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최용현(수필가)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는 내게 치욕적인 흑역사를 남긴 영화이다. 내 50년이 넘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중에서 딱 한 번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잠든 적이 있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였다. 대학생인 형을 따라가서 본 영화였고, 고등학생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길고 벅찬 영화라고 애써 자위를 해보지만….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3시간 38분이다. 촬영하는데 2년 이상 걸렸고, 총제작비는 2천만 달러가 넘었다. 1963년 제3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음악상 녹음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하며,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등 여러 후배 감독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주인공 로렌스 역은 말론 브랜도와 몽고메리 클리프트, 앤서니 홉킨스 등이 거론되었으나, 명우 캐서린 헵번의 적극 추천을 받은 피터 오툴이 낙점되었고, 그는 이 영화를 그의 인생작으로 만들었다. 피터 오툴은 1956년에 데뷔하여 ‘마지막 황제’(1987년) ‘트로이’(2004년) 등 에 출연하였고 2013년 8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린 감독이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랍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아랍인의 영웅이 된 영국군 장교 T. E. 로렌스(1888~1935)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The Seven Pillars of Wisdom)’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영화는 고향으로 돌아온 로렌스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그의 아랍에서의 활약상을 되돌아보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영국과 터키가 대치하고 있을 때, 영국군 장교 로렌스(피터 오툴 扮)는 아랍 부족들의 지원을 받아 터키에 대항하기 위해 이집트에 파견된다. 로렌스는 아랍의 지도자인 파이잘 왕자(알렉 기네스 扮)를 만나려고 베두인 안내원과 함께 낙타를 타고 가다가 자신의 우물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안내원을 사살한 알리 족장(오마 샤리프 扮)를 만나 의기투합하게 된다.
파이잘 왕자를 만난 로렌스는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공격로인 죽음의 사막을 가로질러 터키군이 점령하고 있는 수에즈 운하의 군사요충지 아카바를 기습 공격하는 파격적인 작전을 제안한다. 파이잘 왕자는 그 제안을 수락하고 자신의 군사 50명을 내주면서 알리의 부족과 함께 그 작전을 실행하게 한다.
죽음의 사막 횡단 도중, 로렌스는 아랍인 부하 자심이 뒤처져서 보이지 않자, 되돌아가서 찾아오려고 한다. 알리 족장은 운명이 그렇게 정해준 것이라면서 자심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하며 포기하라고 한다. 로렌스는 ‘정해진 운명은 없다.’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 결국 자심을 찾아 데려온다.
로렌스는 행군 도중에 만난, 알리의 부족과 경쟁관계에 있는 하위탓 부족의 족장 아우다(안소니 퀸 扮)를 설득하여 통합 아랍군을 이끌고 아카바의 터키군을 기습하여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이어 그의 지휘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도 점령한다. 로렌스는 남의 우물물을 마신 부하 자심을 아랍인의 법에 따라 총살하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리더십을 확고히 하지만, 그의 순수했던 영혼이 파괴되어가고 있음도 함께 보여준다.
이후 분열된 아랍군을 통합하여 연승을 거듭한 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얻게 되고 아랍인들에게 신처럼 받들어진다. 로렌스 스스로도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로렌스는 터키군에 포로로 잡혀 성적 학대를 당하면서 자신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과 눈동자가 파랗고 피부색깔이 다른 자신은 결코 아랍인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아랍의 통일과 독립을 위해 헌신한 로렌스의 기대와는 달리 열강의 지도자들은 아랍을 분할하기로 정치적 타협을 한다. 대령으로 진급한 로렌스가 영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실존인물 로렌스는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시절 아랍어를 배워 중동 역사를 공부하고 중동 일대를 여행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정보장교로 카이로에 파견되어 아랍의 통일과 독립을 위해 활약하였다. 영국으로 귀환한 로렌스는 47살 때인 1935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는데 자살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피터 오툴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타이틀 롤을 맡자마자 베두인으로부터 낙타 타는 훈련을 따로 받았는데, 엉덩이에 계속 멍이 들자 안장에 고무 스펀지를 깔고 탔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을 포함하여 총 여덟 번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한 번도 상을 받지는 못했다. 이를 고려한 듯 아카데미는 2003년 그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영화는 요르단의 사막에서 2년간 촬영했는데, 작렬하는 태양 때문에 카메라를 식혀줄 냉각장치를 만들어야 했고, 물은 150마일 떨어진 곳에서 트럭으로 공수해왔다고 한다. 열차 장면은 사막에 2마일의 트랙을 설치하여 촬영했으며, 아카바 전투에는 450마리의 말과 150마리의 낙타가 동원됐다고 한다. CG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촬영감독 프레디 영의 70mm 와이드 스크린 화면에 담은 광활한 사막의 풍광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신기루 같은 사막의 끝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낙타를 탄 알리 족장의 3분간의 롱 테이크 등장 신은 압권이며 영화사에서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프랑스 출신의 모리스 자르와 런던 필하모니 교향악단이 연주한 음악은 웅장한 사막과 그 속을 누비는 한 이방인 영웅의 심상(心狀)을 표현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맺어진 모리스 자르와 데이비드 린 콤비는 ‘닥터 지바고’(1965년)와 ‘인도로 가는 길’(1984년)로 이어졌으며, 세 작품 모두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아라비아는 20세기에 가장 뜨거운 지역이었고, 아라비아의 모래바람은 한 번도 그친 날이 없었다. 종교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수에즈운하 때문에. 21세기인 지금도 그 모래바람은 그치지 않고 있다. 석유 때문에, 이스라엘 때문에, 친미와 반미 때문에. 사막의 모래는 스스로 옮겨지지 않는다. 지금도 아랍은 영웅을 대망하고 있다.
첫댓글 로렌스도 결국은 영국을 위해서 고생했을 따름이랍니다.
그렇겠지요. 영웅심리도 좀 가미되었을 테고...
잠시 유튜브로 통해서 영상을 보았습니다
멋진 해설로 인해서 못지 못했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려고...^^
저도 인터넷 검색으로 다시 보았습니다.
워낙 길어서 인내심이 좀 필요했죠.ㅎㅎ
요즘은 이런 영화다운 대작이 아예 없는듯,
영화를 좋아 하면서도, 볼만한 프로가 없습니다요!
동감입니다.
요즘은 아무리 스케일이 큰 대작도 책상 앞에 앉아서 CG로 다 만드니
진지함 같은 게 결여되어 있어서 보고 나도 남는 게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