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13 오전 10:41:21 [스포홀릭]
야구경기는 선수가 뛰지만 정작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그렇다면 과연 야구감독이 소속팀의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그리고 이번 스토브리그 동안 사령탑을 교체한 SK와 LG는 감독교체에 따른 효과를 볼 수 있을까?
한·미·일 프로야구, 관점의 차이
미국 프로야구인 메이저리그(이하 MLB)에서는 감독의 역량을 극히 제한하고 있다. 감독이 제 아무리 용병술의 달인이라 할지라도 실력이 뛰어난 선수 없이 좋은 성적은 어림도 없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는 감독의 능력은 162경기를 치르는 시즌에서 5경기 내외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신 코치들의 역량은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교수법을 가진 코치들은 각광받기 마련이다. 레오 마조니(현 볼티모어 투수코치), 릭 피터슨(현 뉴욕 메츠 투수코치)과 같은 코치들은 이러한 점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그러나 일본 프로야구(이하 NPB)과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감독에 대한 생각이 사뭇 다르다. 세밀함으로 대변되는 NPB의 경우는 경기에서 특정 선수의 희생을 승리를 위한 단초로서 활용하는 경우가 잦다. 팀 플레이를 통해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들며, 이는 감독의 작전이 상당부분 개입됨을 의미한다.
또한 투수들간의 상성이나 데이터가 말해주는 부분도 선수 기용에 적극 반영되기에 감독의 역량은 선수의 공헌도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MLB의 감독과 비교해 일본 감독의 입지가 클 수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은 MLB와 NPB에 비교해 다소 중립적이긴 하나 일본에 좀 더 가까운 형태다. 감독의 역량은 비교적 높게 평가받는다. MLB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는 까닭은 선수단의 정서와 선수층에 그 원인이 있다.
우선 선수단의 정서에서 차이를 보이는 면은 개인주의 성향과 전체 및 집단 위주의 성향으로 구분할 수 있다. MLB의 경우 서양의 정서를 가지고 있기에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탭과 선수들의 관계는 개인주의의 성향을 띄고 있으며 수평적이다. 선수가 감독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감독도 선수를 인정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와 다소 다르다.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탭과 선수들의 관계는 팀이라는 집단을 강조하며 수직적이다. 감독에서부터 신인 선수까지 야구계라는 끈으로 철저히 묶여 있다. 동양의 정서에 웃어른을 경외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탓이다. 이러한 색채 때문에 감독은 적어도 자기 선수단에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선수 개개인의 과격한 의사표현은 기용 불가라는 화살로 날아올 수 있다.
선수층에 대한 차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MLB는 그야말로 선수가 풍부하다. 어지간한 주전은 이미 확정된 상태이며 비집고 들어가기엔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을 제외하고도 마이너리그의 유망주들이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감독이 개입될 여지도 그만큼 적다.
허나 한국 프로야구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주전도 미확정인 경우가 즐비하며, 백업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2군은 사실상 팜으로서 구실이 약해 특정 유망주에게 1군에서 기회를 주는 것도 감독의 손에 달렸다. 여기서 감독의 역량이 크게 갈린다. 누구를 기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무한히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 프로야구의 동계훈련은 몹시 중요하다. 주전을 결정하기 위해 매년 옥석을 가려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판을 구상하고 전력 극대화를 위한 준비작업을 해야 한다.
시즌 중 실전 경기에서는 작전이 다소 개입된다든지 수싸움, 분위기의 파악, 승부수 투입 등도 감독의 역량을 더욱 확장시키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한국 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보다 좀 더 많은 감독의 능력이 개입된다고 판단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이번에 감독을 교체한 SK와 LG는 그 효과를 지켜볼 수 있는 좋은 표본이다.
김성근 감독의 SK 와이번스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SK는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SK와 김성근 감독은 썩 괜찮은 궁합이다.
스포츠 과학으로 불릴 만큼 박식한 김성근 감독은 일본 연수 경험까지 더해져 그간의 지도자 생활에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훈련을 강조하는 타입이라는 점이 SK에 어울린다.
SK는 그 어느 팀과 견주어 딱히 밀리지 않는 선수단을 구성하면서도 정작 발군의 기량이나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는 턱없이 모자라다. 선수들의 훈련량이 부족하거나 훈련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이런 팀에 훈련의 마술사로 대변되는 김성근 감독의 선임은 적절한 처방이다.
뜻하지 않게 중심타선에 이호준이 가세한 점은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전력의 급상승 요소다. 선발진이 아직 불안하긴 하지만, 동계를 거쳐 선발감으로 지명될 선수들은 충분히 제 몫을 해낼 것이다. 그간 우승 경험이 없던 김성근 감독 자신을 위해서도 임기내 SK의 우승은 현실성 있는 목표다.
김재박 감독의 LG 트윈스LG는 올시즌 4강을 목표로 잡고 있다. 그리 어려운 목표는 아니다. 국내 프로야구의 4강 진입은 그 팀이 잘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다른 팀이 못해서 반사이익을 얻는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8개밖에 안 되는 팀이 소속된 리그에서 절반인 4개 팀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제도가 그 배경이 되고 있다.
김재박 감독은 이미 현대에서 4번의 우승을 경험한 감독이다.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선수단 구성에 컨셉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짜임새 있는 선수 구성에서는 승부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이번 오프시즌 동안 LG는 가장 움직임이 많았던 구단 중 하나였다. LG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시적인 보강은 가장 많이 이루어진 팀이었다. 김재박 감독이 구슬을 어떻게 꿰는지가 관건이지만, 적어도 꼴찌였던 지난해보다는 훨씬 더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도하 아시안게임의 참패도 김재박 감독이 명예회복을 위해 와신상담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더구나 김재박 감독의 측근은 화려하다. 김용달 타격코치와 양상문 투수코치는 현장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코치들이다. 구단도 전폭적으로 김재박 감독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LG의 체질개선이 이루어 질 수 있다면 당장 4강 진출도 무리는 아니다.
감독교체를 단행한 SK와 LG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는 과제다. 선수단 구성이 큰 변화를 거쳤지만, 그 어떤 사례보다 감독의 역량을 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의 SK호와 김재박 감독의 LG호가 출항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