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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846
■ 3부 일통 천하 (169)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9장 여불위의 이상한 투자 (3)
함양(咸陽). 중원의 초강대국 진(秦)나라의 도성이다.
한단(邯鄲)과 더불어 가장 번화함을 자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 함양성 가장 화려한 거리 한 모퉁이에 커다란 저택 하나가 솟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저택을 '화양궁(華陽宮)' 이라고 불렀다.
시정에 나와 있으니 궁이라고 할 수 없으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 집은 다름아닌 세자 안국군의 부인인 화양 부인의 사저(私邸)였기 때문이었다.
화양 부인은 초(楚)나라 태생의 여인이다.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도(悼)세자가 죽고 둘째인 안국군(安國君)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일약 화양 부인까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다음 대(代)의 왕후.
더욱이 안국군(安國君)과 화양 부인(華陽 夫人)의 금슬은 원앙새도 부러워할 정도로 좋다고 했다.
자연 화양궁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미리 줄을 대기 위해서였다.
화양 부인(華陽 夫人)은 안국군이 세자로 책봉된 후로 궁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실제로
화양궁에는 거처하지 않았다.대신 그 언니가 화양궁의 관리를 맡았다.
어느 날, 한 사내가 화양궁 대문 앞에 수레를 멈췄다.여불위(呂不韋)였다.
"여기서부터 시작인가?"
그는 중얼거린 후 과감하게 대문을 두드렸다.문지기가 나와 고개를 내밀었다."누구시오?"
"한단(邯鄲)에서 온 사람입니다. 왕손 이인(異人) 공자의 심부름으로 왔습지요."
여불위 명자(名刺)는 곧 화양 부인의 언니에게로 전해졌다.명자란 오늘날의 명함.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이인 공자가 웬일로 내게 사람을 보냈을까?"
"한단(邯鄲)에서 지내던 중 우연히 진귀한 패물을 구했는데 마님과 화양 부인(華陽 夫人)이 생각나서
아는 상인을 통해 보내왔다고 합니다.""그래? 일단 그 물건을 보자."
화양궁 사인(舍人)은 여불위가 가져온 패물함을 화양 부인의 언니에게 바쳤다.
함 뚜껑을 열어보는 순간 화양 부인의 언니는 입을 쩍 벌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구경해본 적이 없는 옥 목걸이와 귀걸이 한 쌍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사인에게 물었다."이인(異人) 공자는 한단에서 고생하며
지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로구나. 이인 공자가 보냈다는 여불위(呂不韋)라는
상인은 지금 어디 있느냐?""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양 부인(華陽 夫人)께도
전할 패물이 있는데, 그것은 마님을 뵙고 직접 드리겠다고 합니다."
"어서 안으로 불러들여라."이윽고 여불위(呂不韋)가 들어와 화양 부인의 언니와 마주 앉았다.
그녀가 먼저 물었다."이인(異人) 공자가 보내준 물건은 잘 받아보았소.
그래, 이인 공자는 한단에서 잘 지내고 있소?"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여불위였다.
한껏 정중하게 대답한다."볼모로서 타국에 계시는 몸이 어찌 편할 리 있겠습니까?
더욱이 근자에는 진(秦)나라와 조(趙)나라 사이가 나빠지는 바람에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다행히 조(趙)나라 신료들과 백성들이 한결같이 공자를 두둔하는 바람에
죽음만은 면했습니다만, 여전히 위급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처지인데, 무슨 경황이 있다고 이런 패물을 보낸 것이오?"
"이인(異人) 공자는 한단에서도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신 분입니다. 식사 때가 되면
먼저 안국군(安國君)과 화양 부인(華陽 夫人)을 생각하며, '아버지 어머니도 식사를 하실까?' 라고
기도한 후 젓가락을 들 정도입니다.""뿐만 아니라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이면 반드시 목욕재계한 후
향을 사르며 부모님의 만수무강(萬壽無疆)을 축원합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한단성 일대의
어진 선비와 백성들은 이인 공자를 극진히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돈 많은 상인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온갖 진귀한 물건을 갖다바칠 정도이지요. 그런데도
이인(異人) 공자께서는 그 물건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곤
하십니다.""그런 중에 이번에 한 부자가 진귀한 패물을 구했다며 공자께 바쳤는데,
공자는 친어머니나 다름없는 화양 부인(華陽 夫人)이 생각나신다며 이렇듯 저를 보내 화양 부인과
마님께 물건을 보내신 것입니다."여불위(呂不韋)의 말을 들은 화양 부인의 언니는 감격했다.
"이인(異人) 공자가 내 동생을 그렇듯 아끼고 생각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소. 내 어찌 궁으로 들어가
화양 부인에게 그 마음을 전달하지 않으리오!"
이튿날, 그녀는 궁으로 들어가 이인(異人)이 보내온 패물함을 화양 부인에게 바쳤다.
전날 여불위에게서 들은 말도 그대로 전했다.패물함 속에는 한단(邯鄲)에서만 구할 수 있는
옥 세공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화양 부인(華陽 夫人)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왕손 이인(異人)이 이렇듯 나를 생각할 줄이야! 참으로 갸륵하고 고마운 마음씨로다."
그 날 이후로 여불위(呂不韋)는 수시로 화양궁을 들락거리며 화양 부인 언니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았다.
그녀로부터 진(秦)나라 조정의 고관대작들을 소개받아 교류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불위(呂不韋)는 제2차 공작에 돌입했다.
화양궁을 방문하여 환담을 나누는 중에 지나가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제가 듣기로, '미모로 남편을 섬기는 여인은 미모가 스러지면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잃는다'고
하였습니다.""화양 부인(華陽 夫人)께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두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무슨 말이오?""별 의미는 아닙니다. 소생은 그저 화양 부인의 슬하에 자식이 없어
후일 외로움에 처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해본 소리입니다."
화양 부인의 언니가 생각해보니 별게 아닌 게 아니었다."그대의 말이 옳소. 내 동생도 언젠가
그 말을 한 적이 있소. 그러나 어쩌겠소? 하늘이 자식을 보내주지 않는 것을."
여불위(呂不韋)가 슬며시 한 걸음 다가앉으며 말했다."어찌 꼭 친자(親子)라야 자식이겠습니까?
소생이 알기로 안국군에게는 후궁 소생의 아들이 20여 명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효성이
지극한 아들을 골라 화양 부인의 양자로 삼으면 그것이 곧 아들이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언젠가는 그 아들이 진(秦)나라 왕위에 오를 것이니, 그리되면 화양 부인은
태후로서 조금도 세도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일러 곧 '장구한 이득' 이라고 합니다."
"소생의 생각으로는 하루빨리 양자(養子)를 들이시어 후일에 대비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렇지 않고 머뭇거리다가는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듣고 보니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오.
그런데 누구를 양자(養子)로 삼아야 한단 말이오?""지금 20여 명의 아들 중 누가 가장 어질고
화양 부인(華陽 夫人)을 끔찍이 생각합니까? 소생이 보기에는 이인(異人) 공자 또한 화양 부인을
친어머니처럼 여기고 계시니, 그 분을 양자로 삼으시면 장차 무엇이 근심이겠습니까?"
며칠 후 여불위(呂不韋)의 이 말은 언니를 통해 그대로 화양 부인의 귀에 전해졌다.
화양 부인이라고 해서 어찌 후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으리오.
그녀는 언니로부터 여불위의 말을 전해듣고는 무릎을 쳤다.
"그 사람 말이 꼭 맞소. 이제야 나는 내가 할 일을 깨달았소."
그 날부터 화양 부인(華陽 夫人)은 밤이면 남편인 세자 안국군(安國君)에게 눈물을 뿌리며 호소했다.
"소첩은 다행히 세자를 모시는 몸이 되었으나 불행히도 자식이 없어 늘 가슴 한 구석이 빈 듯
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세자께서는 이 몸을 어여삐 여기신다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왕손
이인을 적자(嫡子)로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만 되면 소첩은 그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안국군(安國君)은 이제 막 세자에 오른 터라 후사 문제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심코 흘러넘겼으나 화양 부인의 청이 거듭되자 대답했다.
"부인이 이인(異人)을 그토록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소. 적자(嫡子)란 모름지기 부모 마음에
들어야 하니 잘되었소. 이인을 적자로 삼도록 합시다."
그래도 화양 부인(華陽 夫人)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다시 말했다.
"후일 마음이 바뀌실 때는 어찌하시겠습니까?""하하하. 의심도 심하시오. 정 그러하다면 내가
옥부(玉符)에 맹세의 글을 써주리다."그러고는 옥으로 만든 부절(符節)을 꺼내 글을 새겨 주었다.
적사이인(嫡嗣異人)'이인(異人)을 후사로 삼노라' 라는 뜻이었다.
화양 부인(華陽 夫人)은 옥부를 받아 반으로 쪼개 하나는 자신이 간직하고 다른 하나는
남편인 안국군에게 건네주었다.'해냈다!'여불위(呂不韋)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길가에 떨어져 나뒹구는 돌멩이를 잘 깎고 다듬어 귀한 옥(玉)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이제부터 이인(異人)은 단순한 볼모가 아니었다.언젠가는 진(秦)나라 왕이 될 귀한 몸이었다.
잘 보호했다가 때가 되면 왕좌에 올려 앉히는 일만 남았다.
며칠 후, 여불위(呂不韋)는 안국군과 화양 부인의 부름을 받았다.
자신의 일이 성사된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여불위는 세자궁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화양 부인(華陽 夫人)이 의자를 권하여 앉게 한 후 말했다."그대가 우리 이인(異人)을 잘 돌봐준다니
참으로 고맙소. 앞으로도 계속 우리 이인을 보살펴주기 바라오.""소인은 한낱 천한 상인에 불과합니다.
제가 어찌 이인 공자를 곁에서 모실 수 있겠습니까. 다만 죽음으로써 지켜드릴 따름입니다."
이번에는 안국군(安國君)이 입을 열었다.
"그대의 노고에 감사하오. 그런데 이인(異人)을 적자로 삼고 보니 한 가지 고민이 있소."
"...............?""그대도 알다시피 이인은 지금 조(趙)나라에 볼모로 가 있는 중이오. 여차하면
해를 당할 수도 있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한마디로 이인(異人)을 한단에서 빼내올 수 없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여불위(呂不韋) 또한 그 문제에 대해서 이미 수도 없이 생각해보았다.
"아직 명확한 방법을 강구하지 못했으나 일단은 조(趙)나라 신료들을 매수해서라도 이인 공자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그런 후 기회를 보아 이인 공자를 구출해 내겠습니다."
"그대만 믿겠소. 일단 내가 그대에개 황금 5백 일(鎰)을 내줄 터이니, 그것을 가지고 가 이인(異人)의
안전을 도모하시오."다음날 여불위(呂不韋)는 안국군이 내주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함양성을 떠났다.
847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47
■ 3부 일통 천하 (170)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9장 여불위의 이상한 투자 (4)
- 세자 안국군(安國君)의 적자(嫡子).
여불위(呂不韋)로부터 이 같은 통보를 받은 왕손 이인(異人)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새삼스러운 눈길로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이 사내는 불가능이라는 것이 없는가?'
여불위(呂不韋)가 돌아온 이후부터 이인의 생활은 한결 풍족해졌다.본국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많은 생활비가 보내져오기 때문이었다.조(趙)나라에서의 위상도 달라졌다.
- 언젠가는 진(秦)나라 왕이 될 신분.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나라의 사신들과 선비들이
수시로 그의 저택을 방문했다.이인(異人)은 여불위의 건의에 따라 이름도 바꿨다.
- 자초(子楚).
초나라 출신의 화양 부인(華陽 夫人)의 아들이라는 뜻이다.두말할 나위 없이 화양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다.이제부터는 왕손 이인을 자초라고 하겠다.
어느 사이, 자초의 곁에는 여불위(呂不韋)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두사람은 아낌없이 돈을 썼다.
감시하는 관리는 물론 조정의 고관들에게도 열심히 뇌물을 바쳤다.
이 덕분에 자초(子楚)의 행동은 한결 자유로워졌다.하지만 역시 한단성(邯鄲城) 밖으로는
일절 나갈 수가 없었다.감시의 눈길은 조금도 소홀해지지 않은 것이다.
자초(子楚)와 여불위(呂不韋)는 어쩔 수 없이 탈출에 대한 계획을 미뤄야만 했다.
대신 두 사람은 자주 기루(妓樓)에 둘러 술을 마시면서 소일했다.
해가 바뀌어 BC 260년(진소양왕 47년) 3월이 되었다.
이때는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장평 전투에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생매장하기 불과
4개월 전이었다.이 무렵,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니던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다툼이 일어났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초(子楚)가 여불위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여불위(呂不韋)에게는 비밀리에 사귀는 여인 하나가 있었다.
한단성에 사는 조나라 상인의 딸이었다. 두 남녀는 물래 만나 잠자리도 함께하였다.
그 여인이 임신을 하자 여불위(呂不韋)는 아예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
여불위의 집에서는 그녀를 조희(趙姬)라고 불렀다.
'조나라 여인' 또는 '조씨 성의 여인' 이라는 뜻이다.
본래 희(姬)는 주왕실의 성이었으나 이 무렵에는 '여자' 라는 보통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자초(子楚)가 여불위의 집으로 놀러왔다.밤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시며 놀았다.
기루에서 기녀 10여 명을 불러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했다.
흥이 난 여불위(呂不韋)는 자신의 아내 조희까지 불러내어 춤을 추게 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아름답도다!"자초(子楚)의 입에서 경탄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탄복만 한 것이 아니었다.자초(子楚)는 여불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조나라에 볼모로 온 후로 너무나 쓸쓸한 밤을 보내왔소. 선생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건대, 저 여인을 내게 주시오."조희(趙姬)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다.
자초(子楚)도 그것을 알고 있다.그런데도 조희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다니!
여불위(呂不韋)는 취기가 가셨다.자리를 차고 일어나 자초의 얼굴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여느 사람 같았으면 벌써 주먹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자초(子楚)다.여불위(呂不韋)는 격분한 가운데서도 마음을 눌러앉히고
조용히 말했다."너무 많이 취하셨나 봅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여기서 그냥 물러났으면 여불위의 말대로 취기 탓으로 돌린 채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초(子楚)는 정말로 조희에게 반한 모양이었다."술기운에 하는 소리가 아니오.
나는 진심으로 조희(趙姬)와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소. 선생께서는 부디 내 소원을 들어주시오."
아무리 자초(子楚)라고 하지만 이 말에는 여불위(呂不韋)도 참을 수가 없었다.
술상을 뒤엎으며 소리쳤다."공자! 공자는 나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나는 지금까지 호의로써 공자를 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공자(公子)는 제가 가장
사랑하고있는 아내를 빼앗을 작정이십니까?그것이 저에 대한 보답이십니까?"
여불위의 화난 모습을 본 자초(子楚)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결례되는 행동을 했음을 알아차렸다.
황망히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선생은 진정하십시오. 내가 그동안 너무 외롭고 쓸쓸하여
선생의 은혜만 믿고 못할 말을 했나 봅니다. 오늘 일은 내가 취중에 한 소리라 여기고
그만 노여움을 푸십시오."그 날의 일은 이렇게 끝이 났다.어수선한 가운데 자초(子楚)는
집으로 돌아갔고 여불위(呂不韋)는 여불위대로 혼자 술을 마구 퍼마시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한낮이 되어서야 여불위(呂不韋)는 잠에서 깨어났다.눈을 뜨는 순간 간밤의 일이 떠올랐다.
조희로 인해 자초에게 마구 험한 소리를 한 것이 생각이 났다.'실수했구나.'
여불위(呂不韋)는 후회했다.자초(子楚)가 누구인가. 후일 진(秦)나라 왕이 될 신분이다.
보잘 것 없는 볼모를 여불위가 그런 귀한 보물로 만들어놓았다.
그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상품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상을 뒤집어엎으며 욕설을 퍼부어댔으니 후회스러울 만도 하였다.
여불위(呂不韋)는 초조감에 사로잡혀 방안을 왔다갔다 했다.온갖 상념이 스쳐갔다.
'자초(子楚)공자가 나를 불손하게 여기실까?''만일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투자했던 것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여기까지 생각하던 여불위의 머릿속으로 별안간 섬광 같은 빛줄기 하나가
스쳐갔다.'나는 장사꾼이다!'그동안 자초(子楚) 공자에게 투자한 돈만도 3천 금이 넘는다.
어찌 그것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투자한 김에 성공하든 망하든 그 끝을 보아야 한다.
아내라고 해서 어찌 투자하지 못할 것인가.아니, 어쩌면 가장 확실한 투자일지도 모른다
자초(子楚)를 완전히 내 사람으로 만들 가장 확실한 투자!여불위의 머릿속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문제는 조희(趙姬)의 뱃속에 든 내 아이다.'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낙태시켜 보내면 감쪽같지 않을까? 아니다.자초(子楚)는 후일 진(秦)나라 왕이 된다.
자초가 왕이 되면 그 아들은 세자가 되어 또 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나의 아들이 곧 진(秦)나라 왕이 되는 것이다.
여불위(呂不韋)의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비약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의 얼굴에 환한 빛이 감돌았다.'그렇구나! 잘하면 이건 생각보다 더한 횡재(橫財)
일지도 모르겠다.'그 날 여불위(呂不韋)는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저녁 무렵, 방문을 열고 나오는 여불위의 얼굴에는 하나의 결연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84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