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박근혜 만나 “박정희 혜안-결단 배워야”… 총선앞 보수결집 행보
중동서 귀국하자마자 추도식 찾아
박근혜와 취임식 이후 처음 악수
“그동안 겪은 슬픔에 심심한 위로”
朴 “정부, 어려움 잘 극복할 것” 화답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을 마치고 묘소 참배에 나서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현충원을 찾았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4주기 추도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사적 위업을 이루어냈다”며 “박 대통령의 정신과 위업을 다시 새기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지 2시간여 만에 귀국 첫 일정으로 박 전 대통령 추도식을 찾았다. 추도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식 이후 약 1년 5개월 만에 다시 만나 악수했다.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도 추도식에 총집결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여권 내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윤 대통령이 순방 직후 박 전 대통령 추도식을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지지층 결집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영남권의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응답률이 하락하고 과거 친박(친박근혜)계의 영남권 무소속 출마설, 이준석 전 대표의 신당 창당설이 불거지며 보수 분열 경고음이 나오자 보수 결집 메시지를 강조하려 했다는 것.
● 尹 “92개국 정상에 ‘박정희 공부하라’ 강조”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추도식 추도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하면 된다’는 기치로 우리 국민을 하나로 모아 이 나라의 산업화를 강력히 추진했다”며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산업화의 위업을 이룩한 그분의 혜안과 결단, 용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92개 국가의 정상을 만나 경제협력을 논의했다”며 “박정희 대통령이 이루어낸 압축 성장을 모두 부러워하고,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정상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공부하라, 그러면 귀국의 압축 성장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영애’라는 표현을 쓰며 예우했다. 윤 대통령은 “영애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가족들에게 자녀로서 그동안 겪은 슬픔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추도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추도사는 윤 대통령이 초안부터 직접 준비하고, 수정하는 등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추도식에 참석해 주신 윤석열 대통령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 “지금 우리 앞에는 여러 어려움이 놓여 있다고 한다”며 “하지만 우리 정부와 국민께서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추도식이 끝난 뒤 수행 인원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둘이 참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순방 다녀오느라 고생하셨다”고 말했고, 윤 대통령은 중동 순방의 경제 외교 성과를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식 때 박 전 대통령을 만났고, 당선인 신분이던 4월 대구 달성군의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50분간 대화를 나눴다.
● 여당 지도부-대통령실 참모 총출동
여권에선 윤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마친 뒤 귀국해 첫 일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이 ‘보수 결집’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선 완패 이후 반전을 모색하는 윤 대통령이 10년에 걸친 구원(舊怨)이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 적극 재차 손을 내밀어 보수 대통합 이미지를 연출하려 한 것.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가 좌천됐다. 이후 윤 대통령은 2016년 탄핵 정국에서 국정농단 수사를 이끌었다.
이날 추도식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이만희 사무총장,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지도부 다수가 참석했다. 대통령실에서는 김대기 비서실장과 이관섭 국정기획수석, 이진복 정무수석,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등이 자리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민생 행보를 강조하면서도 전통적 보수층인 ‘집토끼’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 아니겠는가”라며 “여권 내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한 것 자체가 이번 추도식이 갖는 각별한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