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683)... 베트남 ‘Doi Moi’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베트남(Vietnam) 見聞記
‘베트남(Vietnam)’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베트남은 쌀국수, 전통의상 아오자이, 베트남 전쟁(월남전) 등으로 잘 알려진 나라이다. 필자는 베트남 전쟁(Vietnam War, 1955-1975)이 한창이던 1972년 6월 8일 미군 전투기가 월남(越南) 사이곤(현 호찌민市) 인근 카오다이사원(寺院)에 네이팜탄(napalm彈)을 투하했을 때 불이 붙은 옷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울부짖으면서 거리로 뛰쳐나온 당시 아홉 살 소녀가 생각난다. 이 장면을 AP통신의 닉 우트 기자가 사진에 담았고, 이듬해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Pulitzer Prize, 1917년 제정)을 받았다.
이 사진 속의 소녀 킴 푹(Kim Phuc)은 몸의 1/3에 3도 화상을 입고, 여러 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네이팜탄 소녀 사진’의 위력은 엄청나서 퓰리처상은 물론 대대적인 반전(反戰)여론을 조성해 베트남전 종전에도 한몫했다. 베트남계 캐나다인 판티 킴 푹(55세)은 지난 2월 11일 독일 드레스덴평화상(Dresden Prize)을 수상했으며, 상금(10,000 euros, 약 1270만원)은 전쟁고아를 지원하는 재단에 기부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베트남인으로 1960년대 파인트리클럽(PTC)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당시 주한월남대사관 Vu Khac Thu 영사와 필자가 25년(1965-1989)간 근무한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의 아시아지역사무국(태국 방콕 소재) Tran Phu 행정관이 생각난다. 파인트리클럽 3대 목표(인재양성, 사회봉사, 국제친선) 중 하나인 ‘국제친선’ 활동으로 주한 미국대사 등 외교관들을 클럽에 초청하였다. 주한월남대사관은 현재 강북삼성병원 앞 경교장(京橋莊)을 1956년부터 1967년까지 사용했다.
필자는 지난 3월 10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베트남(The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하노이(Hanoi)와 하롱베이(Ha Long Bay)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모두투어에서 주선한 단체여행에 우리 가족 4명을 포함한 22명이 함께 여행을 했다. 날씨는 여행하기에 좋았으나 베트남인들이 타고 다니는 수많은 오트바이에서 뿜어나오는 매연과 미세먼지로 고생을 했다.
3월 10일(일요일) 오전 10시 KE-483편으로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약 4시간 50분 후 오후 1시경(현지 시간)에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하노이(Hanoiㆍ河內)라는 지명은 강(紅江) 안쪽에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송인태 모두투어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로 관광을 시작하여, 제일 먼저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이끈 민족 지도자인 <호찌민 주석(主席) 기념단지(Ho Chi Minh's Memorial Site)>를 둘러 보았다. 이곳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총독의 관저로 사용한 주석궁(Presidential Palace)을 비롯해 호찌민 생가(집무실 겸 거처), 박물관 등이 있다.
호찌민(胡志明ㆍHo Chi Minh) 생가는 1958년부터 1969년 9월 2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냈던 소박한 2층가옥으로 1층은 회의실로 사용했으며, 2층에는 침대와 선풍기 등 그의 검소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호찌민은 생전에 화장(火葬)을 해달라고 유언을 남겼으나, 시신(屍身)은 방부 처리돼 거대한 묘에 전시됐다. 호찌민이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바딘(Ba Dinh)광장 중앙에 자리한 3층 규모의 웅장한 호찌민 묘소는 1975년 8월 약 2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으며,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 졌다고 한다. 무덤 내부에는 호찌민의 시신이 유리관에 있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호 아저씨’로 친근하게 불리며 존경을 받고 있는 호찌민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1890년 베트난 북중부 호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응우옌신꿍이며 호찌민이란 이름은 ‘깨우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부친 밑에서 한자와 유학을 공부했고, 이후 프랑스 학교에 진학했다. 1911년 프랑스에서 식민지 해방운동을 벌였다. 그는 1923년 모스크바로 가서 공산주의(共産主義) 사상을 익힌 후 1930년 중국에서 베트남 공산당을 조직해 이끌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베트남으로 돌아가 항일 독립전쟁을 벌였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해 프랑스군을 몰아낸 후 베트남전쟁이 벌어지면서 북베트남의 최고 군사지휘관으로 전쟁에 임했지만 심장질환으로 1969년 타계했다. 그가 염원했던 베트남 통일은 사후 6년 만인 1975년 4월에 성취됐다. 호찌민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중국의 유교문화와 민족주의, 실용주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자유주의적 사고를 결합한 것이다.
호찌민 사상은 개혁개방 조치인 ‘Doi Moi(쇄신)’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Doi Moi’는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했기에 가능했다. 베트남은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비효율적인 공산당 독재국가(獨裁國家)에 지나지 않았으며,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성장률이 -6%로 떨어지고 물가는 600%까지 치솟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이에 1986년 도이머이(Doi Moi)란 깃발 아래 과감한 시장경제(市場經濟)를 도입하고 개방하면서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1986년 4만달러에서 2017년 한국인 투자를 포함하여 141억달러로 크게 늘었다. 각 부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국가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꾼 결과 경제 규모가 30년 만에 15배나 늘었다.
또한 베트남은 유교적 전통이 강하여 1070년에는 공자(孔子)를 기리기 위해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도 알려진 문묘(文廟ㆍTemple of Literature)를 세웠다. 베트남인들은 부지런하고 교육수준도 높다. 인구도 젊어 9550만 인구의 평균 연령은 30.5세(한국은 41.0세)에 불과하며, 제조업 평균 임금은 약 230달러로 중국의 3분의 1도 안되어 신흥개발국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의 발전 모델을 배우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를 본뜬 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VKIST)이 2020년에 출범할 예정이다. 중국도 계획경제를 유지하다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의 주도아래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현재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
미국 트럼프(Donald Trump, 1946년생)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金正恩, 1984년생) 국무위원장이 2차 미ㆍ북정상회담(summit)이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지난 2월 27-28일 개최되었다. 미북정상회담이 ‘노딜’로 성과 없이 끝났지만, 미국인들은 “나쁜 합의는 합의가 없는 것만 못하다(A bad agreement is worse than no agreement)”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회담 장소가 하노이로 결정된 데에는 베트남을 보고 배우라는 미국 측의 속뜻이 작용했다고 한다.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1월 외교 관계를 수립한 후 1957년 7월 호찌민은 평양을, 1958년 11월과 1964년 11월 김일성(金日成 내각 수상)은 하노이을 방문했다.
3월 10일 오후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약 170km 떨어져 있는 하롱베이(Ha Long Bay)로 이동했다. ‘하롱’은 베트남어로 ‘하늘에서 용(龍)이 내려온다’는 뜻이다. 베트남 제1의 관광지인 하롱베이는 약 2천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해수면 상승과 침식 작용의 반복으로 오랜 기간 지형 변화를 거쳐 지금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베트남의 유명 시인 응우엔 짜이가 ‘높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지상의 경이로움’이라고 극찬한 하롱베이는 UNESCO에서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이다.
3월 11일에는 동양의 산수화 같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관광지인 하롱베이를 찾았다. 선착장에서 30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는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섬들을 둘러본 후 스피드 보트와 나룻배로 석회동굴(洞窟)을 감상했다. 점심은 유람선안에서 직접 요리한 다양한 해산물을 먹었다. 씨푸드(sea food)는 선택항목으로 1인당 30달러를 지불했으며, 씨푸드를 선택하지 않은 경우에는 기본 선상식(船上式) 식사가 제공되었다.
저녁에 베트남의 명물인 수상인형극(water puppet show)을 관람했다. 수상인형극은 베트남 전통악기 연주, 노래, 인형극이 어우러진 민속예술로 공연은 1시간 동안 펼쳐지며 보통 단막극 여러편이 모여 구성된다. 베트남어로 진행되지만 인형들의 움직임과 음향효과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입장료는 10만동(약 5천원)이다.
3월 12일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이동하여 베트남 북부의 숨은 보석이라 불리는 옌뜨 국립공원을 관광했다. 케이블카로 신성한 기운이 도는 옌뜨산(山)을 올라 산중턱에 위치한 사찰을 방문했다. 사원 관광시 슬리퍼, 민소매, 반바지 입장을 금지한다. 사찰방문과 오솔길 산책 후 하산했다.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이동하여 시내관광을 하였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작은 파리(Paris)로 불리울 만큼 아름다운 프랑스식 근대 건축물과 오랜 베트남 구시가(old town)지가 어울러져 있다. 그리고 정부기관을 위시하여 극장과 문화시설, 대학, 박물관 등이 있다.
여행객들의 거리인 성요셉성당(St. Joseph's Cathedral)거리를 돌아본 후 베트남이 자랑하는 커피를 마셨다. 성 요셉 대성당은 1886년에 건축된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실내에는 섬세하고 화려한 금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가 한데 어루어져 유럽의 어느 성당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리고 하노이 중심가에 위치한 롯데호텔 65층 전망대에서 하노이 시내를 내려보았다.
3월 13일 수요일 오전에 6세기에 세워진 진국사(鎭國寺)를 둘러 보았다. ‘호수의 도시’라고 불리는 하노이에 있는 300여개의 호수 중 가장 큰 서호(西湖, 길이 총 17km)의 상징적인 사원인 진국사는 베트남인들이 참배를 드리는 곳이다. 서호는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힌다. 공항으로 이동하여 베트남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KE-484편으로 오후 3시 이륙하여 저녁 9시 15분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즐겁고 유익한 가족여행을 마무리했다.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683). 2019.3.23(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