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2007 프로야구 2차 지명 현장. 취재열기는 뜨거웠지만 야구팬들의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다.
지난해 8월 1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는 2007년 프로야구 2차 지명이 열렸다. 당시 TV 카메라는 현장에 있었지만 2차 지명을 중계한 스포츠전문 방송국은 없었다. 미국의 NFL이나 NBA 드래프트는 그 자체로 엄청난 화제가 된다. 드래프트장도 뉴욕의 메디슨스퀘어가든이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는 30개 구단 단장들이 전화 회의로 진행하지만 대다수 스포츠 매체에서는 며칠에 걸쳐 특집으로 다룬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발 빠른 기자들이 미리 구단의 지명 정보를 빼낸 뒤 선수 집으로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의 드래프트 현장은 썰렁하다.
한 방송국 PD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선수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과연 그렇다. 지난해 현대를 제외한 7개 구단은 연고지 선수 2명씩을 미리 1차 지명했다. 한국야구의 아마추어 저변은 좁다. A급 14명이 이미 빠져나간 드래프트의 흥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지 모른다. 이 PD는 “중계방송을 건의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월 31일 이사회를 열고 “올해와 2008년 1차 지명 선수를 1명으로 줄이고 2009년부터 1차 지명없이 전면 드래프트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1차 지명과 2차 지명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방법은 2가지다. 프로 구단으로부터 지명을 받거나 신고 선수로 입단한 뒤 정식 계약하면 된다. 지명은 다시 연고지 선수에 대한 독점적 계약 권리를 갖는 1차 지명과 8개 구단이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돌아가며 선수를 뽑는 2차 지명으로 나뉜다. 이른바 ‘드래프트’는 이 2차 지명을 의미한다.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에는 1차 지명 제도가 없다.
프로야구의 신인 지명 방법은 굴곡이 있긴 하지만 초창기 연고지 권리를 무제한으로 주는 데서 차츰 드래프트가 강화되는 쪽으로 진행됐다. 1983~1986년 1차 지명자 수는 무제한이었다. 당시 선수 자원이 풍부하던 롯데는 최동원, 양상문, 심재원, 유두열 등 무려 14명을 1차 지명에서 뽑았다.
여기에 고교 졸업 예정 선수라면 지명 절차를 거치지 않고 뽑을 수 있었다. 경북고를 졸업한 이승엽이 그런 경우다. 이승엽은 1차 지명도 2차 지명도 아닌 ‘고졸 신인’ 신분으로 1995년 삼성에 입단했다. 이러니 2차 지명의 의미는 ‘연고 구단이 거들떠 보지 않은 선수 고르기’로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1983년 2차 지명에서 롯데가 뽑은 선수는 2명이었다.
이는 ‘연고지 출신 스타가 많아야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따랐다. 연고지에 고교 야구팀이 적거나 연고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는 구단은 처음부터 핸디캡을 안는다. 만성적인 연고지 투수난을 겪던 삼성은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반면 부산, 경남의 롯데나 광주, 호남의 해태는 반대 입장이었다. 구단 간 이해득실에 따른 전면 드래프트 찬성, 반대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차 지명 선수 수는 1987~1989년 3명에서 1990년 2명으로 줄었고 1991년부터 다시 1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고교 선수들에 대한 무제한 계약 권리는 1995년까지 이어졌다. 그 뒤 1996년부터 ‘고졸 우선 지명’이라는 이름으로 3명으로 범위가 축소됐다. 무제한 지명에 따른 대학과의 스카우트 분쟁과 뒷돈 거래가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류 선수 수 제한(당시 60명)을 생각지 않은 ‘묻지마 계약’으로 기량을 꽃피우지도 못하고 사라져가는 선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다른 팀에 입단할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처사이기도 했다. 고졸 우선 지명은 1999년부터 1명으로 줄어들었고 2000년부터는 사라졌다.
그러나 2003년 KBO 제2, 3차 이사회는 1차 지명 선수 수를 2006년부터 2명, 2009년부터 3명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1차 지명권 축소라는 추세에 반하는 의결이었다. 프리에이전트(FA) 제도 도입으로 연고지 출신 스타들이 이탈하자 ‘연고지 우수 선수를 늘려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설득력을 얻었다. 여기에 아마추어 팀에 대한 지원 유도라는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다. 전면 드래프트 제도 도입은 2003년의 의결을 백지화하는 셈이다.
전면 드래프트, 왜?
KIA와 SK는 전면 드래프트 결정에 가장 반발하는 구단이다. SK는 연고지역 내에 14개 고교 야구팀을 거느리고 있다. 2005년 현재 지역별 고교야구팀 수는 서울 15개, 부산•경남 8개, 대구•경북 6개, 광주•호남•제주 8개, 인천•경기•강원 14개, 대전•충청 6개다. 당장 피해를 보는 구단 입장에서 반발은 당연하다.
사실 전면 드래프트는 KBO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전면 드래프트가 구단 간 전력 균형에 도움을 준다는 논리에서다. KBO 관계자는 “2003년 이사회에서 1차 지명권이 확대되자 처절한 심정이었다”고까지 말했다. 이 관계자는 “롯데가 4년 연속 최하위를 해 2차 지명 전체 1번 지명권을 연달아 받았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1차 지명에서 우수 선수들이 미리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상일 KBO 운영본부장은 “현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도시연고제와 전면 드래프트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전면 드래프트는 야구 규약에 명시된 도시 연고제를 기정사실화하는 효과가 있다. 도시 연고제의 정착은 신생 프로구단을 유치하거나 흥행 부진을 겪는 구단이 연고지를 옮기는 데 유리하다. 결국 무산되긴 했지만 KBO 하일성 사무총장이 농협중앙회와 인수 협상을 할 때 “농협이 전면 드래프트 도입을 희망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다.
1차 지명 소멸의 효과
그렇다면 1차 지명권의 축소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1차 지명 선수는 그해 연고지에서 배출되는 선수 가운데 최고로 평가된다. 우수한 유망주일수록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1991~1995년 1차 지명자 가운데에는 박정태, 박재홍, 정민태, 임선동, 이종범, 구대성, 양준혁, 이상훈, 유지현, 문동환, 심재학, 위재영 등이 있다.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대개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진가를 나타낸 선수들이다. 그러나 최근 1차 지명 선수들은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스카우트들의 공통된 평가다. 2001~2005년 1차 지명자 가운데 스타 플레이어로 불릴만한 선수는 KIA 김진우(2002년)가 유일하다. 그나마 김진우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현대 김진철 스카우트 부장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량 차이가 과거보다 커졌다”고 말한다. 데뷔 시즌부터 당장 주전으로 뛰는 선수는 매우 드물어졌다. 고교 선수들의 대학 진학 기피도 이유다. 위에서 든 1991~1995년 1차 지명 출신 스타 12명은 모두 대졸 선수였다. 그러나 2006년 1차 지명 선수 7명 가운데 대졸은 2명뿐이다.
과거에는 대학 야구가 고교 야구라는 싱글A와 프로야구라는 메이저리그 사이에서 더블A나 트리플A 역할을 했지만 지금 대학 야구는 사멸 위기다.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처럼 단계적인 마이너리그 시스템이 없다. 2군에서는 18살짜리 선수와 30대 선수가 같이 뛴다. 유망주가 기량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얻지 못한다. 그 결과는 유망주들의 조기 퇴출이 되기 십상이다.
1차 지명 선수의 대성 가능성은 과거보다 떨어져 있다. 연고지 자원이 풍부한 구단도 1차 지명에서 실패한 사례가 더 많다. 2년 뒤에 사라질 1차 지명권은 사실 그렇게 아쉬운 건 아니다.
전면 드래프트 실효를 위해서는
전면 드래프트 도입으로 바빠질 사람들이 있다. 8개 구단 스카우트들이다. 현재 8개 구단이 고용하는 스카우트 수는 구단당 평균 3명 선이다. 연봉 3천만 원대 계약직 직원들도 많다. 전면 드래프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스카우트망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는 연고지 고교를 중심으로 정보 수집 작업을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1차 지명권이 2장으로 늘어난 지난해 스카우트들은 고교 야구가 열리는 동대문야구장에서 비교적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미 우수 선수들이 1차 지명에서 빠져나갔기에 이렇다 할 스카우트 대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올해부터는 바빠질 전망이다.
물론 팬들은 연고지 출신 유망주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드래프트가 앞으로는 ‘진짜 드래프트’가 된다. 최하위로 떨어진 구단은 ‘그해 최고의 유망주’를 선택하고 팬들에게 홍보할 기회가 생긴다. 순위가 밀린 구단들이 어떤 유망주를 선택할지 지켜보는 것도 팬들에게는 즐거움이다. 하나를 잃었다면 새로운 하나로 벌충하면 된다.
SPORTS2.0 제 37호(발행일 02월 05일) 기사
최민규 기자
첫댓글 흠 올해 내년 한명씩 뽑는거면 마지막이면 잘 좀 뽑도록... 최근에 두산에게 신인 쟁탈전에서 밀리는 경향이...
최근 몇년간 1차지명 실패인건 엘지나 두산이나 마찬가지인듯.. 그나마 김명제 정도가 절반의 성공이긴 했지만. 박경수도 짜장 실패는 아니고요.. 어쨌든 엘지 두산이 전면 드래프트에 찬성한 것도 이런 이유인듯
사실 기아나 롯데의 지역 신인들이 가장 좋은 능력들을 가졌던것 같아요... 그 팀의 성적과는 별개로..