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山에
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진달래꽃>(1924)-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관조적, 민요적, 인식론적, 낭만적, 전통적
◆ 표현 : 3음보를 바탕으로 한 동량적 반복에 의한 대칭 구조
시행의 배열과 연의 구조가 규칙적
평범한 시어를 통해 비범한 인식의 세계 형상화
반복과 대칭, 절제된 시어의 사용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꽃 → 모든 생명체를 대표하는 존재의 표상. 자연물을 대표하는 소재
* 갈 봄 여름 없이 → 율격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표현
* 산에 / 산에 → 공간적 배치에 의한 시각적 효과
* 저만치 → 시어의 모호성을 보여주는 시어
거리감을 나타낸 시어 (시적 자아와 꽃(대상 세계) 사이의 거리)
*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 → 모든 존재들의 숙명론적인 거리감을 나타냄
단독자로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와 존재들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감
* 새 → 시인의 모습이 투영된, 감정이입된 소재
자연 속에서 꽃과 함게 어울려 합일되기를 갈망하는 자의 모습
◆ 주제 ⇒ 생성과 소멸의 존재 원리
자연에서 소외된 자아의 고독한 표상(자연과의 합일을 소망하는 자아상)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대자연의 섭리(생성)
◆ 2연 : 고독한 자아의 운명적인 모습(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감)
◆ 3연 : 고독을 인정하는 모습
◆ 4연 : 대자연의 섭리(소멸)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제1연과 제4연에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단순한 사실과 시의 배경을 제시하고 있을 뿐, 시 해석상의 특별한 단서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소월의 다른 시와는 달리 감정과 언어를 절제함으로써 쉽사리 의미의 장이 열려지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계절의 순환을 안고 있는 산 속에서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과, 꽃이 좋아서 산에서 사는 새는 되풀이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단 한번도 새로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절대고독의 그늘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써 고독의 절규를 감추며 자연 현상을 관조적으로 읊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사색의 태도와 깊이를 더하게 한다.
이렇게 꽃도 새도 사람도 외로운 세계에서도 모든 사물은 주어진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 안에서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이 다 외로운 대로 쓸쓸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이 이 작품에 깃들이어 있는 은밀한 주제이다.
[생각할 거리]
1. 이 시에서 '봄 여름 가을 없이'라고 하지 않고, '갈 봄 여름 없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설명하시오.
→ 첫째로 운율적 효과를 고려한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없이'보다는 '갈 봄 여름없이'가 운율적으로 매끄럽고 리드미컬하다. 둘째로, '낯설게 하기' 효과를 노렸다. 자연적인 계절 순환의 질서를 바꿈으로써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유발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2. 이 시의 제2연에서 '산에 산에 / 피는 꽃은'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山에 / 山에 / 피는 꽃은'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설명하시오.
→ 첫째로, 산을 '山'으로 표기한 이유는 '山'이 지문에서 툭 튀어나와 독자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산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산'과 '山'이 가지는 사전적인 의미는 같지만, 독자가 이 양자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feeling)은 다르다. 시인은 이 점을 노린 것 같다. 이러한 기법을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에서는 전경화(前景化)라 한다.
둘째로, '山에 山에'라고 연달아 쓰지 않고, '山에 / 山에'라고 행을 바꾸어 활자를 배열한 이유는, 사방에 있느 ㄴ산, 즉 '이쪽 산에도 저쪽 산에도'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기법은 1910년대 프랑스에서 있었던 형태주의 시의 기법과 일맥 상통한다.
3. 제1연과 제4연이 가지는 내포적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여름에도 가을에도 핀다. 또 꽃은 가을에만 지는 것이 아니라, 봄에도 여름에도 진다. 사계절 모두 꽃은 피고 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연과 끝연은 대자연의 섭리를 표현한 것이면서 동시에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를 말하는 것으로 일종의 무상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4.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신(神)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 경우에 이 시가 함축하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시오.
→ 이것은 김동리의 해석이다. 시인은 완전한 님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그것은 품에 안겨 영혼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구원의 연인일 수도 있고, 기대어 믿고 따를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고, 마침내 기진맥진하고 만다. 바로 그 순간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을 발견한 시인은, 그것이 바로 자신이 희구해 마지 않던 님이라 직감하고, 거기에 안기는 기쁨을 맛본다. 이때 시인이 발견한님은 어느 특수한 님이 아닌 보편적인 님, 즉 신이며, 꽃 · 자연 · 청산은 신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저만치'라는 거리는 신을 똑바로 보고 귀의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거리, 즉 신 또는 청산에 대한 향수의 거리가 된다. 따라서 신으로 볼 때 이 시의 주제는 '신에 대한 향수'가 된다.
[작가소개]
김소월 : 김정식시인
출생 : 음력 1902. 8. 6. 평안북도 구성
사망 : 1934. 12. 24.
학력 : 도쿄대학 상과 중퇴
데뷔 : 1920년 시 '낭인의 봄'
수상 : 1981년 금관문화훈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경력 : 1926 동아일보 정주지국 설립
작품 : 도서, 오디오북, 기타
<개설>
본관은 공주(公州).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김성도(金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사립인 남산학교(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 직후 한때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 도쿄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오산학교 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이돈화(李敦化)·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시작활동은 1920년『창조(創造)』에 시 「낭인(浪人)의 봄」·「야(夜)의 우적(雨滴)」·「오과(午過)의 읍(泣)」·「그리워」·「춘강(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작품발표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인데,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년『개벽』에 실린 「금잔디」·「첫치마」·「엄마야 누나야」·「진달래꽃」·「개여울」·「제비」·「강촌(江村)」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삭주구성(朔州龜城)」·「가는 길」·「산(山)」, 『배재』 2호의 「접동」, 『신천지(新天地)』의 「왕십리(往十里)」 등이 있다.
그 뒤 김억을 위시한 『영대(靈臺)』 동인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 무렵에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을 게재지별로 살펴보면, 『영대』에 「밭고랑 위에서」(1924)·「꽃촉(燭)불 켜는 밤」(1925)·「무신(無信)」(1925) 등을, 『동아일보』에 「나무리벌노래」(1924)·「옷과 밥과 자유」(1925)를,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물마름」(1925)을, 『문명(文明)』에 「지연(紙鳶)」(1925)을 발표하고 있다.
소월의 시작활동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1925년 5월『개벽』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집에는 그동안 써두었던 전 작품 126편이 수록되었다. 이 시집은 그의 전반기의 작품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당시 시단의 수준을 한층 향상시킨 작품집으로서 한국시단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민요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다.
생에 대한 깨달음은 「산유화」·「첫치마」·「금잔디」·「달맞이」 등에서 피고 지는 꽃의 생명원리, 태어나고 죽는 인생원리, 생성하고 소멸하는 존재원리에 관한 통찰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시 「진달래꽃」·「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먼후일」·「꽃촉불 켜는 밤」·「못잊어」 등에서는 만나고 떠나는 사랑의 원리를 통한 삶의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민요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생에 대한 인식은 시론 「시혼」에서 역설적 상황을 지닌 ‘음영의 시학’이라는, 상징시학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집 『진달래꽃』 이후의 후기 시에서는 현실인식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게 부각된다.
민족혼에 대한 신뢰와 현실긍정적인 경향을 보인 시로는 「들도리」(1925)·「건강(健康)한 잠」(1934)·「상쾌(爽快)한 아침」(1934)을 들 수 있고, 삶의 고뇌를 노래한 시로는 「돈과 밥과 맘과 들」(1926)·「팔벼개 노래」(1927)·「돈타령」(1934)·「삼수갑산(三水甲山)·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1934) 등을 들 수 있다.
시의 율격은 삼음보격을 지닌 7·5조의 정형시로서 자수율보다는 호흡률을 통해 자유롭게 성공시켰으며, 민요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독창적인 율격으로 평가된다. 또한, 임을 그리워하는 여성화자(女性話者)의 목소리를 통하여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적 정감을 눈뜨게 하였다.
1981년 예술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시비가 서울 남산에 세워져 있다. 저서로 생전에 출간한 『진달래꽃』 외에 사후에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素月詩抄)』(1939), 하동호(河東鎬)·백순재(白淳在) 공편의 『못잊을 그사람』(1966)이 있다.
<참고문헌>
『김소월전집』(김용직,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한국현대시인연구』(김재홍, 일지사, 1986)
『시와 상상력의 구조』(김현자, 문학과 지성사, 1982)
『김소월 연구』(신동욱 편, 새문사, 1982)
『꿈으로 오는 한 사람』(오세영 편, 문학세계사, 1981)
『현대시론』(정한모, 민중서관, 1973)
『문학과 인간』(김동리, 백민문화사, 1948)
「임과 집과 길」(유종호, 『세계의 문학』, 1977.봄호)
[네이버 지식백과] 김소월 [金素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