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허민
어제 나는 이 문장을 쓰지 않았다
일주일 전 나는 종이에 벤 이따위 상처도 없었지
한 달 전까진 올해 첫눈을 보지 못했고
일 년 전에는 프라하 카를교 노숙자의 검은 개를 알지 못했다
삼 년 전까지 옥탑방에서 떠나오지 못했고
오 년 전엔 이국의 거리에서
일기조차 쓸 수 없었다
(국경을 넘지 않았으므로)
칠 년 전에는 만나지도 못했다 너를
하여 십 년 전에는 뜨겁고 슬픈
옆모습을 알지 못했었지
십오 년 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이십 년 전의 첫사랑을 여전히...
이십오 년 전엔 용서하지 못했다 부모를
삼십 년에는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매일 밤을
그리고 삼십오 년 전은 기억할 수가 없다
바랜 사진 한 장이 겨우
삼십칠 년 전 여름 내 이름을
종이 위 쓰지도 못했으므로
사십 년 전
오십 년
더 이상 감기지 않는다
태엽은
이제 겨우 조금 더 멀리 가려 하는 것
거친 숨을 몰아쉬다
마침내
심장처럼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월호 발표
허민 시인
1983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웹진 《시인광장》을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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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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