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날새와 함께하는, 2026년 6월 25일 목요일입니다. 창세기 사십구장, 20절 말씀에서 '넉넉한 빵집 맛있는 빵집' 이라는 제목으로 창세기 이야기를 드립니다.
20절: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아멘
시골 살던 저는 대구에 이사를 왔어, 그때 처음으로 빵이라는 것을 구경을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빵의 종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살던 집 근처에는 수형당 이라는 빵집이 있었습니다. 수형당 빵집은 학교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수형당 빵집 앞을 지날지라도 빵을 먹어봤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였습니다. 수형당 빵집 윈도우에 진열되어 있는 빵을 보는 순간 배고픔이 확 밀려오면서 '저걸 하나만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쳐 먹었다가 19년 징역살이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학교에는 구내매점이 있었는데 매점 앞을 지나게 되면 아이들이 크림빵이나 곰보빵이나 아니면 꽈배기를 사들고 먹는 모습을 보면 진실로 먹고 싶었습니다.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교문 앞을 혼자 걸어서 나오는데, 이기활이라는 우리반 친구가 뒤에서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우리 집에 놀러 가지 않겠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기활이에게 "너네 집이 어디냐?" 하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그리 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친구 집이 빵 가게는 아니고 빵을 만드는 집이었습니다. 살림집 뒤편에 있는 작은 창고 안에서 친구 아버지와 어머니가 빵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우리 학교 매점에서 볼 수 있었던 크림빵과 곰보빵과 꽈배기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우리 학교 매점에서 파는 크림빵과 곰보빵과 꽈배기가 바로 이 친구의 집에서 만든 것이라는 말을 그날 들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또한 굽는 과정에서 모양이 이그러졌거나 찌그러졌거나 혹은 빵이 많이 탄 것은 아니지만 탄 것처럼 보이는 그런 빵들을 한 소쿠리나 주셨습니다. 그날 나는 빵을 원 없이 먹었습니다. 집에 돌아올 때 친구의 어머니는 부러진 것이 섞여있는 꽈배기와 빵까지 한 봉지를 담아 주셨습니다.
야곱은 아셀에게는 독특한 축복을 하였습니다. 아셀은 레아의 여종인 실바에게서 태어난 야곱의 아들이었습니다. 아셀이라는 이름은 '행복한 자', '기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셀 지파는 비옥한 지역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셀 지파에게서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나왔으며, 더욱이나 왕의 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을 제공할 정도로 먹을 양식에 복을 받은 지파였습니다. 아셀은 그의 이름처럼 먹는 것으로 기쁨을 주는 지파였으며 행복을 주는 지파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식을 넉넉하게 주십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고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따르던 무리들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루는 갈릴리 호숫가에 있던 산에 올라가 거기 자리를 잡으시고 앉으셨을 때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무리들이 사흘이나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들으시고 그것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실 때에 배부르도록 먹여주십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먹을 수 있도록 먹고도 많이 남도록 주십니다.
교회는 풍성하게 주는 곳입니다. 양식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도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마태복음 18장 8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셨습니다. 지금도 교회는 각양 은사들로 병든 자와 고통받는 자들을 고쳐주고 도와주고 배부르게 해줄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저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 16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줄 수 있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넉넉한 은혜를 받아야 하며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에게 없으면 누구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건강도 재물도 지혜도 내가 먼저 풍성하게 받아야만 병들고 고통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내가 거저 줄 수가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볼 때 불쌍하게만 생각할 뿐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도록 우리들이 먼저 풍성한 은혜를 받기를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모 방송국의 어린이 노래자랑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르려고 무대에 올라온 한 여자아이에게 사회자가 "장래 무엇이 되고 싶어요?" 하고 물었는데, 그 여자아이는 마치 대답할 말을 준비했다는 듯이 주저하지 않고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회자가 "왜 의사 중에서도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어요?" 하고 물었을 때, 자기 동생이 백혈병으로 아파하다가 얼마 전에 가족들 곁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 여자아이는 자기는 앞으로 아파하는 어린아이들을 치료하는 소아과 의사가 될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려고 하면, 내가 먼저 되어야 하고 내가 먼저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왕의 수라상을 차려줄 수 있는 넉넉한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기름으로 상징되는 성령 충만하여 말씀도 나누어 주고 예수님의 사랑도 나누어 주며 곁에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며 도와주는 것이 풍성하도록 먼저 우리들이 넉넉하게 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넉넉한 빵집이 되며 맛있는 빵집이 되어 흩어 구제하며 땅끝까지 나눠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날새 :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신다.(사 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