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3. 큐티
마태복음 16:13 ~ 23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시니이다
관찰 :
1)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가신 예수님과 제자들
- 13절a.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곳에서 열 두 제자들과만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는 상황이었지만 주님의 관심은 적은 수의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주님은 세상 변혁이 이들로 가능하다고 진실로 믿고 계셨던 것입니다.
2) 주님의 질문
- 13절b.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이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를 묻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제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를 점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3) 주님의 질문에 대한 제자들의 대답
- 14절.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 이 고백은 일반 사람들, 예수님을 추종하고자 하는 이들의 견해였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 15절.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이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제자들을 대표하는 고백이나 베드로도 자신 스스로 한 고백은 아니었고, 성령의 은혜로 이 귀한 고백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향후에 도마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왔을 때는 제자 공동체 전체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이 때는 아직 예수님을 진정으로 누구이신지를 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3)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대한 주님의 부언
-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18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 베드로가 복이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얼마나 귀한 고백인 것인가에 대해 주님은 기뻐하시면서 부연해 주시고 있습니다.
- 베드로의 고백으로 비롯된 그 신앙고백(페트라)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 열쇠가 주님의 제자들, 그리고 교회에게 주어지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 교회의 권세는 땅에서 무엇을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이 될 것임을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아직 주님의 교회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주님의 교회들에 대해서 큰 축복을 예비하시고 계심을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 이 모든 것이 온전한 신앙 고백에서 비롯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바르게 알고 고백하는 고백 위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 될 것임을 말씀해 주시고는 것입니다.
- 20절.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 아무에게도 자기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이르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의 의도하심대로 순종하고자 하셨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4) 십자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예수님
- 21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살아나야 하심을 제자들에게 말씀하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물으신 이유입니다. 그것이 확인되자 예수님은 자신의 예루살렘에서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에 대하여 제자들이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22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진정으로 알았다면 이런 떼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주님에 대한 위대한 고백을 했을 따름이지만 다시 자신의 이성에 붙잡혀서 하는 고백은 주님이 그런 험한 길을 가지 마시라는 인간적인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떼를 쓴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성령의 감동으로 고백해 놓고도 아직 예수님이 정말 누구이신지를 모르기에 자신의 혈기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예수님을 움직여 보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 23절.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롸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주님은 베드로의 인간적인 따뜻한 마음을 아셨지만 그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굽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식겁했겠지만 무엇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신이 번쩍 났을 것입니다. 의리나 인지상정의 마음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함을 분명히 알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제자의 길은 의리조차 없어서는 아니되는 길이지만 의리 때문에 굽어지는 길이 되어서는 안되는 길입니다.
가르침 :
1)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아닙니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의 대표적인 오류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만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그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제자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 자신이 아니라 “이 반석”, 헬라어로 “페트라”라는 여성명사를 통해 주님의 의도를 표현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샤라 빌립보의 이 순간을 위해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시고 기적과 이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제대로 된 고백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감동으로 말미암은 고백을 통해서 하게 된 것입니다. 이 고백이 위대하고, 귀하고, 복된 이유입니다.
2)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서의 환상이 오버랩이 됩니다. 제국의 역사를 깨부수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은 뜨인돌이 신상을 치고 세상에 가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반석이 아니겠습니까? 제국을 무너뜨린 뜨인돌은 온 세상에 가득한 돌들이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함으로 제국의 역사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3) 베드로가 예수님이 고난당하시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시지 마시도록 간구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마땅한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셔야 하는 길이 그 비아돌로의 길이 그렇게 인간적인 관점을 따르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올바른 신앙고백을 성령께서 주셨듯이 인간적인 애원을 사탄이 베드로에게 넣어줌으로 주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에 대해서 주님은 분명하게 선을 그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경계를 하셨습니다. 사탄의 악한 아이디어를 쫓아버리신 것입니다.
적용 :
1) 베드로의 고백은 주님이 듣고 또 듣고 싶었던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고백에 매우 기뻐하시는 속내를 보여주셨습니다. 심지어 그 고백이 베드로 스스로의 고백이 아니었음도 알려주셨습니다. 그 고백이 있기를 주님은 구약 전체의 시간과 주님의 공생애의 모든 시간동안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 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 교회의 권세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천국을 열고 닫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떤 고백으로 주님을 고백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하루의 나의 바른 신앙 고백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그런, 내 힘으로가 아닌 성령의 은혜로 고백되어지는 그런 고백을 주님께 올려드리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가장 기본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십니다”입니다. 주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2) 주님의 일을 하는데 인간적인 정을 앞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 인간적인 정도 없으면 안되는 것이고, 그 바탕 위에 더 큰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작금의 기독교에 의리도 없고, 그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대의도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의리가 쌓여야 합니다. 주님은 그랬기에 제자들과 충분한 시간을 통해 깊은 교제를 나누시고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비밀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역 초기에 교회의 비밀을 열어서 제자들에게 넘겨주시면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내용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시는지 그 구구절절함에 놀라게 됩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깊고 깊은 연합을 이루셨고, 그 의리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비밀과 십자가 사역을 이루시고, 위임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3) 제4차 로잔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974년 이후 50년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이 바르고 잘 담겨져서 고백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로잔대회를 반대하는 이들의 염려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는 언제나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로잔 대회를 축복해 주시고, 그 안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바른 신앙 고백이 올려드리게 되어지길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