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정월대보름이다
방금 달을 볼 수 있으려나 창밖으로 길게 목을 내어 올려다봤는데
구름에 가렸는지 달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는 보았었는데......
워낙 나물을 좋아하는 지라 밥상엔 거의 빠지지 않고 나물반찬이 오른다
정 없으면 콩나물 무침이라도 있어야 밥을 먹는 것 같다
(이거 무슨 식성이지? )
전생에 산골에서 온갖 풀들 뜯어다 먹고살았던 자연인이었나 싶게 무슨 나물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아니지 나물이 있어야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도 남편이랑 영화보고 오는 길에 집 앞 마트에 들렀는데
오곡밥과 나물 재료들을 핵가족에 알맞게 담아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아~~ 내일이 정월대보름이구나 했다
그래서 나도 몇 가지 나물재료 사들고 와 삶고 무치고 볶아 저녁상을 차렸다
약간 질긴 듯 한 고구마줄기를 짠딸이 맛나게 먹는다
남편은 부드러운 애호박고지를 워낙 좋아하고 난 뿌리까지 있는 섬초가 달큰하니 맛있어
젓가락이 그리로 부지런히 움직인다
봄동 겉절이도 상큼하니 입맛 돋운다
오늘 저녁은 어제 먹던
그야말로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원래의 뜻은 지금 상황과 다르게 쓰이지만)
그래도 맛있다
최근 읽은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 곶감, 호박을 말리던 볕은 감껍질에도 골고루 스며들었다
그래서 밤이 한정 없이 길어지는 12월 그 볕이 조금씩 풀려나왔다-
어제오늘 우리 가족이 먹은 애호박고지, 고구마줄기에는 지난가을의 볕이 골고루 스며들었을 게다
먹는 동안 그 볕이 해를 넘겨서 까지 풀려나와 우리 식탁을 따뜻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