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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숙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
지난 3월10일 나라를 걱정하는 92명의 시민사회원로인사들이 발표한 시국성명서의 일부를 인용해 보면 우리가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사회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국민들은 지금의 경제상황이 IMF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청년실업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신용불량자는 4백만 명에 달하고 있고 절대빈곤층은 5백만 명을 넘어 중산층의 붕괴와 빈부의 양극화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저소득층은 장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고 사회통합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경제성장 잠재력은 종래의 5-6%에서 3%로 하락하고, 대부분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포퓰리즘(대중적 인기영합주의)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어 국가경쟁력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국민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를 무엇보다도 불안케 하는 요인은 우리사회의 해체위기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극단적인 편가르기와 대결구도 속에서 집단이기주의만이 횡행하며, 사회 구석구석에서 가치관의 혼돈과 붕괴가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이제 가정이 파괴되어 이혼율과 자살률이 급증하고 나라에 대한 희망을 잃고 이민을 가고 싶다는 사람이 너무 많은 상황이다. 게다가 극심한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져 타인의 생명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도 유기하고 있다. 공동체의 해체위기가 오늘처럼 심각한 적이 없었다.
아울러 우리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이념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북한과 미국에 대한 세대간, 집단간 견해차가 커서 우리사회의 이념적 양극화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이념갈등의 심화가 우리사회의 이념적 균형감각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지난 1-2년 동안에 우리사회에 반미의 목소리는 과도하게 커지고 북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크게 약화되어 이로 인해 우리사회가 국가정체성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작금의 이념적 갈등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용공으로 낙인찍힐까봐, 또 지금은 보수로 몰릴까봐 말을 못하고 있다는 어느 원로 작가의 고백은 우리나라 지식인의 고민을 극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인터넷 시대 이후 익명의 언어폭력집단의 횡포가 두려워 대다수 지식인들은 침묵하고 있다. 마치 한국판 문화혁명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가하는 착각을 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어 국민은 심각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다. 여기에 낙천낙선 운동 등 시민사회의 명분을 독점하려는 과도한 참여방법은 그것이 갖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역기능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다수 국민을 침묵하는 구경꾼으로 만들고 있는 오늘의 민주주의 위기와 국민을 볼모로 하는 정치위기는 우리 사회를 양극적 대결의 장으로 만들고 사회의 위기극복 능력을 크게 약화시켜 국민을 더욱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앞으로는 양극단의 극한적 대결이 아니라 양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사이의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거쳐 모두가 공감하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 성명서에서 밝힌대로 ‘대한민국 호’는 총체적 위기로 침몰해 가고 있다. 이런 시국상황에서 만약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득표를 한다면 추락하는 ‘대한민국 호’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의미는 무엇이며, 향후 ‘대한민국 호’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
첫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득표를 한다면 국가통합이 아니라 국론분열과 편가르기가 더욱 극심해 질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선거가 끝나면 또 다시 분당을 획책하고 있다. 이들의 분열주의가 이 사회와 나라를 극단의 편가르기로 몰고 갈 위험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노대통령과 열린당이 지향하는 분열주의는 우리 사회의 피폐현상을 더욱 부채질 할 것이다. 노대통령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 된 후 민주당을 탈당하고 분당하여 민주개혁세력을 갈라놓더니, 노사갈등을 촉진하여 계층간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을 ‘천도’로 표현하는가 하면 지배세력의 교체로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하여 지배세력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급기야는 정동영의장이 “60-70대는 투표하지 말고 20-30대 중심의 시대를 선택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세대간의 분열 논쟁으로 까지 비화시키고 있다.
둘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득표를 하면 급진 진보적 독재주의의 위험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열린우리당이 당장은 총선을 의식하여 이념이나 지향점이 다른 사람들이 권력의 비호속으로 모여든 집단에 불과하다. 창당 이후 개혁을 내세우면서 구태 정치인의 영입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총선에서 이들이 승리한다면 소위 진성당원이라는 미명하에 이념성향을 분류하여 분당을 단행할 것이고 급진 진보세력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최근 열린우리당의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인 문성근씨의 발언에서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당내 공천잡음과 관련하여 “열린우리당은 잡탕”이라며 “말이 안되는 사람들이 후보로 뽑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문씨는 “현재로는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있는데 정치개혁이라는 대의로 뭉친 다음 이념 성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하여 명계남 전 노사모 회장 역시 총선 후 분당론을 제기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열린당은 탄핵 이후 지지도가 올라가자 교만과 독선에 빠져 총선 이후 분당할 의지를 일찌감치 내 비치면서 분열주의를 실체화 할 태세를 내 비치고 있다.
셋째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득표를 하면 노대통령의 ‘코드 인사’가 재연될 조짐이 크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1년간의 실정을 통해 이미 집권능력의 한계를 드러내 보였다. 사실 노정권 출범 이후 소위 ‘코드’에 맞는 인사들이 청와대와 내각을 차지했었으나 6개월이 못가 그 무능을 노정하고 기존의 관료군으로 대체하고 말았다. 그러나 의회과반수를 확보한다면 견제세력이 없는 가운데 코드인사는 재연될 것이며, 이 나라는 다수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책노선 전반에 걸친 방향조정이 불가피해 질 것이 우려된다.
넷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득표를 하면 친노 대 반노, 탄핵 대 반 탄핵 논쟁이 가속되면서 국민 편가르기가 가속화 될 것이다. 또한 헌재로 넘어 간 탄핵에 대해 헌재의 결정과 상관없이 이미 탄핵무효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는 또 한번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사태로 번지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공언 했던 재신임문제를 총선결과에 연계시켜 얼렁뚱땅 넘어 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재신임문제를 총선과 연계시키는 것은 총선의 참 의미를 훼손시킬 뿐이다.
다섯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득표를 한다면 권력 남용과 권위주의 정치로의 회귀 가능성 또한 높다. 도덕성과 개혁을 기치로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안희정, 이광재, 최도술 등등 측근비리로 국민들의 원성을 받았다. 또한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심하게 각급 자치단체장의 입당을 강요하였고, 공무원사회의 새로운 줄 세우기 양상을 초래했다.
총선은 정책과 인물로 국민의 선택을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에서 정책대결, 인물대결은 실종되었다.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정치사태에 대하여 냉정하게 그 실체를 알리기보다 국민들의 감성에만 호소함으로써 그 후유증을 부풀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원수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온정주의로 인해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권력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 및 절차적 정당성마저 훼손되고 있어 민주주의 발전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는 이번 총선에서 포퓰리즘이나 군중심리에 호소해서 국민의 그릇된 선택을 유도하는 세력을 차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하게도 우리 국민들은 과거 국가가 위기상황에 처해 있을 때 마다 현명한 판단과 합리적 투표를 통해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견제세력을 키워주곤 했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도 어느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17대 총선의 의미는 앞으로 4년간 국민을 대변할 대표자를 선택하는 것이므로 이성적으로 후보자와 정당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17대 총선은 지난 50여년의 부패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하고 참신한 인재를 선택하여 새로운 정치와 생산적 국회의 장을 열 수 있는 최종 선택의 기회이다. 우리 유권자들은 잘 못 뽑아놓고 후회하지 말고 뽑기 전에 심사숙고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
손봉숙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