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심 김명이 시인님의 시비 제막을 감축(感祝) 드리며
문학의 길을 동행하고 있는 동도(同途)로서, 해심(海心) 선생님의 시비(詩碑) 제막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 뜻 깊은 역사적인 잔치마당을 지켜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광영입니다.
예로부터 10월을 상달이라고 하여 일 년 중 최고의 계절로 꼽아왔습니다. 그 연유는 한 해 농사의 추수로 여유로움과 넉넉함에서 비롯되었지 싶습니다. 이 상서로운 계절에 해심 선생님이 얼과 혼을 담아 갈고 닦아 이룩해 온 문학적 결실을 돌에 새긴 시비를 태(胎)자리인 고향의 뜨락에 제막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마음 기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자고로 우연히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습니다. 해심 선생님의 글 농사 추수 마당마다 하객으로 참가하는 영광이 되풀이 되는 인연을 생각할 때 전생의 연이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니 선생님의 첫 시집 “바다가 쓴 시”출판 기념회에서 축사를 드렸던 것이 첫 번째 인연이고, 두 번째 인연은 선생님이 산문집 “바다는 성추행을 해도 왜 죄가 되지 않을까”를 펴내실 때 발문(跋文)을 썼던 것이고, 세 번째 인연은 오늘 이 자리에서 드리는 헌사(獻辭)입니다.
처음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바다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바다를 닮았다 함은 진부하게 선생님이 살아오신 이력, 다시 말하면 어부이며 선장이고 기관장 역할을 하며 바닷일을 하셨던 생업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드리는 얘기입니다. 사람은 몇 명만 모이면 조상을 들먹이고, 고향을 따지며, 출신학교를 얘기하거나 패거리를 져서 으르렁 왈왈대며 편 가르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바다에는 수많은 강이나 내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에 대하여 꼬치꼬치 고향을 묻거나 혈연이나 지연을 따지지 않고 조용히 품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지요. 결국 바다는 유입되는 물의 시원(始原)이나 성분, 색깔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넉넉히 품어 아우르는 큰 세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해심 선생님이 바다를 닮았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글동무로써 선생님을 뵈면서 ‘저 분의 문학적 바탕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다가, 삶과 무관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생을 세 과정으로 나누어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태어나 혼인 전까지의 삶입니다. 선생님은 해방 한 해 전인 갑신생(甲申生)으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던 동년배들처럼 지독한 가난에 찌들어 기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우울하고 참담한 시절을 온몸으로 겪음은 물론이고 배움마저 중단하는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오셨습니다. 그러한 한을 풀고픈 절절함에 어린 시절 바다에서 조개를 캐다가 부모님 몰래 팔아 책을 빌려다 봤다는 선생님의 회고담이 그런 한의 세월을 웅변합니다.
다음은 혼인 이후 지천명의 후반까지 삶입니다. 이 땅에서 이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처럼 선생님 역시 전쟁의 후유증과 지독한 가난을 천형(天刑)처럼 여기며 어렵고 힘든 질곡의 삶을 영위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젊고 젊은 새 각시 시절부터 함하고 위험한 뱃일을 자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영영 잠재우거나 포기할 수 없었던 꿈과 희망이 배움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런 절실한 꿈과 한을 풀기 위해서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결심을 감행하는 용단이 글쓰기 공부였다고 생각됩니다.
세 번째 과정은 이순 무렵부터 고희(古稀)를 넘긴 지금까지의 삶입니다. 남들은 손주의 재롱을 보며 노년을 준비할 연세에 대단한 결단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도 쇠잔해지기 시작할 무렵인 2001년부터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등록하여 시와 수필 공부를 시작한 열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지도교수나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가 조카 또는 아들쯤 되는 어린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년을 일구월심으로 글쓰기 공부에 매달리는 불굴의 향학열을 불 태우셨으니 그야말로 불치하문(不恥下問)의 뜻을 실천에 옮긴 본보기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글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 한 일 세 가지는 글쓰기 공부를 한 일, 종교를 가진 일, 운전을 배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들 중에 가장 현명한 선택은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요? 감히 누구도 따르기 어려운 초인적인 노력과 연마는 자연스럽고 알찬 결실로 이어져 2005년 “미래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2007년 “다산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여 문인으로 확고한 터를 닦으셨습니다. 그리고 2004년 “그 사람이 보고 싶다”, 2011년 “바다가 쓴 시”, 2013년 “강바구를 노래한 사람”, 2015년 “바다는 성추행을 해도 왜 죄가 되지 않을까” 등의 저서를 연이어 펴내셨지요. 아울러 그동안 마산문인협회, 시와늪 등의 단체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하면서 “제3회 시와늪 문학상”, “제6회 해양문학상”등을 수상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사유의 세계는 넓고 높아 좀스럽게 따져 편 가르거나 탓을 하지 않으며 모두를 넉넉하게 아우르는 성품이십니다. 어린 시절부터 모진 세파를 겪으며 달관에 이른 품성은 바다를 닮아 얍삽한 세상의 셈법에 어두워 손해를 봐도 서러워하거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내 누님이나 어머니 같이 후덕한 분이지요. 그 중후한 성품에서 우러나는 순수하고 맑은 진국 같은 영혼의 소리를 풀어내는 선생님의 글은 간서치(看書癡)들의 작품과 격이 다릅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작품은 늘 따스하고 온기가 가득한 어머니의 자애로운 속삭임처럼 정겹고 잔잔한 울림을 주지요.
이 같은 얼과 혼을 담아 오늘 제막하는 시비에 새겨진 “진동바다” 마지막 연은 시인의 삶과 한(恨)을 비롯하여 꿈과 철학을 더덜이 없이 응축된 영혼의 노래로써 진솔한 속삭임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되새겨보렵니다. 먼 후세까지 영원히 공명(共鳴)하리라. 범종(梵鐘)의 맥놀이처럼 은은한 여운을 길게 남기며 이 세상 끝까지 아주 멀리 멀리....
노을을 싣고
갈대밭 사이로
흘러가는 돛단배는
잊지 못할 내 생의 절경이었네
2016년 11월 19일 병신초동지절(丙申初冬之節)(음력 10월 20일)
수필가(경남대학교 명예교수)
한 판 암 합장(合掌)
첫댓글 행복한 경사였습니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