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연을 통해 하느님의 손길과 놀라운 이끄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물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물은 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가 결합한 물분자를 단위로 존재합니다. 분자라는 단위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물은 안정적으로 존재하는데, 원자의 조합이 변하여 1개의 분자가 다른 분자로 변화할 때는 원자 그 자체에는 아무 변화가 없어도 물질로서 물은 변하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물을 둥근 것과 모난 것으로 구분해 둥근 물은 술 빚는데 쓰고 모난 물은 약 달이는데 썼다고 합니다. 현대 들어 물의 분자구조가 육각형으로 모가 났을 때 물맛도 좋고 항암효과도 크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는데, 그 시절에 이미 모난 물을 감식할 수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화학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물질의 기본단위 입자인 원자는 그 자체로는 물질적 성질을 띠지 못합니다. 원자들이 단순히 모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화학적으로 결합할 때야 비로소 분자라는 새로운 결합체가 생겨납니다. 일반적으로 염화나트륨(NaCl)이라는 화학기호를 갖는 소금도 양이온인 나트륨이온(Na+)과 음이온인 염소이온(Cl-)으로 분리되면 짠맛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 13)고 말씀하실 때 비유로 든 소금도 나트륨과 염소가 화학적 결합을 할 때만 비로소 짠맛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들은 나름의 존재 법칙과 원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의「복음의 기쁨」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비롯해 수많은 관계를 통해 그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마치 아무리 많은 원자가 존재하더라도 화학적으로 질서 있게 결합하지 못하면 아무런 물질적 특성을 띠지 못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밀접하고 절실한 연대성이 없으면 하느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187항 참조) 나아가 연대가 ‘가난한 이들에게 속한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결정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연대의 확신과 실천이 이루어질 때 다른 구조적 변화의 길이 열리고 구조적 변화가 가능해집니다.(189항 참조)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우리를 비춰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가 더딜 뿐만 아니라 늘 가난한 이들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이유와 원인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에 대한 새로운 확신과 태도를 외면한 채 구호에 그친 형식적 구조만 바뀌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오래지 않아 부패하여 억압적이고 비효율적인 구조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역사는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특별법 제정을 놓고 국가개조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여야 대립, 정치권의 안일한 태도를 보는 국민의 심정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어 속속들이 파헤쳐지는 부패의 사슬이 끊어지는 것을 누가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정신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의 힘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성을 증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연대성은 공동체 차원에서 모든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전제로 합니다.”(18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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