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된 일과 관련해 "숨길 것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고 영국 BBC가 25일(현지시간) 전했다.
수사 결과는 중용과 절제(moderation)가 충분하지 않으며, 두로프가 텔레그램을 범죄에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절차를 밟는 데 실패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이 앱이 마약 거래, 아동 성 콘테트, 사기 등과 관련해 사법당국과 협력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심도 받는다.
텔레그램은 성명을 통해 "중용과 절제는 업계 표준 안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항상 개선되고 있다"면서 "플랫폼이나 소유주가 그 플랫폼을 유린한 데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황당하다"고 반박했다.
텔레그램은 또 두로프가 종종 유럽을 여행하고 있으며 안전하고 믿을 만한 온라인 여건을 보장하는 데 목적을 둔 디지털 서비스 법(DSA)을 비롯한 유럽연합 법률을 준수하고 있다면서 "전 세계 10억명 가까운 이용자들이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필수적인 정보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 즉각 해결되길 기다리고 있다. 텔레그램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한다"고 밝혔다.
사법부 소식통은 두로프의 구금이 25일까지 연장됐으며 최대 96시간 늘어날 수 있다고 AFP 통신에 전했다.
TF1와 BFM 등 현지 방송들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두로프가 전날 저녁 파리 외곽의 르부르제 공항에서 붙잡혔다고 전했다. 두로프는 텔레그램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한 소식통은 프랑스 경찰 내 '미성년자 대상 범죄 단속 사무국'(OFMIN)에서 사기, 마약밀매, 사이버폭력, 조직범죄, 테러조장 등 범죄에 대한 초기수사 결과 두로프를 해당 범죄의 조정대리자(coordinating agency)로 간주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AFP 통신에 설명했다.
두로프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전용기를 타고 파리로 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관 중 한 명은 두로프가 자신이 수배자임을 알고도 파리에 온 사실이 놀랍다면서 "텔레그램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끝났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으로 39세인 두로프는 형 니콜라이 두로프(44)와 함께 러시아판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소셜미디어(SNS) 프콘탁테(VK)와 암호화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만든 정보통신(IT) 사업가다. 2006년 개발한 VK를 러시아와 동유럽권에서 최대 SNS로 키워내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부호 반열에 오르며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로 불렸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VK 사용자 정보를 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고 VK 지분을 매각한 뒤 2014년 러시아를 떠났다. 그 뒤 독일에 머물며 2013년 출시한 텔레그램 운영에 집중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텔레그램은 암호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메신저로, 높은 보안성으로 사용자들의 호응 속에 세계적 SNS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현재 UAE와 프랑스 이중 국적인 두로프는 지난 3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2021년 5억명이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9억명으로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텔레그램은 강력한 보안으로 비밀 대화가 용이해 러시아, 이란, 중동, 홍콩 등에서 정부 탄압에 맞선 민주화 운동 세력의 소통 도구로 활용됐으나 최근에는 극단주의 콘텐츠나 가짜뉴스 확산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21년 1월 미국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를 일으킨 극우 세력이 텔레그램을 통해 모였고 최근 영국을 뒤흔든 극우 폭력 시위 참가자들도 텔레그램으로 폭동을 조직한 것으로 지목됐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 관련해서도 양측 모두 텔레그램을 통해 걸러지지 않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쏟아내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을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25일 두로프는 러시아를 탈출하는 오판을 했다며 해외 보안 당국과도 협력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그는 여러 해 전에 두로프를 만나 러시아 수사 당국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또 "조국 없이 멋지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