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는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가 민주당 정권의 정치적 저의가 보여서 반대했다. 그때 검수완박법은 윤석열정부가 맘대로 수사할 수 있는 안전장치 다 만들어놓은 '쇼잉' 법안이었다. 대선 패배에 화딱지 난 지지층 울분 달래기 위해 어차피 말아먹을 지선, 화끈하게 말아먹자고 밀어붙인 법안이었다(난 그래서 지선, 중요하게 안 본다. 더 높은 자리 올라가고 대선 도전하려는 의원들의 잔치.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검찰의 회생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진짜 검수완박법'인데, 제도 자체의 효용성이 의문이다.
검찰 망하는 거야 자업자득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검찰이 가져간 수사권을 받아가는 주체는 검찰보다 나을까, 그 조직에는 사적 권한의 남용이 없을까?
직군으로는 검찰개혁을 가장 바라는 공무원 집단이 경찰일 것인데, 솔직히 걱정된다.
검사들 수사권 빼앗아가면 그 포션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집단이 경찰이다. 국수본이니 국수위니 아무리 만들고 합치고 해체해도 기본 틀은 경찰 조직이다. 아니면, 당장 수사인력 채우지도 못하니까.
그런데 경찰들은 다들 선량하고 영민한 '깨어있는 시민들'인가? 거기도 권력에 줄 대려고 하거나 뭔가 큰꿈을 꾸면서 사건을 억지로 만드는 '경찰판 윤석열'이 없을까? 기소 본능, 실적 본능으로 억지로 죄를 만드는 정치경찰이 없을까?
그런 사람, 데퍼너트리 나온다. 그리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정치적 부족주의는 그런 영웅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족주의 시대에는 보편적인 정의는 별 의미가 없다. 일단 우리 편이 잡아야 한다. 저쪽이 잡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다.
잡는 게 목표가 되면 정상사회에서 지켜야할 절차나 원칙은 허례가 된다. 정치적 부족주의자들이 "한가한 소리마라", "지금이 어느 땐데..." 같은 레퍼터리를 남발하는 이유다. 적폐가 단 0.1% 남아도 검을 빼들고,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안심이 되는 분들이다.
본인의 정의로움을 뽐내려면 그런 존재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는 수사권이 검찰에서 경찰로 넘어가도 불안 심리는 가라앉지 않는다. 어느 쪽도 아닌 '내 편' 경찰이 잡아야 비로소 제대로 된 수사, 정의로운 수사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설령 수사 결과가 그럴 듯하게 나와도 '청산대상'들이 또아리를 틀고있는 공소청 검사들이 기소 안하면 헛힘만 쓴 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고?
'입맛에 맞게' 기소할 수 있는 검사들로 드림팀 꾸릴 수 있는 특검법 통과시키는 방법이 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을 이재명정부 내내 봐야할 지도 모른다.
백해룡-임은정 사태는 검찰개혁의 본질이 실은 '내 편이 잡아야 안심이 되는 사회 구현'이라는 의심이 굳어지게 만든 사건이다.
어제오늘 이 사건 보면서 문득 이게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면 어떻게 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같은 편'인 줄 알았던 검사와 경찰이 있었다. 그런데 디테일에 들어가니 쭉 같이 갈 수 없는 차이가 드러났다. 불신하고, 비아냥대고, 조롱의 수위가 서서히 높아지다가 나중에는 원수지간이 된다.
나는 임은정과 백해룡을 모른다. 다만, 그들을 만나봤거나 얘기를 많이 해본 사람들은 안다.
임은정 지인으로부터는 임은정 서사를 줄기차게 들었고, 백해룡 지인 만나면 '불굴의 백해룡' 얘기를 들어야 했다. 두 사람 다 인연 없는 내가 야박하게 평하면 그냥 정의로운 인상의 '관종들'이다.
그리고 굳이 한쪽을 택하자면 백해룡이 좀 더 못 미덥다.
백해룡의 문제를 설명하려면, 그의 비교집단을 임은정이 아니라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에 맞춰야 한다.
우선 박정훈 대령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지금은 상관들의 외압이 명백히 드러난 박정훈은 안개처럼 뽀얀 시기에 '내가 팀 꾸려서 수사하면 6개월 내에 성과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수사해서 결과 내놓아봤자 본인 주장의 신뢰성만 깎아먹는다는 것을 수사 베테랑인 사람이 모를 리 없었을 거다.
그는 외압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는 암시는 줬지만, 몇 단계를 건너뛰어 자신의 추론을 섣불리 밝히지도 않았다. 만약 그가 '군통수권자 윤석열은 허수아비고, 김건희가 다 시킨 거'라는 얘기를 했다면? 그리고 가정법 과거완료형으로 곧 수사 발표가 임박한 채해병 특검이 박정훈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면?
박정훈에게 없어서 좋았던 요소들을 백해룡은 다 갖추고 있다.
그리고 백해룡이 바라는 수사를 하려면 '검경 수뇌부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특별검사팀이 만들어져야 한다. 특검팀이 꾸려져도 수사팀장은 백씨가 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백해룡은 어떤 발표가 나와도 승복하지 않고 '불법 수사'를 주장할 테니까.
명통이 그 자리에 오를 때까지 산전수전 다 겪었을 건데, 일요일 발표 이후 이틀 사이 일을 예견했을지 궁금하다.
첫댓글 이런 생각도 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