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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840
■ 3부 일통 천하 (163)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8장 장평(長平) 전투 (5)
'조괄(趙括)이라...... 이제 되었다!'범수(范睢)는 함양성 안에 앉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즉각 다음 계획에 착수했다.진소양왕에게 말했다."염파(廉頗)를 상장군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상당(上黨) 땅을 점령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괄이라는 장수도 꽤 유능한 모양이던데, 왕흘(王齕)이 그를 감당할 수 있겠소?"
범수(范睢)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역시 대왕께서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십니다.
능히 천하를 하나로 아우를 만한 안목을 지니셨습니다.""그게 무슨 소리요?"
"왕흘(王齕)이 유능한 장수이기는 하나 원래 염파나 조괄을 상대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습니다. 신이 입궐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왕흘을 대신할 다른 장수를 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누구요?""이번 일은 무안군 백기(白起)가 아니면 성취할 수 없습니다.
지금 곧 백기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장평으로 내보내십시오."
"그렇군. 우리에게는 왕흘 말고도 천하 명장 백기가 있었지."- 백기(白起).
지난날 그는 한ㆍ위나라와의 이궐(伊闕) 전투에서 적군 24만 명의 목을 베고 적장 공손희(公孫喜)를
사로잡음으로써 그 명성을 사해(四海)에 떨쳤다.그 뒤로도 그는 계속 한나라와 위나라의 크고 작은
성 60여개를 함락시켰고, 초나라 도성 언영(鄢郢)을 점령함으로써 그의 진가를 확인시켰다.
전국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명장 중 한 사람이다.
다만 그는 외척 세력인 양후 위염(魏冉) 계열의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위염이 축출된 후로 싸움터에 나가 공을 세울 기회가 부쩍 줄어들었다.
물론 정적 관계인 범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하지만 범수(范睢)는 과감히 백기를 천거했다.
'이번 기회에.........'위염의 일을 잊고 화해하자는 손짓이기도 했다.
범수의 입에서 무안군 백기의 이름이 나오자 진소양왕은 그 어느 때보다 기뻐했다.
그 역시 최고의 재상 범수(范睢)와 최고의 장군 백기(白起)가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 무안군 백기(白起)를 상장군에 제수하노라.전임 대장 왕흘(王齕)은 부장이 되어 무안군을 도우라!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여기에 범수(范睢)가 덧붙여 지시했다.
- 조(趙)나라는 백기 장군을 두려워한다.
결코 백기(白起) 장군이 상장군에 제수되었다는 것을 입 밖으로 내지 말라. 이 사항은
제일급 기밀로, 만일 이 기밀을 누설하는 자가 있으면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베리라!
무안군 백기(白起)는 그 날로 장평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조(趙)나라에서는 아무도 진군의 총사령관이 바뀐 줄을 알지 못했다.
조(趙)나라 신임 상장군 조괄(趙括)은 장평관에 도착하자마자 조효성왕에게 받은 부절(符節)을
염파에게 내보이고 지휘권을 양도 받았다.부절이란 왕을 대신하여 명령을 행사하는 일종의 신표(信標)다.
두 개의 대나무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본인이 지니고 다른 하나는 왕이 보관하는 것이 보통이다.
염파(廉頗)는 지연작전을 폄으로써 강맹한 진군의 공세를 막으려는 중에 난데없이 조괄(趙括)이
새로이 상장군에 제수되어 내려온 것을 보고는 크게 개탄했다.
- 아아, 우리 조(趙)나라도 이제 끝장이로구나!
병법서의 이론만으로 어찌 저 범 같은 진군의 공세를 막아내리오!
염파(廉頗)가 한단으로 돌아가자 신임 대장 조괄(趙括)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간의 모든 제도와
군령을 바꾸었다.심지어는 도처에 설치한 영채와 성루를 모두 뜯어 한 곳으로 모았다.
금문산 기슭에는 성(城)에 버금가는 하나의 큰 대영(大營)이 생겨났다.한(韓)나라 장수였다가
조나라에 투항한 전 상당 태수 풍정(馮亭)은 조괄의 이러한 배치를 보고 적잖이 불안함을 느꼈다.
"적군이 사방으로 포위해 군량로를 끊으면 우리는 하루 아침에 고립되어 굶어죽고 맙니다.
예전처럼 영채를 도처에 나누어 세우는 것이 안전합니다.""시끄럽소.
나는 새로운 전략을 시험하고자 하오. 옛날 방식으로는 결코 진나라를 이길 수 없소.
그대는 내가 어떻게 진(秦)나라를 격파하는가 지켜보기만 하시오."
조괄(趙括)은 모든 요직의 책임자를 자신의 심복 부하들로 갈아치웠다.이어 서릿발 같은 명을 내렸다.
- 진군(秦軍)이 오거든 즉시 나가서 싸우라. 물러나는 자는 목을 베리라.
적군이 달아나는데도 추격하지 않는 자 또한 참수형에 처하리라!
진나라 신임 상장군 백기(白起)는 장평 땅에 당도하자마자 전임 대장 왕흘의 보고를 받았다.
- 염파(廉頗)가 한단으로 소환당하고 난 직후 조(趙)나라는 모든 진영을 재배치하였습니다.
각처에 산재해 있던 영채를 한 곳에 모아 대채를 이루었고, 조(趙)나라 대군 45만 명은 모두
그 대채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백기(白起)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왕흘에게 명했다.
"우선 군사 3천 명을 내보내 조(趙)나라 군영으로 가서 싸움을 걸어보시오."
편장 하나가 3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조군 영채 앞으로 가 싸움을 걸었다.
조괄(趙括)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1만 군사를 내보내 응전케 했다.첫 싸움은 조군(趙軍)의 승리였다.
진나라 편장은 겨우 목숨을 구해 영채로 도망쳐왔다.그 싸움을 백기(白起)가 망루 높은 곳에 올라
지켜보았다.그는 자기 군사가 패해 돌아오자 왕흘에게 말했다."내가 이제 조군(趙軍)을 몰살시킬
방책을 알아냈소. 패하여 돌아온 장수에게 위로의 술을 내리시오."
그 시각.1차전을 승리한 조괄(趙括)은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보라, 우리 제 1진이 승리를 거두었다."그는 한시라도 빨리 진군(秦軍)과 결전을 벌이고 싶었다.
사자를 시켜 전서(戰書)를 진나라 군영에 보냈다.- 빠른 시일 내에 조나라와 진나라가 자웅(雌雄)을
겨룹시다.잠시 후 사자가 돌아와 진(秦)나라 측의 답신을 가져왔다.
- 좋소. 일단 우리는 10리를 물러나 있겠소. 내일 날이 밝으면 싸워 승부를 겨룹시다.
그때까지도 조괄(趙括)은 진군 대장이 왕흘인 줄로만 알았다.모든 장수들을 불러 호언장담했다.
"진군(秦軍) 대장 왕흘(王齕)이 일단 10리를 물러나겠다는 것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 반드시 왕흘을 사로잡아 천세만대까지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리라."
841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41
■ 3부 일통 천하 (164)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8장 장평(長平) 전투 (6)
백기(白起)는 여전히 숨듯 영채 깊은 곳에 앉아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비밀리에 모든 장수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왕분(王賁), 왕릉(王陵) 두 장수는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나가 싸우되,
이길 생각은 하지 말고 적군을 우리 쪽으로 유인해 내기만 하시오.
- 사마경(司馬梗)은 군사 1만5천을 거느리고 지름길로 빠져나가 적의 군량로를 끊으시오.
- 호양(胡陽)은 군사 2만을 거느리고 왼쪽에 대기하고 있다가 조군(趙軍)이 가까이 오거든
그들의 대채를 들이쳐 적의 후군을 포위하시오.
- 몽오(蒙鰲), 왕전(王翦) 두 장수는 날쌘 기마 5천씩을 이끌고 사세에 따라 접응하시오.
명령을 받은 진(秦)의 각 장수들이 제각기 떠나자 백기(白起)와 왕흘(王齕)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영채를 굳게 지켰다.다음날 아침.- 둥둥둥 .............!먼저 공격의 북소리가 울려퍼진 것은 조(趙)나라
군영에서였다.선봉장 부표(傅豹)가 앞서 나갔고, 그 뒤를 조괄(趙括)이 친히 따라갔다.
5리쯤 갔을 때였다.문득 전방에 진(秦)나라 군대가 나타났다.왕분(王賁), 왕릉(王陵)이 이끄는 군대였다.
"나가 싸우라!"조괄의 명령에 선봉장 부표(傅豹)는 바람처럼 앞으로 달려나가 진군(秦軍)을 덮쳤다.
진군 장수 왕분(王賁), 왕릉(王陵)은 대항해 싸웠으나 거세게 몰아붙이는 부표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부표(傅豹)는 놓칠세라 진군의 뒤를 쫓았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조괄(趙括)이 심복 장수 왕용(王容)을 돌아보며 명했다.
"부표(傅豹)를 도와 진군 장수를 사로잡아라!"풍정(馮亭)이 옆에 있다가 재빨리 간(諫)했다.
"진나라 사람은 승냥이와 같아서 원래 속임수를 잘 씁니다. 무작정 뒤쫓아서는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조괄(趙括)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부표(傅豹)와 왕용(王容)이 진나라 군대를 부리나케 뒤쫓아 10리쯤 달렸을 때였다.
진나라 본진의 영채가 홀연 눈앞에 나타났다.두 장수가 왕분과 왕릉을 잡는 것을 포기하고
뒤돌아서려 할 때였다.어찌된 일인지 진군의 영문(營門)이 열리질 않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진나라의 왕분(王賁)과 왕릉(王陵)은 영채 안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영채 주변을
빙빙 돌 뿐이었다.이것이 조괄(趙括)의 눈에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로 비쳤다.
"전군은 돌격하여 진군 영채를 공격하라. 가장 먼저 영문(營門)을 부수는 자에게는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왕께 아뢰어 1만 호의 영지를 내리리라."
그때부터 장평(長平) 들판에는 진군 영채를 깨려는 조군(趙軍)의 함성과 영채를 지키려는 진군(秦軍)의
함성이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그러나 진군 영채는 철옹성처럼 단단했다.
일절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조괄(趙括)은 사흘간 쉬지 않고 공격했으나 영채 밖으로 깊이 파놓은
함정 때문에 좀처럼 영문 근처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불화살을 날려보았지만 물 묻은 소가죽으로 덮힌 군막에서는 전혀 불길이 일지 않았다.
노기가 머리끝까지 치민 조괄(趙括)은 전령을 불러 명했다."너는 지금 당장 금문산(金門山)
대채로 달려가 후군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우리도 아예 이곳에다 대채를 세우고 총공격하리라!"
그때였다.뒤편 평원에서 한줄기 먼지가 일더니 조군 장수 소사(蘇射)가 나는 듯이 달려와 보고했다.
- 우리 대채가 지금 진군 장수 호양(胡陽)에게 포위당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제야 심상치 않은 기미를 눈치챈 조괄(趙括)은 분노하며 명했다.
"전군은 일단 여기에서 퇴각하여 대채로 돌아가라. 호양(胡陽)이란 놈부터 잡아 그 목을 진군 영채에
던져 넣으리라!"그들이 금문산 대채를 향해 달려가는 중에 문득 왼편 길에서 일지군(一枝軍)이
바람처럼 내달아왔다.진군 기마 장수 몽오(蒙鰲)였다.그는 조괄 앞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외쳐댔다.
"한단의 코흘리개 조괄아, 너는 아직도 백기(白起) 장군의 계책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느냐!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조괄(趙括)은 분노하는 중에 속으로 의심이 일었다.
'백기? 백기(白起)가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천하 제일의 병법가로 자부하는 조괄이었지만, 백기라는 이름에는 몸이 음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군사들 앞에서 내색할 수도 없는일.창을 꼬나쥐고 뛰어나가려는데 그보다 먼저 왕용(王容)이
말을 몰아 달려나갔다.잠시 혼전이 벌어지는 중에 이번에는 오른편 길에서 또 한 떼의 진군(秦軍)이
달려왔다.왕전이 이끄는 진군 기마대였다.몽오(蒙鰲)와 왕전(王翦)은 빠른 기동력을 이용하여
조나라 보병대를 유린하고 있었다.
조군 기마대가 달려오면 재빨리 뒤로 빠졌다가 물러나면 다시 돌진해오곤 했다.
이 때문에 조군(趙軍)은 병력의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약아빠진 놈들!"조괄(趙括)은 금을 울려 군대를 거두어 들인 후 아예 그 곳에다 영채를 세우려고 했다.
그것을 보고 풍정(馮亭)이 또 만류했다."모름지기 영채를 세우는 데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지형입니다.
이곳은 영채를 세우기에 적합한 곳이 아닙니다. 속히 금문산(金門山) 본영으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으십시오."
그러나 조괄(趙括)은 두 눈을 부라리며 꾸짖었다."그대는 임기응변도 모르는가."
그러고는 그곳에다 영채를 세우고 누벽을 쌓아 진군 기마대의 공격에 대비했다.
원래 조군(趙軍)은 전투 중이었던 탓에 군량미를 많이 가져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자 식량이 바닥났다.그러나 금문산(金門山) 대채는 호양에게 포위를 당한 실정이라
식량을 보내올 수가 없었다.유일한 방법은 한단에서 직접 수송해오는 길뿐이었다.
조괄(趙括)은 재빨리 수하 장수를 한단으로 보내 군량을 운반해오게 했다.그러나 어찌 알았으리오.
진군 장수 사마경(司馬梗)이 이미 한단으로 나 있는 군량로를 끊어놓았을 줄을...
졸지에 조괄(趙括)의 군대는 장평 들판에 고립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영채 앞에 한 장수가 늠름한 기상으로 서 있었다.
그 장수는 긴 수염을 휘날리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조괄(趙括)은 들어라. 나 무안군 백기(白起)가 여기 와 있노라!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조괄(趙括)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서늘함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서늘함이 아니라 섬뜩함이라고 해야 옳았다.눈앞이 캄캄해지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 정말로 백기(白起)가 이 곳에 와 있었구나!'조괄(趙括)은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감히 나가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한가지 다행인 것은, 백기(白起) 또한 선뜻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84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