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나무숲이 가득할 것이다,
- 가을로 -
4932239 연극예술과 김태영
중간고사를 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했던 것도 잠시였다. 시나리오를 ‘분석’ 하라는 과제를 내 주실 줄이야. 전공 특성상 희곡작품을 분석했던 적은 많았지만 시나리오를 분석한 적은 한번도 없어서 분석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행 과정은 어떤 식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지 모두 막막해져왔다.
교수님께서 카페에 올려주신 시나리오들을 보며 처음에는 내가 보지 않은 영화 중에서 선택해서 읽으려고 했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아직 보지 않았지만 보고 싶었던 ‘ 고양이를 부탁해’ 와 ‘초록물고기’ 중에 고민하다가 ‘고양이를 부탁해’를 분석하기로 결정을 했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시나리오 분석이고 해서 이미 봤던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고 분석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읽은 시나리오가 요즘 ‘순정만화’ 로 다시 스크린에 복귀한 유지태 주연의 ‘가을로’ 이다. 벌써 2년 전에 영화관에서 본 작품이지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 2년 전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75쪽의 분량을 읽는 것은 넉넉잡아도 30분이면 충분했다. 그냥 글자만 읽으며 넘어간 것이 아니라 2년 전의 그 영상들을 기억해가면서 또, 내 나름대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그림이 나오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시나리오 용어 F.O 나 v.o 같은 용어들은 알고 있던 용어이고 크게 어려운 용어들도 없어서 용어 해석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다. 연극무대에서도 주로 쓰는 용어들이라서 큰 어려움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책이나 소설이나 희곡과 같이 시나리오 역시 전반부는 인물의 소개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개연성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또한 인물을 소개하면서 인물의 성격이나 직업, 인물들 사이의 관계도 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민주와 창호, 현우에 대해서 나오는데 중점적으로 전체 ‘가을로’ 라는 작품을 이끌어 가는 주역은 민주와 현우라는 인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 전혀 다른 공간의 세진을 비춰주게 되면서 세진이 민주와 현우가 사는 세계와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가을로’ 라는 영화를 간단히 소개해보자면 95년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에 얽힌 한 연인과 또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라는 시대의 한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라면 아마 현우와 민주 그리고 세진은 그 사건에 얽힌 많은 사람들 (그 사건으로 목숨을 잃을 사람과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아프게 안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피해자들의 가족이나 친지 연인들)을 상징하고 그들의 마음을 아픔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위대한 이유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크게는 그런 민중을 대변하는, 그리고 작게는 그냥 그 민주와 현우 세진이라는 인물 하나하나를 놓고 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인물들을 각각 개개인으로 본다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인물 구성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될 것 이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언 마음을 치유해 간다는 따뜻한 이야기. 맞게 이해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내 기억 속에서는 영상미가 참 예뻤던 영화였다. 가을로. 가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니 만큼 가을풍경이 너무나도 예뻤다. 그것이 또한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로 읽었던 가을로 역시 많은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아름다운 영상을 많이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오프닝에서 쓰인 ‘초록의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들이 한데 엉켜 흔들리고 있다.’ 와 같은 구절을 영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운 영상미를 살려 잔잔한 느낌을 준 ‘가을로’라는 영화에 대해서 조금은 극적 구성상 밋밋한 느낌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조금 아쉽기는 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로 읽었을 때가 영화로 봤을 때 보다 더 그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영화로 만들어 졌을 때에는 붕괴되는 백화점의 영상이라던가, 붕괴된 백화점 아래에 깔려 곧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밀려든다는 느낌이 좀 더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역시 시나리오는 영화로 만들어짐으로써 완성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혹은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 있느냐고 한다면 여행을 하면서의 모든 장면이 다 마음에 들었다. 2년 전에는 생각지 못했었는데 시나리오로 읽으면서 눈을 감고 영상을 만든다면 - 하고 떠올린 내 머릿속에 세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이 시나리오 자체가 그것을 염두하고 쓰인 것이긴 하겠지만 세 사람이 함께 바라보는 우이도의 모래언덕이나 경주 계림이나 내연산 등산로 모두 셋이 함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 떠올라서 마음까지도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혹은 마음에 들었던 대사가 있느냐고 한다면 ‘이 여행이 끝날 때는 마음속에 나무숲이 가득할 것이다’ 라고 한 민주의 대사. 그리고 세진이 읊조리고 현우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진 그 주문과도 같은 대사. 내 마음 속에도 그대로 담아져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그 여행이 끝난 수 내 마음속에도 나무숲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
처음해본 시나리오 분석. 그렇지만 시나리오 분석이라기보다는 시나리오 감상문과도 같은 느낌이라서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희곡을 분석하는 것처럼 시대상을 찾고 인물을 분석하고 주제나 줄거리를 쓰거나 하는 것과 같지 않았다. 좀 더 넓고 큰 안목으로 시나리오부터 만들어진 영화 전체를 보듬고 분석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내가 가진 영화의 지식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터라 감상문을 써버리고 만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리고 이렇게 레포트를 쓰면서 지금 이 순간 까지도 느끼고 있는 점은 영화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꼭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아름다운 영상들이 쓰인 그런 영화를 말이다. 될 수 있으면 ‘가을로’처럼 오프닝과 에필로그까지도 아름다운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런 영화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다.
좀 더 영화를 공부하고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법을 배워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구해서 다시 한번 더 제대로 분석해보고 싶다.
많이 부족한 시나리오 분석 레포트,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