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성도재일을 맞아 법문에 들어가면서
-사람은 죽으면 끝나는 것이아니다
제 신묘년 한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양력으로는 임진년 용띠해이지요. 임진년 정월 초하루 원단입니다.
오늘은 2600년 전 우리 불세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날입니다.
또 첫째 주 일요일이어서 이곳에서의 정기법회일이기도 합니다.
양력설이지만 오늘 해맞이 해돋이를 보러 가는 분들이 많고 한데 거기를 마다하고,
부처님 성도일 법문을 듣기위해 1,000명 넘게 많이 오셔서 아주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외국 손님들이 열한 분 오셨습니다.
우리 정부가 여러 나라의 인재양성을 위해서 교육시키고 국비 장학생으로 초청한 분들인데, 노동부 부설 한국기술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는 30~40대로서
그 나라 문교부 산하 과장급 고급 공무원들입니다.
네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몽고 이집트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스리랑카 미얀마 등지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이분들 모두 여기 오신데 대해 스님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축하드립니다. 어제 이분들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이분들을 의식해서
법문을 좀 해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영산불교 교단은 부처님 교단이다.
그리고 광명 만덕 · 자재 만현 모두 영산 당시 상수제자들로서
금생에 다시 몸 받아 와서 불과를 증했다’ 하는 것에 대해 증명을 한다고 할까,
설득력 있는 그런 법설을 중심으로 법문을 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이 그 나라 공무원 사회에서 중견 공무원들이기 때문에
일당 백·천의 인재들이올시다.
그리해서 이분들을 생각해서 한20분 정도 조금...또 여러분들도...
오늘 처음 오신 분!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환영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오신 분들도 많고 해서 꼭 알아두어야 할 법문을 하겠는데,
많이 들으신 우리 신도 분들은 양해 해주시고, 또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간을 조금 할애합니다.
여러분! 항상 들었지요. ‘사람이 죽으면,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럽니다.
‘끝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대부분입니다.
거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 신도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새로운 삶을 또 살게 됩니다.
자기가 금생에 지은 업에 따라서, 얼마만큼 착하게 살았느냐,
그리고 죄를 많이 짓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갈 곳이 정해집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이 몸에서 이 몸뚱이에서 나오는 것이 있다고 했지요.
이 몸뚱이에서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현지사에서는 쉽게 말해서 영체(靈體) 또는 영혼체(靈魂體) 그럽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하자면 ‘형이상적 영적 실체’ 그럽니다.
형이상적. 왜 형이상적이냐 하면 이것은 눈으로(육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보통 수행을 해가지고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화두를 타파해서 견성을 해도 안 보입니다. 더 공부를 해야 됩니다.
자력으로는 아라한이 한계인데 이것은 아라한까지 가도 안 보입니다.
스님이 분명히 말을 해드립니다.
이것은 상품보살이나 불과(佛果)를 증해야 봅니다.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법무아(諸法無我), 무아설(無我說)을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것을 학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해가지고 그 동안의 불교, 지금까지의 불교는
우리 인간에게는 영혼이나 자아(自我), 힌두교에서는 아트만(atman)이라고 하지요.
영혼의 본체, 자아(自我)가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해서 힌두교나 인도의 자이나교 등 그런 종교들과 차별화를 두어서
무아(無我)를 순 없는 것으로 보아 ‘나(我)는 죽어버리면 끝나는 것이다.
내 몸속에 어떤 실체가 없다.
영원불변하는 실체가 절대 없다’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힌두교나 자이나교는 그렇지 않지요.
영혼을 인정합니다. 영혼, 자아를 인정합니다.
이렇게 힌두교와 자이나교와 차별화를 두다가 불교가 인도에서 어떻게 되었지요?
급기야 망해버렸습니다. 인도사회에서 이건 버틸 수 없습니다.
출처:2012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