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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장 서사는 크고 작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영하의 바람> 속 영하의 10대는 유달리 시리고 황량하다. 부모의 이혼, 사촌 미진과의 이별과 재회, 새아빠의 성추행, 엄마의 가출 등 영화는 하나의 서사로 귀결되지 않는 삶의 요소들을 그러모아 영하의 한 시절을 비춘다. 닥쳐오는 시련들을 부단히 통과하는 동안 영하를 살게 하는 것은 결국 미진이라는 자그맣고 단단한 연대의 존재다. 이 소녀들의 애틋한 자립과 상생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을까. 11월14일 개봉한 <영하의 바람>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수상한 김유리 감독의 데뷔작이다. 단편영화 <저 문은 언제부터 열려 있었던 거지?>(2013) 등 여성과 가족을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선을 지속해왔던 김유리 감독을 만나 이 부조리한 성장담의 근원지를 물었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영하의 성장기를 촘촘히 메운다. 첫 장편영화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지금 내 감수성과 가장 맞닿아 있는, 지금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화두나 관심은 계속 변하고 특히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성의 모양새를 갖기 마련이라, 현재의 내가 갖고 있는 감각을 나중에 다시 꺼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단편 작업부터 가족, 그리고 여성이라는 화두를 반복적으로 탐구해왔지만 그 안에서 내가 가장 중시한 것은 삶의 부조리를 담는 것이었다. 세상이 언제나 명확한 의도나 명백한 선악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시기가 있었다. 또 가정과 성별은 당사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체성을 고민하는 데 있어 가장 힘겨운 지점 중 하나다.
-12살부터 19살까지, 영하와 미진의 10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나이대별로 배우 캐스팅이 달라지면서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야심차게 준비한 것인데, 처음엔 주변의 걱정이 컸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관객이 몰입해야 하는 주인공의 얼굴이 자꾸 바뀌면 감정이입이 해제될 수 있다는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배우들은 모두 오디션을 통해 만났는데 연기의 수준보다는 배우가 지닌 자기만의 특별함이 있는지 헤아려보려고 노력했다. 가장 비중이 많은 19살의 영하(권한솔), 미진(옥수분)부터 캐스팅했고 촬영은 순차적으로 진행해서, 권한솔 배우와 옥수분 배우는 촬영 전에 12살, 15살 배우들의 편집본을 미리 확인하고 연기했다.
-하나의 위기나 갈등으로 수렴되지 않는 복잡다단한 삶의 문제가 얽혀 있다. 가난의 문제, 종교와 신앙의 문제, 영하가 처음 돈을 벌게 되는 수단이나 미진이 외모 때문에 겪는 차별과 불평등 등. 이를 한데 아우르기 쉽지 않았을 텐데.
=결국 영하가 긴 시간 동안 겪는 성장이라는 게 핵심인 것 같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그 과정에 많은 테마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으로서 주안점을 둔 것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에피소드를 부조리함이라는 테마로 잘 꿰어낼 수 있는가 하는 과제였다. 또 나는 여고를 나왔고, 여동생이 있고, 또래 여성과 무언가 생각이나 느낌을 나누고 함께하는 게 굉장히 익숙하다. 그들과 아주 많은 것을 나누면서 삶의 비밀 어린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자라면서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어머니들이 정말로 많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영하의 바람>에 이 모든 것을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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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몇 없지만 하고있더라!
https://www.kmdb.or.kr/vod/plan/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