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앙상담방에서 많은 질문글들이 올라 오는 것을 본다. -구원과 신의 존재에 대한-그러한 호기심이란 자연스럽다.
필자가 서양철학사를 공부하고 철학적 사유를 시작하게 된 후로 하나님(God)의 존재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과연 인격신(유대교, 기독교의 신)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성서를 봐도 저것도 인간이 쓴 것인데 어떤 드라마틱적(신화적)인 요소가 가미 되었지 않았을까. 예수의 이적(sign)도 하나님의 완전함을 묘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증명이 불가능한 것 아닌가.'
철학자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하는 말 거의 대부분이 옳고 틀린 말이 없었다. -ex)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나는 수긍이 갔다. 그들의 말은 논리적이고 지식과 전문자료에 의거한 것이었다. 철학을 하면 할수록 종교는 유치해졌다.
하지만 나는 다시 종교로 돌아 왔다. 나의 철학적 이성(philosophical reason)과 논리는 하나님의 존재(being)에 의심을 품을지 몰라도 나의 영적인(spiritual)면은 하나님을 원하고 또 원하고 그리워 했다.
나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철학적 이성에 의존하여 세상을 힘껏 그리고 도덕적으로 살아가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교회가 그리워졌다. 찬송가를 듣고 싶었고 그 순수한 마음을 가진 크리스천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들과 대화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싶었다. 무신론(atheism)적이고 범신론(pantheism)적인 삶은 나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 교회를 안 나가니 사실 인생에 재미가 떨어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교회는 다시 나가고 싶은데 그러자니 철학적 이성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 당시 나는 한국 교회에 대해서 많은 실망을 한 상태였고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의 앙면성 그리고 종교적 행위에 대해서 불만을 품었을 때였다.
결국 나는 교회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이 전에도 신앙적인 고민에 시달렸을 때 나에게 많은 버팀목이 되주었던 데일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다시 펴들었다. 그 책이라면 다시 무언가 생각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책을 오랜만에 펴놓고 찬찬히 마음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
데일카네기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데일카네기도 자신의 지식때문에 신앙에 방해를 받지만 결국 종교로 되돌아 갔다.)
'인간은 전기의 혜택을 받지만 아무도 전기가 왜 생기고 어떤 원리로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전기가 나에게 주는 혜택만을 생각하라. 우리는 전기의 원리는 모르지만 오늘도 전기의 혜택을 받지 않는가.'
참으로 뜻 깊은 비유다.
나는 더이상 철학적 이성, 논리, 나의 지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예수를 생각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면 내 맘이 기쁘고 좋고 편안한데 그까짓 지식이 뭐가 중요한가. 나는 나의 지식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이상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 내가 정말로 죽으면 육체가 썩어 없어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더 자유로운 종교인이 된 것이 아닐까.
단지 지금 나의 삶을 하나님께 내려 놓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축복만을 생각하련다. 중세 기독교시대에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에게 유명한 신학자가 한 말을 인용해본다.
'나는 오히려 불합리하기에 믿는다'
- 터툴리아누스
첫댓글 저도 어릴적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청년기에10년을 넘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고픈 마음으로 방황했고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답니다...사회서적에 탐닉하면서 더 회의적인 생각은 깊어갔습니다.그러나 방황하는 시기에도 다른이가 교회나 하나님께 대한 나쁜견해를 말하면 그것이 그렇게 듣기 싫고 마치 제부모님을 욕하는것처럼 화를 내곤 했답니다. 아버지께서 죽음을 맞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다시금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게 되었고 천국으로 분명히 인도되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교회를 오래다니면서도 확신이 없었던 천국과지옥을 믿게 되었답니다.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날
10년이면 긴 세월인데 오랫동안 방황하시고 다시 돌아오셨다니 놀랍네요.
저도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 강하게 부정하면 할수록 더욱 부정을 못하게 되더군요.^%^ '강한 부정은 강한능정' 이라더니 ^_________^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불러 달라고 하시더군요.부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데..저는 그때도 교회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믿음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었지요..하나님 열심히 믿어라..부친이 늘 유언처럼 말씀 하셨지요..이제 그유언을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하나님되시고 나의 하나님되신 그분만을 의지 하며 살기로 다짐하면서 진실된 믿음과 실천하는 믿음 갖기위해 늦게나마 열심히 믿음생활 하고 있습니다.님의 글이 저의 부끄러운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 하네요...^^
'인간은 전기의 혜택을 받지만 아무도 전기가 왜 생기고 어떤 원리로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전기가 나에게 주는 혜택만을 생각하라. 우리는 전기의 원리는 모르지만 오늘도 전기의 혜택을 받지 않는가.' --단지 지금 나의 삶을 하나님께 내려 놓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축복만을 생각하련다. 중세 기독교시대에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에게 유명한 신학자가 한 말을 인용해본다.--- 좋은 말 가슴에 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