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살아 있을 때, 동문산에서 도토리를 주어서 묵을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그 후 다시는 만들 생각이 사라졌다.
도토리를 말리고 방앗간에서 가루로 만들어 물에서 쓴 맛이 빠질 때까지 며칠을 담가두고, 겨우 내용물로 묵을 쏘는데 거의 한 말 가까이 도토리가 묵 한 줌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도토리묵이 먹고 싶으면, 비록 밀가루가 섞였다고 해도 사먹는 쪽을 택했다.
그것은 아내가 가장 바라는 바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아내는 도토리묵에 반대했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살필 때 제일 헷갈리는 게 참나무 종류다. 식물도감에 ‘참나무과’는 있어도 ‘참나무’는 없다.
우리가 참나무로 부르는 나무는 보통 여섯 가지 종을 가리킨다.
수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게 굴참나무다. 세로로 갈라진 수피는 무르고 두터워 코르크 마개로 쓰인다.
수피의 굴이 깊어 굴참나무다. 굴참나무 잎의 뒷면은 회백색인 데 비해 상수리나무는 뒷면이 녹색이다.
이 둘은 잎맥의 끝에 바늘 모양의 톱니가 나 있다. 갈참나무는 잎맥의 끝에 가시가 없고 잎 가장자리가 물결처럼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이에 비해 잎과 열매가 작으며 열매의 모양이 길쭉한 게 졸참나무다. 여기서 나는 열매가 도토리묵을 만들 때 제일 맛이 좋다 한다.
갈참나무의 수피는 그물 모양으로 자잘하게 갈라져 있지만, 졸참나무는 불규칙한 선을 긋듯 세로로 길게 갈라져 있다.
참나무류 중에 잎이 유독 큰 나무가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다. 떡갈나무 잎은 사람의 얼굴을 가릴 수 있을 정도다.
떡을 찔 때 밑에 까는 데 쓰였다고 떡갈나무다. 떡갈나무는 잎자루에 자잘한 털이 있지만 신갈나무는 털이 없이 매끈하다. 신발 밑창으로 깔았다고 해서 신갈나무다.
도토리를 맺는 참나무는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무수히 얻어맞으며 자랐다. 떡메나 도끼로 나무줄기를 사정없이 후려치곤 했던 것이다. 오래 묵은 참나무 아래 가거든 그 상처도 쓰다듬어보자. 도토리를 줍게 되거든 멧돼지와 다람쥐와 청설모가 먹을 것까지 몰수해 오지는 말자.
앞으로 산에 있는 도토리는 맷돼지에게 주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