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1. 큐티
마태복음 16:1 ~ 12
요나의 표적과 누룩
관찰 :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다
- 1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요구한 것은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때까지 보여준 표적이 하늘로서 온 표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표적을 달라는 것이었고, 그것이 구약적인 배경으로만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메시야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 그 나라의 복음은 중첩된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들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가 사실은 예수님으로 이루시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증거
- 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 3절.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궃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 새시대가 열렸음을 주님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음에도 여전히 옛것만 우기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4절.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 모두가 다 이스라엘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던 때,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것이었고, 이스라엘의 사명이 그러함에도 선지자마저도 굳어 있던 때,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열방을 향한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그 일에 동참함으로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대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서로 융합되지 못함에도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에는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구약적인 상황으로 자신들만 선민이고, 자신들이 바라 왔던 대로 한꺼번에 와르르 천국이 임한다고만 생각하고 있던 때, 주님은 그렇지 않음을 요나의 표적과 비유하심으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틀렸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습니다. 표적을 보아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에 주님은 보여줄 표적이 없고, 다만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 5절.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나니”
-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 7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 8절.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 9절.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 10절.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 11절.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 12절.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 주님은 제자들이 떡 가지고 오는 것을 잊은 것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셨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이 양식을 준비하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주님의 책망으로 오해했습니다.
- 주님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떡에 대해서라면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인 것을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떡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가르치는 잘못된 교훈을 누룩으로 비유하여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 요나의 표적과 연관하여 주님의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주님께 요구한 그들 자신들만의 성경해석에 의한 구약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로마를 몰아낼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제국의 역사와 권세를 깡그리 무너뜨리고 새롭게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을 통하여 이루실 것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관점만을 가지고 예수님을 설득하려고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중첩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열방의 구원을 향한 마음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이들의 잘못된 누룩 같은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제나 그러한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가르침 :
1)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가르침은 누룩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구약을 잘못 해석한 오류입니다. 버그입니다. 그로인해서 선민사상이 나왔고, 유대주의적 율법주의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결국 모슬렘으로 이어지고, 모든 기독교의 율법주의적 구원관과 연관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중에 시오니즘을 주장하고, 기독교에도 그러한 것이 영향을 받아 예루살렘 회복 운동으로 이어지는 사상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간신히 벗어난 인간의 죄성이 새롭게 만들어낸 흉측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스며들어 있는 이러한 잘못된 교훈을 주님은 경계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 제자들에게도 주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경계하라고 하신 것을 보면, 주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잘못된 길을 접어든 이들을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잘못된 신앙의 길에 접어든 이를 교정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3) 요나의 표적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완성되는 표적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 이르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온전히 드러나고 주님의 제자들이 땅 끝을 향하게 되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4) 요나의 표적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고 이해하던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차원의 표적이었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잘못이해하고 적용하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주님이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듣지 못하는 이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주님은 그 필요에 대해 순종하셨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말씀은 바르고 정확하게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구약이 해석되어지고, 그렇게 해석되어진 구약의 말씀으로 신약이 이어지고, 또 신약이 해석되어짐으로 오늘의 가르침과 적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가치를 바르게 드러내는 일이 말씀 사역자인 나의 사명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일상의 삶에서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구합니다.
3) 이상웅 목사님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대전에 내려갔다옵니다. 가고 오는 길과 그곳에서의 만남을 주님이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