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사랑방 수수대울에서 잠자던 감자
쭈그렁 할미가 되었지만
무른 살속에는 옹달샘이 들어찼다
울 엄마, 삐삐쭉 눈 띄우는 씨감자 잘게 쪼개
대소쿠리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호미 들고 텃밭으로 간다
밭등에 할미꽃이 피었다
- 시집『식량주의자』(시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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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라진 토종할미꽃이 피려면 빨라야 이달 말, 4월은 되어야 묏등에 핀 할미꽃을 볼 수 있다. 그 무렵엔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백목련 따위의 꽃들도 흐드러질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기후와 계절의 변화를 잘 감지하는 '계절 알리미 생물' 50종을 선정 발표한 게 있다. 전국 국립공원에 골고루 서식하는 이 동식물은 '계절이 달라질 때마다 그 변화를 정확하게 감지하는 특성이 있어 계절 변동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자료에 의하면 변산바람꽃이 피면 초봄, 호랑나비 날고 뻐꾸기가 울며 할미꽃이 눈에 띄면 무르익은 봄이라는 것이다.
쑥국새는 봄에 쑥의 새순이 날 무렵 산비둘기 구슬피 울어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옛적 가난한 시골에서 봄날 먹을 게 없는 시절에 시어머니 무서워 쑥국도 못 먹고 굶어 죽은 며느리 능신이 쑥국새가 되어 봄이면 그렇게 구슬핀 운다는 전설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뻐꾸기’의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라고 되어있지만 뻐꾸기와 산비둘기는 전혀 다른 새로 알고 있다. 뻐꾸기는 울음소리도 경쾌하고, 알다시피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돌보지 않는 얌체 새이다. 산비둘기는 딱 2개의 알만을 낳아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모성본능이 강한 새이다.
이 시에도 성주산에서 우는 새는 쑥꾹새고, 비봉산에서 우는 새는 뻐꾹새다. 김세레나가 부른 우리민요 ‘새타령’에도 쑥국새와 뻐꾹새가 분명히 따로 놀고 따로 운다. 봄을 대표하는 또 다른 소쩍새는 밤에만 운다. ‘쑥꾹새 날망집 너머’에서 ‘날망집’이란 무엇인가. 양문규의 ‘날망집’이란 시가 있다. “영국동에서 날망집이라고 불리는 집 은행나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목뫼처럼 봉긋하게 솟아 있다 사람의 발자국이 닿지 않는, 산짐승들만이 제집 드나들듯 소굴을 이루는, 그 집엔 팔십도 훨씬 넘은 노부부가 그렁저렁 살고 있다”
‘언덕 위’를 충청도에서는 ‘날망’이라 부른다는데, 그보다 문명이 와 닿지 않는 산골짝 외딴집이란 의미로 구체화 된다. ‘날망집’ 주변의 봄은 찬란하지는 않다. 그러나 ‘수수대울에서 잠자던 감자 쭈그렁 할미가 되었지만 무른 살 속에는 옹달샘이 들어찼고’ ‘삐쭉 눈 띄우는 씨감자 잘게 쪼개 대소쿠리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호미 들고 텃밭으로’가는 길 ‘밭등에 할미꽃이 피’는 순박함으로 화사하게 봄이 완성되고 있다. 봄은 이렇듯 꼭 온도의 볼륨을 일정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특정한 무슨 꽃이 피어야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마음의 수렁에서 헤어나 걷힌 안개에서 순정함이 드러날 때라야 ‘봄이 왔다고’ 할 것이다. 겨울 분량의 달력은 다 뜯겨나갔고 오늘은 경칩이다. 요 며칠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과 양광이 뺨을 스쳐가면서 피부 감각으로는 분명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우리에겐 아직 미숙한 봄이다. 여전히 찬 기운이 마음의 문풍지를 흔들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한데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다. 마음의 대문 앞에 입춘방을 붙여 놓은 지 오래건만, 봄이 오는 길목 내 ‘밭등에 할미꽃’은 아직 피어나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려야겠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