동안 영국인은 인도 이야기를 하고, 장군은 프랑스의 통킹
원정을 이야기하며 신랄하게 비평하기도 하면서 이따금 시베리아의 부패상과 뇌물에 관한
이야기도 화제로 등장시켰다. 네플류도프에게는 모두 별로 흥미없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식사를 끝낸 후 응접실로 나와 커피를 마시면서 영국인과 장군 부인을 상대하여 글래드스
턴에 대한 아주 흥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에서 네플류도프는 상대편의
주목을 받을 만큼 현명한 말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식사와 술 다음에 커피를 마
시며 푹신한 안락 의자에 몸을 파묻고 친절하며 교양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노라
니까 네플류도프는 점점 더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특히 영국인의 희망에 의해 장군 부인이
전직 모 국장과 피아노 앞에 같이 앉아 충분히 연습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을 연주했을
때 네플류도프는 오랫동안 맛 볼 수 없었던 완전한 정신적 만족을 맛볼 수 있었다. 흡사 지
금에야 비로소 자기가 참으로 가치 있는 인간인 것을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피아노도 훌륭했지만 교향곡 연주도 아주 좋았다. 이 교향곡을 잘 알고 있고 또 좋아하는
네플류도프에게는 적어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안단테를 듣고 있는 동안에 그는
자신에 대한, 그리고 모든 자기의 선행에 대한 감동으로 말미암아 콧등이 찡해 옴을 느꼈다.
오랜만에 자기에게 즐거움을 맛보여 준 장군 부인에게 감사의 정을 표시하고 네플류도프
가 작별 인사를 하려 했을 때, 장군의 딸이 용기를 낸 듯한 표정으로 그의 곁으로 와서 얼
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제 아이들에 대해 물으셨는데 그 애들을 한번 봐주시겠어요?"
"아니, 애는 아무라도 아이들에게 흥미를 느끼는 줄 아는가봐."하고 장군 부인이 귀여운
억지를 부리는 듯싶은 딸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공작님은 아이들 같은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으셔."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단한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네플류도프는 흘러넘칠 듯 행복스러
운 모성애에 감동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어서 보여 주십시오."
"어린애를 보이려고 공작님을 끌고 가는군." 장군이 카드용 테이블에서 사위, 금광 주인,
부관가 함께 앉아 웃으면서 소리쳤다.
"그럼 어서 보여드려야지."
이 젊은 어머니는 지금 자기 어린애들을 보이고 나면 어떠한 평을 받게 될까 하는 생각에
흥분하여 네플류도프의 앞에 서서 빠른 걸음으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하얀 벽지를 바르고
천장이 높은 네 번째 방에는 검은 갓을 씌운 조그만 램프가 방을 밝히고 있었고 귀엽고 작
은 침대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침대 사이에는 흰 숄을 두르고 시베리아 특유의
광대뼈가 튀어나온 선량해 보이는 유모가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인사를 하였다. 애들 어머
니는 첫째 침대 위로 허리를 굽혔다. 그 침대에는 곱슬곱슬한 긴 머리카락을 베개에 흐트러
뜨린 두 살 정도의 계집애가 조그만 입을 벌린 채 곤하게 자고 있었다.
"얘가 카차랍니다."하고 어머니가 푸른 줄무늬가 쳐진 이불 사이로 드러난 조그맣고 하얀
발꿈치를 덮어 주면서 말했다.
"예쁘지요? 이제 겨우 두 살이에요."
"참 귀엽군요!"
"그리고 얘가 바슈크에요.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부르시죠. 누굴 닮았는진 모르겠어요. 진
짜 시베리아인이죠, 안 그래요?"
"정말 귀엽게 생겼군요." 네플류도프는 엎드려 잠든, 토실토실한 사내애를 보려고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정말 그래요?"하고 애어머니는 여러 가지 의미가 섞인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쇠사슬과 박박 깎인 머리, 구타, 타락, 그리고 빈사 상태에 놓여 있는 크르
일리조프와 카추샤 -그녀의 모든 과거와 함께- 가 떠올랐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별안간 마
음이 부드러워지면서 자신도 이렇게 고상하고 순결하게 보이는 행복이 그리워졌다.
몇 번이나 어린애들을 칭찬해 주어 그 찬사를 간절히 황홀하게 듣고 있는 어머니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 준 다음, 네플류도프는 그녀의 뒤를 따라 영국인이 아까 약속한 감옥에 함께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응접실로 나왔다. 그러고 나서 장군과 그의 딸 부부에게 작별 인
사를 하고 네플류도프는 영국인과 함께 장군 댁의 현관 계단으로 나왔다.
날씨는 변하여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어느 틈에 길도, 지붕도, 정원의 나무들
도, 마차 대기소도, 마차 지붕도, 말잔등도, 모든 것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영국인은 자기 마차가 있었으므로 네플류도프는 그 마부에게 감옥으로 향하도록 일러 주
고 자기의 마차에 올랐다. 그는 언짢은 일을 해야만 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 삐걱거리는
영국인의 마차 뒤를 따라 달리기가 무척 힘든 소복한 눈길 위로 마차를 달렸다.
25
문간에 매달린 호롱 등불 아래 보초가 혼자 지키고 서 있는 감옥의 음침한 건물은 마차
대기소도, 지붕도, 벽도, 모두 깨끗하고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정면의 늘어선 긴
창문들이 호젓이 불빛에 비춰져서 오늘 아침보다도 한층 더 침울한 인상을 주었다.
위엄을 부리던 형무관이 문으로 나와 불빛에 네플류도프와 영국인이 제시한 통행 허가증
을 비춰 보고는 의아스러운 듯 널찍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이 두 방문객을 안내하였다.
그는 두 사람을 처음에 안마당으로 인도해서 그 곳에서 오른쪽 문을 통하여 층계로 올라가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런 다음 두 사람에게 의자를 권한 뒤에 또 한 번 용건을 묻고 카
추샤를 면회하고 싶다는 네플류도프의 희망을 알자 간수에게 그녀를 불러오라고 이르고, 영
국인이 네플류도프의 통역으로 묻기 시작한 것들에 응답할 준비를 하였다.
"이 감옥의 수용 인원은?"하고 영국인이 물었다.
"현재 감금되어 있는 사람 수는 얼마나 됩니까? 남자는 몇 명이며 여자와 애들은 몇 명이
나 됩니까? 징역수, 유형수, 그리고 자원해서 따라온 사람은 몇 명이고, 환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네플류도프는 눈앞에 닥쳐온 카추샤와의 면회를 두고 의외로 마음이 산란해져서, 말의 의
미는 전혀 생각지 않고 영국인과 형무관의 대화를 그저 통역해 주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
때, 사무실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여느 때처럼 간
수가 앞서 들어오고 그 뒤에 카추샤가 죄수복에 머릿수건을 쓴 차림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도 살고 싶다. 가정을 갖고 싶고 애도 갖고 싶다. 딴사람들처럼 생활을 하고 싶다.' 그
녀가 빠른 걸음으로 눈을 내리깐 채 방 안에 들어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생각이
언뜻 스쳐갔다.
그는 일어서서 몇 걸음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고 불유쾌해 보였다.
그건 그녀가 자기를 비난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되었
다가 파랗게 질리기도 하면서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네
플류도프를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내리깔기도 하였다.
"특사를 내린 사실을 알고 있소?"
"네, 간수에게 들었어요."
"그렇게 되면 서류가 도착하는 즉시 방면되어 어디나 살고 싶은 곳으로 가도 되는 거요.
우리는 생각을 잘해서..."
그녀는 급하게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무엇을 잘 생각한다는 거예요? 저는 어디든 시몬손이 가는 데로 따라가겠어요."
카추샤는 몹시 흥분하고 있었지만 네플류도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마치 할 말을 미리 준
비나 한 것처럼 거침없이 또렷하게 말했다.
"아, 그래요!"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그래선 안 되나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만일 그 사람이 저와 같이 살고 싶어한다면..."
하고 그녀는 놀란 듯이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만일 그 사람이 저를 곁에 두고 싶어한다면 저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요... 저 같은 것이 그 이상 무엇을..."
'두 가지 중의 하나다.'하고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시몬손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바
치려는 희생을 전혀 바라지 않든지, 혹은 나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행복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거절을 하고 시몬손과 운명을 함께 하여 영원히 나와 인연을 끊어 버리
려 하든지, 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왠지 부끄러워서 얼
굴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물론 당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야..." 네플류도프에게 말했다.
"사랑이고 무엇이고 없어요. 그런 것은 벌써 오래 전에 치워 버렸어요. 게다가 시몬손과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르잖아요?"
"그야, 물론이지."하고 네플류도프는 입을 뗐다.
"그는 훌륭한 인물이지, 그래서 내 생각은..."
그녀는 자기가 지나친 말을 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
워서 거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닙니다,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만약 당신이 바라시던 일을 제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
쁘게는 생각지 말아 주세요."하고 그녀는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사팔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
보며 말했다.
"이러한 결과가 될 수밖에 없어요. 당신도 보람 있는 본연의 생활을 하셔야 할 테니까요."
그가 금방 자신에게 스스로 해 본 말과 똑같은 말을 똑같은 말을 그녀가 그대로 말한 것
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
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더불어 잃어버리게 될 모든 것이 애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소."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이런 데까지 와서 고생하실 필요가 조금도 없어요. 당신의 희생은 이미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녀는 묘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고생이라니, 오히려 내게는 행복이었지.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좀더 당신을 도와 주고 싶
소."
"우리들에게는," 그녀는 '우리들'이란 말을 하고는 네플류도프를 힐끗 쳐다보았다.
"우리들에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당신은 지금껏 저를 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몰
라요. 만일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무엇을 더 말하려고 했지만 음성이 떨려 그치고
말았다.
"당신이 나에게 고마워할 건 아무것도 없소."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우리가 그것을 신중하게 계산할 필요는 뭐 있겠어요. 우리들의 계산은 하느님만이 해주
실 테니까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새까만 눈이 솟구치는 눈물 때문에 더욱 반
짝였다.
"정말 당신은 훌륭한 여자요!" 그는 말했다.
"제가요, 훌륭한 여자라뇨?" 이렇게 되묻는 눈물 젖은 그녀의 얼굴에는 괴로워 보이는 미
소가 어려 있었다.
"이제 끝났습니까?" 이 때 영국인이 그들 사이에 끼여들며 물었다.
"네, 곧..."하고 네플류도프는 대답하고 크르일리조프의 상태를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흥분을 진정시키고 나서 아는 데까지 차근차근히 이야기를 하였다. 크르일리조프
는 오는 도중 더욱 쇠약해졌기 때문에 여기에 도착하는 즉시 입원했고, 마리야 파블로브나
가 걱정이 되어 간호하도록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지만 허가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
다.
"그럼 저는 이제 돌아가 보겠어요." 기다리고 있는 영국인을 의식하고 그녀가 말했다.
"작별 인사는 하지 않겠소. 우리는 다시 만날 테니까."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용서하세요." 그녀는 겨우 들릴까 말까 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눈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용서하세요.'라고 말했을 때의 사팔의 신비한 눈동자와 괴로
운듯한 미소를 보면서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결심하게 된 원인의 두 가지 가정 중에서 둘째 번
것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네플류도프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언제까지
나 그와 관계를 갖게 되면 자기가 그의 일생을 파멸시키게 될 것이므로, 시몬손과 같이 그
에게서 떠나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와 헤어지게 되는 것이 슬펐던 것이다.
그녀는 네플류도프의 손을 꼭 쥐었다가 재빨리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네플류도프가 함
께 감옥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영국인을 돌아보았더니 그는 무엇인가를 수첩에다 기록하
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의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벽에 댄 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
자 별안간 심한 피로감이 엄습했다. 그것은 단지 수면 부족이나 여행이나 흥분 같은 데서
오는 피로가 아니고, 생활 그 자체에 시달려 지쳐 버린 무서운 피로감이었다. 그는 긴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자,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부터 감방을 한번 돌아보시겠습니까?"하고 형무관이 물었다.
네플류도프는 이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데서 자고 있었다는 것
을 깨닫고 놀랐다. 영국인은 수첩에 기록하는 것을 끝내고 감방을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극도로 지쳐 있는 몸을 끌고 정신없이 그들 뒤를 따라갔다.
26
현관 대기실을 지나 메스꺼운 악취로 가득 찬 복도에 들어설 때, 마룻바닥에 오줌을 누고
있는 죄수 두 사람을 보고 놀리면서 네플류도프와 영국인과 형무관은 간수를 앞세우고 제1
감방으로 들어갔다. 이 감방 안에는 중앙에 나무 침대가 놓여 있고 죄수들은 모두 그 위에
누워 있었다.
모두 70명쯤 되었다. 그들은 머리와 머리를 맞대거나 옆구리와 옆구리를 맞대
고 자고 있었다. 사람들이 들어서니까 모두들 쇠사슬 소리를 철거덕거리면서 벌떡 일어나
절반쯤 깎은 시퍼런 머리를 번득이며 나무 침대 곁에 섰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대로 누워
있었다. 한 사람은 열이 있는 듯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청년이었고, 또 한 사람은 계속해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노인이었다.
영국인은 이 청년이 오랫동안 병중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형무관은 이 청년은 오늘 아침
부터 앓기 시작했고 노인은 벌써 오래 전부터 위장을 앓고 있었는데 몇 달 동안 계속 병원
이 만원이라 입원시킬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영국인은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젓고는 이 사
람들에게 몇 마디 물어 보겠으니 통역을 좀 해달라고 네플류도프에게 부탁하였다.
여기서
네플류도프는 이 영국인이 시베리아의 유형지나 감옥에 대해 조사하는 목적 외에도 또 한
가지, 신앙과 속죄에 의한 구원의 전도라는 목적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람들에게 이러한 말을 좀 해주십시오. 그리스도는 당신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
하고 있으시다고요. 그리고 그분은 여러분들을 위하여 이 세상을 떠나셨으며, 만약 당신들이
그것을 믿는다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그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모든 죄수들은 바지 옆솔기에 두 손을 댄 채 잠자코 나무 옆에
서 있었다.
"이렇게 이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는 말을 이었다.
"이 책 속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요.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알아본 결과 20명 이상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인은 신약 성서 몇
권을 손가방 속에서 꺼냈다. 그들은 새까맣고 딱딱한 손톱을 기른 우악스러운 손들을 거친
삼베 소매 속에서 빼내 서로 다투어 그에게로 내밀었다. 그는 이 감방에 두 권의 복음서를
나누어 주고 다음 감방으로 갔다.
다음 감방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숨막힐 것 같은 악취도, 전면의 창문과 창문 사이에 걸린
성상도, 문 왼쪽에 용변통이 놓인 것도, 일제히 모두 일어나서 부동 자세를 취하는 것도, 그
리고 일어나지 않는 세 사람의 죄수마저도 앞의 감방과 모든 것이 다 똑같았다. 세 사람 가
운데 둘은 몸을 일으켜 앉았지만, 하나는 들어온 사람들을 보려고조차 않고 그대로 누워 있
었다. 그들은 다 병자였다.
여기서도 영국인은 아까와 똑같이 말하고 역시 두 권의 복음서를
나눠 주었다.
세 번째 감방에서는 고함 소리와 요란스레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무관은 문을 두드
리며 "모두 조용히 해!"하고 소리쳤다. 문이 열리자 모두들 똑같은 자세로 바로 섰는데 병자
몇 사람과, 맞붙어 싸우고 있는 죄수 두 사람은 예외였다. 이 두 사람은 증오로 얼굴이 일그
러져 한쪽은 머리를 잡고 또 한쪽은 턱수염을 움켜잡은 채 서로 싸우고 있었다.
형무관이
그들에게도 달려가자 그제야 겨우 둘은 손을 풀었다. 하나는 코를 얻어맞고 코피를 터뜨려
흐르는 콧물과 침과 피를 죄수복 소매로 훔쳐내고 있었다. 또 하나는 턱수염에서 빠진 털을
주워모으고 있었다.
"반장!" 형무관이 거칠게 소리쳤다.
힘이 세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앞으로 갔다.
"어떻게 뜯어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각하." 반장은 재미있는 듯 눈웃음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말려 주지." 얼굴을 찡그리며 형무관이 말했다.
"그들은 무슨 일로 싸웠습니까?"하고 영국인이 물었다.
"덮는 것 때문이지요. 남의 것을 덮었거든요."
반장은 아직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나가 떼미니까 상대방이 덤벼든 겁니다."
네플류도프는 영국인에게 그 말을 전해 주었다.
"잠깐 동안 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만." 영국인이 형무관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그 말을 통역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형무관은 말했다. 영국인은 가죽 표지로 장정한 자기의 복음서를 꺼냈
다.
"그럼, 통역을 좀 부탁합니다."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말다툼과 싸움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을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는
싸우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 봐 주십시오. 그
리스도의 계율에 의하면 우리를 모욕한 사람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그들이 알고 있는지 말입니다."
영국인의 말과 질문을 네플류도프가 통역했다.
"상관에게 말하면 그 상관이 해결해 주겠지요." 위엄이 있는 형무관을 곁눈질하며 죄수
하나가 질문하듯 말했다.
"때려눕혀 버리면 돼. 그러면 모욕도 안 받게 될 거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
동감이라는 듯 몇 군데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플류도프는 그들의 대답을 영국인에
게 통역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계율에 의하면, 그와는 전혀 반대로 행동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한쪽 뺨도 내주어야 한다고요." 영국
인은 자기 뺨을 내놓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통역을 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 자신이 한번 해보라지."
어느 목소리가 말했다.
"다른 뺨까지 얻어맞는다면, 그 다음엔 어디를 내밀어야 하나?" 누워 있던 환자가 말했다.
"그랬다가는 만신창이가 되겠군."
"어디 한번 해보시지 그래?" 뒤쪽에서 누군가가 말하고 유쾌한 듯이 웃어댔다.
웃음보가 한꺼번에 터져서 감방 전체가 웃음 바다로 변했다. 조금 전에 얻어맞은 사내까
지도 피와 콧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웃어 대고 있었다. 병자도 웃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당황하는 빛이 없이, 영국인은 신앙이 잇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게 되고 용이하게 된다는 것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질문을 한번 해주십시오. 술을 마시느냐고요?"
"그럼요, 마시고말고요." 한 목소리가 이렇게 대꾸하자, 그와 동시에 또 다시 비웃음과 폭
소가 터져나왔다.
이 감방 안에는 네 사람의 병자가 있었다. 왜 병자들만 한곳에 따로 수용하지 않느냐는
영국인의 물음에 형무관은 본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이 병자들은
전염병 환자들이 아니며 병원의 의사 조수가 가끔씩 와서 진찰하고 치료도 해준다고 말했
다.
"벌써 두 주일이나 조수가 나타나지 않는걸요."하고 누군가 말했다.
형무관은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다음 감방으로 안내하였다. 또다시 문이 열리고 전
원이 일어섰고 조용해졌으며, 영국인은 또다시 복음서를 나누어 주었다.
다섯 번째 감방에서도, 여섯 번째 감방에서도, 좌우 양편 어떤 감방에서도 모두 마찬가지
였다. 어느 감방을 들여다봐도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 굶주린 사람, 게으른 사람, 병에 걸려
앓고 있는 사람, 모욕당한 사람, 감금되어 있는 사람들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상황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영국인은 복음서를 예정 부수대로 나누어 주고 그 이상은 더 나누어 주지 않고 설교도 하
지 않았다. 비참한 광경과, 특히 숨막힐 듯한 공기가 그의 정력을 꺾어 버렸는지 그 후부터
는 이 감방에는 이러이러한 죄수가 수용되어 있다고 각 감방마다 형무관이 설명해 주어도
그저 "좋습니다."하고만 되풀이 중얼거릴 뿐 다음 감방에서 다음 감방으로 옮겨다녔다.
네플류도프 역시 거절하고 떠날 기력도 없고 해서 여전히 피로와 절망감에 싸여 몽유병자처럼
그 뒤를 따라다녔다.
27
네플류도프는 유형수의 한 감방에서 오늘 아침 나룻배에서 만났던 그 이상한 노인을 발견
하고 무척 놀랐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주름살투성이인 얼굴의 이 노인은 더럽고 어깨가 해
진 회색 셔츠와 그와 똑같은 바지를 입고 나무 침대 옆에서 맨발로 마룻바닥에 앉아 힐책하
는 듯한 날카로운 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더러운 셔츠의 해진 곳으로 엿보
이는 그의 말라빠진 몸은 가엾게 여겨질 만큼 쇠약해 보였으나, 그 얼굴만은 나룻배에서 보
던 때보다도 더욱더 날카롭고 진지하며 생기가 넘쳐 흘렀다. 죄수들은 다른 감방에서와 마
찬가지로 형무관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모두 벌떡 일어나 부동 자세를 취했지만 그 노인만
은 그대로 앉아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의 눈은 빛났고 눈썹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일어섯!" 형무관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노인은 꼼짝 않고 비웃는 듯이 싱긋 웃을 뿐이었다.
"너의 앞에는 네 부하들이나 서는 거겠지. 그러나 나는 네 부하가 아니란 말이야. 너도 얼
굴에 낙인이 찍혀 있구나..."하고 노인은 형무관의 이마를 가리키면서 맞받았다.
"뭐 어째?" 형무관은 한 걸음 그의 앞으로 다가가 위협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형무관에게 네플류도프가 급하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수감되었나요?"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이리로 보낸 것입니다. 이런 자는 보내지 말라고 부
탁을 했지만 그래도 자꾸만 보내는군요."하고 화가 난 듯이 노인을 곁눈질로 노려보면서 형
무관이 말했다.
"으응, 당신도 역시 반그리스도군이었군?"하고 노인이 네플류도프한테 말을 했다.
"아닙니다. 나는 참관자일 뿐이오."하고 네플류도프는 대답했다.
"그럼 반크리스트교도들께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구경하러 왔다는 거요? 자, 어서 보시
오. 한 연대쯤이나 되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한 우리 속에 가두어 두다니. 사람이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는 게 당연한데, 이런 곳에 돼지처럼 처박아 두고 일도 시키지 않고 처
먹이고만 있으니 모두 짐승이 될 수밖에 없는 거지."
"이 노인이 뭐라고 말하는 겁니까?"하고 영국인이 물었다.
네플류도프는 형무관이 사람을 감금해 두는 것은 부당한 짓이라고 노인이 비난하고 있다
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 이렇게 한번 물어 봐 주십시오. 법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를 해
야 될 것이냐고요."하고 영국인이 말했다.
쭉 고른 이를 드러내면서 노인은 이상스럽게 웃었다.
"법률이라!" 노인은 경멸하는 듯한 투로 되뇌었다.
"자기네들이 먼저 사람들이 가진 것을 모두 약탈해서 땅도 재산도 다 빼앗고 거역하는 사
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나선, 그때서야 약탈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하는 식의 법률을
만든 것 아니냔 말이오. 그런 법률은 그러기 전에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야."
네플류도프가 그대로 통역했다. 영국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에 와서 도둑이나 살인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걸 한번 물
어 봐 주십시오."
네플류도프는 그 말을 전했다. 노인은 얼굴을 무섭게 찡그렸다.
"자기 이마에서 먼저 반그리스도의 낙인을 떼버리는 게 좋다고 말해 주시오. 그러면 도둑
도 살인도 다 없어질 테니까. 그렇게 말해 주시오."
"이 사람은 돌았군요." 영국인은 네플류도프가 노인의 말을 통역해 주었을 때, 이렇게 말
하고 어깨를 움츠리며 감방을 나섰다.
"인간은 자신의 일만 하면 되는 거야. 남의 일에는 참견한 것이 없어. 자기는 자기고 남은
남이니까. 누구를 벌주고 누구를 용서할까 하는 것은 하느님만이 아는 것이지 인간이 할 수
없는 거야."하고 노인은 말했다.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는 거야. 다른 주인이란 필요가 없는 거지. 자, 어서 가라고, 어
서 가!" 노인은 성난 듯 미간을 찌뿌리고 아직도 감방 안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네플류도프
를 번득이는 눈으로 쏘아보며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반그리스도의 하수인들이 사람을 미끼로 써서 이를 기르고 있는 걸 잘 보았겠지? 자, 가
라. 어서 나가!"
복도로 나왔을 때, 네플류도프는 영국인이 형무관과 같이 문이 열려진 사람이 없는 방 앞
에서, 이 감방의 용도를 묻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형무관은 이 곳이 시체실이라고 하였다.
"오!" 네플류도프의 통역을 듣고 영국인은 이렇게 소리지르면서 거기에 들어가 보고 싶다
고 말하였다.
시체실은 조그마한 보통 감방이었다. 작은 램프가 하나 벽에 켜져서, 한 구석에 쌓여 있는
배낭과 장작, 그리고 오른편 나무 침대 위의 시체 네 구를 희미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삼베
셔츠와 바지를 입은 한 시체는 큰 키에 짧은 턱수염을 뾰족하게 기르고 절반쯤 머리를 깎은
사내였다.
시체는 벌써 오래 전에 굳어져서 푸르죽죽한 두 손을 아마 가슴 위에다 모아 놓
은 것 같았으나 지금은 벌어져 있었고, 맨발인 두 발도 같이 벌어져서 발바닥이 따로따로
삐죽 내보였다. 그 옆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또 한 시체는 흰 재킷에 스커트를 입고 숱 적
은 머리를 조그맣게 땋아내린, 코가 작고 뾰족한 주름 투성이의 누런 얼굴을 한 노파로, 역
시 맨발로 머릿수건도 쓰지 않고 있었다.
노파의 뒤편에는 무엇인지 보랏빛의 물건에 감싸
여진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그 빛깔은 무엇인가를 네플류도프에게 생각나게 해주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시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위로 뾰족하게 뻗쳐진 짧은 턱수염과
날이 선 아름다운 코, 새하얗고 높은 이마와 숱 적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모든 것이 낯익
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다. 바로 어제 이 얼굴이 흥분 속에 분개도
하고 괴로와도 하는 것을 보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안하고 움직이지도 않는, 표현할 수 없
이 아름다운 얼굴로 거기 누워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크르일리조프였다. 아니, 크르일리조프가 남긴 물질적 존재의 전부였다.
'무엇 때문에 그는 괴로와했던가? 무엇 때문에 그는 살고 있었던가? 지금 그는 그 이유를
알았을까?' 네플류도프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대답은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음 이외
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러자 별안간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네플류도프는 영국인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간수에게 안내를 부탁하여 밖으로 나오
자 오늘 밤에 경험했던 것 모두를 곰곰히 되새겨 보기 위하여, 조용히 홀로 있고 싶어서 마
차를 달려 여관으로 돌아왔다.
28
네플류도프는 자려고도 않고 오랫동안 여관방 안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카추샤에 과
한 문제는 결말이 나버렸다. 이제 그는 카추샤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것이 슬프기도 했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 일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
것은 결말이 나지 않았을 뿐더러 그 어느 때보다 한층 더 강하게 그를 괴롭히고 더욱 강렬
하게 그의 행동을 요구했던 것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그가 계속해서 듣고 보아 온 그 가공할 만한 온갖 죄악들, 그리고 크르
일리조프를 파멸시켜 버린 저 사악은 자기의 승리를 구가하면서 이 세상 위에 군림하고 있
었다.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기는커녕 그것을 어떻게 정복해 나갈지 그 가늠
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냉담한 장군들, 검사들, 형무관 등에 의해서 여러 면으로 부패된 공
기 속에 감금되어 있는 저 수백 수천의 학대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권력자들의 죄
상을 폭로하여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있는 그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이상한 노인이 떠오
르고, 시체들 틈에 뉘어져 있던 분사한 크르일리조프의 백랍같이 아름다운 얼굴도 떠올랐다.
그러자 네플류도프는 그 자신이 광인인가, 아니면 자기네들을 총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서 모든 부정한 행위를 자행하는 저 위정자들이 광인인가 하는, 전부터 느끼던 의문이 더욱
새로운 힘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고 그 해답을 요구하였다.
걷다가 지치고 생각하다가 지쳐, 그는 램프 앞쪽에 놓인 긴의자에 걸터앉아서 아까 호주
머니에서 무얼 꺼내다가 테이블 위에 내던졌던, 그 영국인에게 기념으로 받은 복음서를 별
생각 없이 펼쳐 보았다. '이 가운데는 온갖 것의 해결이 있다고 하지만,'하고 그는 혼잣말
을하면서 복음서를 열고 그 열려진 쪽, 마태복음 제 18장을 읽기 시작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2.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
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4.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
이다."
'그렇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자기가 마음의 평화와
삶의 희열을 느꼈을 때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마음을 가졌을 때뿐이었다는 것을 상
기해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6. 그러나 나를 믿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이건 무얼 뜻하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받아들이며, 어디로 받아들인다는 말일까? 또
내 이름으로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런 마이 자기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전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자기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더구나 맷돌을 목에다 단다든가, 깊은 바다라든가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
까? 아니 이건 좀 이상한 데가 있다. 정확하지 않다. 분명하지가 않아.' 지금껏 몇 년이나
복음서를 읽다가는 언제나 이렇게 명확치 않은 대목에 싫증이 나서 집어던졌던 일을 기억하
며 그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또 7, 8, 9, 10절을 읽어 나갔는데 거기에는 온갖 악의 유
혹과, 그 유혹이 반드시 이 세상에 올 것이라는 것과, 사람들이 지옥의 불 속으로 떨어져 벌
을 받으리라는 것과, 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어린 천사의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너무나 모순투성이군.'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좋은 점이
어디엔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는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11.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12.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13.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14. 이와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것없는 자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
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렇다, 그들이 파멸하는 거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도 수백 수천의 인간이
파멸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는 생각하였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제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
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
라."
23.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24. 셈을 시작하자 1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25.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갚아라.'고 하였다.
26.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
겠습니다.'하고 애걸하였다.
27.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보냈다.
28.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은 진 동료를 만나자 달
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고 호통을 쳤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하고 애원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감
옥에 가두어 두었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32.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33.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고작 이런 것뿐이란 말인가?" 성경을 읽으면서 네플류도프는 별안간 소리내어 이렇게 부
르짖었다. 그러자 그의 전존재의 내부의 소리가 이렇게 소리쳤다. '그렇다, 그런 것뿐이다.'
그리고 정신 생활로 사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 네플류도프에게서도 일어났
다. 즉 처음엔 이상하고, 역설적이고, 농담같이도 생각되던 것이, 차츰 실생활 속에서 확증을
찾아내게 되고, 드디어는 갑자기 가장 단순하고 의심할 바가 없는 진리로서 그의 앞에 대두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그 무서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
는 단 하나의 확실한 방도는 사람들이 항상 하느님께 대하여 자기 자신을 죄인이라 인식하
고, 따라서 자기에게는 절대로 남을 벌준다든가 고쳐 줄 만한 힘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는 감옥에다 수인 중계소에서 목격한 온갖 무서운
죄악도, 이러한 사악을 감행하오 있는 태연 자약한 태도도, 요컨대 그들 자신이 악인이면서
악을 교정하려는 따위의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원하는 데서 생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죄 많은 인간이 죄 많은 인간을 교정하기 위해 기계적 방법으로 그것을 달성하려고 생각하
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온갖 것이 남겨주는 결과는, 생활이 어려운 탐욕스러운 사람들
이 가장된 형벌과 인간 교정의 직업에 종사하여 그 자신이 극단적인 타락에 빠짐과 동시에,
자기가 괴롭히는 사람들마저도 끊임없이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네플류도프에게는
자기가 목격한 이런 공포가 어디서 생긴 것이며, 또한 그것을 근절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뚜렷해졌다. 오늘까지 그가 간절히 찾아다녔던 해답은 실로 그리스도사 베드로에
게 해준 그 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사람은 죄 없는 자가 없는 것이며, 그에 따라 사
람을 벌주거나 교정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모든 사람들을 몇 번이라
도 끝없이 용서해야만 한다는, 그 한 가지 속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이 이렇게 간단할 리는 없다.' 네플류도프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
다.
그러나 지금껏 그는 그 정반대의 일에만 익숙해 왔었기 때문에 처음엔 아주 이상하게 생각
되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이론적일 뿐만 아이라 가장 실질적인 해결 방법이라는 것을 명확
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악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둘 것인가?'하는 항상 느끼고 있던 이러한 반문에도 이제 그는 당황해
하지 않았다. 만약 형벌이 범죄를 감소시키고 범죄자를 교정시킨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
반박은 큰 뜻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전혀 반대로 입증되어, 사람이 사람을
교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롭고 비도덕적이며, 잔혹하기가 이를 데 없으므로 그러한 일
에서는 손을 떼야만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몇 세기 동안에 걸쳐서 너희가 범죄자라고 인
정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숱하게 처벌해 왔다. 그것으로 죄인이 근절되었던가?
아니, 근절은 고사하고 형벌에 의해 한층 더 타락해 버린 이 죄인들과 판사, 검사, 예심 판
사, 형무관 따위의 사람들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또 다른 이들 죄인들 때문에 오히려 그
수가 불어나고 있지 않은가?' 지금에 와서야 네플류도프는 사회와 질서를 존속시키고 있는
타락에도 불고하고 사람들이 서로 동정하고 서로 사랑하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
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네플류도프는 이런 생각의 확증을 '마태복음'속에서 찾고자 하는 생각으로 처음
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항상 그를 감동시켰던 산상 수훈을 읽는 동안, 오늘 비로소 그는
그 설교 속에는 아름답고 추상적인 사상과, 과장되고 씰행 불가능한 사상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하게 실제적인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계율이 있다
는 것을 알았다.
그 계율이 실행되기만 한다면 인간사회는 보다 새로운 체제를 형성하고,
그렇게도 네플류도프를 분개시켰던 온갖 폭력이 저절로 소멸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인 지상 천국을 누리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계율은 다음의 다섯 조항이었다.
제1의 계율(<마태복음> 제5장 12~26절), 사람은 형제를 살해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형
제에 대하여 성을 내서도 안 된다. 누구든 형제를 하잘것없는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구와 싸우는 일이 있을 때는 먼저 그와 화해를 하고 난 뒤, 하느님께 예물
을 바쳐야 한다. 즉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제2의 계율(<마태 복음> 제5장 27~32절), 사람은 간음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여자의
아름다움을 향락해서도 안 된다. 일단 한 여자와 맺어졌다면 절대로 그녀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
제3의 계율(<마태 복음> 제5장 33~37절>),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거짓맹세를 하거나 거
짓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제4의 계율(<마태복음> 제5장 38~42절>) 식의 복수를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만약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한쪽 뺨도 내밀지 않으면 안 된다. 모욕을 용서하여 겸허한 마음으
로 참고, 사람들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이면 누구에게라도 거역하지 마라.
제5의 계율(<마태 복음> 제5장 38~42절), 사람은 원수를 미워하든지 싸워서는 안 되며 그
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돕고 그들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플류도프는 꼼짝도 않고 타오르는 램프 불빛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우리들 생활의
온갖 추악상을 생각해 보면서, 그는 만약 세상 사람들이 이 같은 계율에 따라 생활해 나간
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훌륭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
했던 환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흡사 그것은 오랫동안 겪어 온 괴로움과 고통 끝에
별안간 안식과 자유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
그는 밤새도록 밤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
지만, 지금껏 몇 번씩이나 읽으면서도 찾아내지도 못했던 말씀의 의미가 이제서야 비로소
명확히 해득되는 것이었다. 흡사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는 이 복음서 가운데서
자신이 계시된 필요하고 중요하며 또한 기쁜 요소를 흠뻑 흡수하였다.
그리고 지금 읽은 것
이 죄다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알기는 했었
지만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고 또 믿지도 않았던 것을, 이제는 명확히 의식을 하게 된 것같
이 여겨졌다. 지금이야말로 그는 완전히 인식하고 또 믿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계율이 실행만 된다면 인간으로서 원하고 기대하는 최상의 행복을 느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확신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이 계율을 실행하는 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의미가 없고, 또 그 가운데 인생의 유일한 합리적인 의의가 존재하고 있으므
로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곧 벌을 초래하는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또한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교의 전체에서 맥맥이 흘러나온 것이지만,
그것이 특히 뚜렷하고 강력하게 묘사된 것은 포도밭 농부들의 우화 속에서였다. 농부들은
주인들의 일을 하기 위해서 맡겨진 포도밭을 자기네들의 재산이라 여기고, 포도밭에 있는
모든 것은 전부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포도밭에서 인생을 향락
아는 것만이 자기들의 일이라 여겨, 주인의 존재는 잊고 주인이나 주인에 대한 그들의 의무
를 상기시키려 드는 사람들을 몽땅 죽여 버렸던 것이다.
'우리들도 그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하고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우리 자신이 우
리 생명의 주인이라든가, 생명은 우리의 쾌락을 위해서 부여된 것이라든가 하는 불합리한
신념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어리석은 생각인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이 세
상에 보내진 존재라면, 그것은 그 어떤 의지에 의해서 어떤 목적을 진고 보내지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지 자기의 향락만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굳
게 믿고 있다. 이렇게 되면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실행하지 않은 포도밭의 농부가 보복
받아 비참한 앞날을 맞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무참한 경우를 당할 것이 자명한 사실이
다.
그런데 주인의 의지는 이들 계율만 실행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이 지상에
는 하느님의 왕국이 세워지고 사람들은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을 얻게 될 것이
다.'
"너희들은 하느님의 왕국과 그 진실을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은 모두 너희들에게 졸아
가리니."라고 하였지만, 사람들은 그 '나머지 것'만 찾으려고 했으니, 그것이 발견되지 않음
은 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 필생의 사업이다. 이제 한가지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더니, 또
다른 일이 시작되는 구나.'
그 날 밤부터 네플류도프에게는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가 새로운 생활
조건에 들어갔다는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그의 신상에 일어나 모든 것이 지금까지와는 전
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새로운 생의 시작이 어떠한 결말을 맺을지
그것은 미래가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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