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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처럼, 지상의 모래알처럼
옛날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하늘의 별이 수가 대략 6,000개라고 배운 적이 있다.
그 때는 보리죽에 감자를 썰어 넣고 끓인 것을 저녁식사로 먹고, 이웃집 어른들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옥수수 삶은 것을 먹기도 하였다.
아침에는 보리밥이라도 밥을 먹지만 저녁에는 칼국수가 아니면 주로 죽을 끓여먹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빵이며, 과자며, 과일 등 먹을 것이 많지만 그 시절에는 간식이라고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감자 삶은 것이나 먹을 수 있었고, 고구마나 땅콩은 농촌이지만 매우 귀했다.
그렇게 어린아이들이 간식이라고는 없으니, 저녁에 어머니가 칼국수를 하기 위해서 밀가루 반죽을 하여 안반(떡을 놓고 치기도 하며, 칼국수를 밀어서 썰 때 혹은 돼지를 잡아서 아교를 만들 때나 버역을 압축할 때 쓰는 나무로 된 커다란 도마같이 생긴 것)에 놓고 얇게 밀어서 가늘게 써는데, 안반 머리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손바닥 크기만큼 잘라서 주면, 그것을 아궁이에 가지고 가서 구우면 벙그렇게 부풀어 오르는데, 그것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다.
밀가루 반죽이 국수를 만들기 위한 것이니 설탕도 들어가지 않고, 베이킹파우더도 들어가지 않고, 달걀이나 마가린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맛이 있을 리가 없으니, 요즘 아이들은 아마 주어도 먹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그것을 국시꼬레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얻어먹기 위하여 어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할 때부터 안반머리에 앉아서 조르고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절대로 먼저 잘라주는 법이 없었다.
항상 다 썰어 갈 때 쯤 마지막으로 잘라준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칼국수 만드는데 열중하다가 아들이 안반머리에 앉아서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데도 잊어버리고 끝까지 모두 썰어버리면 너무도 서운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랑하는 아들에게 미리 잘라주어도 될 것이고, 또 잊어버리고 모두 썰어버렸으면 새로 반죽을 해서 주어도 될 텐데 절대로 그러지는 않으셨다.
어머니의 그 원칙이 변함이 없는 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데도 가능하면 원칙을 고수하려는 마음으로 다듬어 진듯하다.
그렇게 칼국수나 감자죽을 먹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우면,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마구 쏟아 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누어서 형제들이 북극성도 찾아보고, 북두칠성도 찾아보고, 견우성도, 직녀성도, 카시오페아도 찾아보며, 긴 줄을 치며 달아나는 별똥별도 쳐다보며 끝없는 상상의 세계를 헤매기도 한다.
그렇게 하늘을 쳐다보며 이 세상에서 천문학자가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커서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천문학자가 과학자 보다 훨씬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여름밤에는 모기가 그렇게 많아서 멍석 가에는 모깃불을 피워놓지만, 모기보다 연기가 더 견디기가 어려운 지경이어서 어른들은 모깃불을 왜 피우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모깃불은 보리 짚에 불을 붙이고는 그 위에 쑥이며 바랭이 같은 마르지 않은 젖은 풀을 올려놓으면 연기는 대단히 많이 나지만 모기를 퇴치하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는 듯하였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들들이 모기에 물릴까봐 밥을 새워 부채로 모기를 쫓아주었다.
밤에 멍석에 누워있으면 어느 동네에 늑대가 어린 아이를 물어갔다는 소문도 들을 수 있었고, 가끔씩 뒷산에서 개호지가 흙을 퍼붓기도 하였다.
개호지는 개갈가지라고도 하는데 실체를 본 적이 없으니 무슨 동물인지를 아직까지도 모른다.
고양이 과는 틀림없는듯한데, 그 당시 야산에 호랑이가 있을 리 만무하고 또한 삵이 가끔씩 닭을 물어가지만 삵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어른들은 그저 작은 호랑이 정도라고 생각하는듯하였다.
개갈가지가 흙을 퍼 부울 때는 삽으로 퍼붓는 것처럼 많은 양을 퍼붓는다고 하며, 어두운 밤에 사람이 걸어가면 계속 해서 앞에 가서 흙을 퍼붓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계속하게 되면 사람은 겁을 먹고 기절하거나 쓰러지면 잡아먹는다고 하였다.
그때는 여름밤에 허깨비가 많이 울고 다녔는데, 허깨비 우는 소리는 해액, 해액 하면서 날아가는 것 같은데, 그 허깨비는 어린아이의 죽은 귀신이라고 하여, 어린아이는 개를 무서워하니 허깨비가 날아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개를 부르느라고,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온 동네가 워리~ 워리~하면서 동네가 떠나갈 듯이 개를 불러댄다.
허깨비라는 것이 어린 아기가 죽은 혼이 구천을 떠돌면서 우는 소리라는데 그 소리가 들리면 무섭기도 하지만 몹시 기분이 나빴다.
어두운 밤하늘에 허깨비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흡사 솜뭉치가 날아가는 듯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왜가라나 백로가 밤에 날아가면서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만 확인 할 길은 없다.
그 때는 도깨비에게 흘린 사람도 가끔 있었고, 도깨비불은 자주 사람들에 보이기도 하였는데, 아마도 지금은 공해로 인해서 도깨비도, 허깨비도 멸종을 하여버렸는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 때는 늑대도 많았는데, 아이들도 물어가지만 주로 돼지를 많이 물어갔다.
돼지우리의 높이를 약 1.5M의 높이로 나무로 둘러치는데, 돼지우리도 파손하지 않고 그 무거운 돼지를 어떻게 물어 가는지 아직까지 의문이 풀리지를 않는다.
어른들의 말로는 늑대가 돼지우리에 들어가서 돼지를 우리바깥으로 물어서 집어던지고는 돼지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늑대가 우리바깥에 나와서 그 돼지를 받아 물고는 산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 때 하늘의 별이 그렇게도 많아서 하늘을 쳐다보면 좌르르하면서 마구 쏟아질 듯할 때도 6,000개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별이 아무리 쳐다봐도 그저 드문드문 보일 듯 말 듯 한데도 수도 모를 정도로 많다고 한다.
별의 수가 아니라 은하계와 같은 별의 무리도 우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무한대라고 하니 생각하면 속이 답답해진다.
우리의 지구가 속해있는 은하계에만도 수천억 개 아니 수조 개의 별이 있다니 그때처럼 하늘의 별은 모두 합쳐 6,000개라고 할 때가 속이 편하고 마음이 편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아마도 지상의 모래알보다 더 많은 것이 하늘의 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지상의 모래알은 유한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하늘의 별은 무한하다고 해야 할 듯하다.
우리 인간의 수도 지금은 60억이라고 하자만 아마도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 날 사람을 생각하면 인간의 수도 무한하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으스대도, 그저 수없이 많은 지상의 모래알처럼 하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아무리 내가 잘났다고 해 보아야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며, 내가 아무리 못났다고 하여도 나보다 더 못난 사람도 수도 없이 많으니 내가 잘났다고 으스댈 것도 없고, 못났다고 절망 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하늘이 높다고 발 저겨 서지 말고, 땅이 두텁다고 많이 밟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잘나고 못난 것은 무엇을 가지고 기준을 잡는지 이 나이가 되어도 잘 모르겠다.
통상적으로 잘 났다고 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그저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할 수 있다.
진시황도 그렇고, 알렉산더 대왕도 그렇고, 칭기즈칸도 역사상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사람들을 위대하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 해 보니 위대하다는 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사람들 외에도 위대한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참으로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역경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테레사 수녀도 인도의 빈민촌에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어려운 삶을 살다가 갔다.
그분들은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삶을 살았기에 거룩하고 위대하다고 하지만, 당사자들의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다.
현대에 와서도 우리니라에서는 작고한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일반사람들에게는 현대라는 대기업의 회장이라는 것과, 소떼를 몰고 고향 가는 모습만 보였지, 어린 시절 모진 가난과 장자를 잃은 아픈 가슴, 새벽에 작업복을 입고 험한 현장을 누비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살찐 돼지보다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하였는가?
우리가 인식을 바꾸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돼지는 사람이 먹다가 버린 음식물쓰레기까지도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으며, 좁은 우리 안에서도 배만 부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세상의 누구의 눈이 돼지 눈만큼 선하게 보이는 눈이 있겠는가?
돼지는 먹는 것도 까다롭지 않고, 거처도 까다롭지 않고, 그러고 누구를 해꼬지 하지도 않으며, 죽어서는 사람에게 봉사를 한다.
예를 들어 돼지가 소고기 불고기 맛을 알고, 냉난방이 완벽한 침대에서 자는 편안함을 알고 나면, 사료는 맛이 없어서 도저히 먹지 못할 것이며, 오줌똥이 질퍽거리는 좁은 돼지우리 안에서는 불편해서 절대로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돼지가 그런 맛과 안락함을 알고 나면 갈 곳은 죽음밖에 없다고 하겠다.
그래서 굶은 소크라테스가 살찐 돼지보다 낫다는 것은 참으로 편협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든 사안을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생각으로만 보고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옛말에 識字憂患이라고 글자를 알게 되면 근심이 많다고 하였다.
그러고 그 말을 識者憂患이라고 쓰고 보면 아는 사람은 근심과 고통이 많다는 말이 되니 글자를 안다거나 많이 아는 것이 결코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글자를 알면 지식이 많다는 말인데, 많이 알수록 걱정거리가 많아진다는 말이다.
그와 일맥상통하는 말일지 모르나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이라고 했듯이 사람이 많이 아는 것만이 꼭 좋은 일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스개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일을 하는데 이것저것 다 알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은 어차피 많이 알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수가 적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수가 많아서 도표로 그리면 정삼각형으로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잘난 사람이라면 아마도 친구나 배우자가 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 것일까?
그렇지만 내가 덜 알고, 덜 똑똑하고, 덜 잘났으면 배우자가 될 만한 사람도 많을 것이며, 친구가 될 만한 사람도 엄청나게 많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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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긴 글 잘 읽고 갑니다.
잘났다고 으스댈 것도 없이, 못났다고 기죽을 것도 없이
그저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어울려 나가야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아요 사람은 자기보다 잘난사람 한테는 가까이 가지 않지요...
조금내가 좌지우지 할만한 그런사람에게...가는...
그래서 잘난척하면 시기와 질투가....
완벽을 요하는 사람한테는 친구도 없고...사람도 없지요...
조금 엉성해야....친구도 사람도 있듯...
긴글속에 옛모습을 상상하며...재미있게 읽었네요...
늘 건강하시고 ....고은날 되세요.......ㅎ
고맙습니다.
선배님 글 잘읽었어요
사람은 타고난 인성
나이들어도 별로 변하지 않더군요
단체생활 해보니
아니다 싶은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란걸
알았어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늙어서 초등학교 동기생들 만나보면 70년 전의
어릴 때와 매우 닮아 있는 것에 놀랐습니다.
인격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인격이 다듬어진
사람을 절대로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논다는 말도 있잖아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살찐 돼지보다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하였는가?
우리가 인식을 바꾸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긴 글이라도 전체적으로 마음에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서 즐겨 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