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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살사 살사댄스포털 원문보기 글쓴이: 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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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춤추는 남자.
서민준이 일하는 곳은 삼류 영화 잡지사 <느와르필름>이다.
씨네35가 국내 최초 영화주간지로 히트치자, 그 뒤를 이어 수없이 만들어진 영화주간지 중에 하나이며, 희망 없이 살아온 그에게 밥벌이를 하게 해준 곳이다.
서민준은 너무도 분명한 소심남이자 인터넷 폐인이다. 다행히 영화에 관심이 있기에 회사일은 그럭저럭 해나가지만 연애를 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최초에는 연애에 관심이 없었다. 여자란 불확실한 아날로그적 물건에 돈과 시간을 들이기가 싫었다. 오히려 세상에는 그를 유혹하는 다른 물건이 많았다. 쏟아지는 신간 서적과 고화질 영상물,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모으고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랐다.
하지만 나중에는 연애가 서민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게임과 영상물을 보고 들으면서 정작 머리에 빗질 한 번 안하는 남자에게 어느 여자가 관심을 보일까.
몇 평 안 되는 그의 방과 집 베란다에는 택배상자들이 차곡차곡 빽빽하게 들어찼고 그럴수록 서민준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갔다. 그것이 오늘 그가 겪는 비참함의 진정한 이유지만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했다.
어쨌든 서민준은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없는 인생을 보냈다. 연애를 못해봤다고 해서, 운동과는 담쌓고 방구석에서 게임과 영화에 탐닉한다고 해서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에 이런 종류의 한심한 남자는 꽤 많다. 오죽하면 이런 ‘폐인’들끼리 친구가 되고 모임을 만들 정도다.
‘숫총각’이란 말에 얌전해진 서민준은 마감에 묵묵히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료를 찾고 이메일을 보냈으며 키보드를 두드려 기사를 쓰고 다듬었다. 벌써 3년째 하는 일이니 별로 어려울 건 없다. 문제는 이런 즐거움이 없는 호구지책 뒤에 오는 권태감이다.
- 나는 너를 지킨다.
예전에 어떤 애니메이션에서 들었던 대사가 떠올랐다.
무사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 목숨을 걸 만큼 값진 존재를 가졌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과연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회사 안에서 서민준은 그저 톱니바퀴일 뿐이다. 자판기처럼 매달 주는 월급을 받고 잡지에 실을 기사거리를 토해내는 역할이 전부다. 설령 그가 없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디선가 영화나 애니에 미쳐서 사는 백수 하나를 불러들여 책상과 컴퓨터를 내주면 그만이다.
실제로 편집장의 메일함에는 그런 백수들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잔뜩 쌓여있다. 서민준은 그저 흔해빠진 그런 백수 가운데 조금 더 부려먹기 좋기에 이 자리에 있을 뿐이다. 아마 호랑이 편집장은 더 이상 서민준이 부려먹을 가치가 없다 판단하면 점차 그 메일함을 열어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그 메일함을 주시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좋아! 오늘은 이만 들어가.”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호랑이로 변하는 편집장이 드디어 업무시간 종료를 알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였다.
법정근무시간이니 초과수당이니 하는 건 저 어디 달나라 이야기다. 느와르 필름이란 이 공간은 철저히 편집장이 지배한다. 마감이 다가올수록 편집장은 악랄한 독재자가 되어 인신모욕과 인권유린, 노동력 착취를 일삼는다. 채찍만 안 들었지 딱 노예 부리는 상전이다. 더구나 가끔 부하직원을 향해 뿜어내는 살기는 연쇄살인범이 울고 갈 지경이다.
서민준은 가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과 편집장을 혼동했다. ‘내 다리 내 놔!’ 하며 쫓아오는 귀신과 ‘원고 어서 내 놔!’ 하며 다그치는 편집장은 막상막하의 악몽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민준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며 귀가를 준비했다. 그나마 서두르지 않으면 지하철이 끊겨 버린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비싼 택시비로 날려버리면 먹고 살 돈도 안 남는다.
“후우... 죽을 것 같다.”
마감 때는 거의 밤샘근무가 당연한 거고, 평소에도 심심하면 야근이다. 지나고 나면 별로 한 일도 없는 듯 싶은데 뭐가 이리도 바쁜지 모르겠다. 시간이 빨리 가긴 하는데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게 없다. 이러다가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서 늙어죽는다고 해도 남는 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까만 하늘과 별을 보며 회사를 나온 서민준은 비틀거리며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벌써 3년 동안 걸어온 길인데 언제나 꾸벅꾸벅 졸면서 오거나 기진맥진해서 터덜터덜 가게 된다. 몸은 갈수록 무거워진다.
서민준의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어째서 이렇게 힘들고 바쁜 회사생활을 하는 데 살이 빠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힘든 것만으로는 마르다못해 뼈만 앙상히 남아야하는데 반대로 체중은 늘고 아랫배에 두툼한 살집이 잡혀진다. 쉬지 않고 일을 하기에 운동량은 많은 것 같은데 날렵해지거나 근육이 생기기는 커녕 점점 몸이 둔하고 무거워진다.
머리는 텅 비고 뱃살은 날마다 불어나고... 최악이다. 이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
서민준은 문득 희의를 느꼈다. 차라리 회사에 다니기 전에는 폐인이고 돈은 못 벌었지만 나름 생각이란 게 있었다. 국가와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인생과 철학에 대해 나름 식견을 쌓았다. 비록 그것이 만화나 게임 속 세계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젠 그런 것도 없어졌다. 몇 푼 안되는 월급 약간에 영혼을 고스란히 바친 것만 같았다.
- 투둥, 둥, 투두둥.
옆에서 희미하게 음악이 흘러나왔다. 서민준은 문득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살사바 La Salsa>
쿵짝거리는 요상한 음악과 선율,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데 도무지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바(Bar)하면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나온 장면이 있다. 정장을 입은 신사, 차가운 인상의 바텐더, 칵테일과 미녀가 떠올랐다. 물론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곳은 서민과는 통 관련이 없는 세계가 아닌가. 사실 출퇴근길에 위치한 이 바는 여태까지 수없이 지나친 곳이지만 이런 이유로 늘 무시해왔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은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다. 매일같이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살사바가 도대체 무얼 하는 곳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회사나 집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공간일 듯 싶었다.
이런 걸 일탈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방황? 탈선? 어쩌다 난 바람기? 적절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위험할 지도 모른다. 자칫 재수 없이 사기를 당하거나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상한 술집에 끌려들어가 바가지만 엄청 쓰고 알몸으로 쫓겨난 샐러리맨이 있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더구나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언젠가 ‘살사’란 단어를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중남미의 매콤한 소스를 일컫는 말’이란 대답이 나왔다. 그럼 살사바란 그 소스에 뭔가 찍어먹으며 술 마시는 곳인가? 즉 우리식으로 하면 ‘고추장 술집’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서민준은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과 그걸 말리는 이성 속에서 발을 멈춘 채 잠시 라살사 간판 앞에 머물렀다. 나이를 빼면 꼭 사탕가게 앞에서 손가락 빨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이래서는 안 돼.
어쩌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고민했을 지 모르는 서민준은 단호하게 결심하고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이때 뒤에서 슬며시 다가온 이상한 그림자가 서민준을 덮쳤다.
“찾았다!”
“뭐, 뭐야?”
별안간 서민준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 눈앞이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뒤에 손을 뻗어 눈을 가려버렸다.
이건 뭐냐. 신종 유괴범? 아니다. 배나온 어른을 납치해 뭐에 쓸 수 있을까. 아니면 치한? 그건 더 말이 안 된다. 남자를 상대로 한 여자 치한도 없거니와 있어도 서민준 같은 남자를 노릴 리 없다. 여자 목소리였는데 그럼 혹시 회사 동료 김보영? 아냐. 애교라고는 쥐뿔도 없는 그 여자가 이런 짓을 할 리 없지. 그럼 대체 누구지? 강도? 혹시 난 지금 생사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게 아닐까. 이래 놓고 뒤에서 칼을 꺼내 등에 겨누고 있다든지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
짧은 순간에 생각이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갔다. 그렇지만 서민준은 끝내 정답을 알아내지 못했는데 상대는 태연하게도 한술 더 떴다.
“누구우~게?”
이건 요즘 유치원 아이들도 하지 않는 놀이가 아니냐? 하다못해 연인끼리 해도 좀 쑥스러운 장난인데 대체 다 커서 누가 이런 장난을 한단 말인가. 기가 막힌 서민준은 두 손을 올려서 천천히 가린 손을 떼어 냈다.
“저, 누구신지 모르지만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아닌데? 제대로 봤는데요?”
“뒷모습을 보고 착각하신 듯 하네요.”
스스로도 황당하지만 이런 치태를 실수로 보인 상대는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이 점을 배려한 서민준은 최대한 정중하고 부드럽게 대했다.
“실례지만 저한테는 이런 장난을 할 사람이 없어서요.”
과연 뒤돌아선 서민준의 눈에는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스타일의 여자가 비쳤다.
털실로 만든 벙거지같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천연 갈색 물감 같은 것으로 짙게 물들인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는 레게 형태로 몇 가닥씩 묶어서 내렸고 목에는 동물 뼈와 이빨이 수북한 목걸이가 걸렸다. 귀에는 십자가 형태의 장신구가 치렁치렁 달렸다. 거기가 몸에는 멕시코 전통의상인 듯한 감청색 옷을 걸친 기괴한 차림새였다.
“분명히 맞는데?”
여자는 일단 손을 내리더니 서민준을 향해 씩 웃어보였다. 전통화장인지 분장인지 모를 묘한 물감으로 물들인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았는데 그 눈매에는 어쩐지 순진함과 장난기가 넘쳐 흘렀다.
“느와르필름에 다니는 서.민.준 맞죠?”
“어! 어떻게 내 이름과 직장을 아세요?”
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뭘까? 서민준은 난데없이 자기를 덮친 이 여자를 전혀 몰랐다. 단순한 거지?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유랑민족인 집시(Gypsy)? 그런데 집시가 어떻게 이렇게 유창한 한국말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서민준을 알고 있지 않은가?
“아아!”
서민준은 두 손을 탁 쳤다.
“이제 알겠어요.”
“정말?”
여자는 서민준의 반응에 기대가 잔뜩 담긴 눈빛을 보냈다. 그 기대에 당당히 응한 서민준은 가슴을 딱 펴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결국...”
“결국?”
“스토커로군요. 국제 스토커! 이번에 목표를 저로 삼은 거죠?”
“어?”
“미안하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에요, 스토커양.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을 스토킹 해봐야 얻을 것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기왕이면 다른 사람을 한번 스토킹 해보는 건 어때요? 한국이 초행길이라 잘 모르겠다면 내가 대신 좋은 스토킹 상대를 소개해줄께요. 예를 들면...”
“바보!”
어이없다는 표정이 된 여자가 손바닥을 들어 서민준의 머리를 탁 하고 쳤다.
“아예 못 알아보는구나. 하긴 내가 연락도 없이 오긴 했지. 게다가 벌써 반년 전이니까 그럴 법도 하지. 그치만 전혀 짐작도 못해? 이 배신자!”
배신자. 오늘따라 하루에 두 번이나 그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서민준은 문득 오늘 운세를 봐둘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난마처럼 일이 꼬이고 오해받기 쉽다. 주위 사람을 조심하고 특히 이성을 경계하라. 음주가무의 유혹에 휩쓸리기 쉬우니 각별히 신경쓰는 게 좋다.’ 이런 식으로 적혀있지는 않을까.
“아, 그러니까 대체 누구세요?”
이쯤되자 갑갑해진 서민준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이게 무슨 몰래카메라라든가 사람 상대로 엉뚱한 실험하는 방송프로가 아니라면 답이 있어야 했다. 대체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한 서민준에게 이런 국제적인 교분이 있었을 리가...
“어라? 그리고보니...”
퍼뜩 깨닫는 게 있어 서민준은 여자의 체형을 유심히 살폈다. 대략 기억에 있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스친 건 그 다음이었다.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어?”
“아, 아니! 잠깐만 기다려! 그러니까 당신은... 아니, 너는...”
정중했던 서민준의 말투가 약간씩 변했다.
“위, 윈디! 그렇지?”
“빙고! 이제야 맞췄네?”
“어떻게 여기 온 거야?”
“전에 말했잖아? 곧 귀국한다고. 거기다 한국 오면 꼭 찾아
오라고 했잖아? 사진에 프로필까지 보내준 게 누군데?”
“아하하! 그랬나?”
아는 여자였다. 물론 ‘안다’는 것도 좀 미심쩍고 ‘여자’라는 것도 거의 의식하지 않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모르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이런 이상한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나 만나서 반갑지? 그렇지?”
“무, 물론이지.”
말을 좀 더듬거렸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서민준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지금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평범한 인연이라면 이걸 기회로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할까?’ 라는 지극히 클래식한 작업대사라도 날려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눈 앞에 있는 이 여자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또한 애당초 여자라는 성별 따위는 전혀 의식도 하지 않던 사이였기에 더욱 그랬다.
“뭘 그렇게 생각해? 설마 날 직접 보게 되니 너무 감동에 겨워서 그런 거야?”
“아, 물론 반갑지. 근데...”
서민준은 눈 앞에 펼쳐진 차림새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뭐야? 내가 그렇게 신기해?”
어쨌든 초면부터 마구 반말로 일관하는 이 여자의 외양은 보통 튀는 게 아니다. 지금이 어두운 밤이기에 망정이니 대낮이었다면 구경꾼이 수십명을 생겼을 듯 싶다.
“그냥 이런 차림새로 올 줄은 몰라서 말이야.”
“후훗! 그래서 놀란 거야? 원래 이 몸이 좀 패션에 민감해서 말이야.”
맙소사. 패션이라고? 서민준이 아무리 집에 틀어박혀 사는 폐인이지만 그래도 영화잡지사 기자다. 잘나간다는 연예인과 모델을 수없이 봐온 감각으로 봐서 이건 절대로 무슨 첨단패션이 아니다. 차라리 거렁뱅이 스타일에 가깝다. 최대한 눈물나게 좋게 말해봐야 토속적이라거나 빈티지 정도가 알맞은 것 같다.
“그건 그렇고 한국엔 어떻게 온 거야?”
외모 문제는 더 말해봐야 좋은 말 나올 게 없다. 막막해진 서민준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게...”
“뭐, 뭐야?”
서민준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제까지 밝다못해 천진하던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뭔가 지독하게 서러운 사연이 있는 것만 같았다. 당황한 서민준이 뭔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여자가 달려들었다.
“서민준! 나 좀 도와줘!”
“커억!”
지금 이건 포옹이냐? 아니면 무술이냐?
보통 드라마에서는 이럴 때가 클라이막스가 아닌가. 뭔가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며 포근하고 사뿐하게 여자가 안겨와야 하는 데 그게 아니었다. 마치 미식축구에서 볼을 가진 상대편에게 돌진하듯 뛰어든 여자는 서민준의 가슴팍에 팔꿈치부터 들이대며 부딪쳤다. 아무래도 포옹이라고는 평생 해본 적 없다가 처음 시도한 것 같다. 그것도 너무 격렬하게.
제대로 급소에 한 방 맞은 것 같다. 눈앞이 흐릿해졌지만 어떻게든 팔을 내밀어 여자를 슬며시 받아주었다.
“왜 그래?”
“너 혹시 격투기 배웠냐?”
“어, 브라질에 갔을 때 주짓수인가 하는 거 배웠는데? 중국에서는 팔극권도 배웠고...”
“아주 제대로 배웠구나.”
어떻게 하면 이 짧은 거리에서 그토록 강한 타격을 넣을 수 있단 말인가? 무술고수냐? 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배운 건 좋은 데 이런 데서 좀 쓰지 말란 말이다! 서민준은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을 참았다. 어쨌든 상대는 연약한(?) 여자다. 도와줘야 하는 게 남자의 의무 아닌가.
“우리 천천히 이야기 좀 해보자. 도대체 무슨 일이야?”
최대한 듬직하고 자상한 표정을 짓는 얼굴 아래로 몸이 휘청거리고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후둘거렸다. 서민준, 스물 아홉 살 숫총각의 첫 포옹은 이렇게 너무도 감동적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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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바' 가 진정한 의미에서 <Bar>인지는 논란이 좀 있지만, 적어도 살사를 배우기 전까지
저에게 바 란 곳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금단의 성역이었습니다. 늘 영화나 텔레비젼에서나
보던 그 야릇한 분위기. 말쑥한 바텐더가 진이나 칵테일을 주며 이야기하던 그런 상상의 곳이었죠.
그러다 이제는 어느새 ' 야! 우리 주말에 바 나 가자.' 내지는 ' 이따가 바에서 봐.' 등 너무도
편한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주 옛날, 디스코텍 한 번 가는 게 연례행사 정도로 드물던 시절에도 춤이 좋아서
디스코텍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으니 역시 한국인은 춤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그냥 길에서도 음악 들리면 춤을 추는 게 생활인 중남미
같은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하고 순수하게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